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15-이스라엘의 비밀 170707 이근호

아빠와 함께 2017. 8. 14. 16:29
2017-08-12 22:44:35조회 : 17         
[17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15 - 이스라엘의 비밀이름 : 구득영 (IP:203.223.97.162)

[17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15 - 이스라엘의 비밀


                                                             07,07,17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오늘은 교재 50페이지부터 하겠습니다.


** 이스라엘의 왕은 망하기 위해서 온 겁니다. 이스라엘도 망하고 왕도 망합니다. 이러므로 이스라엘은 구원이 됩니다.  


이스라엘도 망하고, 왕도 망하고 !!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이라는 나라가 나오는데, 거기에 살고 있는 자들을 유대인들이라고, 영어로는 '주(JEW)' 라고 하는데 말이죠. 그런데 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구약에서는 매우 날카롭게 차별되고 있다는 겁니다. 율법 자체에 의해서 말이죠.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서 민족을 두 종류로 나누고 있는데,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외'로 말이죠.


여기서 요한계시록 7장을 보겠는데, 4절에서 8절입니다.


(계 7:4)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계 7:5) 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계 7:6)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계 7:7)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계 7:8)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등록된 자들이 '144,000'명 !!


여기 4절에 '144,000' 이라는 숫자가 나오는데, 이것은 천국에 가는 자들의 총집합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천국에 간다고 하면 사람들은 궁금한데, 과연 어떤 자들이 천국에 가는지 말이죠. 그러면 그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인침을 받은 자들, 즉 도장을 받은 자들이 천국에 간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등록된 자들이 간다는 말이죠.


그러면 어떤 자들이 등록되었습니까? 3절에 보면 "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라고 하는데,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의아해하는 부분이 무엇인고 하니, 여기에 나오는 여러 지파들이 어느 민족인고 하니, 모두가 이스라엘의 지파라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만으로 144,000명을 꽉꽉 채워서, 그들만을 구원한다는 말이죠. 요한계시록 7장은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는 겁니다.


왜 모든 지파가 동일하게 12,000명인가?


그러면 이방인들은 어떻게 됩니까? 단군의 자손들은 명함도 내밀지를 못한다는 말이죠. 전혀 희망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특별대우를 해주십니까? 이렇게 요한계시록 7장에서는 이스라엘 지파만이 천국에 간다고 하신다는 말이죠.


그리고 또 하나 궁금한 것은 무엇인고 하니, 어떻게 유다 지파도 12,000명이고, 르우벤 지파도 12,000명이고, 갓 지파도 12,000명이고, 그렇게 모두가 12,000명이냐는 겁니다. 왜 숫자가 동일하냐는 말이죠. 마치 미리 할당을 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서울대학교의 합격자가 보면, 서울 출신이 몇 명, 경기도 출신이 몇 명, 경상도 출신이 몇 명, 전라도 출신이 몇 명, 그렇게 숫자가 나오는데, 물론 서울의, 그 중에서도 강남 출신이 압도적이지 싶은데 말이죠. 합격자가 1,000명이라면, 서울이 700명, 경기도는 100명, 경상도는 50명, 전라도는 30명, 그 나머지가 20명, 그렇게 되면 이해가 된다는 겁니다. 나머지 지역이 너무 작습니까?


아무튼 그렇게 숫자가 나오면 고개를 끄덕일 수가 있는데, 그런데 서울 120명, 경기도 120명, 경상도 120명, 전라도 120명, 강원도 120명, 그렇게 해서 1,000명을 채우더라는 겁니다. 그러면 심히 수상한데, 사전에 이미 갈라먹기를 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죠. 실력대로 한 것이 아니라, 이미 숫자를 할당해서 합격자를 뽑지 않았느냐는 겁니다. 그러면 반칙인데, 하나님께서 고스톱을 치는데 미리 짜고 친 것이 아냐는 말이죠.


이스라엘의 비밀 !!


이것이 오늘 강의의 핵심인데, 즉 '이스라엘의 비밀' 이게 오늘 강의제목이 되겠는데 말이죠. 이스라엘에게는 비밀이 있는데, 그 비밀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게 참 어려운 내용인데 말이죠. 여러분들이 구약성경을 본 적이 있지 싶은데,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그 마지막이 말라기서인데 말이죠.


우리가 구약성경을 보면 전체적으로 어떤 느낌이 드는고 하니, 하나님은 같은 말을 계속해서 하신다는 겁니다. 그것을 3글자로 '잔소리' 라고 하는데(ㅋㅋ), 그 내용이 무엇인고 하니까, "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라고, 즉 "우상을 섬기지 말라" 라는 것이, 물론 아브라함 때는 그런 이야기가 없지만, 야곱이 국가를 만들고 나서부터는 계속해서 나온다는 겁니다. 


(출 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출 20: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러니 출애굽기부터 시작해서,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그리고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호세아서 등등, 선지서를 보면 그 잔소리가 계속해서 되풀이되고 있다는 말이죠. "내가 분명히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했지? 그런데 왜 다른 신을 섬겼어? 그러니 너희들은 망해야돼. 내가 이전에 이야기를 했잖아!" 라고 말이죠.


하나님의 고집과 이스라엘의 고집 !!


특히 사사기의 경우에는, "그들이 다른 신을 섬기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른 민족에게 맡겨서, 그래서 다른 민족이 그들을 억압하니 고통이 심히 심했다. 그래서 그들이 잘못했다고 하니 하나님께서 건져주셨는데, 그러자 그들은 헤헤거리면서 다시 다른 신을 섬겼다" 라고 하는 내용이 전체를 자치하는데, 그리고 구약전체도 그 내용 하나밖에 없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했지? 그런데 왜 섬겨?" 라는 것인데, 그러니 이방인인 우리 입장에서는 보면 그 잔소리가 너무나 심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을 잘 보지 않는다는 말이죠. 똑같은 소리를 계속해서 반복하게 되면, 아무리 보고 싶어도 재미가 없어서 볼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무엇도 문제인고 하니까, 그런 잔소리를 듣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어지간하다는 말이죠. 하나님께서 그렇게 잔소리를 하면서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면, 그러면 섬기지 않으면 되는데,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게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는 하나님도 하나님이지만, 그런 잔소리를 계속해서 들으면서도 꾸준하게 다른 신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고집이 보통이 아니라는 말이죠. 


제가 방금 이스라엘의 비밀을 이야기한다고 하면서 구약성경의 전체내용을 언급했는데,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께서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라고 줄기차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을 바로 설명하면 너무 어렵기 때문에 하나의 예를 들겠는데 말이죠.


그 목사는 과연 착한가?


목사가 어떤 교인 집에 심방을 간다고 했을 때, 그런데 정작 그 사람은 성경 이야기는 하기가 싫다는 겁니다. 교회는 간간이 나오는데 말이죠. 그런데도 목사가 굳이 그 집에 심방을 가겠다고 하면, 그것은 불순한 다른 동기가 깔려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겁니다. 나훈아의 노래에 보면 "우연을 핑계로 어쩌고" 라는 것이 있는데, 뭔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작업을 건다는 말이죠(ㅋㅋ).


그런데 그쪽에서는 "교회에서 봅시다. 심방은 싫어요. 나는 말씀을 듣는 것도 지겨워서 잠이 옵니다" 라고 나오는데, 즉 말씀을 핑계로 해서 자기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래서 목사는 "내가 이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 라고 하면서 참았는데, 그래서 자기의 음흉한 목적이 그만 좌절되고 말았다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질문을 던질 수 있는데, "그 목사는 과연 착한가?" 라는 겁니다. 이게 참으로 어려운 질문인데, 목사는 그 사람이 심방을 오지 말라고 해서 가지 않았는데, 속으로 참았다는 것이죠. 그렇게 참고 있는 마음이 있는데, 가지를 않고 말이죠.


