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대구강의] 지옥의 하나님 1 - 세상과 같은 교회
22,02,14 강의 : 이근호, 정리 : 구득영
오늘부터 '지옥의 하나님' 이란 책을 하겠는데, 먼저 13페이지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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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자기가 자기를 방치하지 않는다. 착함에 탄력을 붙이고 싶은 것이다. 더 착해지고 싶고, 더 완전해 싶은 것이 인간의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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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 착해지고 싶고, 더 완전해 싶은 것이 인간의 욕심이다" 라고 되어있는데, 이게 13년 전에 나온 책인데, 지금이라면 욕심보다는 욕망이라고 붙이고 싶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욕심보다는 욕망이 범위가 더 크다는 말이죠. 그런 욕망을 인간은 멈출 수가 없는데, 어제보다 오늘이 더 착해지고 싶다는 겁니다. 즉 "나는 이제 그만 착할 거야" 라고 스톱이 안 된다는 말이죠.
그야말로 착함의 최고경지에 도달하고 싶다는 것인데, 즉 "신처럼 착해지고 싶고, 완전해지고 싶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럴 때 인간은 비로소 최고 만족감을 얻는다는 것이죠.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그런 신에게 한 수 배우겠다고 나선다는 겁니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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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신에게 한 수 배우면 된다. 신을 자신 있게 말하는 곳을 찾는다. 그곳이 교회다. 그런데 교회가 수상하다. 이상해졌다. 성경을 펼쳐놓고는 세상과 타협하라고 가르친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과 너무 다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과 너무 다르다. 그러면서도 교회 안은 아무 문제없다는 분위기다. 너무 고요해서 이상스럽다. 모두들 천국 안 갈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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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신처럼 되기 위해서 교회를 찾아가는데, 그런데 교회가 너무나 이상하다는 말이죠. 교회에서 하는 목사의 설교가 성경과는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미리 성경을 읽어오면 단 번에 알 수가 있는데, 그런데 너무나 조용하다는 말이죠. 그래서 여기 교재에 보면 "모두들 천국 안 갈려나?" 라고 하는데, 왜냐하면 그렇지 않고는 조용하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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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 모두들 천국과 지옥에 관심이 없었다. 다른 것이 급해서 교회를 찾은 자들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교회란 세상과의 연속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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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속성인가? 끊어짐인가?
여기에 처음으로 어려운 것이 나오는데, "그들에게 있어서 교회란 세상과의 연속된 곳이었다" 라고 되어있다는 말이죠. 교회가 세상과 연속된 곳인데, 그래서 벽돌로 된 건물이 있어도, 그 출입구로 들어오면 된다는 겁니다. "교회와 세상이 끊어짐이 없다" 라는 것인데, 즉 세상에 살다가 교회로 들어오면 된다고 여긴다는 말이죠.
목사들이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교인들이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런데 문제는 성경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말씀인 성경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이 세상과 끊어져 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요한복음 18장 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요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그러니 이런 성경말씀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교회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이죠. 목사가 뭐라고 설교를 하든 간에 자기는 천국에만 가면 된다는 것인데, 즉 교회를 천국에 보내주는 여행사로 여긴다는 겁니다. 여행사가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여행지의 모든 정보를 제공해주는 곳인데, 그러니 사람들은 교회에 등록해서 천국에 가면 된다는 여긴다는 말이죠.
하지만 성경은 전혀 그것이 아닌데, 그런 식으로는 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고 한다는 겁니다. 만약 교회가 이 세상의 범위에 속한다고 하면, 이게 수학의 집합론인데 말이죠.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 세상과 예수님의 세계는 어떻다는 겁니까?
예수님의 세계는 실선이지만 점선으로 표현해보면, 여기서 점선이라는 것은 있다고 여기는 자들에게는 '없음' 인데, 하지만 이 세상이 망상이라고 여기는 자들에게는 이게 '있음' 이라는 겁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나라라는 것이죠. 그러니 예수님의 세계는 이 세상과는 끊어져 있는데, 도저히 건너갈 수가 없다는 겁니다.
* 거듭나지 아니하면 !!
그래서 니고데모가 요한복음 3장에서 뭐라고 합니까? 예수님께서 거듭나야 한다고 하니까,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습니까? 다시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습니까?" 라고 한다는 말이죠. 니고데모가 왜 그렇게 말합니까? 자기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데,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라는 겁니다.
(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그러니 교회에 나와서 아무리 등록을 해도 소용이 없는데, 왜냐하면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는 것이죠. 그 당시에 니고데모가 생각한 것과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별 다를 바가 없는데, 무슨 말인고 하니, 교회가 누가 태어나고 말고 하는 산부인과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어떻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느냐는 것이죠. 그래서 자기 쪽에서 예수님의 말씀에 합치하려고 그 어떤 수단을 부려도, 그것은 전혀 가당치 않다는 것인데, 그것을 니고데모는 예수님으로부터 듣게 된다는 겁니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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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에게 있어서 교회란 세상과의 연속된 곳이었다. 다른 법칙이 있을 것이라고는 조금도 믿지 않는다. 단지 신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갖는 곳이라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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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천주교가 어떻게 합니까? 그들이 미사를 드리는 것은 신과 접촉기회를 갖는 것인데, 우리가 보면 예배인데 말이죠. 그런 미사를 드리면서 신과 접촉기회를 자주 제공하는데, 교인들에게 입을 벌리게 해서 무엇을 집어넣는다는 겁니다. 얇은 비스켓처럼 생겼는데, 그것을 예수님의 몸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이게 그들의 성만찬이라는 말이죠.
천주교에서느 얇은 비스켓을 "예수님의 몸이다" 라고 하고, 반면에 개신교에서는 "몸이 될 수 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천주교는 'IS'이고, 개신교는 'BECOME' 이라는 말이죠. 둘 다 구라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겁니다. 무엇을 먹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만약에 그렇게 해서 구원이 된다면,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이것을 먹어라" 라고 했지, "다시 태어나야 한다" 라고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것은 인간이 아무리 접촉을 해도 되지 않는다는 의미라는 말이죠. 그러면 교회에서 왜 이것을 합니까? 그래야 손님들을 쉽게 모을 수 있다는 겁니다. 신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면 교회는 할 수 있는 도리를 다 했다고 여긴다는 말이죠.
계속해서 교재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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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도 성경을 들여다보기보다는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을 반기기에 바쁘다. 사람 관리에 신경을 쓴다. '천국 있음' 그 자체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는 보이지가 않는다. '자기 교회 있음'으로 만족하려는 모습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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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행동과 태도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 수 있는데, 물론 교인들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기 하지만, 목사가 더욱 더 그러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동기 목사들을 만나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교회 이야기를 한다는 말이죠.
* 나는 교회가 좋아 !!
왜냐하면 자기는 천국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고, 자기에게 생계비를 다달이 대주는 교회라는 업체를 붙들고 살아간다는 겁니다. 물론 교인들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고 주님 때문에 살아간다고 하지만, 사실은 교회, 즉 자기가 있는 회사를 붙들고 살아간다는 겁니다. 당회장으로 취직을 했다는 것인데, 부교역자는 그 밑의 월급쟁이이고 말이죠.
