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선 78

주님의 보물찾기

눈을 뜨고, 오늘 주어진 일들에 대해 계획들을 되뇌며 원래부터 있던 반복되는 스케줄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 바로 ‘나’인데, 피로 범벅된 양피가 모세의 발 앞에 던져지고 땅에 속하지 않은 요소가 모세를 이용해 스스로 움직이듯이 손발이 척척 맞던 최고의 파트너인 나를 내가 주장하지 못하고, 내 의미도 내 목적도 할례받은 하루하루를 만난다. 말씀을 듣고 앵무새처럼 똑같이 말하고 행하려고 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말씀이 죄라는 동일한 본질 속에서 작동해도 각자의 죄를 악기 삼아 연주하실 때 다양한 소리로 주의 의를 증거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이제는 추가적인 계시가 계속 있는 것이 아니라 최종적 계시의 반복 속에서 매 순간 죄의 깊이가 달라지면서 같은 말씀인 듯 이전과 다른 낯선 음악이 연주 되기에..

송민선 2021.09.24

용서의 능력

신앙생활은 평안 속에 기쁨과 감사로 가득 찬 환상적인 삶이 아니다. 오히려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같이 심령으로 평온한 것은 이제 어떤 전쟁같은 순간도 ‘괜찮아요’를 연발할 준비가 된 상태이다. 겉과 속이 다른 가식이나 위선이라고 한들 이미 속에서 올라오는 모든 것이 내가 아니요, 겉으로 의연하게 표현되는 것 또한 내 의도가 아닌 것이 되니 어떤 상황을 단속하되 단속되지 않고 통제해보려 하지만 통제되지 않는 더이상 나에게 기대하지 않는 삶이다. 매 순간 이미 심판 속에 있고 심판을 삼키고 있는 자인 것을 잊지 않도록 닭 우는 소리를 수시로 보내어 주님의 품인 십자가로 달려가게 하시지 않고 예수님도 잃어버리고 믿음도 잃어버리고 아무 의지할 것이 없는 허탈감과 무력함을 가득 담은 육을 스스로 지고 ..

송민선 2021.09.08

수련회 소감

천사가 내려와 연못이 동할 때 물속에 들어가면 병이 낫는다는 베데스다 연못에 38년 된 병자가 거적때기 위에 누워있었다. 긴 시간 동안 기적같은 은혜를 받기 위해 그가 했던 것은 물이 움직일 때마다 자신의 판을 벗어나려고 꿈틀꿈틀 용을 쓰며 기어가는 일이었다. 그런데 주변에 포진된 다른 병자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하니 자신보다 더 나은 조건을 가진 병자가 먼저 물에 들어가는 상황이 오랜 시간 반복되었을 것이고 자기는 언제쯤 최후 1인이 될지, 혹시 영원히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절망을 수도 없이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병자는 인간세계나 신의 세계나 1등만 인정하는 더러운 세계라고 한탄하기 전에 왜 자신이 꼭 정상이 되어야 하는지, 도대체 병자와 정상의 기준이 어디서 나온 건지, 자신..

송민선 2021.08.08

슬기로운 지옥생활

산책을 하다가 두 종류의 개 주인을 보았다. 두 주인의 공통점은 개 줄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한 주인은 개가 가다가 멈추면 멈추고 수풀 속을 탐색하면 기다려준다. 그래서 개가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며 할 짓을 다 한다. 개가 주인인지 사람이 주인인지 잠시 혼동된다. 다른 한 주인은 자신의 목적인 빠르게 걷기에 충실하며 멈추지 않고 걷는다. 개도 덩달아 빠르게 걷는다. 아니 달려가는지 끌려가는지 분간이 안 된다. 개가 잠시 줄이 늘어진 짧은 틈을 이용해 수풀을 탐색하려고 시도하다가 줄이 팽팽해지며 몸을 조이는 힘에 이끌려 다시 질질 끌려간다. 주인은 개를 돌아보지 않고 그저 쉬지 않고 열심히 걷고 있기에 주변의 누가 봐도 왜 개를 데리고 나왔는지 의아한 마음을 갖게 만든다. 내가 개라면 난 첫 번째 개가 ..

송민선 2021.07.05

이해와 오해(텅빈 무대)

동영상 속에 한 아기가 표정으로 말을 한다. 중간중간 손으로 지시를 하며 소리를 낸다. "어~어~어~..." 신기한 일은 아기를 화면으로 관찰하고 있는 나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 아기의 보호자는 용하게도 척척 아기가 원하는 것을 준다. 보호자와 아기 사이에 무엇이 있기에 이들은 서로 통하고 있는 것일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랑, 무엇을 주어도 그것이 자기가 원한 것이라고 무조건 받을 수 있는 사랑, 개떡같이 말했는데 자신조차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데 화답이 찰떡같이 오는 사랑, 무엇을 주었고 무엇을 받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왔는지 근원만 중요한 이 특이한 사랑 안에서 이해 못 함도, 오해도 성립되지 않는다. 아브라함이 축복과 저주의 기준이 자기 자신이라고 오해를 했다...

