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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심방설교

아빠와 함께 2026. 8. 23. 08:28

강릉 심방 설교-베드로전서 1장 20-21절 20260820-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 보겠습니다. 하나님 말씀 베드로전서 1장 20-21절까지입니다.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아멘.

인생을 살면서 가장 비극적인 처참한 말로… 20대, 30대 지나서 60대, 100세까지 요새 사신다는데, 그러한 연세를 먹으면서 가장 처참한 지경이 뭐냐 하면 소속이 없다는 거예요, 소속이.

태어날 때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나중에 시집 장가가면 가정이 뿔뿔이 다 헤어지잖아요. 그러다가 남편 먼저 보내고 또 아내 먼저 보내버리면, 분명히 가정이라는 것에 소속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가정이 세월 따라서 날아가버렸어요. 아무 소속이 없어요.

내가 자식들 껴안고 살겠다 했는데 자식들도 자기들대로 인생 살아야죠. 짐 되면 안 되잖아요. 자기들 인생에 방해되면 곤란하겠죠. 방해 안 된다고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방해 안 될 수가 없죠. 그러면 남는 것은 자기 혼자 남는데, 혼자 남아있을 경우에 도대체 내가 어디에 뿌리박을, 영원히 뿌리박을 소속이 없는 거예요, 소속이.

인생을 살면서 ‘이 사람 내가 아는 사람이다, 저분은 내 친구다, 저분은 내 자식이다, 저분은 내 친척이다’ 하고 우리 마음먹고 같이 서로 친하게 사이좋게 살자고 붙들어도,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세월이 지나면 사라지고 우리도 훌쩍 떠나버리고 이사가버리고. 처음에는 연락하겠지만 나중에는 연락도 안 되고 결국 다 헤어지고 나면 도대체 내 뿌리가 뭔지… 나의 영원한 소속이 뭔지…. 이걸 이 세상에서 붙잡을 수가 없어요.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성경은 이렇다는 것을 지식으로 아는데, 성경을 볼 때 원리가 뭐냐 하면 ‘우리가 성경을 안 믿는다고 치고 세상을 한번 살아보자’는 거예요. 그럼 성경을 안 믿으니까 성경을 이제 밀어놓는 거예요. 성경을 쭉 미는 거예요. 성경을 미는 거예요, 이제. 하나님 말씀도 없어요. 없을 때 그 허전함. ‘도대체 나 소속이 어디지?’ 가정 다 헤어졌는데, 뭐 없어요.

결국은 인간이 허무하다 하는 것은 몸이 아파 허무한 것이 아니고, 아는 사람이 적어서 친구가 적어서 허무한 것이 아니라, 내 자리가 보장이 안 되는 거예요. 영원한 내 자리가 없어요. 그러면 그동안 살아오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소설 쓰듯이 나 인생 이렇게 살았다고 남한테 자랑질 하잖아요. 그러나 잠시 내가 디딘 발을 비켜보면 그 안에는 그림자도 안 남아요. 아무것도 없었어요. 내가 그 자리 있으니까 마치 그 자리가 내 자리 같은데, 잠시만 비켜보면 내 자리가 없어요. 그리고 만약에 한 몇 개월 동안 해외 갔다 오게 되면 그 자리는 다른 사람이 다 차지하고 있을 거고. 도대체 나의 뿌리를 둘 만한 소속이 없는 겁니다.

그렇다면 다시 성경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성경 없다고 쳤는데 다시 한번 우리가 ‘성경, 좋다. 우리 불신자다. 성경이 우리한테 뭘 해줄 거냐? 하나님이란 분이 우리에게 뭘 할 것이냐?’ 누가 와서 “너 하나님 믿어?” “응, 하나님 믿어.” “예수 믿어?” “응, 예수 믿어.” “예수님이 뭐해줬는데? 하나님이 너한테 뭐해줬는데?” 물으면 “뭐해줬더라? 부자 되게 했는가? 우리 자식 잘되게 해줬는가?” 뭐 이런 것들뿐이죠.

