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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되자

아빠와 함께 2026. 8. 1. 09:42

금산 심방설교-로마서 7:4(귀신이 되자) 260731-이근호 목사

로마서 7: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두 군데를 볼 거예요. 로마서 7장 4절,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또 한 군데, 정말 중요한 대목을 보겠습니다.

로마서 8장 3절,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이 두 구절입니다. 이 두 구절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겠습니다(첨부파일 참고).

이게 육신의 세계에요. 육신의 세계에서는 이쪽, 점선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표 0번). 점선으로 하는 이유는 이 세계는 없습니다. 이 세계는 없어요. 보이지 않습니다. 없기 때문에 없는 것을 신경 쓴다? 이건 말이 안 되죠. 없는데 왜 신경을 써요? 있는 것이나 잘하세요. 있는 것에 충실해야 하잖아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오이 따고, 이런 것을 보게 되면 참 존경스러워요. 왜냐하면 ‘야, 참 부지런하시구나.’

그런데 무엇을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부지런 하지? 어떤 점에서 부지런하냐 하면, 있는 것에 충실한 거예요. 눈에 보이는 것에 충실한 거예요(표 1번). 또는 다른 말로 하면 ‘있는 것에…’, 고급 용어입니다, ‘있는 것에 몰빵함’, ‘눈에 보이는 것에 충실함’, 당황하지 않고 끝! 있는 것에 몰빵하는 것 눈에 보이는 것에 충실하는 것 당황하지 않고, 끝. 끝나요. 왜? 없으니까요. 하나님 나라가 없어요.

이걸 교회 다니는 사람은 자꾸 오해를 해서 내가 있다고 생각해서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눈에 보이는 것에 충실하고 있는 것에 몰빵하는 사람이 상상한 거예요. 천국이라는 게, 지옥이라는 게! 자꾸 속이려 하는데 하나님은 안 속아넘어갑니다. 있는 것에 몰빵하고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데, 전부인데 ‘뭐가 없는 것이 있을 거’라고 하는 그것은 일단 있는 것은 챙기고, 즉 애 키우고 이런 것에 우선 충실하고, ‘혹시 이것 말고 다른 게 있으면 내가 또 손해 보는 건 아닐까? 그래. 천국이 있다고 치자.’ 아무 생각이 없어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거예요.

그냥 있다고 치자. 그것은 그냥 있다고 친 것이고,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뭐냐 하면, 눈에 보이는 것에, 있는 것에 충실함이고, 부지런함이죠, 있는 것에 몰빵하고 돌아와서 자기 자신에게 흐뭇~, 좀 많이 깁니다. 흐뭇~해하면서 그다음에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 산다. 끝! 당황하지 않고 끝! 이게 전부예요. 이게 전부라고요. 성경을 굳이 볼 이유가 없다니까요? 여기 몰빵해 있는데 성경을 왜 봅니까, 성경을?

그리고 다른 사람이 교회 다닌다. “나도 옛날에 교회 다녔어, 나도! 찬양하고, 어려운 교회 도와주고, 헌금하고…” 그럴싸하게 금식할 때는 또 금식도 해가면서. 그런데 그게 소용없는 것이 이건 눈에 보이는 육신의 세계에서 종교고 교회에요. 그것도 눈에 보이잖아요.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고, 찬양하고…, 이것도 눈에 보이는 거예요. 이건(점선의 세계) 아예 없다니까요. 여기에 분주하고 바쁜데 이건 없죠.

지금 오늘 두 개의 본문이 그 이유를 설명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충성하라는 그 이야기가 아니고, 성경은, ‘인간의 세계는 육신의 세계고 보이지 않는 것은 아예 없’어요. 여기에 충실하게 된 이유, 주께서는 그걸 인정해 주는 거예요. 이것밖에 모르는 그것을 인정하면서 주님께서는 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성경이라는 계시를 통해 연락을 해주는 겁니다.

연락해 주는데 그게 바로 로마서 7장 4절에, 같은 단어가 두 번 나와요. ‘죽음’입니다.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그다음에 큰 단어 나와요, 큰 단어, “가서”, ‘죽었다가 살아난 자에게 가서.’ 이게 성립되느냐 하는 거예요. 이게 성립 되느냐 하는 겁니다.

