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선 81

복음과 이근호복음

한국은 유독 자리를 중시하는 나름의 국민성이 있는 듯하다. 외국인들이 매우 놀라는 한국인의 유별난 문화 1순위는 자리 맡기이다. 자리를 맡는 자체가 놀라운 것이 아니라, 한 공간에 대해 이미 값을 치르고 들어갔다면, 더 이상 아무 값을 치를 필요가 없는 자리를 위해 자신의 귀한 것을 던져놓는 것이다. 맘에 드는 위치에 지갑이나 휴대폰 귀중품들이 들어있는 가방 등을 사용해서 스스럼없이 자리를 맡는다.이미 들어간 공간 자체보다 자기가 원하는 위치가 더 중요해진 것이고, 자신의 소중한 것으로 찜한 그 자리는, 마치 자기가 거기에 없어도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암묵적 의사표시이다. 물론 이런 행동에는 보이지 않는 믿음이 작용한다. ‘아무도 가져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믿음이 작동한다. ‘자리는 본디..

송민선 2025.03.01

사랑이라는 장미

어떤 사람은 사랑이 연약한 갈대를 삼켜버리는 강물 같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사랑이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다치게 하는 날카로운 칼날 같다고 말한다. 어떤 누군가는 사랑이 끝이 없는 고통스러운 갈망이라고 말한다. 복음은 사랑이 꽃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을 품은 씨앗들이 깜깜한 암흑과 차가운 눈 아래에 감춰진 채, 십자가가 봄의 햇살처럼 잠시 잠시 드리울 때마다, ‘나’라는 껍질이 벗겨지면서 끝 날을 펼치듯 예수님을 피워낸다. 사랑은 받는 것도 아니고 주는 것도 아니다. 꽃이 이미 피었기에 더 이상 씨를 품은 껍질은 발견되지 않는 그 자체가 사랑이다.꽃이 활짝 피니, 껍데기라는 의미조차도 내가 아니었고, 모형은 그냥 모형이었다. 그 안에 나의 의미는 없었고, 주님의 의미가 살고 계셨다. 예수님 십자가의 ..

송민선 2025.01.26

돌이 아브라함 자손이 되기까지

어떤 사람들은 삶은 수고와 땀으로 점철되어 있고, 마치 형벌 받는 인생인 것 같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 지옥 같은 세상에 그다지 미련 두지 않고 소소한 행복으로 잠시 잠시 숨을 고르며 최소한 자신에게만큼은 부끄럽지 않고, 그래서 고마울 수 있는 하루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 산다고 말한다.그러나 주의 성령이 임한 자들은 ‘지옥 같은’ 곳의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지옥 가 마땅한’ 삶을 미리 경험한다.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고난을 상상할 필요는 없다. 어떤 특정 상황을 상정할 필요도 없다. 감사의 대상이 교체되는 현상은 ‘죽어 마땅한’ 마음을 쉬지 않고 공급받는 구조 안에서만 일어난다.내가 나와 헤어지지 않고는 감사는 대상을 붙이든 안 붙이든 언제나 ‘나’가 되기에, 인간에게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송민선 2025.01.11

[영적전쟁] 독후감

에베소서(영적전쟁)을 읽고서책은 그냥 펼쳐서 읽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책보다 앞선 것들이 있었다. 책의 표지에서, 책 안쪽에서, 책 안에 박혀있는 한 단어 한 단어가 예수님 자신의 몸을 비틀어 짜낸 흔적들이었다. 마치 악마가 성공했고 주님은 실패한 것으로 보였다. ‘이걸 어떻게 읽지? 읽을수록 더 혼란스러워지는 거 같아. 괜히 마귀의 시험에 들지 않도록 이 책에 시간 허비하지 말자. 보더라도 대충 후딱 보자. 이게 아니어도 볼 책이, 들어야 할 강의와 설교는 많이 있으니까...’책은 이미 보이지 않는 전쟁을, 심판의 불을 지나온 것 같다. 외면하고 싶은 너덜너덜 찢기고 만신창이가 된 한 분의 몸이 펼쳐지고, 책망의 음성을 발한다. 네 안에 담긴 말씀에서, 네가 가지고 있는 복음에서 탈출하라고. 네 ..

송민선 2024.11.06

수련회 소감-언약위에 얹힌 시체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신7:8)신명기는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을 미리 확인 시켜주시는 말씀으로 다가온다.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고, 하늘에서 이루신 그 사랑을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신다. 장차 등장할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불같은 사랑이 시범 조교인 이스라엘을 통해서 표출되었다.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그분의 등에 업혀서, 하나님이 친히 동행하셨기에 신발도 해지지 않고 옷도 낡아지지 않았다. (출19:4, 신,1:31, 신29:5)사실상 그들은 신발을 신을 필요조차도 없고, 더이상 자기를 치장하고 부끄러움..

