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71

다 주님의 인생

우리의 싸움에 나를 위한 싸움은 없어요. 나 잘되기 위한 나 복 받는 싸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건 마귀가 시킨 거예요. 우리의 싸움은 악마와의 싸움이에요. 이 세상 신과의 싸움입니다. 내 인생이라는 게 없어졌어요. 남아있는 모든 인생은 어떻게 살든지 간에 다 주님의 인생입니다. 내가 아파트를 네 채를 가지고 있든, 부동산을 십오만 평을 가지고 있든, 한 달 수입이 3억이 되든 그건 내 거 아니에요. 그거 주님의 겁니다. 그러니까 누리세요. 실현도 안 되는 거 누리는 상상이라도 합시다.나의 기억은 바로 더러움부터 시작하거든요. 그 더러움이 어디서 만나서 깨끗한 피가 되었는지를 그 피를 기억하라고, 주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라고 나로 하여금 가족끼리 안 굶어 죽으려고 애를 쓰는 그러한, 내 인생에 몰입하는..

지금 2024.11.17

평행선은 없다

구에서 적도 위에 평행선을 그어봤자 평행 되지 않아요. 그 이유가 반드시 평행이 되려면 구의 중심에서 나온 측지선(기하학에서 측지선(測地線, geodesic) 또는 지름길이란 직선의 개념을 굽은 공간으로 일반화한 것이다. 많은 경우, 측지선은 표면의 두 지점 사이의 가장 짧은 경로를 나타내는 곡선이다. 위키백과)이 이미 구의 중심이 하나밖에 없기때문에 절대로 두 선은 절대로 평행선이 되지 못합니다.그거대로 되는지 안 되는지 확인하려면 중심에 가야 되거든요. 제가 수학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인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 중심이 있는데 중심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에요. 죄인과 악인이 십자가에서 만납니다. 그거 때문에 예수님은 죄인의 모습으로 오신 거예요. 죄인의 모습으로 와서 거기서 평행선을..

지금 2024.11.17

기도란?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고 성경에 나오니까 자기를 부인하기 위해서 아프가니스탄에 선교를 가서 탈레반한테 인질이 된다든지, 아니면 병원에 장기 입원해서 말기암에 걸려본다든지, 또는 내가 지독한 가난에 살기 위해서 무리하게 사업을 벌려 부도가 난다든지, 또는 목사로서 구원 받기 위해서 내가 평생토록 직업을 한번 가져봐서 자기를 부인 해보든지, 어떠한 식으로 노력을 해 봐도 그것으로 자기 부인이 됩니까, 이게? 자기 부인이 안 된다고요.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네가 버리지 못하는 너를 겨냥해서 내가 너를 버려줄게.” 거기에 관한 말씀이에요. “네가 몸부림쳐도 못 버리는 너 자신을 내가 삭제시켜 줄게.” 이겁니다. 이 말씀대로 이스라엘이 멸망한 거죠. 인간은 자기가 삭제되지 않고 자기기억이 유지되게 되..

지금 2024.11.17

은혜=동행하는 외부 능력

구약에 미가 6장 6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무심코 교회 가면서 성도들이 교인들이 이렇게 생각해요. 내 쪽에서 뭘 가지고 나가고 뭘 하면 되고 어떤 마음 자세로 하면 하나님 받겠습니까? 무심코 나오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그런 마음 이런 인간을 덥석 포크레인 집게 가지고 물 듯이 그냥 물어버리는 거예요.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내가 너한테 집게 가지고 물어서 내 손아귀에 집어넣는 걸 하나님은 원하는 겁니다. 7절에 봐도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하나님이 참기름을 원할까 들기름을 원할까 뭘 원할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야 자기 죄를 사하기 위해서 맏아들을 바치는 이 정도로 자기를 ..

지금 2024.10.22

모든 성경은

다윗이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 뜻이 아니에요. 다윗이라는 독특한 특수한 인물에게 골리앗 죽이는 사건을 입혀서 하나님의 특수성과 아담의 일반성과의 그 격차 사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가 나오게 하는 그것이 바로 시편 내용입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시편도 포함되는 거예요. 두 개의 차이 남을 통해서 그 차이 속에서 번지는 겁니다.시편 22편에 보면,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1절) 다윗이 안 쫓기면 이런 고백이 안 나와요. 이 땅에서 굳이 이미지 관리를 해선 안 되고 할 필요도 없는 인물이 미리 다윗에게 덮친 거예요. 같은 인간인데 이미지 관리를 안 해. 이게 도리어 정상인들이 이상히 여겨요.

지금 2024.09.13

천일염전

그래서 제가 기도 좀 조작하지 마세요. 기도 조작하지 마시고.제 취지는 뭐냐, 이걸 질문할 게 아니고 기도라 하는 것은 요런 질문을 그냥 하나님 앞에 내놓는 거예요. 내 놓는 것이지 어떤 결과물을 손에 가지는 게 아니거든요. 기도라 하는 것은 끌어당김이에요. 기도를 정기적으로 하는 것은 의미 없고요. 기도 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갑자기. 학교 간 아이가 걱정될 때는.기도는 끌어당기고 주님 십자가를 경유해서 다시 주님의 뜻이 포함된 채로 우리에게 응답으로 제공되는 겁니다. 염전이에요. 염전. 물하고 소금하고 다 끌어 모아 놓고 물을 증발시키면 뭐만 남지요? 천일 소금 남지요. 그걸 되돌려 주는 거예요.그래서 제가 이런 이야기했어요. 답변하기를, “기도는 의무가 아니고 삶입니다.” 삶이 의무입니까? 살아야..

지금 2024.09.06

과부의 위치

강남-누가복음 20장 43절 (과부의 위치) 240206a-이근호 목사자, 오늘 누가복음 20장 42절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그렇게 되어 있지요. 주님의 주 되심은 반드시 하나님의 원수와 관련해서 주님이 등장합니다. 원수가 없는데 주님이 그냥 등장하는 법은 없고 또 주님이 등장했다하면 하나님의 원수가 등장하고 그 원수에 대해서 이미 승리자로 판가름 될 때 그 주님이 주님 되시는 거예요.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라” 라는 말씀이 나오지요.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은 쉽게 하면 이렇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상대할 수 있느냐. 인간이 하나님과..

지금 2024.09.03

예수님에 대해 알고 싶지 않은 나

인간은 자기 구원에 환장해있어요. 주님의 안목은 전혀 모릅니다. 자기 안목 고집하면서 주님 찾아간 거예요. 뭔가 도움 될까 싶어서. 예수님이 계속 폭로한 것은 너희들은 실상 나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지 않고 있다.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왜냐? 자아의 방어체제가 그렇게 견고해요. 그래서 인간의 자아는 뭐냐? 의미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제가 어느 설교에서는 사적 의미라고 했지요.

지금 2024.07.17

관용-사망의 몸

(빌 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예수님은 이 여인이 한 일을 지적하면서,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관용은 어디서 생기는고 하니, 철저하게 자기가 사망으로 몸이라는 것이 유지되는, 그런 자에게만 관용이 주어진다는 말이죠.* A : 당신의 발을 밟았습니다.* B : 그럴 수도 있지 뭐.* A : 누가 당신에게 욕을 합니다.* B : 욕을 할 수도 있지 뭐.* A : 당신의 집이 홀라당 불에 다 탔습니다.* B : 불에 탈 수도 있지 뭐. 주님은 이 죄를 어떻게 하십니까? 하나님의 저주와 분노와 심판 속으로 우리를 통과하게 하신다는 겁니다. 그것을 간편화한 것이, 우리..

지금 2024.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