지금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 몰빵하고 있는 것에 충실합니다. 왜? 살아있으니까요. 우리가 살아 있잖아요. 살아있는 자가 죽은 자 만날 수 있습니까? 안 되죠. 안 되는데 교회 다녀요. 이게 얼마나 위선적이고 가증한 것이고 주님 보시기에 참 웃기지도 않은 일인 거예요. 교회 세워가지고 이렇게 하는 거.

본인은 살아있으면서, 교회에서 똑같이 살아있는 사람들을 만나요. 그래서 찬양하고 예배드리면서 ‘우리 죽으면 천국 간다.’ 이러고 있다고요. 하나님 보시기에는 참 웃기는 이야기에요. 말도 안 되는 어거지에요, 어거지.

우리의 일상이 그냥 어거지입니다. 그리고 정답은, 아무 생각이 없어요. 그냥 어거지로 살아가는 거예요. 성경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성경 이야기를 안 하고 어느 교회 이야기를 해요. 자기도 살아있고 나도 살아있고, 산 사람 이야기는 충분히 납득이 되니까요.

그런데 로마서 7장 4절에, 계속해서 불가능한, 도저히 인간이 안 되는 것을 계속 이야기 해요.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것도 성립이 안 돼요. 살아있는 사람보고, 너희가 죽임을 당했대요. 그리고 죽임을 당한 자들을 ‘형제’라고 이야기합니다.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죽었잖아요. 죽었으니까, 죽었으니까 어디로 가라는 말입니까? 우리같이, 우리와 똑같이 우리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 안 해요. 왜? 살아있으니까. 살아있는데 성경은 우리가 죽었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거 중요합니다. 죽었다고 간주하고 “너희들이 죽었거든?” 우리는 “어? 말도 안 돼.” “너희들이 죽은 것 같이 똑같이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이 있거든!”라고 소개해요, 예수님을!

예수님 키가 몇 센티고…, 뭐 이런 게 아니고 우리는 지금 죽었는데 살았다고 우기고, 주님은 “우기지 마. 어거지 쓰지 마. 나도 살았는데 율법에 의해 난 죽었어.” 그 점이 바로 아까 했던 로마서 8장 3절입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에 죄를 정하사.” 이게 아버지가 예수님을 죽이신 이유에요. 아주 쉽게 가겠습니다. 우리는 살았죠. 눈에 보이고 살아있어요. 아침부터 뭐 뜯고, 난리도 아니에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건 산 게 아니고 죽은 거라는 거예요. 우리는 “오잉?”(표 2) 성경에 대해서 이렇게 놀라야 해요. “아닌데? 오잉? 우린 살아있는데?” “아니야. 너 그거 모르지?” “응. 난 안 죽고 살아있어.” “그래. 진짜 너희 이야기 해줄게.” 하고 하나님께서 율법을 보내요.

하나님께서 율법을 보내니까 우리는 “법? 그거 잘 지키면 되지.” 이러고 있어요. 법을 보내니까 우리는 죽었어요. 법은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거예요. 그걸 이야기하면 너무 기니까 생략하고, 법을 보내서 우리만 죽이는 게 아니고 예수님도 죽였어요. 제대로 율법에 죽임을 당하시고, 갈라디아서 3장에 보면, ‘율법에 의해서 저주를 받았다’고 되어 있어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하여튼 죽으시고, 우리는 우리가 살았다고 하니까 주님께서는 “너, 죽었어.” 우리는 “응? 살았는데?” “그래?” 이제는 죽은 이유를 설명하는 거예요. 그럴 때 우리는 ‘이 세계가 육신의 세계, 이쪽은 영의 세계다.’ 하늘나라라고 하잖아요? 이게 그 세계가 아니고, 오늘 설교의 핵심이 이거에요. ‘내 죽음의 세계’에요(표 0번), 내 죽음의 세계. 쌍둥이죠.