이 시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준 게 뭐냐 하면 ‘소속’이에요, 소속. 살아있더라도 괜찮고 죽더라도 괜찮은 소속. ‘죽어서 뭐 천국에 소속되지.’ 그때는 죽을 때잖아요. ‘죽을 때 가봐야 안다’ 이런 또 이론이 된다고요. 사나 죽으나, 살아있을 때부터, 심지어 죽음에 넘기운다 할지라도, 내가 죽는다 할지라도 변치 않는 그 확정된 소속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 “창세 전부터”에요. 창세 전부터. 소속이 마음에 듭니까? 확실하죠? 창세 전부터! 뭐 강릉이고 양양이고 중요한 것이 아니고, 왔다 가면 우리 그림자도 없다니까요. 무안에 살든 대구에 살든 광주에 살든 목포에 살든 떠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느 곳에 있든지 간에 달라질 것 없는 소속. 자식과 더불어 산다고 해서 가정이라는 소속이 오래가는 게 아니에요. 그런 데 믿고 의지하면 안 됩니다. 보니 의지할 사람도 아무도 없어.

소속이 되려면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소속이 되어야 돼요. 그게 바로, 창세 전부터. 에베소서 1장 4절에도 나오는 이야기죠. “창세 전부터 하나님이 너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소속되게 하셨으니. 소속되기 위해서 너희를 간택하고 선택해서 그리스도 안에 예정하셨으니.” 이게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겁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문제는 이 소속이 되려면 절차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절차가 필요해요. 그래서 오늘 본문 19절을 보겠습니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우리 소속이 ‘나는 세상에 속했었는데 이제는 하나님 믿으니까 하나님한테 속했다.’ 그러면 그것은 창세 전에 예정된 자가 아니고 지금 자기 꼼수부리는 거예요. ‘아이고, 살다가 힘드니까 예수나 믿어서 천당이나 갈까?’ 이런 꼼수는 안 받아줍니다.

적어도 소속이 되려면, 잘 들으셔야 돼요, 소속이 되려면 그 소속에서 용인되는, 소속에서 수용할 수 있는, 인정할 수 있는, 받아주는 어떤 자격, 가치가 주어져야 돼요. ‘세상 살다가 힘들다. 에라, 예수나 믿자.’ 안 받아줍니다. 그것은 자기 이익을 챙기는 거잖아요. 너 어디서 왔어? 안 받아주죠.

천국에 들어가려면 창세 전부터 계획된 바가 우리에게 당도해야 돼요. 도착을 해야 된다고요, 도착을.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창세 전에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완전하고 영원한 소속, 천국이라는 소속을 만들어놓고 그 소속에 들어가려면 천국에 있는 주인공이 예수님이잖아요, 예수님의 창세 전에 예정된 그리스도의 피, 피가 우리에게 당도되어야 돼요. 2026년도든지 당도되어야 돼요. 도착을 해야 돼요.

그래서 20절 한번 봅시다. 19절에 “보배로운 피”라고 되어 있는데 ‘왜 피를 흘리느냐’ 이유가 안 나와 있어요. 그런데 20절에 이유가 나와 있어요.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이게 뭐냐 하면, ‘우리가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까?’라는 생각은 하나님께서 인정을 안 해줘요.

그런데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 쪽에서 준비하신 게 있어요. 하나님 쪽에서 보배로운 피를 흘릴 그 당사자가 이 마지막 때에 우리에게 나타나셨다는 거예요. 나타나셨다. 그냥 나타나기만 하면 안 되죠. 나타나신 분이 자기 할 일을 해야 되잖아요.

할 일을 하시는데 21절에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이 부분이 의외로 해석하기 힘들어요. 어떤 점이 힘드냐? 예수님을 믿고 소망을 가지면 구원이 되느냐 하는 문제에요. 구원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 보니까 너희 믿음과 소망의 뿌리가 영원한 소속에서부터 출발되어야 돼요. 내 행복과 나 구원받기 위해서 나한테 나오는 소망과 믿음은 하나님께서 안 받습니다. 받지를 않아요.

그럼 19, 20, 21절 이 본문을 가지고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딱 나왔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에게 당도했다는 말은 다른 게 아니에요. “네가 날 믿어?” “네, 믿습니다.” “믿지 마.” “네가 나를 소망해?” “네, 소망하죠.” “소망하지 마. 너는 음흉한 노림수가 있어.” 하나님 믿고 예수 믿음으로써 너한테 이익이 온다는 이 음흉한 노림수. 그 꼼수는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내가 만든 내 소속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에 그런 요소 가지고는 영원한 천국의 소속에 들어갈 수 없어요. 그건 거부합니다.

