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 미가 6장 6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무심코 교회 가면서 성도들이 교인들이 이렇게 생각해요. 내 쪽에서 뭘 가지고 나가고 뭘 하면 되고 어떤 마음 자세로 하면 하나님 받겠습니까? 무심코 나오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그런 마음 이런 인간을 덥석 포크레인 집게 가지고 물 듯이 그냥 물어버리는 거예요.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내가 너한테 집게 가지고 물어서 내 손아귀에 집어넣는 걸 하나님은 원하는 겁니다. 7절에 봐도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하나님이 참기름을 원할까 들기름을 원할까 뭘 원할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야 자기 죄를 사하기 위해서 맏아들을 바치는 이 정도로 자기를 포기하는 사람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 맏아들 없으면 누구를 바쳐야 되나 맏딸을 바쳐야 돼요? 무남독녀 외동딸 바쳐야 돼요? 요새 아가씨 같으면 뭘 바치겠습니까? 강아지를 바칠 거예요. 고양이나 강아지를.
“뭘 바칠까” 8절에 “사람아” 우리 말로 앞에 “이” 하나 더 넣으면 “이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보이셨나니” 주께서 구하는 것은 뭐냐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는데 그 인자와 공의는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뭡니까? 행하는 것, 동행하는 것. 그러니까 공의와 인자는 하나님 쪽에서 간직하고 있는 공의와 인자가 제공되고 제공된 것을 그대로 그냥 회수하는 방식이 하나님의 구원 방식입니다. 그걸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누가복음 마지막에 그 능력이 외부 능력, 자기 능력 아닙니다. 외부 능력 동행하는 외부 능력이 그들과 함께 온다는 거예요. 그분이 누구라고요? 성령이라고요 성령. 은혜라고 하는 것은 뭘 받는 게 아니고 은혜는 그냥 은혜만 받아요. 그 은혜가 뭐냐?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거예요. 그게 은혜예요. 결혼을 하지 않는 총각 보고 “요새 누구하고 같이 살아요?” “예” “나한테 연락을 해야지” “나 요새 성령과 함께 살아요.” 많이 맞을 수도 있는, 밉상거리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