이것이 문제가 되는데, 이스라엘의 비밀이 이렇게 어렵다는 겁니다. 목사는 어떻게 생각하는고 하니, 자기가 아는 윤리와 도덕을 총동원해서, "그렇게 싫어하는데도 내가 가게 되면, 그 사람은 내 욕망의 피해자가 되고, 그러면 목사인 나는 가해자가 되는데, 그러면 주님의 영광을 가리게 된다. 또한 교회에도 덕이 되지 않는다" 라고, 그렇게 생각을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론은 무엇인고 하니, "나는 나쁜 남자다. 나쁜 사람이다" 라는 것인데, 여기서 질문을 해봐야 하는데 말이죠. 그렇게 자기가 스스로 결론을 내렸는데, "과연 이 목사가 나쁜가?" 라는 겁니다. 이게 중요한데, 자기가 스스로 죄인이라고 느꼈다고 해서 하나님이 의인으로 간주해주지 않는다는 말이죠.


어제도 그런 설교를 했지만, 그런데 칸트 철학에 의하면 이 사람은 착한 사람인데, 왜냐하면 스스로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이기에 말이죠. 그렇게 이 사회는 반성을 하면 착한 사람으로 간주해주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나쁜 것은 그냥 나쁘다는 겁니다. 나쁜 것이 올라온 것은 나쁨의 올라옴이라는 말이죠.


그러면 이스라엘은 과연 착한가? 나쁜가?


이제 질문에 들어가는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고 하니까, "나를 섬기고, 다른 신은 섬기지 말라" 라고 잔소리를 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듣고, 자기들은 다른 신이 더 좋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를 섬기라고 하니까, 그래서 제사를 드리면서 섬긴다는 겁니다. 물론 건성으로 말이죠. 


그렇다면 그 이스라엘은 착한 이스라엘입니까? 나쁜 이스라엘입니까? 여러분 가운데서 누가 대답을 한 번 해보세요. 즉 "다른 신을 섬기면 나쁘다는 것을 아는 그 이스라엘은 과연 착한 이스라엘인가? 나쁜 이스라엘인가?" 라는 겁니다. 그것은 나쁜 이스라엘인데, 그러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하신 잔소리의 내용대로,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라는 말이죠.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이고 이스라엘의 비밀인데, 하나님께서 잔소리를 하신다는 것은, 우리를 보고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살아라" 라고 하는 것 같지만,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오해를 하면서 듣기 마련인데 말이죠.


드디어 커피를 마시는구나 !!


예를 들어서,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을 보고 엄마가 매일같이 잔소리를 한다는 말이죠. "아들아, 커피를 마시지 말라고 했지?" 라고 말이죠. 그러면 아들은 "예, 커피를 마시지 않습니다" 라고 하는데, 그런데도 엄마가 매일같이 아들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엄마가 그 이야기를 7,256번을 했다고 하면, 그러면 그 아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커피를 마시지 말라고 하지?" 라고 하면서, 드디어 커피를 마시는 아들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엄마는 드디어 엄마가 원하는 아들로 만드는데 성공을 했다는 말이죠.  


이스라엘의 비밀은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고 잔소리를 하는 그 잔소리의 내용대로 되게 해서, 여기 교재 50페이지에 나오듯이, 결국은 이스라엘을 망하게 한다는 겁니다. 무엇을 근거로 말입니까? "결국은 내 말대로 되었잖아. 너희들이 우상을 섬겼잖아. 그렇게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이 되었으니, 이제 내 손에 당해봐라. 너희들은 망한다" 라는, 그것이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특징이라는 겁니다.


이방민족은 반성하는 민족 !!


그렇다면 이 세상에 나라가 이스라엘뿐입니까? 아니면 다른 나라도 있습니까? 물론 다른 나라도 있는데, 그것을 이방나라, 이방민족, 이방인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이방민족은 어떤 민족인고 하니까, 영어로는 'GENTILE' 이라고 하는데 말이죠. 이방민족은 반성하는 민족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신이 어떤 잔소리를 하면 거기에 순종하는 민족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신은 어떤 신이고 하니, 그 대표적인 것이 마르둑 신인데 말이죠. 만약에 그 신이 "너희는 나 마르둑 신을 믿고, 다른 신은 믿지 말라" 라고 해서, 그래서 "예, 알겠습니다" 라고 하면, 더 이상 벌을 내리지 않는 것이 이방민족의 신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여러분은 어느 신이 마음에 와서 닿습니까? 우리는 순종하면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고 하는 신이 더 마음에 끌린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그 신은 우리 자신의 행함을, 즉 자기의 가치를 인정해주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잘 할 수 있어. 너희는 내 말에 순종할 수 있어. 너희는 할 수 있는 인간이야. 따라서 내가 너희의 가능성과 가치를 믿고 너희에게 말씀을 내리는데, 그래서 너희가 얼마나 순종을 잘 하는지를 내가 지켜볼 거야" 라고 말이죠. 그렇게 해서 지켰다고 하면, "오, 내 말을 지켰어? 그러면 내가 복을 줄게"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절시키는 능력까지 담아서 !!


우리는 이런 신이 훨씬 더 정감이 가는데, 이것이 오늘날 한국교회가 믿는 신인데, 그 신이 바로 이런 신이라는 겁니다. 즉 순종하면 복을 받는 신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정작 여호와 하나님은 어떻습니까? 전혀 그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너희들이 이런 짓을 하면 저주를 받는다" 라고 하시는 말씀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통보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그 말씀이 합당하도록, 그렇게 우리를, 이스라엘을 변절시키는 능력까지도 말씀에 담아서 쳐들어오는, 그렇게 해서 반드시 우리를 그렇게 만들고 마는, 그 하나님이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굉장히 낯선데,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말이죠. 하지만 이게 신명기 32장에 나오는 말씀이라는 겁니다.


제가 이스라엘을 언급하면서 굳이 '비밀' 이라는 말을 붙이는 이유가 있는데, 그냥 이스라엘이라고 하면 교회에 좀 다니고 성경을 읽은 사람이라고 하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나에게 묻지마. 나도 다 알고 있어" 라고 나오는데, 하지만 그렇게 해도 다 모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것이고, 그래서 이스라엘의 비밀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구약성경을 보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고 하니, 평소에 자기가 생각한 신과 같은 신이라고 여기고서 성경말씀을 본다는 겁니다. 물론 착각인데, 그렇게 되면 신명기 28장의 경우에는 어떻게 됩니까? 아마 다음 주 정도에 하지 싶은데 말이죠. 


내 생각과 딱 맞네 !!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복이 오고, 믿지 않으면 저주가 온다" 라고 하니 사람들은 어떻게 나옵니까? "그래, 내가 생각해도 그 하나님이 딱 맞아. 하나님마저도 내가 예상한대로 맞아떨어지네" 라고 쉽게 생각해버린다는 겁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방인이기 때문인데, 그래서 그런 곡해를 한다는 말이죠.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만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그대로 현실화가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스라엘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모든 인간은 일체 말씀을 지키지 못하는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점이라는 것이죠.


우리는 이렇게 말씀을 지키지 못하는 죄인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구원은 반성을 통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마지막 때에 확실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말이죠. 즉 우리 쪽에서 자기가 알아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고개를 숙이고, 마음을 조아리고, 무릎을 꿇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구원을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 안에 들어있는 본성은 하나님께 끓는 본성이 아니라는 것인데, 우리 속에 들어있는 괴물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신다고 해서, "예, 예, 알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고분고분해하는 괴물이 아니라는 겁니다. 반말을 하고 반항을 하는데, 그 모양새가 아주 웃기지 않다는 말이죠. 그게 무엇인고 하니, 순종하는 형식으로 반발을 한다는 겁니다.


할배 이야기 !!


