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 주님의 인생

아빠와 함께 2024. 11. 17. 20:17

 우리의 싸움에 나를 위한 싸움은 없어요. 나 잘되기 위한 나 복 받는 싸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건 마귀가 시킨 거예요. 우리의 싸움은 악마와의 싸움이에요. 이 세상 신과의 싸움입니다. 내 인생이라는 게 없어졌어요. 남아있는 모든 인생은 어떻게 살든지 간에 다 주님의 인생입니다. 내가 아파트를 네 채를 가지고 있든, 부동산을 십오만 평을 가지고 있든, 한 달 수입이 3억이 되든 그건 내 거 아니에요. 그거 주님의 겁니다. 그러니까 누리세요. 실현도 안 되는 거 누리는 상상이라도 합시다.

나의 기억은 바로 더러움부터 시작하거든요. 그 더러움이 어디서 만나서 깨끗한 피가 되었는지를 그 피를 기억하라고, 주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라고 나로 하여금 가족끼리 안 굶어 죽으려고 애를 쓰는 그러한, 내 인생에 몰입하는, 남한테 안 지려고 하는 그것 그 자존심의 행위, 그 죄를 주께서 실시하신 겁니다. 왜? 주님께서 죄인인 육신의 모습으로 오셨기 때문에요.

 

예수님께서 먼저, 먼저 나다나엘에게 갔어요. 자, 나다나엘의 자기기억과 예수님의 기억이 충돌되는 지점입니다. 충돌이 돼요. 나다나엘 본인은 자기에게 충실했어요. 나에게 충실하는 것이 내가 할 도리의 전부인 거예요. 인간이 할 수 있는 바둑의 수는 그것밖에 없어요. 전체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나름 노력하면 뭐라도 된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나온게 뭐냐 하면, “예수가 누군데? 지가 뭔데?” 이렇게 나온 겁니다. “나사렛 출신이라고?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와?” 나사렛은 어두운 세계예요, 유다는 빛의 세계고. 혈통 자체가 더러운 혈통이에요. 그런 출신인데 뭐가 율법대로 된다는 말이에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걸 보고 주님이 먼저 그에게 찾아와서 나다나엘을 보고 ‘그는 진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라고 할 때 48절에서 나다나엘의 고백이 절정에 이릅니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나를 아십니까. “창세 전부터 알았다, 인간아!” 나를 아십니까. 땅에서 하늘로 가려는 그러한 인간적인 시도, 그것이 완전히 묵사발 되는 순간입니다. 하늘에서 먼저 아시고 마중 나오는 시도 이게 주님의 기억입니다. 그 주님의 기억 안에 뭐가 들어 있는가? 성막이 들어 있고 거기서 어린양이 피 흘려 죽어 나가는 그 피가 담겨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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