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아

예수님이 못박히신 현실 070810 이미아

아빠와 함께 2018. 1. 16. 11:23
2007-08-10 16:25:19조회 : 5765         
예수님이 못박히신 현실(의존 교회 현실)이름 : 이미아 (IP:124.61.26.54)

"벤하닷이 왕께 고하되 내 부친이 당신의 부친에게서 빼앗은 모든 성읍을 내가 돌려보내리이다  또 나의 부친이 사마리아에서 만든 것같이 당신도 다메섹에서 당신을 위하여 거리를 만드소서 아합이 가로되 내가 이 약조로 당신을  놓으리라 이에 더불어 약조하고 저를 놓았더라"(왕상20:34).


"저가 왕께 고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저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저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왕상20:42).


 


아합의 기독교라는 것은 종교 따로 나 따로 노는 기독교이다.


완전히 멍텅구리 신자요, 멍텅구리 기독교다.


왜 우리가 이렇게 존재해야만 하냐는 것이다.  


오로지 자기 본성만이 관심의 대상이다.


왜 우리가 애굽 땅에서 나와 40년 광야 생활을 해야만 했는지를....아람이라는 지금 이 가시에도 관심이 없다.


그럼에도 이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아람이라는 나라가 이스라엘에게 가시로 나타나 자기들의 안위와 안정을 깨부수기에


관심을 갖고 싶지 않아도 갖을 수 밖에 없기에 그러하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찾는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왜 보내셨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나 이렇게 한스럽게 살다 죽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내 남편이 왜 저런 인간일까만 토해낸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연관 되지 않는 가운데 내 본성만 관심이 있는 기독교를 기독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내 본성에만 관심있다는 것은 곧 예수님의 십자가와 연관되어야만 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너무나 우리는 하나님을 빠트리고 산다. 모든 일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해하며 살게 하시는 것인데 종교 따로 나 따로 라는


것은 문화 생활이나 하며 살겠다는 것이다.


아람 군대를 손 하나 까닭 않고 이기게 한 것은 엘리야의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시는 것이


었다.  예수님 십자가 없이 예수님을 부르는 -송아지 기독교-것에 대해서 모든 일들이 예수님의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한 번


생각해 보라고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그런데 아합 기독교는 왜 나에게 아람이 생겼냐고만 하는 것 뿐이었다.


종교와 인간이 따로 놀고 있기 때문에 짜증하나 감당하지 못한다.


그 짜증 앞에서 지옥도 불사르게 된다.


가난을 부여 잡고 살아갈 힘이 없다. 견딜 수 없는 짜증.....


죄라는 것이다. 죄를 말하지 않는 목사는 사기꾼이요 사이비 목사다.


죄를 말하지 않는 예수, 그 예수는 누구인가.


믿음을 발휘할 수가 없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게 하셨다는 것인데 여로보암 종교(아합 종교)는 이것을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여로보암 종교의 괴로움은 무엇인가?


내가 이 땅에서 행복해야 하고 내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아야 되고 나에게 아람이라는 가시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암이라는 존재 자체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 간다는 것  자체가 짜증스럽다는 것이다.


내가 죄인이옵니다 라는 고백이 나오지 않는다.


예수 믿으면서 예수와 나의 환경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앞으로의 나의 삶이 불안하고 앞이 캄캄한데 어떻게 예수가 나옵니까?


완전히 종교 따로 나 따로 놀고 있는 것이다.


늘 아람이 있다는 것이 괴로움이다.


나는 아람과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는 것.


하나님이 내신 것으로 말미암아 끝없이 나를 깨닫게 하기 위한 것으로 자기 본성과 매치가 되어야 하는데 매치가 되지 않는


다.  이런 모습 저런 모습으로 자기 본성이나 조작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찾고 있는 기독교.  십자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는 기독교.


짜증나면 술퍼마시고 교회 안 나오면 되고 미워하는 사람 있으면 죽을 때까지 미워하면 되고


열 받으면 열 받게 한 놈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하고 복수하면 되고 가난하면 부자될 가망이 없어 신세 타령이나 하고


말하고 싶지 않은 사람 있으면 그 앞에서 벙어리가 되버리면 그만이고........


전형적인 여로보암 종교.  의존 교회 현실이다.


이처럼 자기 본성이 폭발적인데도 예수가 무슨 소용이 있냐는 꼴이다.


그들의 고백은 정말로 종교는 문화 생활입니다.


나의 정욕만을 유지하렵니다.


이렇게 살다가 금붕어처럼 죽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과 나는 정말 별개입니다.