이게 17년 전에 한 이야기인데, "교회가 없이도 저는 늘 천국만 바라보며 삽니다" 라는 자세가 설교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무리 십자가를 이야기하고 천국을 이야기해도 마지막엔 무엇인고 하니, "그러니 교회에 돈을 바치세요" 라는 것인데, 바로 그것이란 말이죠.
그러면 교인들은 어떻게 나옵니까? 목사가 하는 소리가 조금 이상하기는 해도 사실상 교인들은 교회에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자기 가정, 즉 자기가 가진 것에 대해서 손을 대지 않으면, 교회가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되던 말던 간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말이죠.
* 자기 자존감의 확장 !!
그런데 이제 직분을 맡게 되면, 즉 집사나 장로가 권사가 되면 그때부터는 좀 신경을 쓴다는 겁니다. 그것은 교회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기 직분에 대해서 시비를 걸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말이죠. 그게 하나 더 추가가 된다는 겁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았다는 것은 자기 자존감의 확장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평신도일 때는 자기에게 무슨 소리를 해도 참을 수 있는데, 집사나 장로나 권사가 된 다음에 건드리면 폭발을 한다는 겁니다. 자기 자존심의 촉이 더 길어졌다는 것인데, 그만 직분이 사람을 망쳐놓았다는 것이죠. 낮아질 줄을 모른다는 겁니다.
* 날마다 바닥상태로 되돌아가야 !!
매주 우리가 교회에 나온다는 것은 바닥 상태로 되돌아간다는 것인데, 직분이고 나이고 간에 다 걷어치우고, 얼마나 오래 다녔던 간에 항상 바닥상태로 환원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바닥상태가 무엇인고 하니, "내게 있는 것이 내가 평생 노력해서 얻은 것인가? 그게 아니면 주님이 그저 주신 것인가?" 라고 하는 싸움, 그게 벌어지는 곳이 바닥상태라는 겁니다.
교회에 60년 다니던 나이가 80이던 간에, 인간의 바닥상태는 무엇인고 하니, "이것은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다. 아니야,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이다" 라고 하는 싸움이 우리 내부에서 계속해서 일어난다는 말이죠.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멈추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만약에 주님이 거저 주신 것이라고 여긴다면, 주님이 다시 가져간다고 해도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주신 분도 하나님이고 가져가신 분도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이 집사직분에 대해서, "집사직분을 잘 감당하세요"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그것이 자기가 교회에도 열심히 나오고 십일조도 열심히 하니, 교회에서 "저 사람은 나중에 교회에 큰 기둥이 되겠다" 라고 해서 준, 즉 자기가 노력한 대가로 얻은 것입니까? 그게 아니면 하늘에서 주어진 것입니까? 과연 어느 쪽입니까?
거기에 대한 답변은, 그 집사직분을 누군가가 빼앗아 가지고 가도 "그래, 가지고 가세요" 라고 한다면, 그것은 하늘에서 주어진 것이고, 반면에 "내가 이 직분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데, 돈도 바치고 했단 말이야" 라고 나온다면, 그것은 자기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한 바닥상태를 자기가 늘 살펴봐야 하는데, 숨기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죠.
우리의 지식은 항상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는 쪽인데, 그게 고린도전서 15장의 말씀인데, 그래도 들은 것은 있어서 말이죠. 남들의 비난에 대해서 방어하기 위해서 이런 지식은 언제나 준비가 되어있다는 겁니다. 대인관계에서는 그렇게 나오지만, 실제로는 무엇인고 하니, "나를 건드리지 말라" 라는 것인데, 누구라도 자기를 건드리면 용서치 않겠다는 말이죠.
(고전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신앙생활을 50년 했다고 하면 누가 봐도 신앙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라는 겁니다. 과연 주님으로 인하여 사는 것인지, 자기 자신으로 인하여 사는 것인지를 말이죠. 남들을 의식하지 말고, 정말 주님이 지금 당장에 자기 목숨을 가지고 가더라도 전혀 미련이 없는지, 그것을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라는 겁니다. 바닥의 상태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는 말이죠.
그렇지 않으면 성경지식은 오히려 자기를 위장하는데 사용될 수 있는데, 그러면 그것은 성경말씀이 아니고 종교지식이 된다는 겁니다. 자기가 살아가는 삶의 노하우나 테크닉과 같은 것으로, 즉 자기가 착하다는 것을 남들에게 심어주기 위함이 아니냐는 것이죠.
여기서 사도행전 17장을 보겠는데, 25절입니다.
(행 17: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 일방적으로 주시는 주님 !!
여기에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라고 하는데, 우리의 생명, 호흡, 세월, 그런 우리의 모든 것을 누가 주셨다는 겁니까? 주님이 친히 주신 것인데, 주님의 고집도 대단하다는 겁니다. 우리가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주님이 주셨다는 말이죠.
그리고 그 앞에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라고 하는데,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주님은 무엇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의 정성이고 찬양이고 헌금이고 간에 필요가 없는데, 주님은 그냥 주시는 분이라는 말이죠.
왜냐하면 그냥 주셔야 일방적으로 심판하실 수 있는 권한이 주님에게 있다는 겁니다. 일방적으로 주셔놓고 "지옥에게 가라" 라고 하시면서 때려버린다는 말이죠. 그러니 우리 인간과 협상하거나 거래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태어나는 것도 주님의 은혜인데, 그렇게 일방적으로 주시고 나서 때려버린다는 말이죠. 주셨기 때문에 가지고 가실 권리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교회가 있다는 게 신앙의 장애요소가 될 수 있다는 말이죠.
계속해서 교재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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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도 성경을 들여다보기보다 오는 사람들 반기기에 바쁘다. 사람 관리에 신경을 쓴다. '천국있음' 그 자체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자기 교회 있음'으로 만족하려는 모습이 엿보인다. "교회 없이도 저는 늘 천국만 바라보며 삽니다" 라는 자세가 설교에 반영되지 아니한다. 교인들 사이에 경쟁을 붙이는 계획을 주도하면서, 그런 지휘와 통제력으로 자신이 마치 자신이 교회의 최고 권세자인 것처럼 부각되려 한다. 성경 말씀하고 전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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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들의 조직놀이 !!
목사라고 하면 설교를 하면서 어떻게 나와야 합니까? "나는 교회가 없어도 주님만 있으면 족합니다" 라고 하는, 그런 마음가짐이 있어주어야 하는데, 하지만 전혀 그런 것이 없다는 겁니다. 오히려 목사 자신이 최고의 자리에 앉아있다는 말이죠.
보통 교회현관에 보면 조직표가 붙어있는데, 여러분은 보지 못했습니까? 교회수첩에도 보면 있다는 겁니다. 제일 위에는 당회장이 있고, 그 밑에는 부목사가 있고, 그 옆에는 장로들이 있는데, 선교부장, 교육부장, 그런 식으로 되어있다는 것이죠. 그 밑에는 집사들이 있고 말이죠. 무슨 깡패조직도 아니고 그게 무슨 짓이냐는 겁니다.
