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17 - 그냥 살아요(시간의 3요소)
07,08,21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오늘은 교재 54페이지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보통 '시간' 이라고 하면 하나만을 생각하는데, 그런데 여기에 보면 시간에 대해서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겁니다. 먼저 '크로노스' 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그리고 여기 제일 밑에 보면 '아이온' 이라는 용어도 나오고, 그리고 또 하나의 용어가 있는데, 그게 바로 '카이로스' 라는 겁니다.
일단은 이 3가지에 대해서 설명을 해드리겠는데, 먼저 '크로노스' 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무엇인고 하니, 이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시간인데 말이죠. 그렇다면 이 크로노스라는 시간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그게 사람마다 다들 다르다는 겁니다.
먼저 교재 54페이지를 보겠습니다.
** 예를 들어서, 아침에 산책을 했다고 칩시다. 산책을 했고, 내가 발걸음을 옮겼고, 그리고 산책이 끝난 시점에서 걸린 시간은 10분, 그렇다면 10분이라는 시간은 행동으로 말미암아서 비로소 야기된 시간, 그 10분입니다.
먼저 개인적인 시간, '크로노스' !!
여기서 말하는 10분, 이것이 바로 '크로노스' 라는 겁니다. 즉 우리가 보통 이야기하는 시간개념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이 크로노스가 어떻게 되는고 하니, 시간을 10분이라고 측정을 하니 그게 10분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에 시계가 없다고 하면, 해시계든 물시계든, 아니면 이런 기계적인 손목시계든지, 이런 시계가 없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예를 들어서, 자기가 오래 전에 헤어졌던 친한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래서 자기는 분명히 1시간 정도를 기다렸다고 여겼는데, 그런데 어떤 사람이 와서 시간을 물어보면, 그게 겨우 10분이란 겁니다. 1시간이 아니라 10분이라는 말이죠. 또한 젊은 남녀가 둘이 만나서 재미있게 서로 이야기를 하는데, 그래서 자기들은 10분 정도가 지났다고 여겼는데, 그게 10분이 아니라 2시간이나 지났다는 말이죠.
바로 이것이 '크로노스' 라는 것인데, 즉 우리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시간, 즉 개인적이고 사적인 시간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개인적인 시간이 사회를 구성함에 있어서 문제가 생기는데, 이게 개인과 개인의 만남에 있어서 이런 시간을 가지고 만나면 약속에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죠.
제대로 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 개인적인 시간을 하나의 객관적이고 측정이 가능한 시간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래서 '시계' 라는 것이 등장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는 1시간이 지났다고 여겼는데 1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하면, 그런 경우에 시계가 있다고 하면 자기의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시간을 포기하게 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아하, 내가 그렇게 시간을 느낀 것을 남들에게 강요할 문제가 전혀 아니구나. 나는 분명히 그렇게 느껴도 상대방은 또한 자기 나름대로의 시간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나와 같은 것이 결코 아니구나. 아하, 그렇구나!"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여러분, 지금이 마지막 때입니다 !!
그렇게 인간의 시간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런 시간관을 가지고 성경말씀을 보게 되면, 당연히 오해하게 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베드로후서 3장에 보면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라고 하는데, 예수를 믿으면 처음에는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마치 주님이 오늘 오후에 오실 것 같다는 말이죠.
(벧후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그것은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그래서 "주여, 오서 오시옵소서"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마치 지진이 일어나고, 태풍이 불고, 먹구름이 끼면, 마치 주님이 천사들을 대동하고 나타나고, 죽은 자들은 일어나고, 그야말로 휴거가 될 것만 같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크로노스인데, 즉 개인적인 시간에 불과하다는 말이죠.
물론 목사도 그러한데, 목사는 내일 주님이 온다고 강단에서 고함을 마구 치는데, 교인들은 꾸벅꾸벅 졸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회개하세요. 시대가 악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이란과 팔레스타인을 없애려고 핵폭탄을 무려 200개나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마지막 때의 징후입니다. 그러니 이제 깨어나세요" 라고 해도, 교인들은 반응이 없다는 말이죠.
계속해서 "여러분, 성경에 나오는 무화과나무는 바로 이스라엘인데, 그 이스라엘이 1948년에 독립해서 나라를 세웠다고 하는 것은, 이제 마지막 때가 온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그 마지막 때를 준비해야 합니다" 라고, 요한계시록까지 들먹이면서 외쳐도 교인들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교회에 국한된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다른 교회는 여기에 다들 속아서 넘어가고 있다는 말이죠. 아닌가요? (ㅋㅋ)
성경은, 오직 '묵시' !!
하지만 이 시간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시간은 성경에서 전혀 먹혀들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하나밖에 없는 줄 아는데, 그래서 성경말씀을 그런 식으로 오해한다는 말이죠. 하지만 사적인 시간은 객관적인 시간도 아니고, 물론 성경에서 인정하는 시간도 아니라는 겁니다.
성경에서 인정하는 시간은 오직 '묵시' 밖에 없는데, 지금 제가 3가지 시간을 이야기할 텐데, 처음은 방금 이야기한 '크로노스'이고, 그 다음은 '아이온'이고, 그 다음에는 '카이로스' 라는 겁니다. 이게 우리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3가지 시간관인데, 묵시라는 것은 이 3가지 시간을 넘어서 있고 말이죠. 그래서 묵시까지 합치면 4가지가 된다는 겁니다.
주위 환경에 따라서 변하는 시간 !!
그 중에서 먼저 이 '크로노스' 라는 것은, 방금 이야기를 했지만 개인적인 시간인데, 이것은 각 개인의 감정에 따라서 늘어났다가 줄어들었다가 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수학시험을 칠 때는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물론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의 경우인데, 그렇지 않으면 1분만에 다 끝나겠지만 말이죠(ㅋㅋ).
설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어떤 설교는 시작한지 5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그 시간이 얼마나 긴지 모른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설교는 5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50분이나 되었다는 말이죠. 그것은 바로 크로노스, 즉 개인적인 시간의식 때문에 그러한데, 즉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인간의 시간관은 개인적인 것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 예를 들어서, 친한 사람이 죽었다고 하든지 하는지, 그런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면 자기 시간도 조정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의 시간은 한결 같지 않은데, 주위의 환경에 의해서 계속해서 변화된다는 말이죠. 그러니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는 겁니다. 늘 바뀌는데 말이죠.
목사님, 이제는 공중기도가 무서워요 !!
교회에 다닌 지가 오래되어서 공중기도를 많이 해본 사람은 자기의 기도순서를 기다리는데, 자기의 기도솜씨를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죠. 최근의 정치경제문제까지 언급하면서, 그래서 북한의 핵문제도 기도내용에 집어넣는다는 겁니다. 그러니 당연히 오래할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주위에서 그만 하라고 신호를 보내고 소용이 없는데, 물론 기도를 한다고 눈을 감고 있기에 모르겠지만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기도를 잘했던 그분들이, 우리교회에서 와서는 어떻게 합니까? "이번 오후예배시간에 기도를 좀 해주세요" 라고 하면, 그 소리를 듣고 얼마나 벌벌 뜨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그래서 겨우 몇 마디만 하고는, 곧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라고 하면서 그만 끝내버리고 만다는 말이죠(ㅋㅋ).
교회의 마이크를 잡고서 그렇게 자기의 기도솜씨를 보여주겠다고 다짐을 하던 그분들이, 그런데 우리교회에 와서는 그야말로 속전속결로 기도를 끝내고 만다는 겁니다. 이전에 자기가 다니던 교회에서 할 때는 10분은 기본인데, 그런데 우리교회에 와서는 불과 15초도 넘기지를 못한다는 말이죠. 시작하자마자 그만 마치고 만다는 겁니다.
할매, 나의 믿음을 받아라 !!
바로 그 시간이 무엇인고 하니,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솜씨를 보여줄 때는 시간이 굉장히 빨리 가는데, 자기가 자랑질을 하는 것이기에 말이죠. 왜 부산역 앞에 가보면 전도를 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지요? 처음에는 할아버지만 있었는데, 요즘은 라이벌로서 할머니가 생겨났다는 겁니다. 그래서 둘이 서로 베틀을 한 바탕 붙는다는 말이죠.