난 살았잖아요? 육신이 살았잖아요. 그런데 살아있는 것을 주께서는 ‘육신’으로 표현하는데, 우리는 육신으로 표현 안 하고 ‘사람’이라고 하는데 “사람 없어, 그냥 육신이야.” 육신인데 육신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죽음의 세계 이전에 살았다고 착각하는 세계가 육신의 세계에요.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이 죽음의 세계, 이게 천국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돼요? “천국에 살자”가 아니라 “제대로 좀 죽어, 제대로. 제대로 좀 죽어! 주님이 죽었다고 하는 그것에 딱 맞춰 죽어.” 그러면 살아서 애 낳고 하는 그것은요? “그게 죽은 거야.” 왜? 육신에서 육신-육신-육신…, 생산하는 게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게 무슨 세계냐? 죽음의 세계에요.

그러니까 진짜 성령 받은 사람은 어때요? 산 사람 세계에서 좋다가 아니라 죽음의 세계에 있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이 감사하고 좋은 거죠. 한 번 따져보세요. 죽었는데 아침에 샐러드 먹고, 죽었는데 깻잎 따오고…, 이게 얼마나 자유입니까? 죽은 귀신이 뭔들 못해요, 죽은 귀신이?(표 3)

‘죽은 귀신이 뭔들 못하냐?’ 하는 그것이 이거예요. 로마서 7장에도 나오고 8장에도 나오는데 이미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게 바로 7장 4절에 나오는 이야기 아닙니까? 율법에서 이미 무슨 자? 또 다 잊어버렸어요. ‘목사님이 무슨 이야기 했더라?’ 돌아서면 다 잊어버려요. 왜? 몰빵하니까요.

율법에 대하여, 그다음에, ( )였으니, 여기 ( )에 뭡니까? 정답은 “죽임을 당하였으니.” ‘죽었으니’, 달리 노골적으로 말하면 ‘귀신이 되었으니’ 하나님 안목입니다. ‘죽었으니’ 같은 말로 ‘귀신이 되었으니’ 날파리 막는다고 뒤집어쓰고 뭘 해도 주께서는 탓할까요, 탓을 안 할까요? 이게 핵심이다. 주님께서 나무랄까요, 안 나무랄까요?

주님 보시기에는 “넌 벌써 잘렸어!” 했는데 도둑질한다고 나무랄까요? 어떤 이는 차를 몰고 가다가 우연히 사람을 죽였어요. 그런 사람이 있어요. 지금 그 사람 구치소 가 있어요. 진짜 잘나가던 사람인데. 그런데 그 사람을 하나니이 보시기에 어떻겠어요? 나무랄까요, 안 나무랄까요? 돈을 못 번다. “왜 돈 못 벌어?”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안 하겠죠. 돈 좀 벌었다. 그걸 탓할까요, 안 할까요? 안 해요.

이걸 누가 아느냐 하면, 로마서 8장, 성령을 받은 자는 이걸 안다고요. 잘나서가 아니라, 죽었잖아요. 죽은 귀신이 뭔들 못해요? 이걸로 오늘 끝내고 싶은데, 아니 죽은 귀신이 뭔들 못해요? 왜 남들을 의식합니까? 같이 산 사람들. “내가 신앙 연조가 50년이에요.” 죽은 자인데 뭘…, 귀신은 역사가 없어요. 귀신은 역사가 없다. 귀신에 ‘여태껏’(표 4) 이게 성립이 안 됩니다. ‘왕년에’ 안 됩니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돈이 많아서 주체가 안 된다.” 헛짓하고 있네. 자기 자랑을 왜 해요, 귀신인데? 그런데 귀신인 줄을 모르는 거예요. 귀신이기에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뭔가 요구를 할 수가 있는데, 귀신에겐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이게 로마서 7장 8장 이야기에요. 그동안 로마서 여러분이 수백 번 읽었죠?

읽었는데 ‘이거 빨리 읽고 텃밭에서 저거 따야지.’ 성경 빨리 읽고, 눈에 보이는 거에 충실하고, 애도 봐야 돼요. 손자 키우고 한달에 용돈 얼마 받는지는 모르겠어요. 조선족 보다 많이 받는지 그건 잘 모르겠어요. 있는 것에 몰빵 해야죠. 끝으로 이거 하나만 하겠습니다.