하지만 이 세상 사람들을 모은다고 해서 그게 천국에 갈 사람들이 아닌데, 그렇게 되면 교회가 세상과 연속성을 가지게 되는데, 연속성이 아니고 단절이어야 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교인들 중에서 그런 조직에 대해서 비판을 해도, 만약 그 사람을 선교부장에 앉히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 사람도 역시 부장의 자라에 앉아서 오야붕 흉내를 낸다는 겁니다.
그래서 당회장 목사가 어떻게 합니까? 밑에 있는 집사들은 상대하지 않고, 부장급들만 모아 가지고는 스타렉스를 몰고 횟집에 광어회를 먹으러 간다는 말이죠(ㅋㅋ). 그것을 판공비라고 하는데, 조직체가 되면 그런 조직에서는 조직의 우두머리가 사용할 수 있는 돈이 있다는 겁니다.
이런 조직놀이가 그리워서 신학교에 간 사람들이 바로 오늘날의 목사들이라는 것이죠. 물론 처음에 신학교에 입학할 때는 뭐라고 합니까? "오직 주님만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라고 하지만, 그러나 졸업할 때는 이미 주님과 끝난 사이라는 겁니다. 이것을 출세했다고 하는데, 자기 세계에서는 그렇게 본다는 말이죠.
그런데 교인들도 이게 당연할 줄로 아는데, 왜냐하면 이 교회 저 교회 할 것 없이 모든 교회들이 다 그렇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원래 이것을 허용하셨구나" 라고 여기는데, 하지만 주님은 이런 것을 허용하시고 긍정적으로 보신 적이 없다는 말이죠.
여기서 마태복음 23장을 보겠는데, 8절에서 10절입니다.
(마 23: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마 23:9)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마 23: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 지도자는 그리스도뿐 !!
여기 10절에 보면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라고 하는데, 이미 지도자는 그리스도로 확정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은 리더나 멘토가 왜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는데 말이죠. 예수님 외에는 지도자가 없는데, 왜냐하면 그분에게서 성령이 나오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인간적으로 지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지시를 받아야만 한다는 말이죠. 그리고 성령은 육과 대비관계라는 겁니다. 성령의 지시를 받게 되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당회장부터 시작해서 모든 직분은 그 조직표가 거꾸로 된다는 말이죠. 세상의 희생물이 되기 위해서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남들보다 더 낮아도, 남들에게 욕을 들어도 나는 무방하다" 라는 것인데,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하시기 위해서 성령을 통해서 봉사의 직분을 맡기신다는 말이죠. "내가 장로인데 감히 누가 나를 욕해?" 라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욕을 하세요. 욕을 먹는 것이 장로입니다" 라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라는 겁니다. 지금 여러분의 표정들이 영 아닌데 말이죠(ㅋㅋ).
계속해서 교재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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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온 자들에게는 실망스럽다. 되레 지옥을 교회에서 확인한 셈이 되었다. 왜 이 세상은 천국이 될 수 없는가를 분명히 체험케 한다. 지옥을 다시 생각한다. 착함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착함을 가르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이 저런 식으로 변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성경 말씀이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능력적으로 뜯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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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 나의 것은 건드리지 말아주세요 !!
여기 마지막에 보면 "성경 말씀이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능력적으로 뜯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라고 하는데, 무슨 뜻입니까? 그러니 성경 자체가 한 수 배우겠다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게 배우려는 자들의 본색을 들추어내는 기능을 발휘한다는 겁니다.
이 원리는 간단한데, 우리 인간은 "내가 교회에 다녀줄 테니, 하나님은 나의 것을 제발 건드리지 말아주세요"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니 교회에 다니는 것과 백화점에 다니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죠. 백화점에 고객으로서 서비스를 받으려고 가지, 설움을 받으려고 가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 가정에서는 자기가 왕인데, 따라서 백화점이나 미장원과 같은 곳에 가서 손님으로서 왕처럼 대우는 받고 싶은데, 물론 그것은 자기 마음대로는 되지 않지만 말이죠. 아무튼 간에 "제가 교회에 다닌다는 여분의 활동을 해줄 테니, 하나님은 저의 것이라고 평생을 통해서 구축해놓은 것은 다치지 않게 해주세요"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 것을 지키는 방법 중의 하나가 교회에 다니는 것이란 말이죠. 그러니 자기를 치지 않는다면 교회가 어떻게 하든, 거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것은 멀쩡하다는 말이죠. 그러면 자기 것이 그만 우상이 되고 마는데,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자기 것은 감춘다는 겁니다. 그게 자기 자존심이니 말이죠.
물론 교회는 그것을 들어주는데, "참 훌륭하십니다. 기도하시면 자식들이 다 잘 됩니다. 그러니 이번에 시험에 떨어진 것도 더 열심히 기도하시면 됩니다"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니 교회가 자기의 것을 지키는 것에 있어서 도움이 된다고 여기게 된다는 말이죠.
* 종교를 떠나신 주님 !!
이것이 바로 종교인데, 하지만 주님은 종교를 떠나셨다는 겁니다. 교회는 그런 인간의 기대에 부응을 해주지만, 성경말씀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말이죠. 오히려 들추어내는데, "요놈, 드디어 잘 걸렸다" 라는 식이라는 겁니다. 그게 바로 성경말씀이라는 것이죠.
교회에 다니는 생색을 내고자 하는 의도, 즉 "하나님이라도 나의 것을 건드리면 나는 화를 낼 거야" 라고 하는 인간의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말씀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말씀대로 한다는 것은, 자기가 이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고발해주는 것이란 말이죠.
계속해서 교재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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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의 지형을 뜯어내니 그 안에 독사들이 우글거린다. 다 가짜들이었다. 그래서 진리와 복음에 대해서는 고요하다. 교회 안의 흐름은 세상과 다를 바 없이 돈이 쥐고 있다. 돈 이야기만이 교회 분위기를 바꾼다. 재물에 웃고 재물에 운다. 그 교회 안에서도 여전히 돈이 곧 진리요, 생명이다. 수입과 관련이 없는 일이라면 관심도 없다. 그래서 잠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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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왜 진리와 복음에 대해서 조용한고 하니, 그것은 교회가 이 세상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것이 오늘날 교회의 모습인데, 그래서 교회에서도 이 돈 때문에 웃고 울고 한다는 말이죠. 예수님이 진리가 아니라 돈이 진리라는 겁니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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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위기를 갖고 협동한다. 누구 이익을 위한 협동인가? 교회는 그동안 이 사회 속에서 정치 경륜만 쌓아왔다. 자신들도 이익집단이라는 것이다. 이제 이 사회는 교회가 무엇인지를 알았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단체인 것을 알았다. 공연히 세워진 단체임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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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10대나 20대가 왜 교회에 나오지 않는고 하니, 교회가 이익집단임을 알았다는 말이죠.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와봐도 교회가 움직이는 것과 자기 집구석이 움직이는 것이 전혀 다르지가 않다는 겁니다. 그러니 더 이상 교회에 나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죠.