그리고 서울의 지하철을 타면, 2호선은 힘들지만 4호선의 경우에는 비교적 조용하기 때문에, 자기의 담력을 테스트하기 위해서 지하철 안에서 노방전도를 한다는 겁니다. 주님 앞에서 자기가 어느 정도의 담력과 믿음이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죠.
물론 그들이 하는 멘트는 간단한데,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갑니다" 라는 것인데, 그리고는 곧 바로 내리고 만다는 겁니다. 물론 에스겔서에 보면, "남들에게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는, 나도 너희를 부끄러워하지 않겠다" 라고 하는데, 그리고 마태복음 10장에도 그런 말씀이 나오고 말이죠.
(마 10: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그렇게 지하철 안에서 자기 자신의 믿음과 담력을 테스트하는데, 정말로 마음 같아서는 가서 한 대 패주고 싶은데 말이죠. 주로 신학교를 금방 졸업한 젊은 전도사들이 그런 짓을 하는데, 가끔은 나이가 50대인 늙은 전도사들도 등장하지만 말이죠.
그런데 이게 정말 공해인데,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전도를 하면서도 자꾸만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데, "내가 지금 제대로 잘하고 있지?" 라고, 그렇게 자기가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서 흐뭇해한다는 말이죠. 그러니 일종의 나르시즘인데, 자기 괘감이라는 겁니다. 남들에게는 피해를 주는 말이죠.
그럴 때 자기는 시간이 굉장히 빨리 가는데, 하지만 듣는 사람은 굉장히 피곤하다는 겁니다. 지하철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면, 자기는 성령을 받아서 전도를 한다고 하니 목사가 되어서 욕을 할 수도 없고, 자칫 잘못하면 성령을 받은 사람을 욕하는 것이 되니 그만 악마가 되고 만다는 겁니다(ㅋㅋ).
이게 '크로노스' 라는 것인데, 그 말이 어려우면 그냥 시간이라고 보면 된다는 말이죠. 인간들의 시간은 이것 하나밖에 없는데, 이것을 가지고 성경말씀을 보니, 그것이 예수님에게 이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즐거움, 즉 자기 정당화에 그치고 만다는 겁니다. 자기의 믿음을 과시하는 용도로서 성경말씀을 해석하게 된다는 말이죠.
두 번째, '아이온' !!
시간에 관한 두 번째가 '아이온' 이라는 것인데, 이런 용어들은 대부분이 헬라어에서 나온 것인데 말이죠. 영어로는 '이온(AEON)' 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을 성경에서는 '세대' 라고 하는데, 갈라디아서 1장 4장이 그 대표적인 경우인데 말이죠.
(갈 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여기에 보면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라고 하는데, 그게 바로 복음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복음은 무엇을 상대로 하는고 하니, 우리 각각의 한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닌데, 그래서 성경에는 개인구원이 없는데, 집단구원밖에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몸을 드린 그 상황이 크로노스가 아니라 아이온이라는 말이죠.
이제 제가 시간을 나눈 이유를 알겠지요? 만약에 우리가 크로노스밖에 모른다고 하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시간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하면, 자기를 위해서 죽은 줄로 알게 된다는 말이죠. 그러니 처음부터 이미 해석이 잘못인데, 개인적인 '나'를 위해서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모든 인간은, 아담의 몸을 벗어날 수가 없어 !!
지난 수요일에도 그런 설교를 했는데, '나' 라는 것은 지하2층이 아닌 지하1층에서 나왔는데, 표면층에서 말이죠. 지하2층에는 '나' 라는 것이 있기 이전에 혼돈, 즉 카오스가 있었는데, 그게 무엇인고 하니, 아담과 악마의 만남이라는 겁니다. 모든 인간은 이 아담의 세트를 벗어날 수가 없는데, 그러니 우리는 아담의 피부 알레르기라는 것이죠. 과학자들은 인간들을 지구의 피부병이라고 하는데 말이죠(ㅋㅋ).
아무튼 우리의 몸은 아담의 몸인데, 그러니 아담의 몸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덩치가 더 커졌다는 겁니다. 그게 로마서 5장에 나오는데 말이죠. 그러니 아담의 몸에서 개인이 나서서 "나는 예수를 믿겠습니다" 라고 한다고 해서, 그게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롬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예수님은 우리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아담과 상대를 하는데, 그래서 주님께서 주신 말씀에 '여자의 후손'에 관한 것인데, 그 여자의 누구의 아내입니까? 아담의 아내라는 말이죠. 즉 하와인데, 그래서 그 이름의 뜻이 생명이고, 반면에 아담은 흙인데, 즉 죽음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성경해석이 처음부터 잘못했는데, 즉 "내가 교회에 왔습니다. 나를 구원해주세요" 라는 것인데, 그러면 주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니가 누군데?" 라고 하는데, 그러면 우리는 "나는 나입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니 이런 발상 자체가, 이런 마음으로 성경을 보게 되면, 구원이고 뭐고 간에 처음부터 엉뚱한 소리를 하게 된다는 겁니다. 성경말씀과는 전혀 다른 말이죠.
그러니 자기가 교회에 나왔으니 구원을 해달라고 하는 것은 개인적인 탐욕인데, 자기에 대한 집착이라는 겁니다. 그것은 어디서 나왔는고 하니까, 지하1층이 아니라 지하2층에 나온 것인데, 지하2층이 지하1층보다 더 깊은데, 거기에서 자아라는 것을 마귀가 만들었다는 겁니다.
원래 자아라는 것은 없고 인간의 몸이 있는데, 이 몸은 아담의 신체가 점점 더 늘어난 것이란 말이죠. 아담의 신체의 다양성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즉 아담이 새끼를 쳐서, 아담2, 아담3, 아담4, 아담5, …, 그렇게 아담의 몸이 계속해서 번성을 했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하면, 우리의 이름은 무엇인고 하니 흙인데, 우리는 흙으로 끝났다는 말이죠. 그런데 우리가 "이 아무개, 김 아무개" 라고 부른다는 것은 결국 무엇을 속이고 있습니까? 자기 이름은 이미 흙으로 확정이 났는데, 그런데 그 흙이라는 이름을 누가 지어주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지어주셨는데, 그러면 창조자가 자기가 지어준 이름을 스스로 포기를 하겠습니까?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
자식들 중에서도 꼭 말썽꾸러기 자식이 어떻게 합니까?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 있는데, 그런데 학교에 가면 그 이름이 부끄럽다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이름을 짓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자기가 그 이름을 복순이에서 혜교로 바꾼다고 해서 호적이 바뀌는 게 아닌데, 자기는 어디까지나 복순이라는 말이죠.
인간의 운명이 바뀌지를 않는데, 그 운명을 '이름' 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름을 그렇게 지어주신 것은, 그 이름대로 살라고 지어주셨다는 말이죠. 그 이름이 흙인데, 즉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라는 겁니다. 이것은 빼도 박도 못하는 우리의 확정된 운명이라는 말이죠.
(창 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어디로 가면 안 된다는 겁니까? 영생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그러니 "교회에 왔으니 구원해주세요. 예수를 믿으니 구원해주세요" 라는 것은 다 헛소리가 되고 만다는 겁니다. 그것은 자기 분수를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말이죠.
구원은, 주의 이름으로 !!
천국에 가는 백성은 주님께서 친히 만드시는데, 그렇게 하려면 무엇을 바꾸면 됩니까? 이름을 바꾸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에 오시게 되면, 자기 이름은 날아가 버리고 누구의 이름이 옵니까? 주의 이름이 오는데, 그러니 주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겁니다.
(롬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러니 그 과정에서 반드시 자기 이름은 탈락하게 되는데, 자기 운명은 자기 운명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주님이 다루시는, 즉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의 몸을 가지고 다루신다는 말이죠. 그게 바로 백부장의 믿음인데, 즉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옵니다" 라는 겁니다.
(마 8:8)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마 8: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의 사람이 되어야 !!
그래서 어제 그런 설교를 했는데, "예수를 믿으면 안 되고, 예수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라고 말이죠. 벌써 다들 잊어버렸지 싶은데, 무슨 말인고 하니, "나는 나인데, 즉 예수를 믿어주는 나를 유지하면 안 된다" 라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나'를 유지하게 되면 곤란하다는 말이죠.