이것이 맞잖아요


여기에 무슨 하나님이 내신 것이 나오고


예수님의 죽으심이 나오겠는가


 


아람이 쳐들어와 죽이시면 죽고 살리시면 살라.   이것이 예수님이 못박히신 현실이다.


평생을 여로보암 종교(종교 따로 나 따로)로 살아 왔던 자들이 믿음으로 화합할 수 있는가


"여호와께서는 선지자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선지자로 저를 보호하셨거늘"(호12:13).


니가 언제 한 번 나를 구속자로 이해해 본 적이 있느냐


이런 나를 구원하신 것에 감사하며 인정하며 잠자리에 단 몇 분이라도 생각하며 누워 본 적이 있느냐


우리 인생이 무엇인가?


우리가 놓여 있는 이 현실의 삶은 주님께서 하신 일이시다.


너는 죄인이요, 예수님의 대신 죽으셨음을 알게 하시려고 하신 것이다. 


난데 없는 고난,  내가 관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죄인들이다.


죄인들에게 기대해서 부질 없는 것으로 순간 좋으니 죄인이라는 것이다.


허상으로 욕망이 채워져 순간 좋으니 죄인이라는 것이다.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으로 살라"는 것이다.


이것을 감사하며 살라고 하는 것이 주님의 사랑이다.


모든 것에 스트레스 받고 자포자기 하고 순간 순간 행복을 즐길려고 한다.


우리가 무슨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이나 하겠는가


그래도 가끔이라도 기억으로 와닿고 느끼게 하며


매일 매일 죽이시는 은혜(살기 힘든 것)로 십자가의 사랑을  알게 하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매일 내 마음 다르고 새로운 일이 벌어진다.


주님께서는


신자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내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이며 나 밖에 모르는 존재인지...... 


십자가에 죽으신 아들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맛보고 흙으로 돌아오라는 것이며


불신자들,여로보암 종교인들에게는 왜 오늘은 재미 있는 일이 없냐, 재미나 찾다가 흙으로 돌아 오라는 것이다.


 


---2007년 8월 5일 주일.   의존 교회 김명현 목사님 설교를 듣고----

 이근호 (IP:117.♡.129.159)07-08-10 17:46 
의존 교회 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가 그러하고 인류 역사가 그러합니다. 성도 한 사람이 예수님의 분신이요 지체요 몸의 일부라고 볼 때에, "너희들이 세상에서 미움을 받을 것인데 그것은 모두 세상이 이 예수를 미워하기 때문이다"는 요한복음 15:18-19를 생각해 볼 때, 이 말씀이 그대로 이미아 성도에게 적용되어야만 합니다. (이미아 성도님은 이런 것이 괴롭더라도 하는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도라는 이유로서 왠지 주위나 교회 안에서 사랑받을 것이라는 기대는 추호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록 사랑받고 싶은 것은 인간 깊은 내부에서 올라오는 본능이라 할지라도 그 본능보다 하나님의 말씀 적용이 우선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싣고 가고 있는 삶', 이런 면이 성도의 특징입니다.
 고관규 (IP:59.♡.148.167)07-08-11 07:28 
윗글에 대한 적정한 댓글인지는 모르나 ㅡㅡㅡㅡㅡ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승리와 실패의 평생동안의 반복입니다. 이 반복을 모르는 자들이 하는 말 중에는? 
 현재를 자주 정죄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생을 주신 이유를 알아야 하는데, 평생에 예수의 십자가 생각 만 하고 살도록 우리가....대단한 존재는 아니나.우리는 그렇게 달려가야 함을 요구 ㅡ받은 자들입니다. 
요구는 항상 있을 것이나, 응답이 항상 있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무응답시에는 주님이 각각에게 주시는 테스트가 있게 됩니다. 이 테스트와 그리스도인의 응답은 철저히 ㅡ남들에게는 베일에 가린 현실이 됩니다.  테스트가 고난으로 주어질 때에는, 혹독하기도 할 것이죠, 이단과 사이비는 감히..이런 비밀을 알 수도 없고, 다른 나라의 야그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ㅡ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신앙적 실존이 되죠.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함에는, 지적보다는 위로를 필요로 합니다. 그 그리스도인이. 지적을 모르리가 없어요, 
위로가 그 사람에게는 치유가 되며, 승리로 나아가는 진정한 위로가 됩니다.
 고관규 (IP:121.♡.88.48)07-08-12 21:31 
교회는 
감싸않음과, 복음의 선포가 같이 가야합니다. 선포에만 치중해야만 한다면..광야의 세례요한이 되어야 하지만 
감싸안아야만 한다면,,,,, 목회자의 현실적인 주어진 현실로 보여여 
이 둘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보여집니다. 
이게 목회자의 숙명이라고 보여집니다. 
목회가 아니라.....길거리의 전도자라면, 선포는 그의 무기가 되나, 
광야의 요한과 같이 않다면, 위로와,,,감싸않음은  주님의 사랑안에서 카바될 수 있는 주님의 사랑이라고 
보여집니다.
 이미아 (IP:124.♡.26.54)07-08-13 13:09 
목회는 테크닉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6:37)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6:4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요6:56-57) 

고관규님께서 스스로 밝히셨듯이 적정한 댓글이 아니라고 생각하셨으면 
그것으로 끝내셨으면 좋으셨을 뻔 하였습니다. 

