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와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과 인간의 지혜 그 경계선 틈 사이에 경계선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절대적 절망. 절대적 절망. 여러분들이 신구약에 나오는 사건들 쭉 보세요. 특징이 한결 같이 뭡니까? 모조리 절대적 절망이에요. 사울이라는 사람이 다메섹에 내려가면서 예수 믿는 사람들 체포하려고 할 때에 본인은 절망인줄 몰랐지요. 나중에 예수님 만나고 난 뒤에 자기가 뭐가 됐습니까? 눈이 감겼잖아요. 눈이 완전히 갔어요. 하나님께서 낫게 해주겠지 그런 거 없어요. 눈이 갔어요. 끝났어요. 소경이에요. 아나니야에게 데려가가지고 안수 받으니까 비늘이 벗겨졌지요. 비늘이 안 떨어졌으면 어쩔 뻔했어요. 평생 소경이에요. 사도 바울은 소경이다 절룩발이다 내안에 사탄의 가시가 있다 그거는 본인이 걱정할 문제가 아니에요. 왜? 본인은 십자가를 위한 하나의 자리를 배정받은 기계에 불과하니까 십자가의 취지가 얼마나 이 세상과 대비가 되고 충돌되는가를 그 충돌 사항을 자기 내부에 두면 되는 겁니다. 자, 이 뜻이 무슨 뜻이냐 하면은 이런 뜻이에요. 고린도전서 2장에서 영에 속한 사람, 영의 반대말 육에 속한 사람 있지요. 육에 속한 사람. 나는 여기 둘 중에 어디에 속해야 합니까? 오늘 1강 2강 다 했는데도 답변 제대로 해야 돼요. 나는 이 둘 중에 어디 속해야 돼요? 제 질문 자체가 이거는 반칙적인 질문이에요. 나라는 존재는 이미 이름을 누구한테 반납했어요? 주님한테 반납했다. 다시 말해서 주의 이름과 내 이름을 바꾼 거예요. 나는 자리 제공한 거예요. 내 이름으로 활동하는 내 몸이 내 육신이 주님이 활동하는 육신이 돼요. 이 육신은 더러운 육신이고 아프고요 담 걸리는 육신이에요. 갈수록 점점 더 그래요. 그 육신인데 그 육신을 통해서 주님께서 뭘 보느냐 하면은 육에서 영으로 옮겨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무대가 되는 거예요. 하나의 자리가 되는 겁니다. 그럼 우리는 어디 속하는가? 둘 다를 포함하고 있는 거예요. 둘 다를. 그래서 감사는 영에 속했기 때문에 하는 감사는 엉터리 감사에요. 영에 속해서 감사하는 사람은 육에 속한 사람이에요. 육과 영에서 바뀌어 가면서 여기서 틈에서 뭐냐 하면은 성령의 일방적인 일하심이 나오겠지요. 이게 바로 감사가 되는 거예요 이게. 이게 감사가 되는 거예요. 나는 내 식대로 성경공부해서 구원받고자 하는 이것, 이것이 다 허사고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서 오는 감사. 나는 이 두 개의 상반되는 요소가 있어야 여기서 감사와 기쁨이 나오는 거예요. 범사에 감사가 나오는 거예요. 범사에. 감사가 나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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