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선 78

[영적전쟁] 독후감

에베소서(영적전쟁)을 읽고서책은 그냥 펼쳐서 읽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책보다 앞선 것들이 있었다. 책의 표지에서, 책 안쪽에서, 책 안에 박혀있는 한 단어 한 단어가 예수님 자신의 몸을 비틀어 짜낸 흔적들이었다. 마치 악마가 성공했고 주님은 실패한 것으로 보였다. ‘이걸 어떻게 읽지? 읽을수록 더 혼란스러워지는 거 같아. 괜히 마귀의 시험에 들지 않도록 이 책에 시간 허비하지 말자. 보더라도 대충 후딱 보자. 이게 아니어도 볼 책이, 들어야 할 강의와 설교는 많이 있으니까...’책은 이미 보이지 않는 전쟁을, 심판의 불을 지나온 것 같다. 외면하고 싶은 너덜너덜 찢기고 만신창이가 된 한 분의 몸이 펼쳐지고, 책망의 음성을 발한다. 네 안에 담긴 말씀에서, 네가 가지고 있는 복음에서 탈출하라고. 네 ..

송민선 2024.11.06

수련회 소감-언약위에 얹힌 시체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신7:8)신명기는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을 미리 확인 시켜주시는 말씀으로 다가온다.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고, 하늘에서 이루신 그 사랑을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신다. 장차 등장할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불같은 사랑이 시범 조교인 이스라엘을 통해서 표출되었다.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그분의 등에 업혀서, 하나님이 친히 동행하셨기에 신발도 해지지 않고 옷도 낡아지지 않았다. (출19:4, 신,1:31, 신29:5)사실상 그들은 신발을 신을 필요조차도 없고, 더이상 자기를 치장하고 부끄러움..

송민선 2024.08.07

행실이 좋지 않은 자

‘또 뭘 쓰는 거야? 참, 가지가지 한다. 언제까지 하는지 한번 보자. 자기가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무식함을 한없이 드러내는 짓을, 모르는 건지 알아도 뻔뻔한 건지 멈출 줄 모르네’ 내가 나를 보며 비웃는 이런 여유(?)로운 시간이 나에게 늘 지옥을 선사해 주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죽기 싫고 늘 살고 싶다는 생각, 그 자체를 의심한다. 누가 도대체 살고 싶다고 충동질하고 있는지...사고로, 병으로 또는 나이 들어 죽는 죽음이 죽음이 아닌 것을 진작 복음을 통해 알았다 한들,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죽음을 통해 새사람이 되는 것은 인간이 손댈 영역이 아닌 것만 발견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의 죽음으로 덧입혀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심보가 하나님이 지옥을 만드신 정당성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뿐이..

송민선 2024.06.17

한 몸(몸을 지키는 자아)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난 후, 사람은 하나님같이 지혜로워진 것이 아니라, 뱀처럼 지혜로워졌다. 사람의 지혜는 결국 사단이 인간의 몸이라는 거처 안으로 들어가서 사람을 통제하고 지시하는 정신 구조이다. 뱀처럼 지혜롭기에 아담과 여자는 자신들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대응하는 주체로 인식했다.(창3:10) 아담이 하나님과 상대하고 있는 그것이 이미 하나님과 끊어진 것이고, 죽었다는 증거가 된다. 인간이 하나님을 알려고 하고 믿으려고 하는 그것이 곧 죽은 모습이다.아담이 죽었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상대하고 있는 그 아담은 누구일까. 아담은 자신을 호출하는 하나님의 음성에 두려움을 느끼며 숨었다. 그 두려움은 아담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물으셨다. “아담아, 누가 너에게 나를 상대하라고 하더냐?..

송민선 2024.05.21

복음에 대한 반응

예수님이 베드로를 사람 낚는 어부로 쓰신다고 할 때, 베드로는 사람이 사람을 전도하는 게 아님을 성령을 받고 난 후에 알았다. 먼저 자신이 철저하게 죄로 엮어진 주님의 체망이 되어야 했고, 그 체망이 주님의 손에 붙들려 있음을 확실히 알게 된 채로 복음을 전했다.지금 시대에 성도가 이 체망의 역할이고 어떤 체망은 고기를 잡아도 쑥쑥 빠져나갈 정도로 엉성한 죄의 그물망을 가지고 있고, 어떤 체망은 걸리지 않는 죄가 없고, 들키지 않는 불법이 없을 만큼 촘촘하다. 촘촘할수록 갈라짐은 더 선명이 일어난다. 한쪽은 그 말씀 앞에서 지키겠다는 의지는커녕, ‘어찌할꼬’ 속수무책 손을 놓고 말씀이 나오는 방향을 하염없이 바라보게 되고, 다른 한쪽은 자신이 숨을 쉴 수 있는 쪽으로 방향을 돌려 떠나간다.이런 말씀의 현..