계속해서 교재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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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교회는 외형만 천국이었다. 문짝만 천국이었다. 그것으로 천국구경은 끝이다. 더 내놓을 것이 없다. 교회는 애초부터 별개 아니었다. 천국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단체였다. 왜냐하면 천국은 거울처럼 성경 속에만 숨어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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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마지막에 보면 "천국은 거울처럼 성경 속에만 숨어있기 때문이다" 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거울 속으로 우리가 들어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너무 딱딱해서 전혀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경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죠.
그런데 성령이 오셔서 어떻게 해주십니까? 성경 속으로 들어가게 해주신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성경말씀은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쓰여졌다는 겁니다. 그러면 천국은 어디에 있는고 하니, 교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안에 있다는 말이죠.
여기서 로마서 10장을 보겠는데, 13절에서 15절입니다.
(롬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롬 10: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롬 10: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13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라고 하는데, 천국은 가는 방법을 이렇게 성경에서 소개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14절에 보면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라고 하는데, 천국은 눈으로 보고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물론 지옥도 그러하고 말이죠.
그래서 여기 10장 6절과 7절에 보면,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천국과 지옥은 어떻게 하면 되는고 하니, 말씀을 전하면 된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 말씀이 주의 이름과 직결이 되어있다는 겁니다.
(롬 10: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롬 10:7)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 주의 이름 !!
13절에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라고 하는데, 그러니까 모든 말씀은 주의 이름에 연결이 되어있다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변화와 권세, 즉 문화와 정치적인 변동은 말씀이 말씀되기 위한, 즉 말씀 성취에 집결이 된다는 말이죠.
그러니 이 세상은 말씀이 말씀대로 되기 위해서 존재하는데, 이 말씀은 주의 이름으로 모이고, 따라서 주의 이름을 믿는 자가 구원을 얻는 이유는, 주의 이름이 곧 말씀의 집결이고, 이 세상을 하나로 일관되게 해석하는 것이 바로 그 말씀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가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는 것도 말씀에 의해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죠. 자기 선택과 결정에 의해서 세수를 한 것이 아니고 말이죠. 주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이 전부 다 말씀대로 되어진 일이 된다는 말이죠.
* 그저 주신 은혜 !!
그렇게 말씀대로 된다면, 이 세상에 일어난 일은 무엇인고 하니, 조금 전에 이야기한 바와 같이 그저 주신 은혜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저 주신 은혜가 세상의 변동을 일으킨다는 말이죠. 자기가 암에 걸려도 그저 주신 은혜라는 겁니다. 자기가 암에 걸렸다고 하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고 하니, "이제 그만 살아라. 지겹지도 않나?" 라는 것인데, 그런데 의사를 동원해서 그만 수술을 받았다는 말이죠. 그러면 또 더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그것도 주님의 은혜인데, 이 은혜를 미리 아는 것이 아니라 뒤돌아보면서 비로소 깨닫게 된다는 말이죠. 처음에는 살려고 애를 썼는데, 뒤를 돌아보면 "아하, 사는 것도 나의 욕심이고 욕망이었구나" 라고 하게 되는데, 십자가에 비추어보면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것도 그 순간의 욕망이 아니고 잠복이 되어있었던,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자기가 미처 몰랐던 욕망 중의 하나가 "나는 더 살아야한다" 라는 것이란 말이죠. 왜 더 살아야 합니까? 그것은 이유가 없는데, 무조건이라는 겁니다. 그것을 암에 걸리고 나서 알게 되는데, 즉 "나의 노력인가? 주님이 그저 주신 은혜인가?" 라고 하는 다툼이 일어난다는 말이죠.
* 죄인으로서 감사가 !!
그것이 곧 말씀대로 되는 것이고, 그리고 십자가에 자기 자신을 비추어보면 자기는 죄인인데, 그러한 죄인이 주의 이름을 믿음으로서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모든 것이 죄가 아닌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죠. 그래서 구원받은 자에게서는 감사가 나오는데, 자기의 그 모든 것이 죄가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감사라는 것은 괜찮은 결과를 보고 나서 하는 것이 아니고, 감사는 무엇이든지 간에 다 할 수 있다는 점, 그래서 감사가 된다는 말이죠. 아파도 괜찮고 아프지 않아도 괜찮고,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좋은 결과로 인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자가 된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기뻐한다는 말이죠.
그러므로 참된 감사가 된다고 하면, 종교적인 것인지 비종교적인 것인지, 그러한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즉 "나는 교회에 다닌다. 너는 절에 다니지?" 라고 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 주의 이름에 감사한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란 말이죠. 자기는 도저히 주의 이름을 믿을 수 없는데, 그런데 그저 주신 은혜의 작용으로서, 즉 믿는 것도 그저 주신 은혜의 일환으로서 믿게 되는 것인데, 그러니 전혀 자기의 노력이 아니란 겁니다.
"내가 예수와 무슨 상관이 있지? 같은 한국사람도 아니고, 그러니 내가 왜 그것을 알아야 하지?" 라고 했는데, 그런데 자기 인생의 모든 것이 예수님과 깊숙이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알고 감사하게 된다면, 죽기 전부터 이미 천국생활이 시작되었다는 말이죠. 자기 행동에 대해서 잘잘못을 따질 것이 아니라, 감사가 나오게 된다면 무엇이든지 주님이 주신 은혜임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 네가 더 착해야지 !!
그런데 감사가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무엇을 따져서 자꾸만 착한 일을 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마귀의 꼬임에 빠진 것이란 말이죠. 착한 일을 한다고 하는데, 그런 착함을 악마가 계속해서 윽박지른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 지난번에는 2시간을 기도했습니다" 라고 하면, 마귀가 뭐라고 합니까? "꿇어앉아서 했어? 그냥 했어?"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의자에 앉아서 했습니다" 라고 하면, 마귀는 "어디 건방지게 의자에 앉아서 기도해? 꿇어앉아서 해야지"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게 아니고 "꿇어앉아서 했습니다" 라고 하면, "그러면 그때 무릎이 많이 아팠어? 그렇지 않았어" 라고 하는데, 그래서 "별로 아프지가 않았습니다" 라고 하면, "무릎이 아파야지. 그래야 주님의 희생에 더 가까워지지"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그렇게 악마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게 되는데,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나옵니까? "내가 무엇인가 더 거룩한 것을 더 추가해야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지" 라고 하게 되는데, 그렇게 우리는 자기 스스로 조작을 하게 된다는 말이죠.
그러니 거울 속의 천국에 가는데 누가 방해하는고 하니, '나' 라는 덩치가 우리의 갈 길을 방해한다는 겁니다.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해도 괜찮다고 놓아주면 되는데, 자기가 자기를 닦달을 내고 훈계하고 꾸짖고 짓밟고 야단을 치고, "똑바로 해" 라고 하면서 반성을 촉구한다는 것이죠. 자기가 자기를 보고 말이죠. 그것을 '죽은 양심' 이라고 하는데, 죽은 혼이라는 겁니다.