송민선 2024.08.07

행실이 좋지 않은 자

‘또 뭘 쓰는 거야? 참, 가지가지 한다. 언제까지 하는지 한번 보자. 자기가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무식함을 한없이 드러내는 짓을, 모르는 건지 알아도 뻔뻔한 건지 멈출 줄 모르네’ 내가 나를 보며 비웃는 이런 여유(?)로운 시간이 나에게 늘 지옥을 선사해 주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죽기 싫고 늘 살고 싶다는 생각, 그 자체를 의심한다. 누가 도대체 살고 싶다고 충동질하고 있는지...사고로, 병으로 또는 나이 들어 죽는 죽음이 죽음이 아닌 것을 진작 복음을 통해 알았다 한들,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죽음을 통해 새사람이 되는 것은 인간이 손댈 영역이 아닌 것만 발견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의 죽음으로 덧입혀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심보가 하나님이 지옥을 만드신 정당성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뿐이..

송민선 2024.06.17

한 몸(몸을 지키는 자아)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난 후, 사람은 하나님같이 지혜로워진 것이 아니라, 뱀처럼 지혜로워졌다. 사람의 지혜는 결국 사단이 인간의 몸이라는 거처 안으로 들어가서 사람을 통제하고 지시하는 정신 구조이다. 뱀처럼 지혜롭기에 아담과 여자는 자신들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대응하는 주체로 인식했다.(창3:10) 아담이 하나님과 상대하고 있는 그것이 이미 하나님과 끊어진 것이고, 죽었다는 증거가 된다. 인간이 하나님을 알려고 하고 믿으려고 하는 그것이 곧 죽은 모습이다.아담이 죽었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상대하고 있는 그 아담은 누구일까. 아담은 자신을 호출하는 하나님의 음성에 두려움을 느끼며 숨었다. 그 두려움은 아담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물으셨다. “아담아, 누가 너에게 나를 상대하라고 하더냐?..

송민선 2024.05.21

복음에 대한 반응

예수님이 베드로를 사람 낚는 어부로 쓰신다고 할 때, 베드로는 사람이 사람을 전도하는 게 아님을 성령을 받고 난 후에 알았다. 먼저 자신이 철저하게 죄로 엮어진 주님의 체망이 되어야 했고, 그 체망이 주님의 손에 붙들려 있음을 확실히 알게 된 채로 복음을 전했다.지금 시대에 성도가 이 체망의 역할이고 어떤 체망은 고기를 잡아도 쑥쑥 빠져나갈 정도로 엉성한 죄의 그물망을 가지고 있고, 어떤 체망은 걸리지 않는 죄가 없고, 들키지 않는 불법이 없을 만큼 촘촘하다. 촘촘할수록 갈라짐은 더 선명이 일어난다. 한쪽은 그 말씀 앞에서 지키겠다는 의지는커녕, ‘어찌할꼬’ 속수무책 손을 놓고 말씀이 나오는 방향을 하염없이 바라보게 되고, 다른 한쪽은 자신이 숨을 쉴 수 있는 쪽으로 방향을 돌려 떠나간다.이런 말씀의 현..

송민선 2024.04.25

서글픈 꿈(아름다운 꿈)

하나님이 당장 죽이셔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나, 무슨 일이 벌어져도 상관없다는 나, 그 나는 항상 하나님과 함께 있다고 믿던 ‘나’가 있었다. 많은 것을 바란 것이 아니다. 그저 ‘저와 함께만 해주세요.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 그런 거 바라지 않습니다. 함께만 있어 주세요’ 참으로 나에 대해 무지하고 하나님에 대해 무지하기에 이런 망상스러운 꿈도 순수한 양 품어보았다. 이것이 개체에 담긴 교만과 오만이고, 악마를 위한 순교자의 모습인 것을 몰랐다.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바라는 것은 내가 나를 오해하고 있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혹시 은혜를 받아 자신이 괴물같은 죄인인 것을 알게 되어도, 베드로의 “나를 떠나소서”라는 고백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눅5:8) 주님이 나를 떠나도록, 더러운 나를 떠나도록 부탁드리..

송민선 2024.03.23

자작극의 결말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으면서 빼앗기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복음을 마주하고 앉아 있는 내 꼴이 우습다. 귀신도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믿고 떠는데(약2:19), 당당한 건지 뻔뻔한 건지 정신이 없는 건지, 내 것은 건재한 채로 하나님의 말씀도 받아서 나를 보충하고 키워보겠다는 심보가 멸망하는 짐승의 모습을 방불한다. 이런 일그러진 마음에는 스테로이드 약도, 약침도 소용이 없다. 구안와사로 외형이 무너져내리는데 균열 된 막의 틈새에서 감사가 나오는 것은 존재가 접근해서 얻은 뜻이 아니다. 무엇에 접속되었는지, 나와 언어가 분리되며 나를 배제하고 말이 스스로 들락날락 보이지 않는 분의 목소리를 터뜨리는 모습은 사건의 봉오리가 톡 터지듯 곱다. 말씀의 출현은 나의 전쟁으로 얼룩진 커튼을 걷어 젖히고 이미 있었던 ..

송민선 2024.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