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71

허구를 통해야 진리에 도달된다

인간은 자기자신이 허구에요. 진실을 뭐냐? ‘말씀에 입각한 것만 받아들인다.’ 이건 진실입니다. 그럼 허구는 뭐냐? ‘말씀이고 뭐고 내 몸뚱아리 하나 행복하고 편하게 살고 잘 살면 된다.’ 이게 허구입니다. 말씀이 허구를 관통하고 꿰뚫어버리죠. 사랑하기 때문에 내위주의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만두지 않고 그걸 방해해요.

지금 2024.04.18

갓난아이

갓난애도 죽여야 될 이유가 시편 51편 5절에 나옵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난 지 일주일이 됐던 한 시간 됐던 그건 뭐냐 하면 죄가 대롱으로 훅 분 게 갓난아이에요. 죄란 게 마귀에요. 죄가 이 세상에 상주하고 있다는 티를 내기 위해서 또 하나의 죄의 가현체, 죄의 구체적인 인간처럼 생긴 것을 훅 불어서 출생하면 그게 죄의 열매, 죄의 덩어리, 죄가 부풀어진 것, 이걸 가지고 갓난아이라고 하는 겁니다. 참 인간의 세계에서 같은 말이라도 예쁘게 하지요?

지금 2024.04.10

나의 자유를 주님께 반납하는 게 자유

자유, 자유의지라는 것은 뭐냐? 나의 자유를 주님께 반납하는 게 자유에요. 왜냐하면 내가 자유를 활용하면 안 되니까. 그래야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께서 허락한 것을 배급받는 식으로 살아가기 때문에요. 이게 자유거든요. 왜냐하면 주님은 이미 도망쳤잖아요. 어디로? 예수 안으로 또는 성령 안으로 또는 하늘나라 처소로 가버렸단 말이죠. 그 간 곳에 인간이 노력한다고 따라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갈 수가 없어요 막혀있다니까요. 막혀있어요. 막혀있는데 그러면 인간은 절대적 절망이죠. 절대적 절망에서 흑흑 울고 있죠. 안되겠다. 아들아 밀가루 얼마 남았나? 마지막입니다. 기름도 마지막입니다. 그거 같이 먹고 장렬하게 죽자. 우리 팔자 이거 밖에 안 된다 했는데 여기 엘리야가 등장해가지고 홀라당 뭘 뺏..

지금 2024.04.07

만물의 찌꺼기

4장 9절에서 13절까지 읽어보면서 여러분들이 사도 바울의 심정에서 생각해서 기쁜지 아니면 짜증나는지 한번 보세요.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지금 이 이야기가 짜증납니까? 아니면 기쁩니까? 어때요? 느낌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게 감..

지금 2024.04.07

육에서 영으로 옮겨왔음을 보여주는 무대

성령이 와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과 인간의 지혜 그 경계선 틈 사이에 경계선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절대적 절망. 절대적 절망. 여러분들이 신구약에 나오는 사건들 쭉 보세요. 특징이 한결 같이 뭡니까? 모조리 절대적 절망이에요. 사울이라는 사람이 다메섹에 내려가면서 예수 믿는 사람들 체포하려고 할 때에 본인은 절망인줄 몰랐지요. 나중에 예수님 만나고 난 뒤에 자기가 뭐가 됐습니까? 눈이 감겼잖아요. 눈이 완전히 갔어요. 하나님께서 낫게 해주겠지 그런 거 없어요. 눈이 갔어요. 끝났어요. 소경이에요. 아나니야에게 데려가가지고 안수 받으니까 비늘이 벗겨졌지요. 비늘이 안 떨어졌으면 어쩔 뻔했어요. 평생 소경이에요. 사도 바울은 소경이다 절룩발이다 내안에 사탄의 가시가 있다 그거는 본인이 걱정할 문제가 아니에..