자기가 자기를 관리하려고 하면 한국교회가 이야기하는 모든 것을 다 해야하는데, 선교를 해야하고, 기도를 해야하고, 예배도 참석을 해야하고, 성경공부모임에도 참석을 해야하고, 가정도 모범적인 그야말로 가정이 되어야하고, 그리고 직장에 가서는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또한 산상설교의 말씀도 지켜야하고, 거룩해야하고, 경건해야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믿음도 유지해야 한다고 하면서 난리를 쳐야한다는 말이죠.
우리나라나 특히 북한의 장군들 군복의 가슴에 보면 무엇이 붙어있는고 하니, 그야말로 옷이 늘어나서 주저앉으려고 하는데 말이죠. 그게 바로 훈장인데, 교회에 가서 그런 훈장을 다들 달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훈장이 무거운 짐이 되겠습니까? 가벼운 짐이 되겠습니까? 자기가 사서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는 겁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말이죠.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는 분이 아닌데, 오히려 우리의 것을 빼앗아 가신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빼앗아가야 주셨다는 것을 우리가 느끼게 된다는 말이죠. "구하라, 주실 것이요" 라고 하는데, 무엇을 주십니까? 그게 누가복음에 나오는데, 마태복음에는 좋은 것으로 주신다고 하는데, 누가복음은 뭐라고 하는고 하니, 성령을 주신다고 한다는 겁니다.
(눅 11: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눅 11: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눅 11:11)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눅 11:12)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성령과 배설물 !!
그렇게 성령을 주시게 되면, 기존의 성령에 맞지 않는 것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빠져나간다는 겁니다. 그것을 3글자로 '배설물' 이라고 하는데, 그동안 자기 자랑을 했던 것, 그게 바로 육신의 안목과 이생의 자랑거리라는 말이죠. 그런 것들을 주님께서는 그만 빼앗아 버리신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너보다 기도도 오래 많이 했고 봉사도 많이 했고 성경도 많이 보았다. 아프리카에 있는 선교사에게 헌금도 하고, 그리고 목사님도 너보다 더 많이 섬겼다" 라고 하는 것들, 그런 것들이 다 빠져나가게 된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그런 것들이 있으면 교회가 아니라, 그만 북한군대의 늘어진 장성이 되고 만다는 겁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에 왜 그렇게 별들이 많은지, 교회인지 군대인지 구별이 안 된다는 말이죠. 전부가 다 나름 한 기도를 하고 한 봉사를 한 사람들이라는 말이죠. 성경을 백독, 천독, 심지어 만독까지 간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게 교회인지 지옥인지 구분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러면서 졸병들이 오면 일이라는 일은 다 시키는데, 자기들은 고참이라는 겁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까? 처음부터 이런 시간관을 모르니, 그만 자기의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게 되는데, 그러니 성경말씀이 자기를 구원하는 말씀인 줄 안다는 겁니다. 그것은 누가 속였다는 말도 되겠지만, 아예 자기가 속임을 당하려는 것과도 같은데, 즉 "마귀여, 나를 속여주세요"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니 크로노스, 즉 시간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감정에 불과한데, 그런 개인적 감정으로 구원을 받을 수는 없다는 겁니다. 인간의 감정은 자기를 속이는데, 괜찮은 인간으로 말이죠. 그래서 교회에 눈물을 흘려도 자기 감정에 도취되어서 흘리는 경우가 얼마나 않은지 모른다는 겁니다.
평소에 기도를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그런데 어느 날 새벽기도회에서 그만 한 시간을 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스스로 감격하게 되는데, "나도 드디어 한 시간 기도의 멤버쉽에 들어가는구나" 라고 말이죠. 하지만 그런 것은 자기가 자기에게 속임을 당한 것에 불과한데, 이런 감정을 일소에 박살내는 것이 바로 십자가 사건이라는 겁니다. 즉 "어디서 죄인이 까불어?"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것이죠.
너의 이름은 너의 운명이다 !!
다시 해보겠는데, "이름은 확정이 되었다. 이것은 운명이다" 라는 것인데, 그 이름은 누가 지었습니까? 자기가 지은 것이 아닌데, 주님이 지었기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주님이 지은 이름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말이죠. 즉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냥 흙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는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려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율법을, 즉 말씀을 주셨다는 겁니다. 그렇게 말씀을 주시게 되면 멀쩡해 보이는 우리가 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지를, 즉 "죄는 반드시 죄 값을 치러야 하는데, 그래서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경말씀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자기 자신이 의인이라고 자부하고 있는데, 악한 것과 선한 것을 서로 더하기와 빼기를 해서 말이죠. 그렇게 해서 선한 것이 많다고 하면서 자기는 의인이라고 자부하는데, 그런데 성경말씀만 들이대면 어떻게 되는고 하니, 우리는 "저는 죽어 마땅합니다" 라고, 그렇게 나온다는 겁니다.
사실은 죽는 정도가 아니라 지옥에 가야하는데, 즉 "지옥에 가야 주님의 조치에 부합이 됩니다" 라는 것을 자인하게 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지옥에 가야 하는데, 저주는 우리의 몫이라는 말이죠. 우리가 평생 한 것을 마지막에 계산을 해보면 지옥이라는 겁니다.
우리의 모든 기대는 '올스톱' !!
어제 잠시 언급을 했는데, "예수님의 복음은 언어를 파괴시킨다" 라고 말이죠. "할 말을 잊었지만은" 라고 하는 노래도 있는데, 욥처럼 말문을 닫고 만다는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달라고 하는데, 그런데 복음이 등장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고 하니, 즉 "살아계신 주님이 찾아오게 되면, 우리의 모든 기대가 스톱이 된다" 라는 겁니다.
주님께서 찾아오시면 우리의 모든 기대와 고대는 그만 정지가 되고 마는데, 모든 것들이 갑자기 꽁꽁 얼고 만다는 말이죠. 정말로 주님이 찾아오셨다고 한다면, 그러면 자기가 구태여 어떤 것을 기대한다든지 고대할 이유가 전혀 없어지고 만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가난한 집의 아이가 너무나 수영장에 가고 싶어서 큰 다라이에다가 물을 받아서 놀고 있는데, "나는 수영장에 왔다" 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어떤 사람이 와서 수영장이 딸린 저택으로 데리고 간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그 아이를 수영장에 넣게 되면, 그 아이는 그만 할 말을 잊어버리게 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자기의 소소한 기대와 소망, 즉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가, 즉 남들에게 기가 죽지 않으려고 "나는 이렇게 산다" 라고 하다가, 그런 기대와 소망 속에서 살아가다가, 주님께서 들이닥치게 되면 그 모든 것이 그만 꽁꽁 얼고 마는데, 스톱이 되고 만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말이죠. 주님을 만난 것 자체가 전부인데,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취직을 시키고 시집을 보내고 장가를 보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겁니다. 그러니 무엇이 중요한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말이죠. 즉 인간은 자기 소망 때문에 마귀에게 놀아나고 사기를 당하고 있다는 겁니다.
꿈 깨라. 이제 너희들은 개박살이다 !!
다시 말해서, 묵시에서 시간 속으로 들어오는데, 그러니 침투하는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지금까지는 세례요한이 이 세상을 침노했는데, 이제는 내가 박살을 내겠다" 라고 하셨다는 말이죠.
그러면 세례요한은 뭐라고 했습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라고 했는데, 하지만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도끼를 들고 쳐들어왔다는 말이죠. 즉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박살을 내겠다" 라는 것인데, 이것은 마지막 심판을 의미한다는 겁니다.
그것은 바로 선지자 요엘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서 세례요한이 왔기 때문에 그러한데, 세례요한은 모든 선지자의 오야붕인데, 즉 마지막 선지자라는 겁니다. 그래서 요엘서에 나오는 저주의 내용들이 마지막 때에 이렇게 실현이 되었다는 말이죠.
바로 그때에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소망을 이야기했던, 즉 "하늘나라가 오면 우리 이스라엘은 산다" 라고 했던 자들이 누구인고 하니, 그들이 곧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들이 세례요한이 있던 요단강에 방문을 했겠습니까? 않았겠습니까? 당연히 했다는겁니다.
그러자 세례요한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어른신들, 오셨습니까? 신학자님들, 오셨습니까?" 라고 했습니까? 그게 아니라 오히려 욕을 해버렸는데, "이 독사의 이 새끼들아!" 라고 말이죠. 평소에 감정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러면서 굴러가는 돌멩이들과 비교를 했는데, 즉 "너희들이 회개를 해? 차리리 이 돌멩이들이 하겠다" 라고 말이죠.