절제가 안되면 자제라도 하세요.  자제가 안되면 강제라도 하세요. 

여담입니다만 이런 말이 생각이 납니다. 
모르는 것이 있을 때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고 했습니다. 

한 번 쯤은 사이버 상의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의 자신을 보셨으면 합니다. 

기존(?)교회의 실체(?)를 안다는 것으로 자신을 감출 수 있는 노림수로 삼지는 않으셨는지요? 

이 리플을 보고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릅니다(지난 것이지만). 

"저도 그런 교회를 갈망합니다. 
근처에 그런 교회가 없고,찾기가 버거우시다면 일단은... 십자가를 아십니까? 와 
복음의 회복 ㅡ 두권을 보시면서 워밍업을 하셔서 체질을 십자가마을화,,하시면 유익할 것 같아요. 
그러면서 여러 도시에서 행해지는 목사님의 사경회에 정기적으로 참가하신다면 더욱 유익할 것입니다. 
후에,,,이런 교제권에서 교제가 자유하게 되겠죠 

참고로 저는 순서의 2번째인 사경회에 슬슬,,참가해볼까 해요 
서울이니...신정네거리에 있다는 의존교회로요" 
  
인간은 체질을 바꾸거나 개조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들이닥친 것입니다. 들이닥침에 있어서 단계별로 주어질 수 있는가요? 

................................................................................................ 

이근호 목사님의 댓글의 내용이 경험되어지는 순간입니다.
 고관규 (IP:211.♡.158.45)07-08-13 15:38 
이미아님의 지적이야말로 참으로 저에게 황당함,,자체로 보입니다. 모를 때에 중간이라도 있기 위해서 가만히,,있어야 한다니요?  절제가 안되면 강제로라도...라면서 인신을 공격하는 듯 한 말을 하는군요. 
십자가의 비밀을 혹,,,님과 같은 분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이곳에서 강조하면서, 이곳의 회원인 사람을 심하게 공격하지 마세요, 제가 댓글단 게 님의 교회를 언급한 것 같아서 그게 그리 거슬렸습니까?  왜 그리 온유하지 못하고 날카롭게스리 반응을 하묘, 인신을 공격합니까?  나의 글이 틀린 것을 무엇으로, 무슨 근거로 반박을 하는 겁니까?  주님의 사역에 위로와, 선포가 함께 하지 않았나요(복음서에).... 
말이 나와서 하는 야그ㅡ지만, 제 댓글이 넓은ㅡ 의미에서는 왜? 적정한 댓글이 아닙니까? 
뭐가 틀린 말인가요?   이미이님은 위로를 배워야 합니다.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주님의 터치는 위로에도 여전히 효과가 있지 않나요? 주님이 복음을 가지고도 말씀하시지만, 주님은 위로를 가지고도 역사하십니다. 좀 넓게 보세요 
또 
어느 분의 궁금한 점에 대하여, 제가 보는 관점으로 "체질를..십자가마을화,,," 라고 한것이죠 
말뜻을 곡해하셨군요. 말꼬리 잡지 말고,다시 보세요 그 분이 무슨 질문을 했는가를,,, 황당하다니요? 
제가 말 한 체질,,이 무슨 뜻으로 썻을 까를 좀 생각해 보세요 

들이닥친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아둔하지 않으며, 
목회가 테크닉이 아니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아둔하지 않습니다. 
테크닉에는 사람은 많이 모일지는 몰라도 
  진정한 위로에는 숮자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쯤은 알거 아닙니까? 

