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아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를 다녀와서 080106 이미아

아빠와 함께 2018. 1. 16. 11:20
2008-01-06 01:01:32조회 : 3047         
십자가 마을 겨울 수련회를 다녀와서이름 : 이미아 (IP:121.53.82.156)
 

ktx플랫포옴을 뒤로하고 떠나는 뒷모습이(최종훈 집사님) 먼 훗날  다시 만날 약속된 만남을  기약하고 있었다.


2박 3일간의 일정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각자의 생활로 복귀하는 그 현실만이 우리를 맞이한다.


가야산에서 진행된 세계는 진정 상상계였던가?


그 세계에 있었을 때는 그 세계가 현실이었는데.......


그러나 이제는 뒤바뀐 현실과 상상계다.


결국 현실세계(나Ⅰ)의 나와 상상세계(내가 되고 싶은 나 Ⅱ)의 나는 결단코 피할 수 없는  동일한 나였다.


처음 강의시간에 베풀어진 말씀이 여정을 풀게하며 마음을 사로잡는다.


사람은 자기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남의 자유를 침범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가 이 수련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이러한 나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타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밖에 없었슴을


인정하게 하였다.


그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 싶었다.  나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당신의 자유를 짓밟았습니다 라고.


인간은 자기 절대성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살아 있는 한에는......


자기 절대성을 마음대로 풀 수 있는 자유로가 주어진다면  "자기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기독교로 불교로 청교도로


무당으로....그 무엇이 되었든지 종교(나를 기쁘게 하는 신)로 전환시켜버리는 것이다.


 


사람 얼굴이 그려진 그림이 한 장 있었다.


이내 그 그림은 찢어져 조각이 되었다.


준비된 그림은 우리 인생이  찢겨진 그림의 조각을 짜맞추는 인생임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사용된 도구가 되었다.


조각된 그림이 짜맞춰져 완성된 그림이 되었을 때 그 실체는 바로 예수님이시다.


성도는 나에게 영생을 주시는 분이 이런 분이심을 짜맞추고, 안되는 것을 되도록 하시는 분이 누구신가를 짜맞추고,


영원한 문(천국)으로 들어갈 수 없는 자를 끌고 들어 가시는 분이 누구이신가를 짜맞추는


다른 말로 하면 증거하는 인생을 살도록 부르심을 입은 자이다.


 


왜 우리는 할 수 없는가.......


쫓겨난 증거의 현실을 담아 두는 주체가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창3:23)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3:24)


우리는 이 쫓겨난 현실을 매일 같이 증거하며 살아야 한다.


숨을 쉬고 있는 한에는 토해 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쫓겨내신 인생임을 실감해야 한다.


"쫓아 내시고"가  실감나야 하는 것이다.


우리 힘으로는 두 번 다시는 에덴 동산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 힘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추방되었다는 것,  이 짓 밖에는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끝없는 욕망을 채우고자 밤잠을 설쳐대며 결핍을 메꾸고자 행하는 것에


"나"를 변호하는 핑계나 대며 살아가야만 하는 인생임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인정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신다.


 


시편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왕이시다


전쟁을 벌리신다. 적이 있다


그 전쟁에서 적과 싸워 승리하신다


전리품을 챙기신다


영원한 문들이 들린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뉘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시24편)


 


이러한 시스템이 없이는 천국도 감추어진 세계요 지옥도 감추어진 세계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언약을 뒤집어 씌우신다.


언약을 주신 이유는 자기들의 인생을 갈기 갈기 찢기 위해서 주신 것인데 그들은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자기 절대성을 구축하기 위해서 무엇이든지 끌어 당긴다.  하나님의 말씀까지도.


 


인간은 신이 될 수 없다. 인간은 인간이다.


인생은 인생이다.  그걸로 끝이다.  인생은 인생으로 끝내라.


"여호와여 저희로 두렵게 하시며 열방으로 자기는 인생뿐인 줄 알게 하소서(셀라)"(시9:20)


단지 흠없는 어린 양의 피로 합격시킨 것이다. 합격된 우리를 관리하는 분은 따로 계시다.


합격자답게 끌고 가시는 것이다.


 


우리 인생은 내가 왜 죄인인가를 끝없이 알아가게 하시는 것이다.


합격된 자이기에 죄가 마음 놓고 터져 나온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죄가 터져나와야 한다.


내가 만들려고 하지 않아도 난데 없는 적이 우리를 치려고 한다. 


"나의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히 치는 자 많사오니"(시56:2)


이미 합격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적들을 보내시고 유발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여"라는 소리가 들려오도록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시50:22)


인간이 알고 있는 구원 중심은 "나"이지만 하나님이 알고 있는 구원 중심은 찢어버린 모자이크를 다시 짜맞추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라는 것을.


 


성경을 안보고 교회 안나올려고 하는 것은 자기라는 현실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쫓겨난 인생이었구나를 인정하며 사는 것이다.


더이상 우리는 에덴 동산에서 왜 쫓겨났는가에 대한 이유를 묻지 말자.