(마 3: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마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마 3: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마 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그러니 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본다고 하면 회개할 인간이 전혀 없는데, 왜냐하면 전부다 그들은 오늘 강의대로 하면 크로노스에 빠졌다는 겁니다. 이게 흔히 말하는 시간인데, 즉 개인적인 시간이고, 바깥 환경의 변화를 보면서 느끼는 시간을 의미한다는 겁니다.
세종대왕은 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서 물시계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인류가 처음 만든 시계를 해를 보고 만든 해시계인데 말이죠. 그림자를 보고 맞춘다는 겁니다. 히스기야 왕 때 10도나 뒤로 물러난 적이 있었는데, 그게 해시계라는 말이죠. 해시계의 그림자가 뒤로 물러났는데, 그리고 히스기야 왕은 15년을 더 살았다는 겁니다.
물론 그런 객관적인 것도 있지만, 인간이 늘 해를 쳐다보고 사는 것은 아닌데, 몸의 느낌으로 산다는 말이죠. 그런 자기 몸의 느낌이니, 개인적인 크로노스가 된다는 겁니다. "밥 때가 다 되었지? 뭐, 아직 오후 4시라고? 그런데 내 몸은 왜 배가 고프지?" 라고 하는데, 자기가 그렇게 느낀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런 자기의 느낌으로 교회에 와서는 "나를 구원해주세요" 라고 한다면, 아니 예수님이 무슨 자기의 시다바리도 아니고, 도대체 그게 무엇이냐는 겁니다. 그러니까 뭔가 이 자체를 부정을 당해야 한다는 말이죠. 자기의 느낌이 전부가 전혀 아니라는 겁니다.
두 번째, 다시 '아이온' !!
이제 '아이온'에 대해서 살펴보겠는데, 이것을 아까 '세대' 라고 했는데, 이게 로마서 12장에 나온다는 말이죠. 2절에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라고 한다는 겁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러면 이 '세대' 라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고 하니, 에베소서 2장에 보면 무서운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세대를 장악하고 있는 악마에게 너희는 사로잡혔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엡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들 !!
그리고 에베소서 6장에 보면,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들과의 싸움이다" 라고 하는데, 여기서 공중의 권세를 잡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잡았다는 의미라는 말이죠.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리고 그것을 골로새서 1장에서는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이라고 하는데, 이전에도 이야기를 했지만 과학적으로 확인이 안 되는 것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게 과학의 문제인데, 과학은 눈에 보이는 것들만 탐구해서 거기서 진리를 뽑아낸다는 말이죠. 그런데 성경은 그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들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도 그리스도를 위해서 창조되었다고 한다는 겁니다.
(골 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물론 그 보이지 않는 것에는 악마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래서 로마서 8장에서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라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권세자는 악마라는 말이죠. 결코 악마도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다는 겁니다.
(롬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러니 복음이 우리를 찾아오게 되면, 우리의 기대가 그만 스톱이 되어야 하지를 않겠습니까? 우리의 사소한 걱정거리들도 그렇고 말이죠. 집에 가스불을 잘 끄고 왔는지 켜놓고 왔는지, 그런 것에는 이제 신경을 좀 그만 쓰자는 겁니다(ㅋㅋ).
부산 갈매기, 부산 갈매기 ♬
요즘 젊은 사람들이 야구를 많이 좋아하는데, 그러면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가을야구를 해야한다는 겁니다. 정규시즌에서 5등 안에 들어서 말이죠. 물론 삼성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인데, 물론 롯데는 '거인의 진격' 이라고 하면서 지금 난리지만 말이죠.
그게 자기들의 종교인데, 이렇게 인간은 뭔가 기대하는 것이 있는데, 자기가 미는 것이 있다는 겁니다. 또한 월드컵 예선전을 하게 되면, 아마 24일이지 싶은데 말이죠. 지금 우리나라가 2등인데, 아슬아슬하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 세상 자체가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들이 던진 미끼에 계속해서 말려들고 있다는 말이죠.
저 땅을 주옵소서 !!
여기에 대해서 "목사님, 그것은 세상이니 그렇고, 교회는 그렇지 않지 않습니까?" 라고 한다면, 교회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목사가 "여러분, 저 땅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지금 주차장이 좁은데, 그러니 저 땅을 구입하기 위해서 기도합시다" 라고 한다면, 그게 바로 악마가 하는 이야기라는 말이죠.
흔히 목사들이 "예배당은 신축하고, 교육관을 증축하고, 주차장을 넓히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합시다" 라고 하는데, 그것이 말이 됩니까? 하늘나라는 공간적 개념이 아닌데, 하늘나라는 결코 확장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묵시이기 때문에 말이죠.
이렇게 사람이 자기의 개인적인 인식을 가지게 되면, 시간은 크로노스가 전부이고, 또한 공간은 지금 자기가 딛고 있는 것이 전부라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 나라라고 하면, 지금 자기가 살고있는 나라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런 식으로 해서 기독교 국가가 늘어나면,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고 여긴다는 말이죠.
그래서 지도를 펼쳐놓고 "기독교 국가가 많은가? 아니면 이슬람 국가가 많은가?" 라고 하는데, 이것은 마치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이겨라, 이겨라. 기독교 국가 이겨라!" 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러니 이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프로야구팀을 응원하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겁니다.
십자가 복음으로 뽑아 !!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는데, 그런 예수님께서 자기의 할 일을 다 하지 못하고 실패할 리가 있겠습니까? 전혀 없다는 말이죠. 그것을 믿지 못한다면 예수님을 믿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목표는 온 세상을 기독교 국가로 만든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어디 장로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기독교 국가가 되는 겁니까? 전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욕망에서 나온 것인데, 그러면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라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영생을 주기로 작정한 자들만 뽑아서 데리고 가신다는 말이죠.
제가 어릴 때 집에서 콩나물을 키웠는데, 그래서 콩나물이 필요하면 어머님이 콩나물을 뽑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옆에서 지켜보니 왕창 다 뽑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만 골라서 뽑는다는 말이죠. 그렇게 필요한 것은 주님만이 아시는데, 우리는 모른다는 것이죠.
물론 목회자도 모르는데, 이것은 목회자가 판단하고 말고 할 문제가 전혀 아니라는 겁니다. 목회자가 뽑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팬클럽인데, 자기의 노후대책을 위해서 말이죠. 그렇게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서 돈이나 빼먹겠다는 추하고 고약한 심보라는 말이죠.
그러면 주님께서 뽑는데 있어서 그 뽑는 방법이 무엇인고 하니, 사도바울에 의하면 그게 바로 십자가 복음이라는 겁니다. 그야말로 어리석고 거칠기가 짝이 없는 십자가라는 말이죠. 인간의 모든 행함을 다 거부하는데, 오직 십자가의 능력으로만 뽑는다는 겁니다.
그렇게 뽑을 때 가짜들은 들통이 나는데, 목사든 장로든 신학자든 간에, 그리고 교회에 평생을 다녔던 간에 말이죠. 그리고 복음으로 뽑을 때는 다들 스스로 그 복음을 거부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그동안 자기 구원을 위해서 모아놓은 정보와 지식과 노력이 한 순간에 거들이 나고 말기에 말이죠. 평생동안 아무런 짝에도 소용이 없는 짓거리를 해왔는데, 그런 쓰레기만 다 주워 모았다는 겁니다.
치매에 걸린 노인네의 집에 가면 온갖 동네 쓰레기들을 다 모아놓는데, 그래서 구청에서 나와서 청소를 하면 트럭 2대 분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것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인데, 온갖 쓰레기들이 가득하다는 말이죠. 그야말로 몸에 훈장들이 주룩주룩 달려있는데, 그래서 몸 자체를 갖다 버려야 한다는 겁니다.
왜 그런고 하니, 우리가 건전하다고 하면서 만든 것이 이 세대가 만든 쓰레기인데, 즉 악마가 준 종교 쓰레기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경건해 보이고 거룩해 보이기 때문에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그래서 전부 다 자기 집에 가지고 온다는 겁니다. 물론 목사가 준 것인데, 돈을 내고 그것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모아서 바치면 구원을 받는 줄 안다는 겁니다.