비복음에만 공격하세요, 괜히 완장ㅡ차고, 엄한 사람을,,이곳에서 먼저,,배웠다는 의분의식으로 분개치 말구요 
먼저 와서 배웠으면, 온유한 모습을 보이며, 조언을 해봐요 
그게 더,,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행동이니까요 

기존교회의 실체를 나보다 님이 더,,,학실히 알지 않습니까? 
댓글을 두번을 달든, 몇번을 달든 그건 제 마음이요
 권범식 (IP:61.♡.241.100)07-08-13 16:18 
안녕하세요... 
고관규님의 말씀같이 교회에서는 선포와 위로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고관규님이 말씀하신거 같이 선포따로 위로따로가 아닙니다... 
말씀선포가 곧 위로 입니다......만약에 복음을 이해하신 성도라면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아실겁니다. 
만약에 말씀이 선포됬는데, 듣고 위로가 되지 않는다면 자기가 성도인지 생각해 보셔야 할것입니다.
 고관규 (IP:211.♡.158.45)07-08-13 16:38 
선포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말씀이며, 죄에 대한 지적이고, 구원과 회개에 대한 촉구로 보입니다. 
위로는,,, 치유가 포함되는 영육의 해결이라고 보여집니다. 위로는 확신케하는 든든함을 나타내게 되는가봐요 
제가 말한 선포와 위로는 궂이 분리라는 견지가 아니라.. 
어느 하나만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겠다라는 것이죠
 권범식 (IP:211.♡.96.242)07-08-14 01:17 
안녕하세요... 
고관규님의 의견은 말씀에 대해서 얘기할때 최근 교회들이 내세우는 균형있는 믿음과 동일선상에 있어 보입니다. 
진정한 교회에서 말씀이 선포되면 당연히 죄에 대해서 지적하고, 회개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선포되면 성도들의 마음도 치유가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이미 죄에대해서 사하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기같은 죄인이 아무것도 안하고 공짜로 구원을 얻었다고 하는데 치유 안되겠습니까? 
바로 치유 되는 것입니다. 
고관규님의 의견은 최근 유행하는...소위 교회들의 치유의 목회, 영육 강건을 비는 기도회 등등...과 같이 뭔가 말씀에서 인간적인 면들을 좀 꺼내보자는 뜻과 같아 보여서 심히 우려됩니다. 
그 소위 교화라는 곳에서 그렇게 자꾸 따로 위로를 받아야 된다고 외치는 이유는 바로 십자가로는 위로가 부족하다...다른 똣도 한번 찾아보자...이런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진정한 교회에서 강조하는 것은 말씀을 선포하는 것도 아니요, 영육의 치유나 구원의 해결도 아닙니다. 단 하나 있는데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선포되면 성도들은 그냥 바로 위로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십자가만 강조하는 말씀을 선포하는 곳이 교회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고관규 (IP:210.♡.192.68)07-08-14 05:15 
뭔가 대단하게 나의 뜻을 오해를 하고 있군요 
요즘 교회의 치유니,,뭐니,,,위로와 치유의 목회니 뭐니 하는 것을 제가 모르고 저 ㅡ정도의 댓글을 달지는 않았서요. 이성근님이 현직 목회자이신지는 모르나....저의 의도를 모르고 계십니다. 
우려하지 마세요, 또 나의 뜻에 혹,,십자가로는 안되서 부족하니 더해보자  위로라는 것으로,,,? 라고 보셨다면 이건 증말로 아닙니다. 
님의 말대로 십자가면 된다,,라는 말처럼 쉬우며, 관념적이며, 자기 세뇌화는 옵습니다. 우주적인 주님의 구속사역에서는 넓게는 맞지만,,, 현실에서는 그리 만만한 게 아닙니다. 
이건 그리스도인의 삶의 이중적인 면을 모르는 간단한 자기만의 신앙의 그림의 스케치가 됩니다. 
칭의와 성화( 이근호목사님이 별로 좋아 하지 않는 단어이지만..다른 말로는 저는"승리의 삶" 이라고 해요).. 
칭의를 이룸에는 선포가 주무기입니다. 선포의 능력에 칭의로 개인적으로 부어주시는 은혜가 있지요? 
성화(승리의 삶)에는 선포가 포함된? 위로가 주무기입니다. 승리의 삶에는 위로가 중요한 포커스로 작용이 되기에, 그리고 성도가 이 ㅡ세상에서 분투하며, 고난의 모든 생의 공격을 이기게 하는 원천이 위로에서 옵니다. 위로란?  병고치는 악을 바락바락쓰는 기도가 아니며(포함한다.). 만사형통을 부르짖는 기도의 확신이 아닙니다. 
흔히들..생각하는 단순한 사고방식으로 나를 공격하지 마세요 
십자가를 말 함만이,,,,바로 위로가 된다고 하는 식의 말은 그럴듯 하지만, 그런 것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헛점이,,바로 위로의 부족한 자들입니다. 
위로가 거창한 게 아니죠 
기도중에 주님으로부터 개인적인 위로를 받아요. 육체의 병으로부터 치유도 위로요, 치유가 더딤도 위로인 것입니다.   영혼의 자유함과,든든함과, 기쁨과,성령의 충만한 은혜안으로 접어들 때에도 큰,,위로이며 
같은 성도를 배려하며,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함도 위로를 주고 받음이며, 본인도 또한 위로를 줌으로서 위로안에 있슴을 나타내는 것입니다(고린도후서) 
님의ㅡ 말처럼 "교회안에서 자꾸,,,따로 위로를 받아야 된다고 외치는 이유..."니 뭐니 하는거는  십자가에 본인만이 마치,,가까이 있는 것같은 착시..를 주게 되는 현상으로 보입니다. 