지금 2024.04.07

영에 속한 사람

엘리야가 만났던 사렙다 과부. 엘리사가 만났던 수넴 여인.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베데스다 못가의 38년 된 병자. 열왕기하 5장에 나오는 나아만 장군이야기. 공통점이 뭡니까? 절망적이에요 절망적. 절망적입니다. 사도행전 3장에 나오는 앉은뱅이. 뭐에요? 절망적이에요. 사도행전 16장에 나오는 간수. 죄수가 다 탈옥해버렸어요. 간수. 절망적이잖아요. 그런데 그 절망적인 상황이 바로 그걸 주님의 살아서 일하시는 능력으로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영에 속한 사람이에요. ‘영에 속한 사람’. 고린도전서 2장에 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돼요. 그러면 내 마음이 있다는 이 마음 자체가 절망적인데도 불구하고 이 절망적인 것을 일깨워주는 새로운 마음이 들어와버린 거예요. 그러면 나의..

지금 2024.04.07

형제-집단적 주체성

인간이 왜 죽어야 하는가? 개인주의이기 때문이에요, 개인주의 때문에. 이 개인주의에서 인간이 못 벗어납니다. 성경을 봐도 개인주의로 봐요. 예언으로 보지 않아요. 예언은 누구 몫이냐 하면, 죽었다 살아나신 예수님의 몫이에요. 형제 되고 형제 안 되고, 지옥 가고 천국 가는 그것은 주께서 어떻게 하느냐? 일단 모든 인간을 죽여놓고 일방적으로 천국 갈 사람은 천국 보내고 지옥 갈 사람은 지옥 보내는 거예요. 이게 성령 받은 성도한테는 그렇게 즐거운 일이에요, 이게. 즐겁고, 고맙고, 감사하고, 기쁜 일이에요. 인간이 개인주의로 있을 때는 모든 것이 주체 중심입니다. 자기중심, 주체 중심이에요. 그런데 예수님이 나타나서 새로운 형제를 구성하게 되면 그 형제에는 주체가 없어요. 집단적 주체성만 있을 뿐이에요. ..

지금 2024.04.05

예언대로

모든 우주에 하나님의 예언이 포함되지 않는, 거기에 영향이 미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다 예언된 대로 움직인다. 그 결과가 뭐냐? 그 결과가 참 신기하게도 인간의 개인주의는 개성들이기 때문에 자기 기분대로 살아가서 따로 따로 노는데 하나님의 예언에 의하면 어떻게 되느냐? 아무리 인간이 애쓰고 노력해도 천국 갈 사람은 천국행으로, 지옥 갈 사람은 지옥행으로 딱 분류가 된다는 것이 그렇게 신기하다는 거예요. 세상이 어떻게 되더라도 천국 갈 자는 필히 천국 가고, 지옥 갈 자는 필히 지옥 가는 거예요. 이게 예언된 거예요. 그 증거가 13절에 나옵니다. “볼찌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개인주의 입장에서는 제일 무서운 예언이 이 예언이에요. 개인주의라고 하는 것은, ‘내 일은 ..

지금 2024.04.05

유월절 어린양의 진실-희생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았습니다. 이 율법 속에는 ‘유월절 어린양의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이스라엘됨은 오로지 하나님의 희생이 살아 있어야 하는 겁니다. 주의 이름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 고난받으신 주의 이름 덕분에 살아가는 사람이고 거기에 종속되고 매인 사람들을 형제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네가 주의 이름을 부를 때 너는 부를 수 없었는데 하나님의 예언에 의해서 주의 이름을 불렀냐?’고 물어요. 네가 하나님의 예언된 것에 의해서, 예언의 성취 차원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거냐고 묻습니다. 이 말은, 내가 주의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구원되는 것이 아닌 게 명백하고 확실한 거예요. 어떻게 해도 주의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구원될 수 없고, 하나님 예언의 힘과 능력으로 주의 이름..

지금 2024.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