우리 할아버지가 아주 완고하신 분인데, 완전히 유교에 찌든 분이라는 말이죠. 그 할아버지의 취미가 무엇인고 하니, 아내부터 시작해서 식구들을 야단치는 것인데, 며느리와 손자까지 해서 13식구인데, 그들을 나무라는 것이 하루일과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신발을 벗어놓아도 나란히 놓아야 하는데, 그런데 그게 전방주차를 하면 안 되고, 후진주차를 해야한다는 겁니다. 나갈 때 곧 바로 신고 나갈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런데 제가 만약에 그렇게 하면 할아버지는 지켜보다가 화를 내는데, 왜냐하면 제가 잔소리를 할 수 있는 꺼리를 없애버리니 말이죠(ㅋㅋ). 그래서 다른 핑계꺼리를 만들어서 잔소리를 한다는 겁니다.


물론 이것은 아주 극단적인 경우지만, 만약에 제가 신발을 바로 놓지 않고 흩으려놓았다고 하면, 그리고는 그런 모습에 대해서 제가 스스로 자기에게 야단을 친다고 하면, 아마 할아버지는 돌아버리지 싶은데 말이죠. 왜냐하면 야단을 치고 해도 할아버지가 그렇게 해야하는데, 왜 자기 스스로 그렇게 반성을 하고 하느냐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너는 반성을 하지마. 반성을 해도 내가 잔소리를 하고 난 다음에 하던지 해서, 나의 잔소리와 반성이 서로 부합이 되는지를 봐야 하는데, 그런데 너는 미리 반성을 함으로서 그것을 측정하는 즐거움을 사전에 제거하고 말았어" 라는 것이죠. 옛날에 '왕건' 이라는 드라마에서 궁예가 왕건에게 한 말이 있는데, "너는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어" 라는 겁니다.


할아버지에게는 무엇이 통하지 않는고 하니, 이러다가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나지 싶은데(ㅋㅋ), 아무튼 할아버지는 법을 초월하고 있다는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똑같은데, 법을 초월해서, 즉 "내가 주는 법은 위반하라고 주는 것이지, 잘 지켜서 복을 받으라고 주는 법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그런 법은 이방신에게서 찾으면 되는데, 이방신은 인간과 거래하는 신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이런 여호와가 우리는 상상이 되지를 않는데, 우리의 상식에서 나온 신과는 다르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방신은 흥정과 거래가 가능한데, 왜 그런고 하니, 우리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었는데, 그래서 인간은 선과 악을 조절한다는 겁니다. 그게 타고난 것이란 말이죠.


그래서 "내가 착했으니 이번 주에는 복을 받을 것이다. 이번에는 악했으니 이번 주에는 벌을 받을 것이라" 라는 것을 스스로 한다는 겁니다. 이방신은 사실상 신이 없는데, 자기가 만든 신이라는 말이죠. 그렇게 자기가 신을 만드는 기초가 무엇인고 하니, 선악과에 의해서 만들어낸다는 겁니다.


윤리 도덕적 신 !!


그것을 어제 낮 시간에 '윤리 도덕적 신' 이라고 했는데, 즉 "악함보다 착함이 많으면 무조건 천국에 가고, 착함보다 악함이 많으면 무조건 지옥에 간다" 라는 것인데, 그런 신이라는 말이죠. 그 하나님이 이미 자기 안에서부터 출발이 되는데, 그게 우리 내부에서 발현이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이방인이라는 겁니다. 


오늘 강의제목이 이방인의 비밀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비밀인데, 그러니 이스라엘은 아주 특수한 민족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이스라엘 주변에는 누가 있는고 하니, 이방민족이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이스라엘이 걸핏하면 이방민족으로 가는 이유를 이제 알겠지요?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인데, 그러니 그들에게도 선악체제가 있다는 겁니다. "선하면 천당에 가고 악하면 지옥에 간다" 라고 말이죠. 물론 양적으로 더할 것은 더하고 뺄 것은 빼는데, 그렇게 총체적으로 선이 많으면 악을 이긴 것이라고, 그것은 아담이 범죄한 이후에 생겨난 사고방식이라는 겁니다.  


이번 미국선거에서 동부지역에서는 힐러리가 많았는데, 그런데 중부지역은 트럼프가 많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 합쳐보니까 어떻습니까? 물론 표는 힐러리가 많았지만, 대의원 수가 트럼프가 많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라면 힐러리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는 말이죠.


나와 대화가 되는 하나님 !!


아무튼 그런 것이 우리에게는 상식적인데, 이방인들은 그런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하나님을 원한다는 겁니다. 자기와 대화가 되는 말이죠. 우리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교회에 나오세요" 라고 하면 뭐라고 합니까? "나는 교회에도 가지 않고 절에도 가지 않지만, 그들보다 훨씬 더 바르게 산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267,456명 정도 있는데(ㅋㅋ), 우리 주위의 99.9퍼센트가 그렇다는 겁니다. 교회에 가고 절에 가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양심인데, 즉 "내 양심에 남들에게 해꼬지를 하지 않고 나의 70평생을 살아왔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이방인의 가족 !!


또 다시 등장하는데, 우리 할아버지가 바로 그런 분이라는 겁니다. 자기 가족을 그렇게 철저하게 단속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자기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말이죠. 자기 자식이나 손자가 욕을 얻어먹으면, 그것은 누가 욕을 먹는 겁니까? "너는 누구 집 아들이야? 너희 집안에서 그렇게 가르쳤어?" 라고, 그런 소리는 차마 들을 수가 없다는 말이죠. 


자기 집에서는 자기가 어른인데, 즉 권위가 있다는 겁니다. 유교는 권위를 빼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는데 말이죠. 그런데 자기 집안에 속한 자가 욕을 얻어먹는다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평생 자기가 쌓아온 의미와 가치에 흠집이 생긴다는 겁니다.


"내 가족은 훌륭한 가족이다" 라는 것에 자기 목숨을 바쳤는데, 그런데 거기에 흠이 있고 짜증이 나는 일이 생긴다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당연히 "그런 꼴을 보느니 차라리 내가 죽는 것이 더 낫다" 라고 하면서 나온다는 말이죠. 그래서 "너 같은 인간은 이제 그만 나가라" 라고 하면서 집안에서 쫓아내고 만다는 겁니다.


그러면 아들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아버지, 저는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서 존재하는 인간이 아닙니다" 라고 하는데, 그러면 "이게 이제 대가리가 컸구나. 너를 키울 때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너도 자식을 낳아봐라" 라고 하면서, 상투적인 잔소리가 나온다는 말이죠. 그렇게 해서 가족 간의 기 싸움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그런 가정을 상식적인 가족이라고 하는데, 그런데 저는 달리 표현하고 싶어요. '이방인의 가족' 이라고 말이죠. 그게 바로 이방인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성경에서 말하는 이방인이라는 것은 아주 상식적인 것인데, 하나님을 욕하고 말는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자연스러운 하나님을, 그것이 여호와이든 예수님이든 상관이 없는데, 아무튼 자기가 채운다는 겁니다.


트래쉬(TRASH) !!


그러니까 예수는 껍데기에 불과하고 기호에 불과한데, 즉 단어에 불과하고 명칭에 불과하다는 말이죠. 그 안은 그야말로 텅텅 비어있는데, 그러니 '예수' 라는 간판만 걸어놓고, 그 안은 무엇으로 채우는고 하니, 자기가 원하는 것을 그 안에 다 던진다는 겁니다. 그것을 '트래쉬(TRASH)' 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쓰레기' 라는 말이죠.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을 쓰레기장으로 본다는 말이죠. 즉 "하나님, 우리 자식이 공부를 잘하게 해주세요" 라고 하면서 던지고, "하나님, 우리 자식이 건강하게 해주세요" 라고 하면서 툭툭 쓰레기를 던진다는 말이죠. 이방인들이 하는 짓이 그러한데, 그야말로 바보 신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 신이 어떤 신이냐는 것은, 그것을 믿는 자들이 어떤 내용을 채우느냐에 따라서 그 신이 만들어진다는 말이죠. 사람들이 왜 부처에게 기도를 합니까? 자기에게 맞는 인형과 같은 부처, 그 내용을 자기 기도의 내용으로 채워서 자기의 수호신으로 삼기 위해서, 그래서 갓바위에게 열심히 기도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부처에게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도, 예수님에게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누구이고 예수님이 누구인지, 그 내용은 자기가 채우는데, 자기의 간절한 기도내용으로, 자기의 소망과 기대로 말이죠. 그러니 그런 예수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나는 착하다" 라는 것이 가득하다는 겁니다. 즉 "기도하는 나는 착하고, 헌금하는 나는 착하다" 라고 하는, 그러한 자기 의로움이 말이죠.