한마디 더,,합니다. 
말슴처럼 "십자가만 강조하는 말씀을 선포하는 곳이 교회다' 라는 말은 누구나 알고 잇어요 
그래서 그게,,어쨌다는 겁니까?  영어로는 "쏘우 홧 !! " 이죠? 

선포안에 위로가 있지만... 위로는 선포를 또한 포함합니다. 
이 둘은 교차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묜스리..... 성도를 견인해 갑니다. 
이 둘을 분리할 수도 잇고, 같이 볼 수도 있으나... 

님의 말처럼 십자가면 된다 !! 는 말과는 좀 저의 접근은 다릅니다. 
그런식의 도식으로는 설명이 부족해요
 권범식 (IP:61.♡.241.100)07-08-14 12:19 
이제서야 정확히 말씀하시는 군요... 
님은 지금까지 계속 성화라는 인간의 의를 못 버리고 계십니다... 
그것이 자꾸 다른 성도님들과 부딪히는 이유 입니다. 
님은 십자가만을 말하면 부족하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십자가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제가 모두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제발 이 사이트에 있는 십자가가 무엇인지 설명해놓은 글을 읽어보시고...글을 쓰십시오... 
그럼 좋은 하루 되시기를~
 고관규 (IP:211.♡.0.104)07-08-14 17:48 
권범식님인데 제가 이성근님이라고 잘못 기록했군요..실수 ! 

을마나 부딪히고, 뭐가 그리 삐그덕 거렸다고 그러시는지.원...화제를 이상한 쪽으로 돌리지 마시고ㅡ  자.. 
한마디 더하고 끝내렵니다. 10년전부터 이곳을 알았기에 님보다는 경력이 더햣스면 더햣지 작지는 않아요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중이 절 싫으면 떠나면 그만이요. 간단해요  그러나 님이나,나나 여기서 죽치는 이유는 ,,,교제하고 더 알기 원해서 잇슬것이요. 이 사이트의 공부내용중에서 맞는 부분이 잇스면 안맞는 부분도 잇슬것입니다.  그건 스스로가 잘 콘트롤하면 된다고 봐요.  그리고, 
십자가만을 말하면 부족하다? 고 한적이 없어요. 제 댓글을 다시 보세요 좀..의도를... 
위로와 선포를 말하면서,,, 님이 다르게 말하기에 내 의견을 말한거죠?  그럼 된겁니다. 안맞으면 할 수 옵구요.  십자가에 대한 모든 묵상들은 서로가 공유하며, 배우며, 버리고...다시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합니다. 
전유물이 아니라....

 권범식 (IP:61.♡.241.100)07-08-14 18:54 
제가 고관규님한테 제 의견을 관철시킬려고 하는게 아닙니다. 만약에 제가 십자가에 대한 내용을 잘 설명 하지 못했다면 죄송합니다. 글 솜씨가 별로 없어서요. 
하지만 오랫동안 다니셨다고 경력 자랑하실일이 아닙니다. 
성경을 만독했다고 자랑하는 비복음적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고관규님이 여기 글과 여러 성도님들의 글을 읽고도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할 수 없는 거죠. 
전 단지 복음적인 내용을 얘기할 따름입니다. 
고관규님께서 이 사이트에서 배우시고 글을 쓰시고 토론을 하시고 글을 읽으시는 거는 저와 상관 없습니다. 
단지 저는 복음적 관점에서 말씀 드린것이고, 십자가만을 증거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고관규님의 성화론은 어떤 내용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만약에 십자가 복음의 완벽성과 일방성 은혜성을 가리고 인간 위로의 방향을 가지고 있다면 비복음적일 수가 있기때문에 말씀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저도 마지막으로 십자가의 대한 묵상은 서로가 배우고 공유하고 더 깊게 알아가야 겠지만 결론은 언제나 자기부정으로 나타나야 되지, 인간에 대한 긍정으로 나타난다면 비복음이 될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주님의 전유물이지 누구의 물건도 아닙니다. 
좋은 저녁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