지금도 안식교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마지막에는 '조사심판' 이라고 해서, 그렇게 해서 만든 학교가 삼육대학교인데, 이번에 퇴출대상이라고 하는데 말이죠. 그들이 주장이 바로 그러한데, 즉 "예수님을 믿는 것은 은혜로 믿지만, 구원은 여러분이 앞으로 행함을 잘해야 합니다. 성령을 받아도 그만 내침을 받아서 탈락이 되면 끝입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 교리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고 하니까, 자기만 구원되면 된다고 하는 개인구원이라는 말이죠. 이런 대표적인 곳이 바로 유병언의 구원파인데, 즉 "도를 아십니까?" 라고 하는 식으로, "당신은 언제 구원을 받았습니까?" 라고 하는데,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 소리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평소에 얼마나 개인구원에 미쳐있는지를 알고 하는 소리인데, 즉 "당신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우리가 가르쳐줄 테니, 우리 교단에 들어오세요"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들이 누구에게 배웠겠습니까? 기성교회에서 배웠다는 말이죠.
우리나라의 기독교 초창기에 유명한 전도자가 무엇이라고 했는고 하니,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과연 그게 복음적입니까? 그게 그만 한국교회의 기초가 되고 말았는데, 그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이라고 하면, 그 주인공이 누구입니까? 바로 '나' 라는 겁니다. 그것을 두고 종교라고 하는데, '기독교' 라는 이름의 종교라는 겁니다. 주님께서 흙으로 돌아가라고 이름을 그렇게 지어주었으면, 그러면 우리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이름을 지어주신 분이 주님이니 말이죠.
그렇다면 구원을 받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름이 바뀌어야 하는데, 하지만 그 새로운 이름을 우리가 요청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흙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신 그분이, 바로 그분이 우리에게 '예수' 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게 되면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사람을 아무리 많이 죽이고 교도소를 자기 집처럼 들락거린다고 하더라도, 이미 확보된 천국에 가는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는 겁니다. 즉 주의 이름으로 바뀌지를 않는데, 주의 이름으로 교도소에 가지 않는 것이 아니고 말이죠. 주의 이름으로 가야 한다면 가는 겁니다.
우리는 막 살고, 주님은 막 패고 !!
서울에서 강의를 하는데 어떤 사람이 질문하기를, "이 목사님은 막 살라고 하셨는데, 그런데 성경에는 그런 내용이 없지 않습니까? 막 살아도 됩니까?" 라고 했다는 말이죠. 하지만 그 사람은 빠트린 것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우리는 막 사는데, 그러면 이 세상의 권세를 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주님인데, 주님께서는 막 사는 인간을 막 팬다는 말이죠.
남들은 과속을 해도 걸리지 않는데, 그런데 자기는 막 산다고 하면서 막 밟다가 그만 경찰에게 걸렸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경찰을 누가 불렀습니까? 당연히 주님인데, 그러니 우리는 막 살고, 주님은 팍 팬다는 겁니다(ㅋㅋ). 그러니 막 패는 것을 수용해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 막 산다는 말이죠. 남들은 걸리지 않는데, 자기는 걸린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긴다고 해서 얼마나 패는지 모르는데, 하지만 이방민족은 아무리 우상을 섬겨서 건드리지 않는다는 말이죠. 이스라엘만 얻어맞는데, 바로 그렇다는 겁니다. 다른 민족들은 가만히 있는데, 왜 이스라엘만 그렇게 얻어맞아야 하는 겁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은 죄가 없으면서도 죄 값을 치렀는데, 그 예수님의 모습을 이스라엘은 단체로 보여준다는 겁니다.
그래서 개인구원이 없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교회라는 단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움직여야 하는데, 자기 몸이 아니라 우리 몸인데, 즉 머리가 주님이고 우리는 그 지체라는 겁니다. 그러니 우라는 무엇을 해도 우리에게 주어진 이름, 즉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어떻게 해서, 지옥에 가야하는 우리를 천국에 가도록 하셨는지, 거기에 대해서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다는 말이죠.
'성경' 이라는 책은?
그러니 성경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 보는 책이 아니라, 이미 구원이 된 사람이 보는 책이라는 겁니다. 그래야 성경말씀이 이해가 된다는 말이죠. 즉 "내가 얼마나 엉터리였으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야만 하시는가?" 라고, 그것을 확인하고 찾는 책이 바로 '성경' 이라는 책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성경을 연구해서 구원을 받는 일은 없는데, 이미 성령에 의해서, 성경은 성령에 의해서 쓰여졌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 성경의 내용을 풀이할 때도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에 의해서만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전혀 알 수가 없다는 말이죠.
그래서 성경책은 믿지 않은 자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데, 절의 스님이라든지, 그런 자들이 성경책을 보면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참 착하네. 이웃을 사랑하고 하시는구나. 그러니 사랑하면 되겠구나" 라고 하는데, 그게 바로 지옥에 가는 성경해석이라는 겁니다. 자기는 멀쩡하다는 것인데, 죄가 없고 정상이라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너는 죄인이야" 라는 책을 가지고, "그래, 바르게 살게"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엉터리냐는 말이죠. 이것이 세대, 즉 아이온과 관련이 있는데, 이 '세대' 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고 하니, "너는 어쩔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세상자체에서 니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라는 겁니다.
웰캄 투 동막골 !!
'웰캄 투 동막골' 이라는 영화를 보면, 제가 이 영화를 여러 번 언급하는데 말이죠. 이 영화에 재미있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머리에 해바라기를 꼽고 다시는 약간 이상한 그 아가씨가 사는 동네는 사상이나 이념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말이죠.
그 마을은 민주주의인지, 공산주의인지, 그런 것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만 전쟁에 휘말리게 되니 어떻게 됩니까? 단지 남쪽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만 인민군에게 당하고, 그리고 나중에는 그만 유엔군에게 폭격을 당한다는 겁니다. 그게 마지막 장면인데 말이죠.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가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취미가 아닌데, 단지 우리가 태어난 장소가 '아이온' 이라는 겁니다. 아이온 속에서 나름대로의 크로노스로 살아간다는 말이죠. 즉 우리는 이 세대에 태어났다고 하는 그 이유 때문에, 이 세대의 죄의 영향을 옴팍 다 뒤집어 섰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듣고 보는 것이 다 죄에 관한 것들뿐인데, 그것밖에 없다는 말이죠.
공부를 잘해야, '출세'를 할 수 있어 !!
예를 들어서, 부모가 되어서 자식에게 "이놈아, 공부를 이렇게 해서 되겠나? 공부를 잘해야만 출세를 할 수 있어" 라고 한다면, 여기서 '출세' 라는 말은 어디에서 나온 겁니까? 이 세대에서 나온 것인데, 엄마는 그것을 무심코 이야기를 했는데, "니가 공부를 못하면 거지가 되고 말아. 공부를 잘해야 출세할 수 있어" 라고 말이죠.
그러니 지금 엄마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이 세대에서 멸망이 되는 요소를 자기 입으로 발설하고 말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엄마는 그것을 압니까? 남들도 다들 그렇게 하니까, 자기는 정상적으로 가정교육을 훌륭하게 했다고 여기게 되는데, 물론 착각이지만 말이죠.
그렇다면 그것이 과연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도 통할까요? 주님의 거룩에 합당하느냐는 겁니다. 전혀 그렇지가 않는데, 자기는 굳이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라고 여기지만, 하지만 모든 것들이 다 죄라는 겁니다. 성경말씀을 통해서 보게 되면 말이죠.
크로노스 인간형 !!
'카이로스'를 이야기하기 이전에, 크로노스와 아이온을 가지고 예를 들어보면, 여기서 각각의 인간형을 따져보면 어떻게 됩니까? 특히 이 크로노스라는 것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서 미래로 간다는 말이죠. 그런데 이 미래라는 것은 미완료인데, 그래서 크로노스 속에서 인간은 자기를 항상 불완전한 인간으로 본다는 겁니다. 크로노스가 그런 인간형을 만들어낸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봉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불완전한 '나'를 완전한 '나'로 만들어달라는 겁니다. 즉 "저는 이런 것이 미흡하고 모자랍니다. 이 말씀은 지키겠는데, 저것은 지키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니 완전한 나로 만들어주세요. 그러면 하나님에게 감사하겠습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렇게 해서 자기가 완전하게 되면, 자기는 당당하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이죠.