이제 교재 15페이지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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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출된 거래 - 그런데 이 세상이 지옥인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이 세상이 지옥이 아니라면 천국인가? 인간에게는 천국을 골라잡을 권리나 안목이 없다. 처음부터 그냥 살던 그대로 지옥에서 살다가 지옥 안으로 사라질 뿐이다. 일찍이 지옥의 권세 속에서 점령당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옥의 참혹함 못지 않고, 인간이 자기 힘으로 절대로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상황도 아울러 지옥답다. 인간은 실수로 지옥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지옥과 같은 세상 외에 달리 살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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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지옥의 하나님' 인데, 우리는 "이 땅이 곧 지옥이로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된 것에 대해서 더욱 더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죠. 우리 인간은 자기가 잘못해서 이 곳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외에는 달리 선택할 곳이 없었다는 겁니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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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지옥은 인간에게 필연적이고도 운명적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미 천국에 도착한 이는 세상의 이러한 지옥 형편을 냉정하게 통보해 줄뿐이다. 누가복음 16장에서, 지옥에 간 부자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은 더 이상 자기 처지에 대해서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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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교재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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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미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 모두 이 부자의 처지와 닮았다. 즉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 외에는 별로 할 일이 이야기가 없이 살아간다. 신과 종교와 교리에 대해서 이야기해봤자 결국 자신의 이야기로 되돌아와 버린다. 변하지 않는 운명에 눌려 살면서, 그 절대적인 운명이 소멸하기를 고대하는 것처럼 절망적인 희망도 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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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끝에 보면 "변하지 않는 운명에 눌려 살면서, 그 절대적인 운명이 소멸하기를 고대하는 것처럼 절망적인 희망도 또 없을 것이다" 라고 하는데, 이게 좀 어려워 보이는데 말이죠.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이 지옥과 같은 세상이 어서 없어지기를 바라는, 그런 불가능한 것을 희망하는 그 자체보다 더 절망적인 것은 없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안 된다" 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태어난 곳이 곧 지옥이라는 말이죠. 그렇게 태어난 곳이 이 세상, 즉 지옥이고, 그것이 전혀 바뀌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지옥의 힘이 계속해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죠.
계속해서 교재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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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상태에서 지옥이 참으로 무섭다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 운명을 붙들고 그 운명이 달라지도록 몸부림치는 것을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는 점에 있다. 안되면서도 될 것이라고 믿고 매달리는 시도의 연속이 결국은 지옥을 더욱 뜨겁게 달굴 뿐이다. 착하다고 해서 나쁜 사람보다 그만큼 지옥과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이 아니요, 지옥에서 면제시켜 주는 것이 아니다. 착한 마음을 품는 것으로 자기 장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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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역사 !!
우리 인간의 운명은 달라지지 않는데, 그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는데, 긍정적이 아니고 부정적으로 허락을 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너무나 절망적인데, 그래서 우리는 "이제 끝났구나. 지옥에서 살다가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겠구나" 라고 나올 수밖에 없다는 말이죠.
그런데 고맙게도 이스라엘 역사가 있는데, 우리 교재 42페이지부터 보면 '여호와 전쟁' 이라고 해서, 그 이스라엘 역사가 나온다는 겁니다. 물론 우리는 이스라엘이 아니고 이방인인데, 그러한 이방인인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빛과 호흡과 모든 것을 다 주신다는 말이죠.
(행 17: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여깁니까? "이것은 내가 평생 노력한 나의 것이야" 라고, 즉 "하나님의 것이 아니고, 너의 것도 아니고, 내 것이야" 라고, 지옥에 가는 우리 마음이 그렇게 우긴다는 겁니다. "내 것이지, 하나님의 것이 아닙니다" 라고 본성적으로 우리는 고집을 부리는데, 그런 마음이 계속해서 든다는 말이죠.
그런 반항기를 감추기 위해서 기도를 하고 헌금을 하고 하는데, 그것을 하나님이 모를 리가 없다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이것은 내 것이니 가져가지 마세요" 라는 것인데, 그런 완고한 고집, 그것을 교만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없는 인간을 여러분은 본 적이 있습니까? 교회를 50년, 60년을 다녀도 이것이 없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죠.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민족의 특징인데, 이러한 이방민족은 처음부터 지옥의 백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래서 힘이 없이는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겁니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힘이 비축되고 구축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죠.
*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치 !!
어제 오후시간에 1차대전과 2차대전 이야기를 했는데, 물론 듣는 사람은 옛날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런데 그 1차대전과 2차대전 때 우리나라는 구한말의 시기인데,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치를 했다는 겁니다. 즉 "내 것을 건드리지 말라" 라고 나왔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것이 성공을 했습니까? 지금 주변에서는 러시아와 청나라, 그리고 일본이 잡아먹으려고 난리인데, 문을 닫는다고 해서 그게 닫힙니까? 대포 한 방이면 그냥 뚫리고 만다는 겁니다. 우리가 일본에게 잡아먹힌 것은 배우지 못해서 그러한데, 일본만 탓할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죠.
이런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이제는 좀 솔직해야 하는데, 그때 한 짓거리가 얼마나 무식했는지 모르는데, 너무나도 한심했다는 겁니다. 이것은 마치 사자가 공격해오면 타조가 모래에 자기 머리를 파묻는 것과도 같은데, 그러면 모든 것이 무사히 지나갈 줄로 안다는 말이죠.
* 이 세상은 힘의 서열화 !!
힘의 서열화, 그게 바로 세상이라는 겁니다. 이 세상은 힘이 없으면, 1등부터 순서를 정한 서열화에 먹히게 되어있다는 말이죠. 그게 이 세상의 원리인데, 그러면 교회에 왜 옵니까? 힘을 얻기 위해서 온다는 겁니다.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서 교회에 나온다는 말이죠.
아주 단순한 문제라는 겁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에는 가지 않는데, 자기가 부담해야할 돈의 액수가 많아진다는 겁니다. 이게 다 돈의 문제라는 말이죠. 반면에 큰 교회는 천원만 헌금하면 되는데, 그러면 점심도 해결이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어떻게 하면 잘 키울지, 좋은 학원은 어디에 있는지, 그런 정보도 많다는 것이죠.
젊은 사람들이 왜 시골에 가지 않습니까? 힘을 얻기 위해서는 도시로 가야한다는 겁니다. 시골로 내려온 사람들은 서울에서 살다가 너무 지쳐서 온 것인데, 그리고 좀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이죠. 그러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가고 하는데, 젊은 사람들은 취직할 곳도 없다는 겁니다.
* 돈이 인간성을 좌우해 !!
취직이란 힘을 기르는 것인데, 이 세상을 똑바로 보라는 말이죠. 이 세상은 힘의 서열화인데, 그것을 우리가 부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힘을 가진 놈이 최고인데, 그래서 부자가 자비롭다는 말이죠. 그리고 아무리 성격이 좋은 사람이라도, 가난해지면 그 성격이 독해지고 잔인해진다는 겁니다. 돈이 없으면 성질을 다 버려놓는다는 것이죠.
