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선 83

뼈 그리고 뼈들

아골 골짜기 같은 세상에 죽은 시체들의 바짝 마른 뼈들이 즐비한데,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말씀이 바람처럼 그 위에 부니, 뼈가 서로 연락되면서, 뼈들이 하나의 뼈를 이루고, 말씀의 살이 붙어서 하나님의 병기가 되어 움직인다. 이 병기에 피가 공급되지 아니하면, 그 무기는 하나님에게 쓰임을 받았다 한들, 단 하나의 뼈에 속한 것이 아니라(창2:21), 그저 뼈들에 하나이다. 천사의 말을 하고, 예언의 능력이 있고,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피가 없으면,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사랑은 내 몸이 아닌 다른 몸이 아플 때, 함께 고통 하는 한 몸의 현상이다. 다른 몸이 울 때, 나도 울게 되는, 다른 몸이 웃을 때, 나도 웃게 되는 한 몸..

송민선 2025.06.28

예수님의 전도

예수님의 전도 긍휼히 여김을 받기를 원하는 10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오지도 못하고 그저 멀리 서서 부르짖었다. 예수님께서는 10명 모두를 보내셨고, 율법대로 제사장에게 그들의 몸을 보이라고 지시하셨다.(눅17:14) 모두가 가는 도중에 깨끗함을 입은 것을 알게 되었고, 예수께서 분명히 지시하신 그대로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려고 더욱 열심히 달려갔다. 그런데 마치 자신을 잠시 잃어버린 것처럼, 방향성을 이탈하여 오히려 지시를 어기고 되돌아온 한 명이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9명 만이 열심히 주님의 지시를 따르는 것으로 보였다.성경의 말씀은 하나같이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고 부정하며, 예수님만 보이도록 이끌고 있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율법에만 담긴 자들과 율법에 담긴 채로 예수님의 피로 이끌림을 ..

송민선 2025.05.31

복음과 이근호복음

한국은 유독 자리를 중시하는 나름의 국민성이 있는 듯하다. 외국인들이 매우 놀라는 한국인의 유별난 문화 1순위는 자리 맡기이다. 자리를 맡는 자체가 놀라운 것이 아니라, 한 공간에 대해 이미 값을 치르고 들어갔다면, 더 이상 아무 값을 치를 필요가 없는 자리를 위해 자신의 귀한 것을 던져놓는 것이다. 맘에 드는 위치에 지갑이나 휴대폰 귀중품들이 들어있는 가방 등을 사용해서 스스럼없이 자리를 맡는다.이미 들어간 공간 자체보다 자기가 원하는 위치가 더 중요해진 것이고, 자신의 소중한 것으로 찜한 그 자리는, 마치 자기가 거기에 없어도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암묵적 의사표시이다. 물론 이런 행동에는 보이지 않는 믿음이 작용한다. ‘아무도 가져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믿음이 작동한다. ‘자리는 본디..

송민선 2025.03.01

사랑이라는 장미

어떤 사람은 사랑이 연약한 갈대를 삼켜버리는 강물 같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사랑이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다치게 하는 날카로운 칼날 같다고 말한다. 어떤 누군가는 사랑이 끝이 없는 고통스러운 갈망이라고 말한다. 복음은 사랑이 꽃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을 품은 씨앗들이 깜깜한 암흑과 차가운 눈 아래에 감춰진 채, 십자가가 봄의 햇살처럼 잠시 잠시 드리울 때마다, ‘나’라는 껍질이 벗겨지면서 끝 날을 펼치듯 예수님을 피워낸다. 사랑은 받는 것도 아니고 주는 것도 아니다. 꽃이 이미 피었기에 더 이상 씨를 품은 껍질은 발견되지 않는 그 자체가 사랑이다.꽃이 활짝 피니, 껍데기라는 의미조차도 내가 아니었고, 모형은 그냥 모형이었다. 그 안에 나의 의미는 없었고, 주님의 의미가 살고 계셨다. 예수님 십자가의 ..

송민선 2025.01.26

돌이 아브라함 자손이 되기까지

어떤 사람들은 삶은 수고와 땀으로 점철되어 있고, 마치 형벌 받는 인생인 것 같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 지옥 같은 세상에 그다지 미련 두지 않고 소소한 행복으로 잠시 잠시 숨을 고르며 최소한 자신에게만큼은 부끄럽지 않고, 그래서 고마울 수 있는 하루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 산다고 말한다.그러나 주의 성령이 임한 자들은 ‘지옥 같은’ 곳의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지옥 가 마땅한’ 삶을 미리 경험한다.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고난을 상상할 필요는 없다. 어떤 특정 상황을 상정할 필요도 없다. 감사의 대상이 교체되는 현상은 ‘죽어 마땅한’ 마음을 쉬지 않고 공급받는 구조 안에서만 일어난다.내가 나와 헤어지지 않고는 감사는 대상을 붙이든 안 붙이든 언제나 ‘나’가 되기에, 인간에게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송민선 2025.01.11