자기 의 !!


성경은 이것을 두고 '자기 의' 라고 하는데, 바로 이것이 유대인들이 한 짓인데, 여호와를 변경시켜서, 엉뚱하게 껍데기만 여호와라는 겁니다. 그 안에는 자기의 의로움으로 가득 채우는데, 이것이 로마서 10장에 나오는데 말이죠.   


(롬 10: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롬 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여기 2절에 보면,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   )이 있으나" 라고 하는데, (   )안에 무엇이 들어갑니까? '열심' 이라는 것인데, 그러니 이것이 그 얼마나 상식적입니까? 그렇지요? 누가 교회에서 열심을 내게 되면 믿음이 좋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데, 그러니 우리 인간이 얼마나 남을 의식하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누가 열심을 내게 되면, 그렇게 열심을 내는 그 사람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고 하니까, "저 사람이 저렇게 열심을 내니까,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고 하면 저 가정에는 복을 주실 거야" 라고 하면서, 그것을 은근히 노리고 있는데, 그런데 교회 일에는 열심인데 가정은 개판이라고 하면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수학에서 말하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데, 즉 "5+3=8",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그런데 2가 되고 -7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중간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는 말이죠. 교회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러니 교회에 열심을 내게 되면, 자기가 아는 상식으로는 하나님께 열심을 내는 착한 사람은 구약에서는 복을 받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한 달 수입이 적어도 천만원이 되어야 하는데, 수입은 고사하고 빚이 천만원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의아해할 수밖에 없는데, 교회에 일찍 와서 청소도 다하고 했는데, 그래서 복을 얼마나 받을 것인지 잔득 기대하고 있는데, 그런데 목사가 뭐라고 합니까? "복 같은 소리하네. 웃기지마"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교회에서 처음부터 뭐라고 했는고 하니, "봉사를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지 말세요" 라고 했다는 말이죠.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


그것은 마귀의 유혹인데, 그 어떤 결과도 기대하지 말라는 겁니다. 오직 주님과 그분의 관계이고 대화인데, 그래서 3절에 보면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   ) 의를 세우려고" 라고 하는데, 여기 (   )안에는 무엇이 들어갑니까? 자기, 즉 '자기 의' 라는 겁니다.


그러니 지금 무엇이 문제라는 겁니까? 자기 의가 곧 하나님의 의라고 여기는 것이 문제인데, 하지만 하나님의 의가 오게 되면 자기는 졸지에 죄인이 된다는 말이죠. 어떤 죄인입니까? 자기는 착하다고 우기는, 그렇게 잘난 척을 하는, 즉 반성을 많이 하는, "나는 나쁜 목사다" 라고 반성을 했기 때문에 자기를 착한 목사라고 여겨달라고 하는, 새롭게 피어나는 그 음흉한 모양새, 그게 바로 가짜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지금 점점 어려워지는데, 참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기에 대해서 "목사님, 그렇게 하지 말고 진짜 하나님을 알려주면 되지 않습니까?" 라고 하는데, 진짜 하나님은 없고 그 주변에 무엇이 있는고 하니, 가짜 하나님만 충만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 "이게 아냐. 이게 아냐!" 라고 하면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진짜 하나님이라는 말이죠.


신유가 온다 !!


나이트클럽에서 쇼를 하는데, 광고판에다가 "신유가 온다" 라고 적어놓았는데, 혹시 신유를 아십니까? 뽀로로가 아이들의 대통령이고 하면 신유는 아줌마들의 대통령인데 말이죠(ㅋㅋ). 그러면서 공연시간을 알려주는데,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한다고 적어놓았다는 겁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4시간 동안을 공연하는 줄로 안다는 말이죠.


그래서 7시에 신유를 보려고 들어갔다고 하면, 그러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가수들이 계속해서 나온다는 겁니다. 나후나, 넘진, 조용팔, 송대괄, 태진우, 이민자와 같은 짝퉁 가수들이 말이죠. 그렇게 하다가 11시가 거의 다 되어서는 진짜인 신유가 나와서는 한 곡을 부르고 들어가 버린다는 겁니다.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고 하니, 먼저 가짜 하나님을 앞에 줄줄이 깔아놓는데, 그래서 "에이, 나는 이제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을 거야. 어서 입장료나 돌려줘" 라고 할 때, 바로 그때에 핍박을 받는 진짜 하나님이 등장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얼마나 가짜 하나님을 진짜 하나님으로 여기고 있었는지를 다 보여주시고는, 그리고 난 다음에 진짜 하나님께서 등장하신다는 말이죠.


그러면서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라고 하시는데,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겁니다. 바로 그 죄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고 하니, 우리의 '자기 의' 가 들어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자기 의가 있다고 해서 이 땅에서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는 자기 원천과 관련이 되어있는데, 이것은 타고났다는 겁니다.


(마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포기할 수 없는 체면과 위신 !!


여기서 할아버지 이야기를 또 해야하겠는데, 우리 할아버지의 모토는 자기 체면이고 자기 위신이라는 말이죠.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얼마나 구박을 받았으면 저렇게 할까?" 라고 할지 모르겠는데(ㅋㅋ), 그것이 아니라 온 가족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라는 겁니다. 할머니부터 시작해서 말이죠.


그런데 할아버지가 자기 체면과 위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고도의 윤리와 도덕을 발휘하게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때 그게 남들이 우러러 볼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에 말이죠. 즉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지?" 라고 한다는 겁니다.


이것을 사도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율법적으로 흠이 없다" 라는 것인데, 사도바울은 자기가 사도가 되기 이전에 그러한 자였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나오던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라고 했다는 겁니다.


어떻게 그런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까? 처음에는 자기의 원천을, 즉 자기의 바닥을 전혀 몰랐는데,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분이 자기의 모든 운명을 쥐고 있는 원천이었음을 알게 되었다는 말이죠. 따라서 사도바울은 그동안 자기의 체면과 위신을 자랑했지만, 이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한다는 겁니다.


(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한다 !!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한다" 라는 것을 글로 표현하면 겨우 12글자인데, 그러면 제가 목사랍시고 강제로 여러분에게 학습을 시킬 수 있습니까? "여러분, 모두 저를 따라하세요.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한다' 라고 하세요" 라고 했다고 하면, 그러면 그게 과연 예수님만 자랑하는 겁니까?


예수님만 자랑하려고 하면 하던 대로 하면 되는데, 체면과 위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말이죠. "나를 건드리면 가만히 두지 않는다" 라고 하는 성깔을 그대로 부리라는 겁니다. 춘천에 막국수가 유명한데, 우리는 막살기라는 겁니다(ㅋㅋ). 다만 이것이 원천과 관련이 되어있으면, 주님 앞에서 내놓는 것이 '욱' 하는 자기 성질, 즉 자기 의밖에 없음을 고백할 때, 그게 바로 구원을 받은 자의 모습이라는 겁니다.


이스라엘의 비밀의 완성은 신약의 이방인 !!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비밀인데, 아직까지 그 비밀을 반밖에 이야기지 않았는데 말이죠. 이스라엘의 비밀의 완성은 신약의 이방인데, 그래서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에게 배워야 한다는 겁니다. 그 배우는 방법이 어디에 나오느냐고 물으신다면, 그것이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데, 거기에 보면 누가 나옵니까? 백부장이 등장한다는 말이죠.