왜 우리가 자꾸 걱정합니까? 걱정, 근심, 공포, 두려움, 불안. 왜 이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로마서 8장에,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이것을 하나님이 하기 위해서…, 우리는 바보 등신이거든요. 눈에 보이는 게 전부잖아요. 우리가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서, 우리가 무지해서 모르는 것을 예수님한테 판박이로 해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였어요.

죽인 이유가, 자기 백성만큼은 제발 어리석게 마귀에게 빠져서 ‘살아있다’라는 생각을 못 하게…. ‘죽은 자다.’ 이것을 아무도 모르니까요. 모르니까 예수님께서 실제로 “자, 봐. 율법의 십자가에 내가 죽었잖아. 내가 죽었다면 너도 죽었어.” 죽었으니까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서, -만남은 성령을 통해 만납니다- 만나서 이제 나의 열매는 없어요. ‘예수님이 이런 일을 하셨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열매로 맺히게 합니다.

로마서 7장 4절입니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귀신이니까 내 열매는 없어요(표 5). 없고 주님의 열매만 주렁주렁 달립니다. 그리고 수요일에 했던 시편 115편 1절, 기억나죠? ‘하나님이여 영광을’ 그다음에 크게 쓰겠어요. ‘나에게’ 죽은 귀신한테 왜 영광을 돌려요? ‘나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 이게 제대로 된 끝! 이것은 당황할 필요도 없어요. 걱정, 근심, 걱정, 공포, 두려움, 불안, 이게 마귀가 죽은 인간 보고 ‘살았어, 살았어. 남들이 얼마나 너 욕하는 줄 알아? 행동 잘못하니까 대번에 경찰이 따라오잖아, 봐라. 너 인생 이제 조졌어. 너 왜 그렇게 살아?’

여기 걸려든 사람이 누구냐? 노무현이에요. 그냥 밥 먹고 월급 받고 살면 되는데 왜 바위에 올라가서 죽기는 왜 죽어요? 걱정, 근심,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런데 노무현만 그런 게 아니고 우리한테 다 잠복되어 있고, 잠재되어 있어요. 노무현은 성경을 몰랐잖아요. 그러면 성경을 아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런 것이 없어졌습니까? 아니죠.

그러니까 성령께서는 말할 수 없는 탄식과 근심으로(표 6)…, ‘말할 수 없다’는 것은 고급 용어로 무한이에요, 무한. 끝없이 반복해서 ‘너 죽을 때까지 내가 근심할 거야.’ 말할 수 없는 근심과 염려와 걱정으로 하나님께서, 성령께서 이 말씀 로마서 7장 4절을 가지고 ‘이 귀신아, 너는 이제 산 사람에서 나왔기 때문에 네가 하는 모든 것에 일체 책임을 묻지 않는데, 책임을 묻지 않는, 곧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이 자유는요, 우리가 좋으라는 자유가 아니고, 이 자유가 아버지의 이름입니다. 우리가 열매거든요. 주님의 열매가 이거에요. 우리가 ’자유 자체‘가 되는 거예요. (표 7), 크게 쓰겠습니다. 싱글벙글. 방글방글. 이걸로 설교를 끝내겠습니다. 이걸로 왜 설교를 끝내냐 하면, 집사님이 이건 안 가르쳐줘도 알아서 해요. 방글방글, 싱글벙글. 남편 되시는 권사님은 이유를 몰라요. ‘왜 이게 웃을 일이지?’ 왜 방글방글하는지 이유를 모르는데, 당신도 마찬가지고요.

아, 아침에 두 분 일찍 일어나서 뭘 하는 것 보니, 왜 그리 부지런한지, 왜 그리 성실한지, 정말 칭찬해 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칭찬입니다. 계속하세요.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에 몰빵하는데, 이게 귀신인것을 꼭 경유해서 그렇게 하세요. 오늘 설교 제목은 “귀신이 되자.”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마귀한테 옴팍 속아가면서 평생을 살아갈 뻔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이미 죽었는데 이왕이면 잘 살고 칭찬받고 남한테 존경받고 살자는 이 마귀에게 속아 넘어간 저희들, 이제는 다시 한번 말씀을 보고 성령이 오셔서 성령께서 우리 옆에서 얼마나 탄식하고 가슴 답답해하는지를 오히려 우리에게 싱글벙글로 나타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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