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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유를 주님께 반납하는 게 자유

아빠와 함께 2024. 4. 7. 17:13

자유, 자유의지라는 것은 뭐냐? 나의 자유를 주님께 반납하는 게 자유에요. 왜냐하면 내가 자유를 활용하면 안 되니까. 그래야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께서 허락한 것을 배급받는 식으로 살아가기 때문에요. 이게 자유거든요. 왜냐하면 주님은 이미 도망쳤잖아요. 어디로? 예수 안으로 또는 성령 안으로 또는 하늘나라 처소로 가버렸단 말이죠. 그 간 곳에 인간이 노력한다고 따라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갈 수가 없어요 막혀있다니까요. 막혀있어요. 막혀있는데 그러면 인간은 절대적 절망이죠. 절대적 절망에서 흑흑 울고 있죠. 안되겠다. 아들아 밀가루 얼마 남았나? 마지막입니다. 기름도 마지막입니다. 그거 같이 먹고 장렬하게 죽자. 우리 팔자 이거 밖에 안 된다 했는데 여기 엘리야가 등장해가지고 홀라당 뭘 뺏어가요? 마지막 나의 장렬한 죽음까지 자존심마저 싸그리 내가 먹는다 가져가버리죠.

 

절망적인 상태를 누가 활용했어요? 하나님 쪽에서 온 사람이 그걸 활용했을 때 나의 절망도 하나님의 은혜가 되는 겁니다. 나의 절망도. 여러분 보고 하라는 말이 아니고 여러분들이 살아가면 항상 여러분들이 예상 못한 우연 요소가 여러분들 인생 방향을 자꾸 틀어줘요. 영생은 있습니다. 있는데 좁은 길에 있어요. 이게 문제에요. 영생은 어떤 길이냐? 아무도 찾지 않는 것. 심지어 나도 찾지 않는 길에 영생이 있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요? 말씀이 와서 나도 찾지 않는 것을 나는 어디 찾아요? 좁은 길 찾아요? 넓은 길 찾아요? 고생고생 하겠습니까? 호화롭게 살겠어요? 넓은 길로 가지요. 육신의 본성이니까. 가는 것을 뒤통수 쳐가지고 대절망으로 만들어버리지요. ‘뭐야 내 것은 없잖아!’ 할 때 그게 그 절망이 뭐로 바뀌게 합니까? 예상 못한 아 내 절망 마저 주님의 십자가 재료로 사용한다는 것. 주님의 기계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에도 알았지만 새삼, 새삼스럽게 그걸 깨닫는 순간 그 기쁨으로 감사가 되어집니다. 감사가 될 수밖에 없어요. 몇 초 가게요? 한 10초 가는데 아버지 만나면 다 없어져. 아버지 요양병원 버티고 있으면 돈 다 날라가죠. 아버지 나 괴롭힐라고 자식 말 안 들어. 은혜 받고 갑자가 은혜 다 쏟았어. 헨젤과 그레텔처럼 은혜 받았는데 새들이 다 주워먹은 거 같애. 걱정하지 마세요. 반복됩니다 반복. 반복 돼야 전에 있던 감사 말고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감사가 우리가 육신에 산 만큼 또 튀어나오게 되어있어요. 기다려봐요 또 튀어나올 거예요. 내일 치 또 튀어나옵니다 내일 치. 내일 비트코인 내려가서 튀어나옵니다. 절망이야 끝났어 끝났어 나 죽었어 이제. 그때 팔 걸 까불다가.


우리에게 일어난 이 모든 사건은 이제 결론내고 마치겠습니다. 모든 사건은 십자가의 능력으로 지워버리는 일들이에요. 지워버린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은 인간에게 혹할 수 있는 인간들 그러한 유혹거리를 많이 만들어줘요 하나님께서. 마귀가 그렇게 하는걸 허락해요. 해놓고 성도로 하여금 방향을 틀게 만들어요. 그거 좋지? 좋지요. 성공했지. 구원도 받고 돈도 벌고 성공했습니다. 넓은 길 좋아? 그런데 찾는 사람이 왜 그리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그쪽 아니거든. 하고 다시 방향을 영생 쪽으로 방향을 틀어요. 틀면 외롭지만 감사하고 남한테 내세울 것 없지만 감사가 나오고 남들 보기에 너 인생 망했다고 욕은 하지만 비천하지만 쓰레기 같지만 기쁨이 사람이 모르는 예상 못한 큰 기쁨이 넘치게 만드는 하나님의 성령의 한결같은 쉬지 않는 일하심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주어질 것을 우리가 느끼는 겁니다. 아까 빨리 이야기했지만 사랑은 무엇입니까? 사랑은 아낌없이 반납하는 게 사랑이죠. 내 사람이다 내 여자다 왜 말을 못해. 보이지 않는 사람을 자기를 대신하는 사람으로 하는 거예요. 이순신 장군을 봅시다. 이순신 장군은 훌륭한 분이라고 하지요. 학교에서 배웠잖아요. 명량, 초량 영화 세 개나 나오고. 하지만 과거 사람이에요. 옛날 사람이라고요. 지금 살아있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보면 “보라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있다”고 했어요. 이미 다 이루신 분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거예요. 무슨 뜻입니까? 네가 육신이고 너는 육신밖에 모른다는 사실을 날마다 일깨워주는 식으로 너는 나를 증거하는 증인으로 다루겠다는 겁니다.


끝으로 물어봅시다. 우리가 고칠게 있습니까? 없습니까? 우리가 뭘 고친다는 자체가 이거는 시건방진 일이에요. 고쳐서 뭘 할 건데요? 더 깨끗한 나의 구원을 확보하려고? 하지 마세요. 고치는 것이 아니고 고치든 안 고치든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변수는 우리에게 나온 것이 아니고 우연하게 주께서 주신 겁니다. 우연하게. 그것을 통해서 세상에 어떤 지식과 지혜는 이미 주님 앞에 짤렸다는 사실. 이미 무지하고 절망적이고 그들은 지옥 가는 마귀들의 지혜만 사람들이 믿고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웃으면서 혹시 집에 여분의 돈 있거든 휘발유 사가지고 초를 치고. 주께서 그으면 확 붙도록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의사 아무것도 아니야. 데모나 하고. 의사들 데모하니까 한의사협회에서 우리를 믿으세요. 모든 이 세상은 자본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자본. 자본은 우리의 욕망의 대상이기 때문에 멈출 수 없어요. 나의 육신도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멈추지 않는 그것이 세상에 우리가 구원받은 증거로 활용해주시니 진짜 이런 복이 어디 있어요. 말을 더 못하겠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마음대로 살았는데 주의 뜻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 것도 안 했는데 그게 주의 일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주님만 살아계심을 증거 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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