이것이 바로 크로노스가 만든 인간형인데, 그런 불완전한 인간을 완전한 인간으로 만드는데 있어서, 여기에 동원되는 단어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사랑이고, 지성이고, 섬김이고, 봉사이고, 교육이고, 교제이고, 예배이고, 그렇다는 말이죠.
그러면 교회에 와서 사랑을 하고, 교회에 와서 성경공부를 하고,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은 결국 불완전한 자기를 그런 것들을 통해서 완전한 자기로 만들겠다는 것인데, 그것을 위해서 자기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교회나 성당이 그렇게 해준다고 믿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요셉을 본받으세요 !!
그러면 성경말씀은 뭐라고 합니까? 그게 과연 성경의 뜻입니까? 목사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설교가 이런 틀을 충족시켜주기 위해서 나온다는 말이죠. 그래서 뭐라고 합니까? "여러분, 요셉을 본받으세요.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처음에 요셉이 고난을 받는 것을 불완전한 상태로 보고, 그리고 나중에 국무총리가 된 것을 완전한 상태로 본다는 말이죠. 그렇게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꿈을 꾸도록 만드는데, 교회에 나와서 말이죠. 즉 "나도 기도를 열심히 하고 순종하게 되면, 국무총리의 복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라고 하는, 그런 헛된 꿈을 계속해서 꾸게 만든다는 겁니다.
그리고 욥의 경우에도 뭐라고 합니까? 욥이 처음에 얼마나 고난을 받았는지 모르는데, 그런데 참고 인내하니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고 하니, 욥의 재산이 두 배가 되었고, 심지어 낳은 자식들도 두 배나 더 잘되었다는 겁니다. 딸의 경우에는 인물도 두 배나 더 예뻐지고 말이죠.
그러니 욥기를 설교하는 목사나 듣는 교인들이나 모두 다 꿈을 키우는데, "그래, 이 교회는 긍정적인 교회야. 꿈이 있는 교회야. 나의 소망을 이루어줄 거야. 아낌없이 헌신하고 돈을 바쳐야지" 라고 하면서 말이죠. 교회가 그런 식으로 미래를 향해서 날개를 펴라고 하는데, 두 날개를 말이죠. 물론 목사가 그렇게 하는 것에는 꿍꿍이속이 다 있는데, 그 돈으로 자기 노후대책을 세운다는 겁니다.
이놈아, 죽어라 !!
그러니 우리가 왜 시간이 중요한지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이 세대에 속한 크로노스 인간형이기 때문에 그러하다는 말이죠. 이미 하나님께서 "너희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라고, 즉 "죽을 인간아, 죽어라" 라고 했던 이 세대에서, 그만 마귀가 우리의 욕망을 부추겨서 이런 인간으로 다 만들어 놓았다는 겁니다. 긍정적 인간, 적극적 사고방식, 즉 "하면 된다. 꿈을 꾸어라. 입을 벌려라" 라고 말이죠.
이것이 아니라고 하면, 그러면 성경의 뜻은 무엇일까요? 이것이 악마적이라고 하면, 그렇다면 성경의 뜻은 무엇이냐는 겁니다. 제가 처음에 이야기를 했는데, "주님은 주시는 분이 아니라 빼앗는 분이다" 라고 말이죠. 불완전한 우리를 십자가로 데리고 가서 죽여버리는데, 우리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죽이신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너는 인간이 아냐. 매일같이 꿈이나 꾸고,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원하는데, 그것은 내가 원했던 인간이 아냐. 그러니 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자"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아니하면 주님의 영생을 없다는 말이죠.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나는 누구인가?
그렇게 주님은 우리를 죽게 만드시는데, 이렇게 이야기하면 교인들은 뭐라고 합니까? "목사님, 너무 비관적입니다" 라고 하는데, 하지만 전도서의 주제가 무엇입니까? 허무라는 말이죠. 그러면 "너무나 허탈합니다. 너무나 절망적입니다. 그렇게 하면 교회가 되겠습니까?" 라고 하는데 말이죠.
하지만 그렇게 자기 자신을 너무 비관적이고 절망적으로 만든다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가진다는 것은, 그것은 전혀 자기에 대한 주제파악이 되기 않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자기가 과연 어떤 존재인지, 거기에 대해서 누구로부터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말이죠.
물론 악마에게서는 "너는 하면 된다" 라는 소리는 들었는데, 긍정적으로 말이죠.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왜 죽으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죄인은 이런 꼴이 난다" 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인데, 즉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겁니다.
그러니 "버림을 받을 인간은 버림을 받아야 한다" 라는 것을 그동안 자기가 몰랐는데, 하지만 그것이 자기의 참된 모습이라는 겁니다. 그러한 자기의 참된 모습을 보여주게 되면, 그러면 자기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다 날아가 버린다는 말이죠. 즉 "그동안 가짜로 행세한다고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라고 하게 된다는 겁니다.
아, 카이로스 !!
그것을 짧게 이야기를 하면, "너는 죄인이야!" 라고 할 수가 있는데, 이 소리를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듣는 순간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모든 것이 다 감사함이고, 모든 것이 말할 수 없는 다 아름다움이라는 말이죠. 모든 것이 우리의 분에 넘치고 넘치는 주님의 은혜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 순간 우리는 군지렁거리고 말고 할 이유가 전혀 없어지는데,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이 다 주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 그것이 그 짧은 순간에 그만 완벽하게 완성되고 만다는 겁니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바로 세 번째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 '카이로스' 라는 말이죠.
펄벅의 '동풍, 서풍' !!
미국 사람으로서 중국에 살았던 유명한 여자 소설가가 있는데, 그 이름이 '펄벅' 이라고, 소설 '대지' 라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데 말이죠. 그녀가 지은 소설 중에 보면 '동풍, 서풍' 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소설의 배경은 1900년대 초기의 중국인데 말이죠.
거기에 보면 사랑하는 한 쌍의 남녀가 부부로 등장하는데, 남자는 서양의학을 공부했고, 반면에 여자는 전통대로 어릴 때부터 발을 꽉 묶은 채로 살아왔다는 겁니다. 그것을 '전족(纏足)' 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발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완전히 중국의 전통에 얽매여 왔음을 의미한다는 말이죠.
그러던 어느 날 남자가 "나는 당신이 신세대의 신여성이었으면 좋겠다" 라고 요구를 하는데, 그러자 여자는 자기가 평생을 해왔던 전족을 떼어낸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전족이 이미 피부와 같이 붙어서 제거하려고 하니 너무나 아픈데, 그래서 그 여자는 "앞으로 이것보다 더 아픈 것이 있을까요?" 라고 하는데, 그러면서도 아픔을 참고 떼어낸다는 말이죠.
너무 너무 아파요 !!
제가 왜 이 소설을 언급하는고 하니, 사랑하는 자가 원하는, 그것을 '오는 세대', 즉 주님의 세대라고 할 수 있는데, 쉽게 말해서 천국이라는 겁니다. 그 천국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할 때, 그러면 우리는 옛 세대, 에베소서 2장에 보면 모든 세상 권세를 악마가 쥐고 있다고 하는데, 그런 옛 세대에서부터 우리를 떼어낼 때, 우리는 아플까요? 아프지 않을까요? 당연히 아프다는 겁니다.
(엡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다시 말해서, 기도해서 복을 받고, 헌금해서 복을 받고, 목사를 섬겨서 복을 받고, 그것을 모두 떼어내는데 아프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떼어낼 때 무엇도 같이 떼어내는고 하니, "나는 이제 더 이상 내 욕망과 내 욕구를 위해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게 되는데, 죄인이 주제에 무엇을 달라고 하느냐는 겁니다.
그것이 마태복음 6장에 보면 나오는데, 이방인들의 기도특징이 무엇입니까? 중언부언하는 것인데, 즉 무엇을 자꾸만 달라고 한다는 말이죠. 하지만 예수님을 뭐라고 하십니까? 참된 기도는 그것이 아니라, 진짜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를 이미 아신다는 겁니다. 누가 말인가요? 바로 그것을 신세대인 남편이 안다는 말이죠.
(마 6: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마 6:8)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래서 "구하라. 주실 것이요" 라고 했을 때,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신다는 겁니까? 신세대에 필요한, 즉 천국에 필요한 성령을 주신다는 겁니다. 그렇게 성령에 오게 되면, 우리의 옛날 것들은 어떻게 됩니까? 우리의 가슴이 주렁주렁 달린 훈장들을 다 떼어내게 되는데, 그게 몹시 아프다는 겁니다. 다시 흙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아픈지 모른다는 말이죠.