예수님의 피라는 것은… ‘우리가 피를 믿자’ 하는데, 인간은 피를 믿는 것도 수상해요. 아, 이거 많이 수상해요. 피가 뭔지도 모르고 그냥 선지국인 줄 알고서 피 마시면 되는 줄 아는데, 그게 아니고 피라는 것은 무슨 뜻이냐? “너희들이 소망을 갖든 예수를 믿든 하나님을 믿든 너희들은 나한테 죽어 마땅한 존재야. 네 믿음과 소망가지고 살려고 그런 짓은 하지 마. 그런 짓은 하지 마.”

그럼 어떻게 하느냐? 피라는 것은, 인간 쪽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거부했다는 증거가 예수님께서 사람에게 맞아죽었던 피 흘림이에요. 일체의 사람들로부터 죽으신 하나님의 피. 그래서 피를 앞장세운다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 것은 일체 받지 아니한다는 것을 네가 인정하느냐? 나 너희들한테 떠밀려서 밟혀 죽은 거야. 이걸 인정하느냐? 네가 믿어서 구원 받겠다 하는 이러한 욕심, 그 탐욕 때문에 내가 죽은 것을 네가 인정하느냐?”

그럼 우리는 “왜 하나님 일을 복잡하게 합니까? 피 믿으라 하면 믿고 예수 믿으라 하면 믿고 하나님 믿으라 하면 믿을 준비되어 있습니다. 왜 그리 복잡하게 하십니까?” 복잡한 이유가 21절 마지막에 있습니다. 모든 믿음과 소망은 나에게 나오면 안돼요. 어디 있어야 되는가? 하나님께 있어야 돼요. 하나님께.

성경 본문 하나하나가요, 이 우주보다 더 귀해요. 우리가 쉽게 믿을 수 있는 말씀을 주신 적이 없어요. 모든 시작은 하나님께 소속을 둔 믿음, 소속을 하나님께 둔 그 소망이 피라는 것을 가지고 나타냈을 때, 인간에 의해서 떠나버린 그 분이 인간이 밀쳤다는 그 사건을 가지고 우리 앞에 다시 등장할 때,

‘주님은 나의 믿음과 소망을 받지 않는 분으로 제가 믿습니다. 제 행함을 받지 않는 분으로 제가 믿습니다.’ 그리고 내가 성실하고 바르게 사는 것도 하나님께서 안 믿는 것을 이제사 제가 믿게 된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원한 소속이 된 사람이에요.

먼 데서 와서 많이 피곤하시죠. 끝으로, 우리 인생을 팔십이고 칠십이고 왜 살게 하는가? 이 땅에 왜 살게 하느냐? 우리가 구축한 것, 우리가 자기 자신을 단도리하고 나 괜찮은 인간이라 하는 것, ‘누가 봐도 나는 멀쩡해.’라는 그것이 오히려 예수님의 피와 만났을 때, 바로 이런 내 의도와 노림수 때문에 주께서 죽었다는 것을 더욱 더 깊이 있게 인정하게 만드는 거예요, 인생 살면서.

끝으로 할 것은, 악착같이 자신의 죄를 아세요. 결사적으로 자신의 죄를 알면 돼요. 내게 일어난 것은 다 내 꼼수고 나 위한 것뿐이 없다는 것을 알 때, 이 믿음이 어디서 왔다고요? 소속이 이미 합격된 거예요. 천국에 합격된 사람만 우리가 기꺼이 기쁨으로 나를 부인할 수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 지라는 그 말씀 자체가 우리 안에 늘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기뻐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우리가 대충 알았습니다. 말씀 믿으면 되고 지키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우리를 쳐내는 그런 말씀으로 새롭게 깨달았을 때, 내가 처치 못하는 이것을 말씀이 우릴 내쫓을 때, 이 기쁨, 이 감격이 늘 계속되게 하옵소서. 더 이상 두 번 다시 나를 믿지 않는 그러한 행복과 감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우인숙

"영구어업다" 강의 다니시면서 자주 언급하신건데 수십년전에 처음으로 여기에 확 꽂혔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
살면서 천국도 지옥도 별로 생각해본적도 나하고 상관없다는 오만함이겠지 ..계획하지도 원하지도 안했는데 40년도 넘게 살던 곳을 떠나게 조치하신 분의  손길을 2년이 지나서야 느꼈습니다 . 한번도 믿은적도 없고 내잘난맛에  그저 그럭저럭 살 뿐인데 창세전에 이미 소속 해 놔버렸다는데 어쩌라고 어쩔수가 없어유 ~~~하여간 힐링되는 발걸음들 고마웠습니다 ~~이리 재빠르게 녹취해준 이쁜 하림씨도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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