송민선 2021.06.03

주님의 아픔-십자가에 갇혀서

“엄마, 나 진짜 맘 잡고 공부 좀 해보려고 하는데 좀 도와주세요...”라는 딸의 말에 이미 늦었다는 말보다 해보자는 격려를 보내며 무엇을 어떻게 도와주면 될지 물었다. 다른 과목은 인강 듣고 혼자서 하면 되고 수학은 학원을 다녀야 할 것 같다고 나름의 계획을 말하면서 영어는 나에게 가르쳐 달라고 한다. 주중에는 일이 늦게 끝나서 일단 과제를 내주고 주말에 집중적으로 설명해 주기로 약속하고 다음 주말이 되었다. 속아 마땅함을 알게 하시려고 자식을 주셨음을 잠시 망각했다는 ‘아차’라는 바람이 휙 지나간다. 본인이 계획했던 것의 10%로 실천이 안 되어있는 모습에 이미 속에서는 뜨거운 것이 올라오기 시작했지만, 니 애미는 너와 달리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란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오기로 영어 문법을 설명하기 시작..

송민선 2021.04.07

구멍으로 만든 자아

한 아이가 4살쯤 했던 기도 내용이 갑자기 떠오른다. 늘 친구처럼 잘 놀아주던 아버지가 하루는 아이의 장난이 도를 넘어서자 엄하게 꾸중했는데 그날 저녁 아이는 자기 전에 이렇게 기도를 했다고 한다.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가 지옥에 가지 않도록 지켜주세요. 지옥은 무척 뜨거운 곳인데...사람이 견딜 수 없는 곳인데...아버지가 지옥에 갈까 걱정이 됩니다...’ 그 아이 안에 지옥은 어떤 곳이었을지 잠시 들여다보며 내 안에서 그려진 지옥은 어떤 곳일까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사람은 지옥과 천국이 막연한 듯하면서도 나름대로 제법 구체적인 모습을 그려낸다. 그러기에 성경을 보며 구원받으면 천국 가고 구원 못 받아 지옥 간다는 그 천국 지옥을 어려움 없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런데 사람이 아는 죄와 ..

송민선 2021.02.26

I am god, too(화풀이 인생)

사회초년생 시절 함께 자취했던 동생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언니, 나는 왜 이렇게 구제 불능일까. 나름 잘하고 싶어서 노력하는데 자꾸 친구를 힘들게 하는 일들이 벌어져...”라고 하며 그 친구가 절교 선언을 했다고 했다. 다 큰 것들이 놀고 있는 모습이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떠나기 전 그 친구가 마지막 남긴 말이 가관이었다. “너 때문에 교회 가서 회개하는 것도 이제 지긋지긋하다...” 한 정신병자가 “나는 예수다”라고 소리치면 그 옆에서 다른 병자가 “아들아 잠잠해라”라고 말한다는 농담이 웃기지 가 않다. 농담이 아니었다. 사람은 타고난 신이고 신 중에서도 상대보다 더 센 신이기를 원하는 정신병자이다. 이런 인간 내부를 관통해서 들어가 마음이라는 막까지 뚫고 바닥까지 내려가서 보게 하시는 실체는 ‘나는..

송민선 2021.02.12

수련회 소감문

마저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의 실체가 뭔지도 모르고 자체 처방전을 남발하며 최선을 다해 살고 있을 때 예측하고 상상이 가능한 한계를 넘어서는 공포를 만난다. 진실을 마주하는 자리, 내가 누구이고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게 되고 더이상 나를 주장할 수 없는 최종상태. 인간의 시선을 넘어서는 응시에서 보내지는 예언이 나에게서 막히지 않고 관통하니 그제야 진리와 만난다. 태어나기도 전에 미움받기로 작정 된 노선인 것을 정녕 죽어야 할 자이고 인간에겐 애초에 축복과 저주를 미리 알고 그중에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은 없다는 그 낯선 사실 앞에 사울만큼 두렵고 떨림으로 마주했는지 사무엘상의 말씀이 익숙한 삶의 영토에 침투해서 유령의 세계로 따라오라고 손짓한다. 낮은 마음으로 왕의 자리도 주제 파악하며 겸손히 마다할 수 ..

송민선 2021.01.17

신체의 징후

거짓말의 달인은 거짓말을 해도 거짓말 같지 않은 느낌을 주며 상대를 완벽하게 속일 수 있는 능력자이다. 이런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달인은 거짓말인지 아닌지 그 경계를 초월해서 자신조차도 스스로 속아야만 완벽한 거짓말을 할 수 있다. 거짓말의 달인에게 실컷 당하다가 나중에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에서 이런 대사가 오간다. “거짓말은 나쁜 거니까 이제부터 거짓말하지 마세요”라고 남자가 말하자 “상대가 날 믿게 한다는 게 어디 쉬운 줄 알아요? 이건 고도의 지능 이 필요한 게임이라고요. 아무나 할 수 없어요. 거짓말은 천부적인 능력이거든요”라고 여자가 대답한다. 남자는 그 말을 듣고 여자가 거짓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 자신이 맞춰보겠다며 내기 질문을 한다. “당신 나 좋아하는 거 맞지요?” 여..

송민선 2021.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