[영적전쟁] 독후감

에베소서(영적전쟁)을 읽고서책은 그냥 펼쳐서 읽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책보다 앞선 것들이 있었다. 책의 표지에서, 책 안쪽에서, 책 안에 박혀있는 한 단어 한 단어가 예수님 자신의 몸을 비틀어 짜낸 흔적들이었다. 마치 악마가 성공했고 주님은 실패한 것으로 보였다. ‘이걸 어떻게 읽지? 읽을수록 더 혼란스러워지는 거 같아. 괜히 마귀의 시험에 들지 않도록 이 책에 시간 허비하지 말자. 보더라도 대충 후딱 보자. 이게 아니어도 볼 책이, 들어야 할 강의와 설교는 많이 있으니까...’책은 이미 보이지 않는 전쟁을, 심판의 불을 지나온 것 같다. 외면하고 싶은 너덜너덜 찢기고 만신창이가 된 한 분의 몸이 펼쳐지고, 책망의 음성을 발한다. 네 안에 담긴 말씀에서, 네가 가지고 있는 복음에서 탈출하라고. 네 ..

송민선 2024.11.06

수련회 소감-언약위에 얹힌 시체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신7:8)신명기는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을 미리 확인 시켜주시는 말씀으로 다가온다.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고, 하늘에서 이루신 그 사랑을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신다. 장차 등장할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불같은 사랑이 시범 조교인 이스라엘을 통해서 표출되었다.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그분의 등에 업혀서, 하나님이 친히 동행하셨기에 신발도 해지지 않고 옷도 낡아지지 않았다. (출19:4, 신,1:31, 신29:5)사실상 그들은 신발을 신을 필요조차도 없고, 더이상 자기를 치장하고 부끄러움..

송민선 2024.08.07

행실이 좋지 않은 자

‘또 뭘 쓰는 거야? 참, 가지가지 한다. 언제까지 하는지 한번 보자. 자기가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무식함을 한없이 드러내는 짓을, 모르는 건지 알아도 뻔뻔한 건지 멈출 줄 모르네’ 내가 나를 보며 비웃는 이런 여유(?)로운 시간이 나에게 늘 지옥을 선사해 주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죽기 싫고 늘 살고 싶다는 생각, 그 자체를 의심한다. 누가 도대체 살고 싶다고 충동질하고 있는지...사고로, 병으로 또는 나이 들어 죽는 죽음이 죽음이 아닌 것을 진작 복음을 통해 알았다 한들,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죽음을 통해 새사람이 되는 것은 인간이 손댈 영역이 아닌 것만 발견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의 죽음으로 덧입혀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심보가 하나님이 지옥을 만드신 정당성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뿐이..

송민선 2024.06.17

한 몸(몸을 지키는 자아)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난 후, 사람은 하나님같이 지혜로워진 것이 아니라, 뱀처럼 지혜로워졌다. 사람의 지혜는 결국 사단이 인간의 몸이라는 거처 안으로 들어가서 사람을 통제하고 지시하는 정신 구조이다. 뱀처럼 지혜롭기에 아담과 여자는 자신들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대응하는 주체로 인식했다.(창3:10) 아담이 하나님과 상대하고 있는 그것이 이미 하나님과 끊어진 것이고, 죽었다는 증거가 된다. 인간이 하나님을 알려고 하고 믿으려고 하는 그것이 곧 죽은 모습이다.아담이 죽었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상대하고 있는 그 아담은 누구일까. 아담은 자신을 호출하는 하나님의 음성에 두려움을 느끼며 숨었다. 그 두려움은 아담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물으셨다. “아담아, 누가 너에게 나를 상대하라고 하더냐?..

송민선 2024.05.21

복음에 대한 반응

예수님이 베드로를 사람 낚는 어부로 쓰신다고 할 때, 베드로는 사람이 사람을 전도하는 게 아님을 성령을 받고 난 후에 알았다. 먼저 자신이 철저하게 죄로 엮어진 주님의 체망이 되어야 했고, 그 체망이 주님의 손에 붙들려 있음을 확실히 알게 된 채로 복음을 전했다.지금 시대에 성도가 이 체망의 역할이고 어떤 체망은 고기를 잡아도 쑥쑥 빠져나갈 정도로 엉성한 죄의 그물망을 가지고 있고, 어떤 체망은 걸리지 않는 죄가 없고, 들키지 않는 불법이 없을 만큼 촘촘하다. 촘촘할수록 갈라짐은 더 선명이 일어난다. 한쪽은 그 말씀 앞에서 지키겠다는 의지는커녕, ‘어찌할꼬’ 속수무책 손을 놓고 말씀이 나오는 방향을 하염없이 바라보게 되고, 다른 한쪽은 자신이 숨을 쉴 수 있는 쪽으로 방향을 돌려 떠나간다.이런 말씀의 현..

송민선 2024.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