환경이 좋은 곳에서 살아야 인간성도 좋아지는데, 그렇지 않은 곳에서 살면 입에 욕을 달고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좋게 말하면 상대방에게 먹히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래서 반드시 욕이 들어가야 문장이 구성된다는 말이죠. 그게 가난한 동네인데, 그런 곳은 밤거리를 조심해야 한다느 겁니다. 하지만 서울의 강남에 가면 어떻습니까? 사방에 CCTV가 깔려있어서 거리가 안전하다는 말이죠.
그래서 가난한 동네에 살면 아이들이 뭐라고 합니까? "엄마, 빨리 돈을 벌어서 이곳을 벗어나자" 라고 한다는 겁니다. 대구 사람들이 왜 수성구로 이사를 갑니까? 이 대구의 수성구는 서울의 강남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다른 곳에서는 1등을 해봐야 소용이 없고. 거기서 똑똑한 아이들과 경쟁을 해야 서울의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말이죠.
* 이스라엘을 준비하신 하나님 !!
모든 것이 힘인데, 이런 점을 우리가 숨기면 안 된다는 겁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여기서 벗어나지지를 않는데, 인간의 본색이 여기에 담겨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감사하게도 이런 절망적인 세상에 주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스라엘을 준비하셨다는 겁니다.
돈이 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긴장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을 잠재적 적으로 보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항상 불안하다는 말이죠. 그래서 말도 곱게 나오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얼마 되지 않는 돈에 굴복하고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데, 그러면 그것을 푸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게 술과 담배라는 말이죠. 물론 돈이 없으니 술도 비싼 게 아니고 소주를 마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담배는 피우고 나서 꽁초를 어디에 버립니까? 그냥 길거리에 버린다는 겁니다. 물론 처음에는 눈치를 보다가 다른 사람들도 버리니 같이 길에 그냥 버리는데, 그렇게 사회적으로 쓰레기와도 같은 짓거리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집에 와서는 깽판을 부리고 하는데, 돈이 없으니 인간성이 그렇게 변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무당을 찾고 점을 보러 가는데, 왜냐하면 출세에 대한 욕망이 너무나도 강하다는 말이죠. 비단 김건희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들 그렇게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이렇게 점을 치는 사람들은 무엇을 모르는고 하니, 이스라엘을 모른다는 말이죠.
이 이스라엘을 택한 민족이라고 하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기존의 이방민족이 아니라, 원래는 없던 민족인 이스라엘을 새로 만들어서, 하나님께서 자기 몸을 거기에 담으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성전(聖殿)' 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 하나님, 물이 없어요 !!
그러면 이런 이스라엘이 있다는 것이 왜 우리에게 희망이 됩니까? 절망의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되느냐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맞아도 많이 맞았는데, 그렇지요? 이스라엘이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께 덤벼들었는데, 왜 그렇게 했습니까? 그것은 물론 양식도 없었지만, 가장 기본적인 물이 없었다는 말이죠.
여러분, 물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양식과 물이 없는 곳으로, 즉 정착해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곳으로 데리고 가셨는데, 그 어떤 것도 제공해주지 않았다는 말이죠. 물론 지금 조사해보면 오아시스가 있기는 있기는 있는데, 하지만 그런 오아시스는 자기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내 것을 건드리지 마세요" 라는 것인데, 그런데 무슨 거지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그때그때마다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신다는 말이죠. 그러니 그것은 인간의 악마적 본성과는 너무나 대비가 된다는 겁니다. 인간은 자기 소유로 살고 싶은데, 그런데 하나님은 그때그때마다 필요한 것을 주시니, 그게 서로 충돌이 된다는 말이죠.
주기도문에 보면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고 되어있는데, 그러니 주님은 우리를 일용직 노동자로 보신다는 겁니다. 새벽노동시장에 나가서, 그때그때 일해서 먹고 살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날 뽑히지 않으면 양식도 없다는 말이죠. 참으로 아슬아슬한 삶인데, 철저히 종속시켜버린다는 겁니다.
자기 목숨을 자기가 쥐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목숨에 오히려 자기가 종속을 당하는 인생을 주님께서 살게 하신다는 말이죠. 바꾸어서 말하면, "네가 굶어죽어도 너무 섭섭하게 여기지 말라" 라는 겁니다. 하지만 그런 비참한 인생을 스스로 원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는데, 그렇지요?
그러니 이 세상은 누가 뭐라고 해도 그야말로 힘의 서열화인데, 우리는 그런 힘을 가져서 내일이고 모레고 간에 그것을 빼먹는 재미로 살아가고 싶어한다는 말이죠. 그리고 하나님도 자기가 그렇게 살아가는데 있어서 든든한 뒷배경이 되어주기를 원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누가복음 17장을 보겠는데, 17절에서 21절입니다.
(눅 12:17)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눅 12:18)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눅 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눅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눅 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 어리석은 자여 !!
여기 17절과 18절에 보면 '나' 라는 것이 계속해서 반복되는데, '내 곡식', '내 곡간', '내 물건', 그렇게 나온다는 겁니다. 그리고 19절에 보면 "내 영혼에게 이르되" 라고 하는데, 어제 그런 설교를 했는데, 여기에 나오는 이 영혼은 자기의 확장이라는 말이죠. 자기를 표현하는 자기의 극대치가 영혼이라는 겁니다. 즉 영혼이 자기를 대신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20절에 보면, 이런 부자에 대해서 하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모든 인간들이 이 부자와 같이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데 주님께선 이 부자를 보고, "어리석은 자여"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성경말씀은 우리의 본색을 모두 다 까발려 버린다는 말이죠. 주님은 어리석은 자라고 하는데, 하지만 우리는 "저는 최선을 다해서 살아갑니다. 어리석지 않습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라보면, 그야말로 기특하고 대견하기가 짝이 없다는 말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없는 흙 수저 집안에서 태어나서 알바를 열심히 해가면서 공부를 해서 취직을 하고 가정을 이루어서 이 정도로 살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어리석은 모습이냐는 것인데, 오히려 슬기롭고 지혜롭다는 말이죠.
* MY WAY !!
그래서 자기 가슴을 치면서 "잘했어. 잘 살아왔어" 라고 하는데, 그래서 나온 노래가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 라는 겁니다. 즉 "나는 그동안 나의 방식대로 살아왔다" 라는 것인데, 나이가 들어서 노래방에서 이런 노래를 부르면 그야말로 눈물이 흐른다는 말이죠. "내 인생을 돌아보면, 나는 참 자랑스럽게 살았다. 남들에게 자비를 베풀었고, 그렇게 해로운 존재가 아니었다" 라는 것인데, 그런 자기 찬미가 나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말씀은 뭐라고 합니까?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라고 하는데, 그러니 자기 영혼, 자기 목숨이 자기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자기가 가꾸고 말고 할 텃밭이 아닌데, 주님께서 관리를 하신다는 겁니다. 즉 어리석음을 어리석다고 들추어내기 위해서 주님은 우리를 이용하셨다는 것이죠. 우리는 주님에게 농락을 당한 것인데, 피조물이기에 말이죠.