송민선 2024.04.25

서글픈 꿈(아름다운 꿈)

하나님이 당장 죽이셔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나, 무슨 일이 벌어져도 상관없다는 나, 그 나는 항상 하나님과 함께 있다고 믿던 ‘나’가 있었다. 많은 것을 바란 것이 아니다. 그저 ‘저와 함께만 해주세요.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 그런 거 바라지 않습니다. 함께만 있어 주세요’ 참으로 나에 대해 무지하고 하나님에 대해 무지하기에 이런 망상스러운 꿈도 순수한 양 품어보았다. 이것이 개체에 담긴 교만과 오만이고, 악마를 위한 순교자의 모습인 것을 몰랐다.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바라는 것은 내가 나를 오해하고 있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혹시 은혜를 받아 자신이 괴물같은 죄인인 것을 알게 되어도, 베드로의 “나를 떠나소서”라는 고백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눅5:8) 주님이 나를 떠나도록, 더러운 나를 떠나도록 부탁드리..

송민선 2024.03.23

자작극의 결말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으면서 빼앗기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복음을 마주하고 앉아 있는 내 꼴이 우습다. 귀신도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믿고 떠는데(약2:19), 당당한 건지 뻔뻔한 건지 정신이 없는 건지, 내 것은 건재한 채로 하나님의 말씀도 받아서 나를 보충하고 키워보겠다는 심보가 멸망하는 짐승의 모습을 방불한다. 이런 일그러진 마음에는 스테로이드 약도, 약침도 소용이 없다. 구안와사로 외형이 무너져내리는데 균열 된 막의 틈새에서 감사가 나오는 것은 존재가 접근해서 얻은 뜻이 아니다. 무엇에 접속되었는지, 나와 언어가 분리되며 나를 배제하고 말이 스스로 들락날락 보이지 않는 분의 목소리를 터뜨리는 모습은 사건의 봉오리가 톡 터지듯 곱다. 말씀의 출현은 나의 전쟁으로 얼룩진 커튼을 걷어 젖히고 이미 있었던 ..

송민선 2024.01.15

저주 안에 담김 사랑

얼마나 마귀에게 데이트폭력을 더 당해야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갖고 놀며 학대하고 있는 것을 깨달을까. 알 길이 없으니 폭력은 당한 적이 없고 오직 사귐만 있었고 내가 잘못되지 않기를 바라는 보호로만 느껴진다. 길이 없으니, 그것이 다 사랑이라고 믿고 싶은 착한 마음이 작동하고, 그것이 가장 추악한 마음인 것을 모르기에, 살인강도 바나바는 넓은 마음으로 품을 수 있어도, 나를 악하다고 들쑤시는 예수는 결단코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를 받아들이는 것은 내가 스스로 파멸의 자리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같다. 이렇게 보이지도 않고 알 수도 없는 욕망이 ‘나’라는 허상을 강력히 통제한다. 진실에서 눈만 떼고 말씀에서 등만 돌려주면 그 대가가 너무 달콤하다. 몸이 편하고 마음이 편하고 평화의 기쁨..

송민선 2023.12.24

강제 조치

자라 보고 놀란 사람은 솥뚜껑만 봐도 놀란다는 속담이 있다. 놀라는 이유는 목숨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고 그것과 비슷한 것만 봐도 두려움을 표출하며 거부한다. 죽을까 싶어서. 그런데 솥뚜껑이 아니라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자라같은 진짜 실체를 마주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모순적 상황에 직면했을 때, 강제조치가 아니고서야 그것을 스스로 쳐다볼 사람은 없다. ‘모순이든 억측이든 살 수만 있다면 다한다’라는 인간의 오기조차도 이것 앞에서는 꺾인다. 싫은 정도가 단순히 이론으로 자신을 다독여 설득할 정도를 초월한다. 이유는 내가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나 인줄 알았던 진짜 나인 악마가 그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나는 없구나...내가 진짜 죽어있는 시체 맞구나... 광야를 지나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송민선 2023.11.03

환타지의 침투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계2:2~3) “그러나...” 말씀을 보면서 나라는 영물은 늘 듣고 간직할 것과 듣고 버릴 것을 분리수거 한다. 그래서 내가 주를 위해, 주의 영광을 위해, 주의 이름의 공적을 증거하며 수고하고 인내하고 악한 자를 용납지 아니한 것을 주께서 기억하시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의 결론은 “그러나...”를 동반해서 나온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2:4) ‘그래, 한때 나름의 뜨거움이 있었지. 그 순간만큼은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는 주를 향한, 말씀을 ..

송민선 2023.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