(마 8: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마 8: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마 8: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마 8: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마 8: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마 8: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요즘 말로 하면 중대장인데, 이방인이라는 겁니다. 로마인인데, 이탈리아 사람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그 로마인은 율법도 모르는데, 십일조고 안식일고 뭐고 간에, 그런 개념이 없다는 겁니다. 단지 아는 것이 있다고 하면, 자기가 돗대가 아니라는 것인데, 자기의 원천은 따로 있다는 말이죠. 자기는 누구로 인해서 태어난 것이지, 자기 인생을 자기가 알아서 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것을 여기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대로 표현하면, "주께서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라고 하는, 바로 그것이란 말이죠. "주여, 저는 믿씁니다"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옵니다" 라고, 쉽게 말해서 "까라고 하면 까겠습니다" 라고 하는, 그것이란 겁니다.


지금이 최적화가 된 상태이다 !!


이것을 제가 어느 강의에서인가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는데, "지금 상태가 최적의 상태입니다" 라고 말이죠. 즉 지금이 가장 적합한 상태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을 로마서 8장 28절에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라고 한다는 말이죠.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지금 자기 모습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구원을 받기에 가장 적합한 모습으로, 그렇게 하나님께서 만들어놓으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기 인형으로 말이죠. 그러니 더 이상 욕심을 부릴 이유가 없는데,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이고, 우리는 어떠합니까? 계속해서 욕심이 올라오는데, 그런데 하나님의 생각은 그게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겁니다.


그러면 다시 여기서 여러분의 기억을 더듬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우리를 보고 지키라고 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결국 우리는 우상을 섬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느 쪽입니까? 후자라는 말이죠. 


여기까지 여러분이 안다고 치고, 그 다음 문제가 무엇인고 하니, "너는 어떤 상태라도 그게 최적이다" 라고 한다면, 그러면 우리보고 지키라는 겁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기어이 그렇게 완벽하게 구원이 되도록 토탈 서비스로 만들어내시겠다는 겁니까? 그렇게 만들어주시겠다는 것인데, 그게 바로 믿음이라는 말이죠.


로마서 8장 30절에 있듯이,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시는, 그 책임이 자기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 있다는 것을 믿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때이기 때문에 말이죠. 마지막 때라는 것은 할 것은 모두 다 해봤다는 말이죠.


(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생긴 대로 살아라!


우리가 아무리 말씀을 지킨다고 해도, 자기 의, 자기 위신, 자기 체면, 자기 명예, 그것은 자기 힘으로 끊어낼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니 생긴 대로 살아야 하는데, 이 유명한 이야기를 누가 한 줄을 아십니까? 이주일이죠. 그가 뭐라고 했습니까?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 라고 했는데, 바꿔서 말하면 "생긴 대로 살아라" 라는 겁니다. 죽기 전에도 금연광고에 나와서는 "담배를 피우면 지금 나 같이 이렇게 됩니다" 라고 했는데 말이죠.


바로 이 "생긴 대로 살아라" 라는 것이 복음인데, 이것을 잠언서에서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가난한 자나 부자나 다 하나님께서 만드셨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가난하게 태어나야 하고 부자로 태어나야 한다는 겁니다. 자기는 돈을 함부로 썼는데, 그런데 그 돈이 열 배나 되어서 돌아오는데 어떻게 하느냐는 말이죠. 


정주영 씨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는데, "삼천만원을 똑같이 나눠주어도, 1년이 지나면 모두 다 까먹는 인간이 있고, 또한 일억을 만드는 인간이 있다" 라고 말이죠. 아니 세상에서 부자가 되기 싫은 사람이 도대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지만 아무나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닌데, 그것은 우리가 모르는 변수가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생긴 대로 살아라!" 라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이 최적화가 된 상태라는 겁니다. 여자들의 경우에는 "나의 모델은 송혜교다" 라고 하는데,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지금 자기의 모습이라는 겁니다. 신혼부부가 왜 싸웁니까? 그것은 감사하는 마음이 없어서 그러한데, 즉 상대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는데 그 기대에 어긋나서 싸우고, 그것은 상대방도 마찬가지라는 말이죠.


나는 이런 사람을 원했습니다 !!


그러면 그렇게 뭔가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주님이 보시기에는 지금이 최적화가 된 상태인데 말이죠. 그런데도 지금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은, 그것은 왜 그렇습니까? '트래쉬(TRASH)' 라고, 그게 곧 쓰레기인데 말이죠.


다시 말해서, 자기가 믿는 하나님을 그야말로 쓰레기로 가득히 채운다는 겁니다. "나는 이런 사람을 원했습니다. 저런 사람을 원했습니다" 라고 말이죠. 그렇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에게 가득 가득 채워서, "이런 하나님이라면 믿을 용의가 있습니다"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전도를 했는데,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그러니 같이 교회에 가자" 라고 말이죠. 그러자 그 친구가 뭐라고 하는고 하니까, "너는 하나님을 믿는데 왜 그렇게 가난하지?"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그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입니까?


자기가 믿는다고 하면 그 하나님은, 그 믿는 순간부터 부자가 되도록 해주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그런 쓰레기와 같은 내용을, 쓰레기통과 같은 하나님을 만들어놓고 마구 던져 넣는다는 말이죠. 그런데 5년 동안이나 교회에 다녀도 그게 되지 않을 때는, 쓰레기와 같은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욕을 내뱉는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을 지켜주세요 !!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버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지금부터 조금 전에 절반이 남았다고 했던 그 비밀을 한 번 이야기해보자는 말이죠.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믿은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여, 이스라엘을 지켜주세요" 라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그것을 원했다는 말이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집단인데, 개인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집단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각각의 개개인이 모여서 집단이 된다고 여기는데, "개인+개인+개인+개인+개인" 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러면 이스라엘이 잘 되게 해달라는 것은 하나의 명분이고, 그 안에 누가 들어있습니까? 자기 자신이 들어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스라엘이 잘 되면 자기도 덩달아서 잘 된다는 말이죠. 그래서 "이스라엘을 지켜주세요" 라고 했다는 겁니다. 노골적으로 자기가 잘 되게 해달라고 한 것이 아니고 말이죠. 그렇게 하면 너무 티가 난다는 말이죠.


이것은 달리 말하자면, "나는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여기에 있는 것처럼 계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잘 되게 해주시면, 저기에 계시는 하나님을 믿을 용의가 있습니다" 라는 것인데, 이게 바로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라는 겁니다. 이 논리에 무슨 하자가 있습니까? 만약에 우리가 이스라엘이라고 하면, 우리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든다는 말이죠.


어떻게 신약의 144,000명으로 연결되는가?


그러면 이러한 하자가 신약에서 어떻게 144,000명으로 연결되는지 설명해드리겠는데, 그러면 여기서 문제가 무엇입니까? 자기가 여기에 있다고 해서,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냐는 겁니다. 이런 표현들이 참 어려운데, 그래서 조심스러운데 말이죠.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서 두 개의 하나님이 나오는데, 숨어있는 하나님이 나온다는 겁니다. 혹은 은밀한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죠.


참 숨어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숨어있는 이스라엘이 나오는데, 또 하나는 무엇인고 하니, 지금 이스라엘이라고 여기는 이스라엘, 즉 보이는 이스라엘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숨어있는 이스라엘은 사람들에게는 숨어있기 때문에 보이지를 않는데, 그러면 그들에게는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없는데, 그러면 무엇만 남았습니까? 지금 자기가 속해있는 이스라엘만 남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니, 즉 이스라엘을 도와주는 하나님이니, 그래서 그들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이여, 도와주소서" 라고 했다는 말이죠. 그러니 이들은 여기서 하등의 문제를 느낄 수가 없었다는 것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자기 집에 감나무를 심었다고 하면, 그래서 감이 열렸다고 하면, 그 감은 누가 따먹으라는 겁니까? 자기 집에 있으면 자기가 따먹는 것이 맞다는 겁니다. 그런데 감이 제대로 열리지 않는다고 하면, 그래서 "하나님이여, 우리 집에 있는 감나무가 열매를 잘 맺게 해주세요" 라고 한다면, 그게 무엇이 나쁘냐는 말이죠.


