송민선 81

타작마당

해마다 가을이 되면 벼 추수가 끝나고 콩과 깨 추수를 할 때 마당 가득 커다란 비닐 매트를 깔고 콩을 널어놓고 바짝 말리는 작업을 한다. 속이 여물었어도 잘 말리지 않으면 콩 껍질과 콩이 잘 분리가 되지 않기에 며칠을 잘 말리고 난 후, 때가 되면 긴 막대기를 들고 엄마와 아빠께서 콩을 사정없이 타작하기 시작한다. 콩이 껍질에서 분리되어 이리저리 튈 때 매트 밖으로 떨어지는 녀석들이 껍질이 아니고 알맹이라면 반드시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줍는다. 긴 장대로 바짝 마른 콩을 인정사정없이 후려칠 때 콩이 생각이라는 것을 할 줄 알았다면 ‘왜 아무 잘못 없는 나를 때리세요? 아파죽겠어요. 억울해요’라고 아우성을 치지 않았을까. 그렇다 한들 어린 나조차도 그 매트라는 자리를 벗어나 전체적 관점으로 콩을 바라보니..

송민선 2020.06.30

무한의 폭격

눈에 블라인드를 하고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가이드를 받으며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체험을 한 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고 참 쉬워 보이던 것이 막상 눈이 가려지고 손에 개 줄이 쥐어진 채 걷기 시작할 때 극도의 긴장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내가 이 개를 믿고 내 목숨을 맡겨야 하는가?’ 개랑 가다가 그 개가 멈추면 다른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로 주변을 탐색한다. 앞에 블록이 튀어나오거나 계단, 신호등이 있을 때 개는 일단 멈춘다. 20분 정도의 거리였던 거 같은데 왜 이리 멀게 느껴지고 겁이 나는지. 하도 오래전이라 잘 기억은 안나지만 지하철 계단에서와 신호등 앞에서와 보도블럭 앞에서 등등 개가 주인에게 보내는 신호가 다르도록 훈련을 받고 그 개는 훈련받은..

송민선 2020.05.31

연습인생

말씀을 듣고 있는데 내부에서 자동 분류 현상이 작동한다. 가능성과 불가능성 그리고 가능한 것을 하나씩 배제 시킨다. 강의 듣기, 말씀 듣기, 기도하기, 말씀 보기, 밥 먹기, 잠자기... 가능과 불가능을 가려보다가 어느 한 경계선으로 와 있다. 경계선을 기준으로 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한 쪽에 있었던 적이 있었음을 상기한다. 단지 안 할 뿐이지, 아직 훈련이 덜 돼서 그렇지,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지, 이번엔 운이 없어서 그렇지,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안 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거지. 허락하시지 않으면 아침에 눈을 뜰 수도 없고, 밥을 먹을 수도 없고, 누군가를 좋아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고, 그렇게 쏙쏙 들리던 말씀도 귀가 아프고 눈에 통증이 오게 하시면 들을 수도 한 줄 글을 읽을 ..

송민선 2020.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