벼락을 맞아봐야 !!
예를 들어서, 예수를 잘 믿는다고 소문이 났는데, 그런데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가다가 벼락을 맞아보라는 겁니다. 벼락을 맞아서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른다는 말이죠. 그런 부끄러움을, 그런 창피를 이겨내야 한다는 겁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의 앞에서 나는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라고 했는데, 이 십자가 복음, 즉 거저 주시는 은혜 외에 그 어떤 것을 우리가 더 바랄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가진 이 복음의 기쁨, 이것이 세상의 기쁨에 밀리면 안 된다는 말이죠. 이 세상의 그 어떤 기쁨도 복음의 기쁨을 이길 수가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 자들은 그것이 안 되기 때문에 늘 불완전 속에서, 혹은 불안정 속에서 살아가는데, 그래서 결핍을 느끼는데, 그런 결핍을 느끼는 만큼 악마가 시키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혹시 그렇게 하면 모자라는 것을 채워져서 완성될까 싶어서 말이죠. 즉 자기가 원하는 기대에 도달이 될까 싶어서 애를 쓴다는 말이죠. 그것이 바로 아이온, 즉 세대 속에 있는 자들의 모습이라는 겁니다.
다시 정리하게 되면, 이 세대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불완전에서 완전을 지향하는데, 왜 그게 미래이니 말이죠. 그렇게 '과거-현재-미래'로 되는 것을 크로노스, 즉 시간, 혹은 시간감각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가지고 교회에 와서 하나님에게 도움을 얻어서 완전해지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개인구원과 관련되어서 그렇다는 말이죠.
세 번째로, '카이로스' !!
그러면 마지막 세 번째로 '카이로스' 라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이것은 번개, 혹은 벼락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벼락을 맞으면 기분이 좋을까요? 아니면 타버립니까? 몽땅 타버리고 만다는 겁니다. 주님께서는 그렇게 타버리라고 벼락을 때린다는 말이죠. 벼락을 맞아서 시커멓게 된 죄인이 되라고 벼락을 내리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카이로스, 즉 벼락이 떨어지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평소에 무엇을 해야합니까? 착해야 합니까? 아니면 계속해서 죄를 지어야 합니까? 계속 죄를 지어야 하는데, 논리가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사실은 착해봐야 그게 더 교묘하고 악한 죄이지만 말이죠.
그러면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언제 아는고 하니, 주님이 내려치시는 벼락을 맞아봐야 비로소 안다는 겁니다. 자기는 평소에 매우 평범한 사람인데,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그리고 설거지를 한다는 말이죠. 어떻게 여러분은 설거지를 하지 않습니까?
의도가 없는 행동은 없어 !!
그렇다면 그것이 죄입니까? 아닙니까? 그게 죄인데, 하지만 그렇게 설거지를 하는 것이 죄라고 하는 논리가 이 세대에서는 마련되어있지 않다는 겁니다. 우리가 아는 바로는 밥을 먹었으면 치우는 것이 당연한데, 먹은 것을 치우지 않는 것이 오히려 죄라는 말이죠. 그게 우리가 아는 전부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벼락을 얻어맞게 되면, 그것이 죄를 지어서 죄가 아니고, 자기의 원천을 알게 된다는 말이죠. 즉 자기가 죄인으로 태어났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설거지를 하더라도 어떻게 하는고 하는고 하니, '우당탕탕' 하면서 하게 된다는 겁니다(ㅋㅋ).
그러니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때, 그게 죄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구별을 하는고 하니, 그것은 모두가 그 사람의 의도와 관련이 되어있다는 겁니다. 우리 인간에게서는 의도가 없는 행동은 나오지 않는데, 모든 것은 다 자기 나름대로의 의도가 깔려있다는 말이죠.
여보, 사랑해 !!
제가 이번 토요일에 결혼식 주례가 있는데, 그쪽에서 뭐라고 하는고 하니, 기독교를 빼고 주례를 해달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빼고 할 예정인데, 녹음을 해서 올릴 테니까 들어보라는 말이죠. 저는 주최측에서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는데, 그렇다고 해서 지금 미리 이야기를 해버리면 재미가 없어서 안 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아내를 사랑한다" 라고 했을 때, 물론 그럴 리가 없는데 말이죠. 아무튼 어느 날 아내를 보고 "여보, 사랑해!" 라고 한다면, 여기에는 반드시 무엇이 들어있는고 하니, 뭔가 캥기는 일을 했다는 겁니다. 분명히 사고를 쳤는데, 친구에게 빚 보증을 썼던지 말이죠.
그러니 우리 인간은 행동을 할 때 의도가 없이 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그게 이 세대의 것을 더 얻고자 하는 것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래서 죄가 된다는 말이죠. 그러니 설거지를 해도 설거지가 그냥 설거지가 아니고 반드시 의도가 있는데, 설거지를 빨리 하고 나서 어디 갈 곳이 있다는 겁니다.
제가 옛날에 대구의 비산동에서 라디오를 틀어놓고 살 때, 라디오에서 하는 드라마가 있는데, 최희준의 '하숙생' 이라는 노래가 나오는 말이죠. 그래서 그것을 듣기 위해서 고모 3명과 엄마가 설거지를 얼른 끝내고 나서 드마라를 듣기 위해서 오는데, 그때는 설거지를 성의가 없이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는 의도가 있는데, 빨리 드라마를 들어야하니 말이죠.
완전한 '나'에게로 접근하기 위해서 !!
그렇게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은 무엇인고 하니, 불완전한 자기를 보다 더 완전한 자기로 만들려고 하는 것인데, 그 일을 행함으로서 말이죠. 그렇게 완전한 '나'에게로 서서히 접근해가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그게 바로 크로노스이고, 또한 이 세대에 갇혀있는 죄가 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집사님의 아들이 수능을 앞두고 있는데, 그러면 시간이 더 없을 텐데 교회에 더욱 자주 나온다는 말이죠. 이전에는 주일 낮에도 겨우 나왔는데, 이제는 오후시간에도 나오고, 또 수요일에도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면 목사는 눈치를 채는데, 성적이 좋을 것 같으면 교회에 나오지를 않는데, 점점 더 점수가 떨어진다는 말이죠.
그러니 인간은 기도를 해도, 그 기도에는 당연히 의도가 있게 되는데, 그러니 기도를 해도 죄가 된다는 겁니다. 물론 처음에는 그 의도를 드러내지 않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어쩌고저쩌고" 라고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주님은 모를 리가 없는데, 목사도 아는데 주님이 모르겠습니까? 그런 괜찮은 멘트를 날리는 이유를 다 알고 있는데, 뭔가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것을 말이죠.
카이로스와 벼락 !!
제가 지금 카이로스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렇게 밑밥을 길게 깔고 있는데 말이죠. 그러면 이 '카이로스' 라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아까 제가 이 카이로스를 꺼내면서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혹시나 기억이 납니까? 벼락을 맞는 것이라고 했다는 말이죠.
그런데 이게 어려운데, 왜냐하면 벼락은 맞고 싶다고 해서 맞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벼락도 정작 맞지 않았으면서, 다 찢어진 옷에 시커먼 얼굴을 하고, "나는 벼락을 맞았다" 라고 하면서 자랑을 하면 됩니까? 안 된다는 말이죠.
무슨 말인고 하니, 정작 성령을 받지도 않았으면서, 성경에도 보니 성령세례가 나오고, 또한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니, 교회에 나와서 흉내를 낸다는 겁니다. "저는 부족합니다" 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몸이 아파도, "주여, 아픈 것도 감사를 드립니다" 라고 하는데, 무슨 자기 몸을 자학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그냥 살자 !!
그런데 진짜 벼락을 맞은 사람이라고 하면, 그렇게 흉내내는 것조차도 자기가 보기에 너무나 지저분하다는 겁니다. 벼락을 맞은 사람은 그냥 사는데, 오늘 강의제목은 바로 이것인데, "그냥 살자!" 라고 말이죠. 그러니 제발 그냥 사시기를 바랍니다. 제발 기독교나 종교노름을 하지 말고, 그냥 살면 된다는 겁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닌데,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도 주님이 다 하셨다는 말이죠. 그런데 왜 자기가 되지도 안 되는 연출을 하고 연기를 하느냐는 겁니다. 지금까지 그냥 살아왔다고 하면, 계속해서 그냥 살면 된다는 말이죠. 주님께서 다 알아서 하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무슨 자기가 테크닉을 발휘하려고 하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 테크닉이 아니라 그냥 사는 사람이 바로 벼락을 맞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성령의 벼락을 말이죠. 그렇다면 벼락을 맞은 사람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살펴보겠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사도바울이라는 겁니다.