여러분, 기도라는 것이 왜 있습니까? 그런 것을 하라고 기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그렇지요? 남의 집에 심겨져 있는 감나무와 그 열매를 자기에게 달라고 한 것이 아닌데, 어디까지나 자기에게 있는 것을 어떻게 잘 되게 해달라고 했다는 말이죠.


그래서 이스라엘이 그렇게 했는데, 그런데 이게 바로 문제가 된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여기서 무엇이 문제인고 하니까, 이스라엘이 둘로 갈라진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진짜 이스라엘은 따로 있는데, 그게 바로 요한계시록 7장에 나오는 144,000명이라는 말이죠.


요단강을 건널 때 !!


어제 오후에 그런 설교를 했는데, 요단강은 평소에 범람하는 강이 아닌데,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착하니 범람을 했다는 겁니다. 그렇게 범람을 했다는 것은, 사람은 갚은 강물에 들어가면 죽는데, 그러니 결국 이스라엘 전체는 요단강을 건너지 못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요단강을 건너는 방법을 알려주셨는데, 그것은 곧 죽어서 건너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죽으면 어떤 효과가 있는고 하니까, 죽기 이전에는 "내가 어떻게 건너지?" 라고 하다가, 막상 자기가 죽게 되니, 그런 걱정거리가 되는 주체도 같이 사라져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만 걱정거리도 없어지고 만다는 것이죠.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그만 죽음에 삼켜지게 되는데, 그러면 그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는 전담반이 있다는 말이죠. 그게 무엇인고 하니, 언약궤를 매고 요단강 한 가운데 섰던 제사장, 그 제사장이 하는 일이 바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이란 말이죠.


그래서 요단강을 건널 때는, 홍해처럼 갈라지고 난 뒤에 건너는 것이 아니라, 먼저 언약궤를 맨 제사장이 "주여, 언약대로 하옵소서" 라고 하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고 하니, "죽을 인간 가운데서도 부활이 있게 하소서" 라는 의미라는 겁니다. 그래서 언약궤를 매고 요단강을 건다는 말이죠.    


물론 홍수가 나서 강물은 넘치고 있는데, 그래서 강을 건너면 다 죽는다는 겁니다. 그러니 죽지 않는다고 하면 안 되고, "우리는 죽어서 마땅합니다" 라고 하는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는 말이죠. "우리는 죽기 때문에 약속의 땅에 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라는 것을 끌어 앉아야 하는데, 그래서 그 대신에 제사장이 언약궤를 매고 거기에 선다는 겁니다.


(수 3:11)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나니
(수 3:12)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명을 택하라
(수 3:13)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그래서 바로 그 언약궤를 신약에서는 새 언약이라고 하고, 서 있는 제사장을 예수님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서, 물에 빠져서 죽었던 자기 백성을 새 인간으로 바꾸어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해주신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들어간 다음에는, 그 건너온 요단강을 잊지 말라고 자기들의 몸에 새기는데, 그것을 두고 '할례'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아브라함 언약인데, 즉 "육은 죽었고, 할례언약 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우리를 구원하려고 올 겁니다" 라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할례언약을 완성하는 날에 죽을 우리가 주 안에 다시 살 것입니다" 라는 약속을 믿고, 그들은 죽음 안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말이죠.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


그것을 로마서 6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는데, 간단하고 딱딱한데 말이죠. 그러니 신약이 매우 어렵다는 겁니다. 구약은 실례가 나오지만, 신약은 그런 것도 없이 문장으로 곧 바로 나온다는 말이죠. 1절에서 4절입니다. 


(롬 6: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롬 6: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롬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 2절에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라고 하는 것은, 죄에 대해서 우리는 죽어 마땅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3절에 보면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세례는 구약의 할례인데 말이죠. 즉 "너는 누구 덕분에 살았지? - 예, 제사장입니다. - 그렇지. 그러면 그 제사장의 완성은 누구지? - 바로 예수님입니다. - 그렇지. 바로 그거야" 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제사장이고 왕이고 선지자인데, 그 예수님이 오셔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함께 껴안고,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시는데, 그 박스 안에 우리도 함께 담김으로서,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주님 덕분에 우리도 의인이 된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그러니 함께 죽어야 사는데, 박수만 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말이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을 때 함께 죽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목사님, 언제 죽으면 됩니까? 오늘입니까? 한 달 뒤입니까?" 라고 하는데, 하지만 그게 아니고, 지금 우리가 살아있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고 하면 95세 때까지 계속해서 죽어있다는 말이죠. 우리의 옛 몸은 죽어있고, 새 몸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있다는 겁니다. 주님과의 관계는 형성이 되어있고, 그러면서 실제로 우리의 몸은 서서히, 관절이고 뭐고 간에 다 망가져 간다는 말이죠.


사라진다 !!


그것은 저는 '사라진다' 라고 하고 싶은데, 즉 육이 사라진다는 겁니다. 전도서의 마지막에 보면, 뭉개지고 무너지고 사라진다고 하는데, 기억력도 없어지고,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린다는 것이죠. 해체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마치 댐이 붕괴가 되듯이 말이죠.


그런데 사도바울은 그게 너무 좋아서, 우리의 옛 것은 다 벗겨져야 한다고 하는데, 옛날 원피스는 다 벗겨져야 새로운 원피스를 입는다고 말이죠. 그렇게 새로운 옷을 입은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 즉 오직 십자가만 자랑하기 위해서 "무너져라, 무너져라, 무너져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몸을 자랑하기 위해서 아담에게 속한 흙의 몸은 무너져야 한다는 말이. 물론 그렇게 하다가도 몸이 아플 때는 약도 먹고 했는데, 아파서 포도주를 약으로 썼다는 겁니다. 살 때까지는 살아야 하겠지만, 그래도 자기의 유일한 욕망은 빨리 죽고싶은 것이란 말이죠.


그러니 세계의 평화가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설치지 말고 조용하게 사라지는 것이 좋은데, 그렇다고 해서 미리 앞당겨서 자살을 하면 곤란하고 말이죠. 왜냐하면 죄를 지을 때는 제대로 지어야 하는데, 죄도 다 짓지 않고 자기가 알아서 미리 죽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면 이렇게 편안한데, 그것이 바로 주님이 우리에게 내리신 일방적인 조치라는 말이죠. 자기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일방적으로 주님에게 적합한 인간으로 만들어 버리신다는 겁니다. 즉 죄인이 되게 하신다는 것이죠. 그리스도만 빛나게 하시기 위해서 주님이 그렇게 하신다는 말이죠.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달도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


다시 말씀을 드리겠는데, 이스라엘의 잘못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여, 우리 이스라엘을 살려주세요" 라는 것인데, 애국가에도 그런 가사가 나오죠.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달도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라고 하는데, 이게 무너진 이스라엘이라는 겁니다. 우리나라가 무엇이라고 하나님이 보호해주어야 합니까? 하나님이 무슨 시다바리입니까?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요구를 하느냐는 말이죠.


목사가 심방을 가려고 하는데 교인이 거절을 한다는 겁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목사에게는 "심방을 받으세요" 라고 하면서 교인을 권위가 있게 다룰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말이죠. 어디 감히 성령을 받은 사람에게 함부로 들이대느냐는 겁니다. 말이 안 된다는 말이죠. 물론 불러주시면서 달려갈 수는 있지만, 원하지도 않는데 건방지게 그 사람의 영역을 터치할 자격은 없다는 겁니다.