그동안 자기 것이라고 여겼던 그 모든 것들, 즉 자기 재산과 자기 연금과 같은 것은 자기 게 아니라 타인의 것이 되는데, 그러니 우리는 결국 타인의 것을 자기 것이라고 오해하면서 살아왔다는 겁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논리구조는 그것 외에는 없다는 말이죠.
그저 힘이 자기를 살린다는 것인데, 그래서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 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뭐라고 합니까? "지금 열심히 공부해야, 한 문제라도 더 풀어야, 서울대학을 가지는 못하더라도 거기를 나온 남자친구를 만날 수 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학생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 이스라엘인가? 이방민족인가?
성경에 이스라엘 역사가 나온다고 했는데, 이 이스라엘의 특징은 무엇인고 하니, 이방나라와 대립되는 매우 특이한 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만드는데 있어서 두 종류의 민족을 생각하셨는데, 즉 "이스라엘인가? 이방민족인가?" 라는 겁니다.
안양강의에서도 언급을 했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이고 이방민족은 그야말로 개라는 말이죠. 히스기야 왕 때 예루살렘을 포위한 앗수르 산헤립의 185,000명이 한꺼번에 다 죽는데, 그것도 하룻밤 사이에 몰살을 당하는 겁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은 단지 그들이 이스라엘을 건드렸다는 것이죠.
(왕하 19:35)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이번 아프간 사태에 있어서, 그들이 카불공항에서 탈출하려고 미군 수송기의 바퀴에 매달렸다가 무려 100미터 상공에서 떨어져서 죽는 동영상이 공개되었는데, 그런데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별로 가슴아파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슬람이라는 말이죠.
주님은 이방민족에 대해서는 아예 씨를 말려버리는데, 그게 교재 42페이지부터 나온다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하신 일을 똑바로 보아야 하는데, 하나님은 택한 백성이 아니라면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데, 완전히 작살을 내어버린다는 것이죠.
하지만 근대이후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무엇인고 하니,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라고 해서, 하나님의 선택기준을 없애버리고 협동해서 잘살아 가자고, 더욱 더 발전시키고자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생긴 것이 국제연합기구들인데, 즉 "인종의 차별, 종교의 차별을 없애자" 라고, 그렇게 나온다는 겁니다.
* 페미니즘 !!
더 나아가서 "남녀의 차별을 없애자" 라고 하는데, 그래서 북유럽과 같은 곳에 가면 샤워실도 공동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는 겁니다.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그렇게 가르치는데, 즉 "인간의 신체 구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동일하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것을 '페미니즘' 이라고 하는데, 여자가 우세하다는 것이 아니고, 그동안 남자들이 독점하고 있던 권리를 되찾아오자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남자들은 향한 일종의 선전포고와도 같다는 말이죠. 그래서 이것을 민주주의의 극단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죠.
계속해서 이스라엘 이야기를 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이방나라와는 차이점을 두시는데, 이방나라는 하나님이 상대를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물론 그들에게도 은혜는 베푸시는데, 즉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계시가 직접 꼽히는 나라는 이스라엘이라는 말이죠.
* 이스라엘 내부의 전쟁 !!
그 이스라엘의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고 하니, 이스라엘과 하나님 이름과의 전쟁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물론 처음에는 이스라엘이 이방민족과 외부의 전쟁을 벌리지만, 나중에는 그 외부전쟁이 내부전쟁으로 전개되는데,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역사라는 말이죠.
요즘 식으로 표현을 하자면, 교회와 절간이 벌이던 외부전쟁에서, 이제는 교회의 내부전쟁으로 들어간다는 겁니다. 즉 "너거들이 교회가 맞아? 너거들이 정말로 교회다워? 절간인지 교회인지 분명히 해라" 라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나오신다는 말이죠.
제가 여러분에게 물어보겠는데, 예수님이 불교신자에게 죽었습니까? 그게 아니면 무신론자에게 죽었습니까? 도대체 예수님이 누구에게 죽었습니까?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을 내린 자들, 그 엘리트들은 바로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던 자들이었다는 겁니다.
그것도 그냥 하나님이 아니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라는 말이죠. 여호와는 하나님의 이름인데, 그러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을 죽였다는 겁니다. 바로 그런 과정이 구약성경인데, 그게 신약성경까지 연결이 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성경말씀이 왜 있습니까? 자기가 그동안 신을 믿는다고 하는 것, 그것은 곧 신을 죽이는 작업이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성경말씀에 의하면, 자기는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신은 그냥 앞에다가 걸쳐놓고서, 그러면 도대체 누구를 믿었다는 겁니까?
자기는 자기가 가진 것을, 즉 자기 소유를 줄곧 붙들고 있으면서, 마치 카불공항에서 비행기 바퀴를 붙잡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왔다는 말이죠. 그게 곧 자기 가족이고 혈통인데, 즉 자기 DNA를 믿는다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은 제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결코 자기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다는 것이죠.
여기서 창세기 3장 6절과 7절을 보겠습니다.
(창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 인간은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 !!
이것이 오늘강의에서 제일 어려운 대목인데, 여기에 보면 '먹음직도 하고' 라고 하는데, '먹는다' 라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바깥에 있는 것이 자기 신체 안으로 들어와서 자기 것이 되는 과정, 그것을 두고 '먹는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라고 한다는 것은, 그것은 우리 인간은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백화점에 가서 신상을 보고 나면 차지하기 전까지는 잠이 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게 자꾸만 그 중심이 자기 중심으로 간다는 말이죠.
*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
어제 오후시간에 했던 것을 다시 해보면, 여기에 A, B, C, D, 이렇게 다양한 상품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런 것들을 만든 것은 하나님께로 집결되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인간이 등장하게 되면, 여기 7절에 보면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라고 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지 모르겠는데 말이죠. 정말 어렵다는 겁니다.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 난 이후에 눈이 밝아졌는데,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어떻다는 겁니까? 눈이 어두웠다는 것이 아니고 눈이 밝을 필요가 없는데, 왜냐하면 에덴동산은 그저 주신 것이기에 자기가 눈이 밝아서 무엇을 골라서 따먹고 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죠. 만들어진 그대로 그냥 살면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눈이 굳이 밝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 하에서 인간을 만들었다는 것이죠.
* 선악지식을 가로챈 인간 !!
다시 하겠는데,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이 집결하는데 있어서, 그만 여기 중간에 인간이 끼어 들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이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일단 나에게 와. 그렇게 해서 나의 허락을 맡고 나서 하나님께로 가" 라고 나온다는 말이죠. 완전히 깡패라는 겁니다. 인간이 눈이 밝아져서 그렇게 나오는데, 즉 지식이 생겼다는 말이죠.
그러면 인간이 이 세상의 것들을 다룰 때, 그게 하나님이 좋아라고 하는 겁니까? 자기 좋아라고 하는 겁니까? 자기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데, 왜냐하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다는 겁니다. 선악의 지식은 하나님을 위해서 만든 것인데, 그런데 인간이 중간에서 가로챘다는 말이죠.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에서 우리나라의 금메달을 중간에 누가 끼어 들었습니까? 중국선수와 심판이 빼앗아 갔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기분이 나쁜데, 하나님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하나님이 알아야 하는 선악의 지식을 중간에 인간이 끼어 들어서 가로채기를 했다는 겁니다.