로마서 8장 9절에서 11절을 보겠는데, 누가 한 번 읽어보세요.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롬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
여기 9절에 보면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라고 하는데, 즉 벼락을 맞았다는 것인데, 그러면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라고 하는데, 그러니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거기에 대해서 주님께서 따지지 않겠다는 겁니다. 육신에서 나온 행동에 대해서는 말이죠.
그렇다면 주님은 무엇을 보십니까? 영에서 나온 행동이 무엇인지를 보시는데, 자기에게 영이 있다고 하면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게 10절과 11절에 보면 나오는데, 그래서 여기 10절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니 성령이 있는 사람은 자기의 순간적인 행동에 의해서 악하고 착한 것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하든 말든 간에 주님께서는 그 사람을 전체로 보신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죽은 자인데, 그렇게 주님께서 "너는 죽은 자다" 라고 하면, "예, 알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죠.
너희는, 죄로 인하여 죽은 자다 !!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죄로 인하여 죽은 자다" 라는 겁니다. 이렇게 몸이 있다면, 우리의 이 몸은 두 가지를 보여주는데, 먼저 하나는 숨은 쉬고 있지만 죄로 인해서 죽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그래서 '우당탕탕' 하면서 설거지를 한다는 겁니다. 즉 죄로 인해서 죽어야 마땅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설거지를 하는 몸이 된다는 말이죠.
그래서 여기 10절에서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라고 한다는 겁니다. 또한 그 다음에는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라고 하는데, 즉 설거지를 하는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설거지를 하는 것이 의가 되도록 해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주님은 바쁜데, 설거지를 하는 죄를 설거지를 하는 의로 바꾸어주신다고 말이죠. 왜냐하면 그 안에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그리고 11절에 보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라고 하는데, 여러분은 이 말씀을 들으니 기분이 좋습니까? 이 말씀을 듣고도 집에 가스불을 켜놓았는지, 아이가 시험을 잘 쳤는지, 그런 것이 신경이 쓰이느냐는 말이죠.
목사님, 오늘 입은 티셔츠가 너무 예뻐요 !!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복음의 기쁨을 이기면 안 된다고 했는데, 우리의 몸은 죽을 몸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그런 죽을 몸에 조미료를 자꾸 뿌리지 말라는 겁니다. "오늘 입은 티셔츠가 너무 너무 예쁘다. 헤어스타일이 너무 잘 어울린다" 라고 하지 말라는 겁니다(ㅋㅋ).
그러니 그런 죽을 몸을 주님께서 살려주시면, 그런 자기 인생을 가지고 주님께 따지지 말라는 것이죠. 여자의 인생이 아무리 힘이 들어도, 특히 요즘 정신대 문제로 많이 시끄러운데 말이죠. 하지만 그런 것을 가지고 힘들었다고 하면서 따지지 말라는 겁니다. 아무리 보상을 해주고 사과를 하더라도, 그런 것이 다 이 세대에 속한 문제라는 말이죠.
물론 여기에 대해서 "남의 아픔을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라.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라고 하면, "주님께서 죽을 몸도 다시 살립니다" 라고 하면 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이미 아담이기 때문에, 어차피 우리는 다 죽을 몸인데, 어떤 사람은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고 죽고, 또 어떤 사람은 끌려가서 죽는다는 겁니다. 물론 정신대에 끌려간 사람은 그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이겠지만, 주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그렇게 인도하셨다는 말이죠.
* 질문 - 여기 10절에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라고 하는데, 그때 '영'은 무엇인가요?
* 답변 - 그것은 우리의 우리의 영혼이 아니라 성령인데, 어떤 개념을 이야기할 때는 항상 그 대비가 되는 것을 살펴보아야 하는데, 대비되는 것이 육신이면, 이쪽은 영이라는 겁니다. 즉 대비되는 것의 반대가 되는 것이 그 개념의 본래적 의미라는 말이죠.
그러니 로마서 8장에서 말하는 육신은 우리의 몸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죄 있는 육신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미 우리 몸은,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을 얻을 때 우리는 육신으로 분류가 되었기 때문에, 그 맞은 편에는 우리의 영혼이 아니라, 그것은 성령을 의미한다는 말이죠.
(롬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살리시고, 죽이시고 !!
그래서 우리가 성경공부를 하면 이런 것이 나와야 하는데, 그게 무엇인고 하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걱정을 했구나. 괜히 걱정을 했구나" 라는 겁니다. 세상을 이렇게 편하게 살 수 있는데, 그런데 개인구원, 자기 몸에 훈장달기, 남들 눈치보기, 과거를 회상하면서 분통 터트리기, 그런 식으로 인생을 자기 것으로 여기고 원망을 하면서 그만 허비했다는 말이죠.
주님은 우리를 죽이시는데, 또한 우리를 살리신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아주 재미있어 하는데, 물론 우리는 힘들고 말이죠. 그게 자기 자신의 인생이기 때문에 말이죠. 그래도 우리는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합니까? 자기의 편입니까? 주님의 편입니까? 주님의 편을 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힘들어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가 있어야 좀 한다는 겁니다. 마치 놀이동산에 가서 청룡열차를 타고 고함을 치고 놀듯이, 그렇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재미를 누려보자는 것이죠. 그러니 우리가 성경공부를 하고 나면 영이 주는 이런 기쁨이 있어야 하는데, 물론 5분도 가지 않겠지만 말이죠.
머물지 않는 '카이로스' !!
카이로스에 이러한 기쁨이 있다고 하면, 이 카이로스는 어디에 꽂힙니까? 이 세대, 즉 아이온에 꽂힌다는 겁니다. 벼락이 말이죠. 그렇게 카이로스, 즉 벼락이 꽂히고 나서 또한 뽑히게 되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그만 크로노스가 또 생기고 만다는 겁니다. 즉 "우리가 아이가 시험을 잘 쳤는지 모르겠어? 시집을 간 딸은 잘 사는지 모르겠어?" 라고 말이죠. 왜냐하면 그렇게 되어야 카이로스가 아이온으로 퍼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카이로스는 늘 칼(?) 같아야 하는데, 그런데 그게 오래 머물게 되면, 카이로스인지 크로노스인지 아이온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3년 전에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 그런데 그것을 오래두면 상해버린다는 겁니다. 지금 꽂혀야 하는데, 그런데 "나는 3전 년에 은혜를 받았다. 나는 그때 거듭났다. 1986년 5월 6일에 거듭났어. 나는 구원파야" 라고 한다면 말이죠.
하지만 그것을 계속해서 가지고 있으면, 그게 퍼지고 만다는 말이죠. 이미 크로노스가 되고 아이온이 되고 말았다는 겁니다. 누가 그렇게 한 것입니까? 그게 바로 '나' 라는 육신이 그렇게 만들고 말았다는 말이죠. 그래서 우리의 육신은 마치 파설이를 하듯이 사건과 사건으로 잘려져야 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사건' 이라는 것은 이름이 없는 것을 두고 말하는데, 그런데 주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 분명히 이름이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새로운 사건이 오게 되면, 주의 이름이라고 하는 마네킹, 그 틈 사이에서 빛이 나온다는 겁니다. 새로운 빛이 말이죠.
그러므로 "나는 예수를 믿는다고 우기는 너희들을 조지겠다. 또 다시 벼락을 내리겠다" 라고 하면서 성령이 찾아오시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우리 자신의 인생이 아니라, 그것이 주님의 인생이고 주님의 운명이라는 것을, 그것을 우리가 선물로 받았다는 것에 대해서, 그러한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항상 감사하게 된다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자기 자신의 구원만을 위해서 온갖 짓거리들을 다 했지만, 그게 속임수였음을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마치 하늘에서 벼락을 치듯이, 주님께서 사건으로 저희들이 주님의 사람인 것을 날마다 새롭게 인식하면서 날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17,8,30 오후 4시에 마침.
여보, 오늘은 내가 설거지를 할 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