대심방을 해도, 목사는 시다바리 !!


그래서 우리교회는 강제로 하는 대심방은 없는데, 교회에서 강제로 대심을 이유가 다 있는데, 그것이 바로 봉투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교육관을 짓는다든지, 주차장을 넓힌다고 하면, 그것을 홍보하려고 돌아다닌다는 말이죠. 재력이 있으면 두 장 정도면 된다는 겁니다. 목사가 여름에 이렇게 땀을 흘리고 돌아다니는데, 그 정도는 어떻게 해야하지 않느냐는 말이죠.


"주의 사자를 섬기는 것은 참된 일곱 교회에 속합니다" 라고 하면서 요한계시록을 들먹이고 하는데, 자기가 주의 사자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주의 사자는 천사인데, 목사가 아니고 말이죠. 목사에게 날개가 있어서 날아다닌다면 몰라도, 그게 아니라면 입을 다물라는 겁니다.


이것은 누가 누구에게 가르칠 문제가 아닌데, 성령이 직접 하신다는 말이죠. 우리는 다만 동의만 해주면 되는데, 목사는 시다바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목사의 입장에서는 그 사람에게 권위가 있게 다가가고 싶은데, 목사가 제일 힘든 것이 무엇인고 하니, 자기 말발을 세워주는 사람의 숫자가 적다는 것인데, 그게 목사에게는 모욕감이 된다는 겁니다. 즉 "교인들이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어" 라는 것인데, 마치 궁예처럼 말이죠.


자기는 열심히 설교를 하는데 앞에서 졸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자기에게 모욕감을 주는 것이 된다는 겁니다. "주의 사자가 말씀을 전하는데 감히 졸고 있어?" 라는 것인데, 그래서 특히 여름이 되면 교회마다 목사가 초인종을 두드리고 말이죠. 광고시간을 제외하고는 다들 졸고 있다는 말이죠(ㅋㅋ).


특히 시골에서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밭에서 일을 하다가 왔으니, 교회에 앉으면 저절로 마구 졸음이 쏟아진다는 겁니다. 우리의 몸 자체가 그렇다는 말이죠. 그러면 목사의 존재감은 그만 사라지고 마는데, 그러면 "내가 여기에 왜 있지?"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장로님들도 설교시간에 다 조는데, 그런데 언제 눈이 초롱초롱한고 하니, 당회를 열면 어떻게 그렇게 잠도 자지를 않고 똑똑한지 모른다는 겁니다(ㅋㅋ). 성경말씀은 전혀 모르면서 교회법은 잘 알아서, "이것은 3분의 2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교회는 왜 과반수로 합니까? 안 됩니다" 라고 나온다는 말이죠. 말씀에 대해서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데, 그런 것에는 총기가 넘친다는 겁니다. 


누가 장로이고, 집사인가?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장로는 무엇인고 하니, 다른 것에 전혀 무식하더라도, "도대체 저 인간에게 나오는 것이 복음인가? 복음이 아닌가?" 라는 것을 구별하는 것, 거기에 대해서만 똑똑한 것을 두고 장로라고 한다는 겁니다. 물론 집사도 그렇고 말이죠.


그렇다면 복음에는 무엇이 나와야 합니까? 자기 의가 아닌, 그리스도의 의를 전하는지를 봐야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 의가 나오더라도, "이것이 바로 죄입니다" 라고 하면서 고백하고 있는지, 그것을 살펴야 한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그것은 목사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살린다는 겁니다. 복음 외에 다른 소리가 나오면 안 된다는 말이죠.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은 끝이 나는데,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망하고 말았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하면, "여기에 감추어진 이스라엘이 있지 않습니까? 이들은 구원을 받지 않습니까?" 라고 하신다면, 하지만 그 감추어진 이스라엘을 우리는 모른다는 겁니다.


시간아, 물렀거라 !!


그러면 어떻게 압니까? 신약 때에 와서 소급을 하는데, 시간을 거슬러서 말이죠. 그러면 그때 드러나는데, 그게 요한복음 8장에 나온다는 겁니다. 5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라고 하셨다는 말이죠.


(요 8:55)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요 8: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그런데 예수님과 아브라함의 시간의 간격이 무려 2,000년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시간간격을 완전히 무시하고, 아브라함은 이미 그리스도를 보았고 또한 기뻐했다는 말이죠. 이게 과연 인간의 언어로 납득이 됩니까? 우리는 어제 일도 다 잊어버리는데, 그런데 여기서는 2,000년의 갭을 극복하고 있다는 것이죠. 여기에 관한 '시간에 대한 3가지 표현'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하지 싶은데 말이죠.


그리고 변화산 사건의 경우에, 거기에 누가 나옵니까? 예수님과 함께 엘리야와 모세가 등장을 하는데, 모세는 1,400년 전의 사람이고, 엘리야는 800년 전의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들이 같은 원탁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말이죠. 물론 테이블은 없었지만, 과연 이게 말이 되느냐는 겁니다. 


(눅 9: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눅 9: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눅 9: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그러자 베드로가 너무 좋아서 뭐라고 합니까? 초막 셋을 지어드리겠다고 하는데, 아파트를 3채 바치겠다고 한다는 말이죠. 여기에 있어달라고 하는 것인데, 그러니 베드로는 하나님을 소유하겠다고 한다는 말이죠. 나타난 하나님을 소유하게 되면 써먹을 거리가 많다는 것인데, 즉 "하나님을 구경하러 오세요. 엘리야를 구경하러 오세요. 모세를 보고 싶습니까? 여기에 계십니다" 라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이 안 된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는, 즉 보이는 거짓된 이스라엘과 보이지 않는 이스라엘은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여기 보이지 않는 이스라엘은 바로 예수 안에 있는데, 달리 말하면 성령 안에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구약의 이스라엘이 신약에 오게 되면 무엇을 하게 되는고 하니, 두 개의 나라가 십자가 안과 십자가 밖으로, 그렇게 정리가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십자가 자체가 구약성경을 다 이루었기 때문인데, 십자가 안에 12지파가 들어있다는 말이죠. 


12×12×1,000=144,000명 !!


그래서 요한계시록 7장에서 12지파는 균등하게 "12×12,000=144,000명" 이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십자가 안에 들어있는 모든 성도의 총괄계수라는 말이죠. 하필이면 그게 왜 144,000명인고 하니, "12×12×1,000=144,000명"이 되는데, 여기서 먼저 12는 약속된 백성이고, 또 12도 약속된 백성인데, 그렇게 해서 1,000번을 더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1,000번은 묵시세계의 숫자인데 말이죠.


그러니 영원히 한 사람도 빠짐이 없이, 오직 택함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의 총합계, 그게 바로 144,000명이라는 겁니다. 창세 전에 영생을 주기로 작정을 했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것을 눈에 보이는 인간들이 사용하는 숫자를 가지고 계산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요즘 신천지가 조용한데, 숫자가 다 차서 그런가요? 정말 그렇다고요? 눈에 보이는 인간들의 숫자를 집어넣으면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여호와의 증인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하게 되면, 144,000명의 숫자가 다 차면 어떻게 됩니까? 그 뒤에 오는 사람들은 돈을 주던지 해서 자리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죠(ㅋㅋ). 어차피 돈이 최고이니 말이죠.


그러니 인간들의 눈에는 십자가가 눈에 보이지 않는데, 그런데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1절에서 뭐라고 합니까? 자기는 십자가가 눈에 보인다고 한다는 겁니다. 그것은 바로 사도바울 자신이 십자가 안에 들어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죠.


(갈 3: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십자가 안에 들어있는 자의 특징 !!


그러면 우리는 사도바울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십자가 안에 들어있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인가?" 라고 물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죄인 중의 괴수라는 것인데, 즉 "나는 죄인이 된 즐거움으로 산다" 라는 겁니다. 자기가 얼마나 자기 체면과 위신을 포기하지 못하는 죄인인지, 그것은 그리스도가 원천이 되어서, 그분과 관계를 지어서, "아하, 이게 바로 내가 스스로 처리할 수 없는 죄이구나" 라는 것을 파악하게 된다는 말이죠.