자기라는 현실이 해체될 수 없다면 그것이 쫓겨난 증거이다.


인간쪽에서는 인간의 현실만 있다. 합격했다는 주의 성실하심이 없다. 그래서 망해도 폭삭 망하는 자로 가게 하신다.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시119:89-90)


 


복 받을 자와 저주 받을 자의 분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시2:12)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언약(약속)을 묵상하고 있었던 나다나엘을 예수님께서는 참 이스라엘이요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 라고 하셨다.


우리는 간사한 자라고 함을 감당치 못한다.   얼마나 깨끗한 자인가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자들이 바로 우리이다.


나다나엘이 언약에 뒤집어 씌워진 자였음을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자기 주체를 세우기 위한 자기 법으로 정당성을 삼는다.


간사한 것이 없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라는 자기 절대성을 세우기 위해서,


자기 영역이나 넓혀가는 식으로 일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일하심은 적들의 출현이다.


너희는 쫓겨난 자들이다.  대 자연과 악한 천사와 천사와 모든 환경을 다 동원해서 전쟁을 벌리신다.


우리의 주체성을 다 깨부수는 것이다. 


승리하신 예수님만이 홀로 높임을 받으시는 것이다. 


그 전쟁에서 승리하신 예수님에게 사로잡힌 우리는 "주님의 의입니다"


라는 찬양을 하는 것이다. 


 


진짜 구원 받은 자는 공통 통념이 담겨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피이다.


국화 빵에 팥이 들어 있는 것처럼 어린 양의 피가 들어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국화 빵이 되기 위해서 "나는 죄인이다"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다" "예수님의 피 밖에는 없습니다"라는 것마저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코 깨어질 수 없는 나---라는 주체를 견고하게 세우기 위해서 구원이라는 것을 얻기 위해서 나


의 신됨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예수를 동원해서라도 끝까지 나를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밀가루 포대를 예리한 면도날로 쭉 그어버리면 밀가루 가루가  온  몸에 퍼져   덮어 씌워질 때 언약만이 남는


다.  다윗을 선택한 다윗의 하나님과 선택되지 않은 자가 만든 가짜 하나님이 확연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만이 선택된 자기 백성에게  당신의 피를 집어 넣으시는 것이다.


십자가의 고난으로.....예수님만이 선택된 자기 백성의 맛을 아는 것이다.


사람의 속성이 모아지면 자기를 돋보이게 하는 주체가 되어지지만 예수님의 속성이 담겨 버리면 자기가 미워진다.


부활의 세계......는 십자가 안쪽에 있었다.  그렇기에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는 부활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국화 빵이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는 것이다.


 


주님의 이름의 성실하심이 이루신 결과로 그냥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유없이 죄인이 되어야 한다.


죄인이라고 하는 고백이 주는 결과를 미리 예상하고 죄인이 되지 말아야 한다.


전쟁에서 승리하신 왕이 전리품으로 삼아 자기 나라에 데리고 갈 때 그저  "고맙습니다 "  "고맙습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성경은 진짜로 우리의 현실성을 가르쳐준다. 


주의 이름의 성실하심을 따라서 다윗 언약을 이루신 그 현실만이 진정한 현실임을.


 


그렇게 시편은 우리 모두를 뻔뻔한 자들로 만드셨다.


그냥 뻔뻔한 자들이 아니라 왕뻔뻔한 자들로.


합격이라는 피를 발라놓고서 주님의 계획대로 펼쳐나가시는 그 작전에 우리 인생을 써먹겠다는데 할 수 없지 않는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10)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엡4:4-7)


 


벅찼습니다.  겨울인데도 겨울 날씨처럼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따뜻했던 날씨만큼이나 자기 현실에 정신없이 팔려버린 자가


옷 가지 몇 개와 필기 도구만 챙겨가지고 무작정 떠났던 여행길....


시편을 강설하시는 이근호 목사님께 죄송한 마음으로 10강 내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수련회 준비하시느라 고생하신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 금할길 없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주님의 이름의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왕뻔뻔한자가 되어지게 하신 주님께 고맙습니다는 고백을 드리며.....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출33:19)

 최종훈 (IP:121.♡.0.184)08-01-06 16:35 
이번에 남겨진 유행어-"왕뻔뻔"과"속성"--- 2박3일간의 흥분과 감격은 이내 현실과 접선을 하면서 사라져 버리고서, 그때 그 시간들의 감각들 마져도 아예, 전혀(?!) 없었던 걸로 생각 될 뻔한 찰라에서, 그래도 담겨졌던 복음의 힘으로다가 아스라히 건짐을 당 할 수가 있어지는군요!우리는 혹시 이걸 믿구서리(?) 느-ㄹ '왕뻔뻔'해 지는것이 아닐까(!?)도 생각 되어지기도....!! 인간이야 어떻든 그 분은 예정한 그 계획대로 밀고 나아가시는 그 분의 그 '속성'으로 하여 오늘도, 아니 지금도 숨을 쉴 수가 있음이구려...!!! '아메---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