여기서 창세기 1장 28절을 보겠습니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 모든 것은 나를 위해서 모여라 !!
이것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그대로 살아있을 때의 이야기인데, 인간들이 아직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다는 말이죠. 여기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라고 하는 것은, 인간들에게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고, 인간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래서 하나님이 그런 구조로 이 세상을 만드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골로새서 1장에 보면,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 자체이신 예수님이라는 말이죠. 그 모든 것을 그를 위해서, 즉 예수님을 위해서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이 범죄하고 난 다음에 눈이 밝아져서 어떻게 나옵니까? "모든 것은 나를 위해서 모여라" 라고 하는데, 그게 과학이라는 말이죠. 그게 철학이고 지식이라는 겁니다.
(골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골 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다시 말해서, "일단 나에게 와라" 라는 것인데, 그래서 자기에게 필요한 법칙들을 만드는데, 그게 상대성원리고 양자법칙이라는 겁니다. 1953년에 왓슨과 크릭이 발견한 DNA 구조, 물론 그 구조는 1869년에 스위스의 미셔가 처음 발견했고, 이들은 DNA의 이중구조를 발견했다는 말이죠.
이런 것을 알아야 백신을 만들고 하는데, 하지만 그게 하나님 좋아라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인간이 스스로 전염병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서 만든다는 것이죠. 그러니 이 세상의 모든 변화를 일단 어디로 가지고 오는고 하니, 인간에게로 다 가지고 온다는 겁니다.
* 이스라엘이 잘 되어야 하나님이 잘 된다 !!
그렇다면 예수님을 죽인 자가 누구입니까? 유대인인데, 노벨상을 제일 많이 탄 자들이 유대인들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동성애를 추천하고 축제를 벌리는 나라가 이스라엘이라는 것이죠. 그들은 아는데, 힘을 가진 자가 최고라는 것을 안다는 겁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역사를 통해서, 힘이 없으면 결코 스스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는데, 나치를 통해서 말이죠.
지금의 이스라엘은 오직 이스라엘을 위해서 존재할 뿐인데, 주위의 팔레스타인과 같은 것들은 인간으로 취급도 해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미국의 금융가도 유대인들이 꽉 잡고 있는데, 그래서 이스라엘을 유지하는데 그 돈을 쏟아 붓는다는 말이죠. 과거 6일전쟁을 했을 때, 그 막대한 자금들이 다 미국에서 왔다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들이 눈이 밝아져서 어떻게 나옵니까? 다스리고 정복하는 그 모든 것이 예수님에게 가야하는데, 그런데 그게 예수님에게 가는 것이 아니고, 자기에게로 끌어당긴다는 말이죠. 쉽게 말하면, "이스라엘이 잘 되어야 하나님이 잘 된다" 라는 공식을 세웠다는 겁니다. 이것은 "우리교회가 부흥이 되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라는 것과 똑같다는 말이죠. 그렇지요?
구약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그것이 자기 교회는 빼고 주님 쪽으로, 그렇게 왜 해석이 되지 않는고 하니, 그게 예수님이 누구에게 죽었는지, 그것과 관련이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위한 메시야다" 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오해라는 말이죠.
* 인간은 왜 망해야 하는가?
이 '이스라엘' 이란 나라는 무엇을 보여줍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 왜 인간은 망해야 하는가?" 라는 것인데,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것이 아니고 자기들이 자꾸만 버티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여, 우리 이스라엘을 지켜주세요" 라고 나온다는 말이죠.
물론 우리나라의 애국가에도 보면,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라고 되어있는데, 그 작사자가 윤치호라고 하기도 하지만, 정확히 알 수는 없다는 겁니다. 애국가 가사에 기독교의 신인 '하나님'이 들어가면 곤란하다고 해서, 그것을 요즘은 보편적인 신을 의미하는 '하느님'으로 바꾸어서 부르는데, 아무튼 어느 나라든 국가에 신이 보호한다는 내용이 들어가지 않는 경우는 없다는 말이죠.
그것은 이스라엘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그런데 그런 이스라엘 속에 약속대로 하나님이 찾아오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너희들이 말씀을 오해했다" 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확 뒤집어버린다는 말이죠. 그러니 교회가 교회가 되려고 하면 오직 십자가 복음을 통해서 우리의 본성이, 우리의 죄가 모두 다 드러나게 될 때, 그게 진짜 교회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의 입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이 나오게 되면 되는데, "교회가 없어도, 내가 없어도, 오직 주님만이 계신다고 하면 저는 감사하겠습니다" 라고 말이죠. 지금까지의 그 모든 것이 주님이 그저 주신 은혜로 살아왔음을 깨닫게 된다면, 그러면 그 어느 곳이든지 그것이 곧 하늘나라라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가 중간에 하나님의 것을 가로채서 자기의 것으로 여기는, 그런 악마의 모습에 지배받고 있었다는 것을 노출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주님을 알게 되었음에 대해서 더욱 더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니 주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면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22,1,1 오후 6시에 마침.
밝아진 눈을 저주하는 삶을 하락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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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Way] 프랭크 시나트라
그리고 이제 끝이 왔어요
And now the end is here
그래서 나는 그 마지막 장막을 마주한다
And so I face that final curtain
친구야 내가 밝혀줄게
My friend I'll make it clear
나는 나의 경우를 말할 것이다. 나는 그것에 대해 확신한다.
I'll state my case, of which I'm certain
나는 충만한 삶을 살았다.
I've lived a life that's full
나는 모든 고속도로를 여행했다
I traveled each and every highway
그리고 더, 훨씬 더
And more, much more
해냈어, 내 멋대로 해
I did it, I did it my way
죄송합니다, 나는 몇 가지를 가지고
Regrets, I've had a few
그러나 다시 언급하기에는 너무 적습니다.
But then again too few to mention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
I did what I had to do
빠짐없이 봤다
I saw it through without exemption
각 차트 코스를 계획했습니다
I planned each charted course
샛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Each careful step along the byway
그리고 더, 훨씬, 훨씬 더
And more, much, much more
해냈어, 내 멋대로 해
I did it, I did it my way
예, 당신이 알고 있다고 확신할 때가 있었습니다.
Yes, there were times I'm sure you knew
내가 씹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물었을 때
When I bit off more than I could chew
그러나 모든 것을 통해 의심이있을 때
But through it all, when there was doubt
다 먹고 뱉었다
I ate it up and spit it out
나는 모든 것을 직면했고 당당하게 서서 내 방식대로 했어
I faced it all and I stood tall and did it my way
사람이란 무엇 때문에 그가 가진 것이 무엇입니까?
For what is a man, what has he got?
자신이 아니라면 그는 아무것도 없다.
If not himself then he has naught
그가 진정으로 느끼는 것을 말하지 않기 위해
Not to say the things that he truly feels
그리고 무릎 꿇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And not the words of someone who kneels
기록에 따르면 내가 모든 타격을 가했고 내 방식대로 해냈어
Let the record shows I took all the blows and did it my w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