그게 바로 구원받은 자의 특징인데, 그래서 우리가 목사가 되던 장로가 되던 집사가 되던, 혹은 그런 직분이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서 흘러나오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과연 무엇일까요? "나는 잘났습니다" 라는 것밖에 나오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내 안에 괴물이 들어있어요 !!


어제 오후에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누가 저를 보고 "이 목사님은 발음이 좋지 않습니다" 라고 했다는 말이죠. 그런데 발음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안에 괴물이 들어있다는 말이죠. 그것이 바로 '자기 의' 라는 것인데, 즉 "나는 잘났다" 라는 겁니다. 그게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나온다는 겁니다.


그것은 저만이 그런 것이 아니고 여러분도 마찬가지라는 말이죠. 왜냐하면 우리는 아담의 자손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잘난 나를 건드리지 마라. 나는 무시를 당하기 싫어. 나는 잘난 존재야. 나 혼자 살겠어" 라고 나온다는 말이죠. "너는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어" 라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 안에 있기 때문인데, 다른 것은 다 손을 대도 이것만은 안 된다는 말이죠. 술을 끊고 담배도 끊고 여자도 끊을 수 있지만, 하지만 이것만은 결코 안 된다는 겁니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즐거움을 우리 인간이 무슨 수로 끊는다는 겁니까?


그러니 신자나 불신자나 똑같은데, 다른 점은 하나밖에 없다는 말이죠. 불신자는 자기 잘난 맛에 살면서 자기가 잘났다고 하는 것이고, 신자는 "이게 바로 너희들이 모르는 죄야" 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을 안다고 하면, 그 사람은 그 어디에 가도 신자이고 성도라는 겁니다.


이놈아, 저리 꺼져 !!


부모가 되어서 자식에게 잘해주고 싶은데, 자기에게 있는 것을 자식에게 주지 누구에게 주겠느냐는 말이죠. 만약에 없어서 자식을 도와주지 못한다고 하면 얼마나 안타깝겠느냐는 겁니다. 그러면 부부간에 서로 싸우는데, "당신은 젊었을 때 좀 벌어놓지 않고 뭐했어?" 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것이 가슴에 맺힌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게 아니라 "이 정도면 되었어. 충분해" 라고 하는 부모는 없다는 겁니다. 물론 자식 앞에서는 그렇게 나올지 몰라도, 돌려보내 놓고는 더 해주지 못해서 안타까워한다는 것이죠. 어느 드라마를 보니, 재벌 집의 딸이 시집을 가서 자기 친정에 와서 20억을 주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장면이 나오는데, 물론 금액이 너무 크니 부모는 줄 수 없다고 하면서 야단을 치는데 말이죠.


아무튼 부모는 자식에게 더 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미안스러워하는데, 그러니 훌륭한 부모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하지만 남의 집 자식에게도 그렇게 합니까? 턱도 없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자기 자식은 자기 것인데, 남의 자식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보이는 이스라엘이 바로 그러한데, 그러니 자기가 제 아무리 복음을 안다고 해도 눈에 보이는 자기 자식을 포기하지 못한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그 자식이 자기의 전부라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스라엘을 보면서도 욕을 할 수가 없는데, 기도할 때 자기 자식을 위해서 기도하지 남의 자식을 위해서 기도하지는 않는다는 말이죠.


이스라엘이 망했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주님에게 기도를 하는데, 그러면 그런 기도를 하면서 자기가 원했던 인생이 자꾸만 생각이 난다는 겁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런 식으로 우리를 구원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가 박혀있는, 구원은 또한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신다는 말이죠.


그런 과정에서 갭이 생기는데, 틈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틈으로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죠. "아하 예수님께서 '내 뜻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하신 것이 이런 뜻이구나" 라고 말이죠. 그러니 아버지의 뜻을 알기 위해서 자기 뜻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다시 정리하면 !!


이제 이스라엘의 비밀을 알았지 싶은데, 다시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이방민족과 비교하라는 것인데, 이방민족은 어떤 민족입니까? 하나님이라는 껍데기를 만들어놓고, 그 안에 자기들의 쓰레기를 온통 다 집어넣는다는 겁니다. 자기들의 욕망과 소망과 망상과 같은, 그런 자기 욕심을 가득 채워놓고 뭐라고 합니까? "신이시여, 나와 거래를 합시다. 내가 헌금을 하니 복을 주세요" 라고 나온다는 말이죠. 


그게 바로 이방인들인데, 그런데 여기에 비해서 정반대가 되는 이스라엘은 어떻게 됩니까?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잔소리를 하시는데, 결국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데, 그리고는 그렇게 해서 망해버리고 만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망한 것을 치워보니 그 배후에는 누가 있다는 겁니까? 너훈아나 이민자와 같은 모창가수들을 다 치우고 나니까, 진짜로 신유가 나타나서 고장난 벽시계를 부르고는 휘날레를 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충분히 다 보여주고, 그게 십자가인데 말이죠. 그 십자가에게 피 흘려서 죽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리고 사흘만에 부활을 하심으로 말미암아서, 그리고 그 십자가가 자기를 위한 십자가임을 알고 거기에 참여하게 될 때, 그런 사람은 오늘밤이라도 주님과 함께 낙원에 있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천국에 가는데, 우리의 뜻대로 하면 지옥에 간다는 말이죠. 주님의 뜻대로 해서 의인이 되고, 주님의 뜻대로 해서 주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살아가니, 지금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주님의 뜻대로 아무런 하자가 없이 잘 되고 있다는 말이죠.


가뭄망명 !!


6월에 비가 오지 않아서 온 나라가 난리가 났는데, 그때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이 지구는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이 알아서 다 하시는데, 자기 것도 아니면서 비가 오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면 정말 곤란합니다. 우리는 이 지구의 주인도 아니고 주인공도 아닙니다" 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7월에는 청주를 비롯한 일부 지방에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난리도 아니었는데, 서울과 부산에도 제법 왔다고 하는데 말이죠. 그런데도 대구에는 오지 않았다는 말이죠. 박근혜 때문인가요? 그래서 이번에 '가뭄망명' 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는데, 즉 가뭄을 피해서 망명을 간다는 겁니다.


그렇게 우리는 비가 오지 않아서 어떻게 합니까? 원망을 하게 되는데, 복음을 알아도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왜 비가 오지 않습니까?" 라고 하는 순간, 즉 불평과 불만이 튀어나오는 순간, 주님께서는 "요런 원망과 불평을 하는 것 봐라" 라고 하시는데, 그러니 우리는 이스라엘과 똑같다는 겁니다. 그게 우리는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데, "왜 대구에는 비가 오지 않습니까?" 라고 말이죠.


그런데 서울로 이사를 갔다고 하면, 대구에 비가 오지 않는 것은 걱정도 하지 않는데, 오히려 고소하게 여긴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사는 서울에 비가 오는 것을 감사하게 되는데, 왜 그렇습니까? 단지 자기가 속했다는 이유 때문에 하나님도 따라와야 한다고 하는, 물론 가짜 하나님인데 말이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내가 십자가에서 죽었잖아 !!


그러면서 짝퉁 하나님을 만들어서 거래를 하려고 하는데, 바로 그런 가짜 하나님을 만들어내는 모습, 그것을 십자가 안에서 비교를 해보면 어떻게 됩니까? 그게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어야 하시는 이유 자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기보다 십자가를 더 사랑한다고 했다는 말이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스라엘의 비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건성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숨겨진 비밀이 십자가인 것을 알고, 그 십자가만 자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17,8,12 오후 5시에 마침.
                                                 이스라엘도 망하고, 미국도 망하고, 한국도 망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