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강-YouTube강의(종교)150319-이 근호 목사
제 106강, 제목은 ‘종교’입니다. 종교라는 것은 사람 있는 곳에는 다 만들어지는 것이 종교죠. 종교라 하는 것은 자신의 완전함을 확인하기 위해서, 자기가 섬겨야 할 신을 자기가 만드는 것이 종교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만든 신을 완전하게 만들면 결국은 그 신을 섬기는 자신이 완전한 목표점이 생기게 되니까, 그저 이러한 행위를 멈출 수가 없어요.
모든 인간은 아담의 후손으로서 신이 되고자 했고, 구체적으로 신이 되고자 하는 행동에 나서게 되는데, 이것이 모든 면에 있어서 완전함이란 것을 구체화시켜서, 완전함이란 것을 신으로 규정해놓고 그걸 따라 붙이는 겁니다. 경배하고 섬기면서 그 완전함을 보고 자기가 즐거워하는 거죠.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어디에 오셨느냐 하면, 이방인들에게 온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에게, 유대나라에 예수님이 오셨죠. 그러면 유대나라에는 방금 제가 언급한 것처럼 유대나라 나름대로의 종교라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기에, 그리고 모세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주셨다는 율법에 치중하고 자신의 운명을 거기다 걸었기에 그들로서는 조금도 하자 없는 참된 하나님과 교류가 유지 된다 그렇게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유대인들은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가운데 누가 투입했느냐 하면,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 그 가운데 들어오셨죠. 자, 그 당시 사람들 보기에 이방민족과 달리 자기 종교가 하나님 보시기에 완벽한 종교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가운데 참여하신, 들어오신 예수님은 그들 생각과 같았을까? 당연히 아니죠. 그들 생각을 반대했습니다.
그 반대한 대목이 마태복음 21장 42절부터 44절까지 거기에 나와 있습니다. 마태복음 21장 42절, 제가 읽어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 하도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유대인의 선조 이스라엘은 성전을 지었습니다. 성전 중심의 종교 생활을 하게 되었죠.
근데 성경에 보니까, “건축자들의 버린 돌”, 시편 118편 22절에 나온 말씀인데,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이 대목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자, 성전에는 돌이 있겠죠. 돌이 있어야 성전을 지으니까. 그러면 그 성전에 있는 돌들은, 돌들이 완벽하게 제자리를 유지해줘야 성전의 가치와 의미가 유지가 되는 겁니다. 근데 시편에서 예언하기를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 지었던 돌이 그 자리를 유지하지 않고 거기서 빠져나와서 나가 버렸어요. 그 자리에 있지 않고.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성전이 있어야 종교가 되는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그 성전 돌이 빠져 나와서 다른 장소에 가있다 이 말이죠. 그러면 성전이 두 군데가 돼버리면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상당히 난처한 입장에 있습니다. 성전이 두 군데라면 둘 중의 하나는 진짜일 수가 있고, 둘 다 가짜일 수가 있고.
그러니까 둘 중의 하나를 진짜로 잡아야 되는데, 그러면 기존의 성전이 완벽하다는 완전함, 제가 처음에 강의 할 때 사람들이 종교생활 하는 것은 자기가 섬기는 신은 완전하다는 것을 기정사실 해서 종교생활 하는 겁니다. 그 완전함을 섬길 때 본인도 완전해지니까요. 근데, 완전하다고 여기는 성전의 모퉁이 돌 하나가 거기서 빠져나와서 다른 데에 나가버리면, 빠져나갔기 때문에 그 성전은 완전치가 않은 겁니다.
그리고 그 빠져나간 그 자리는 그들이 기대했던, 처음에 기대했던 완전한 종교의 자리는 아니에요. 근데 성경에 예언되기를 빠져나간 돌이 다른 데 가서 새로운 성전을 짓는데 모퉁이 돌, 기초 돌로 사용이 되었다. 자, 그렇게 되니까 갑자기 성전이 두 군데로 갈라져 버렸죠. 근데, 이것이, 빼내어서 딴 데 성전을 짓는 것이, 이거는 나쁜 사람들이 한 것이 아니고 주로 말미암은 것이다. 주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거예요.
근데, 기존의 성전을 붙들고 있는 자들에게는 상당히 기이한 일, “우리 눈에 기이 하도다”라고 되어 있어요. 자,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종교생활 하면서 처음부터, 시작부터 완전하게 생활하려고 했죠.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호응을 해줘가지고 처음부터 성전 하나 지었으면 그 성전은 아무 하자가 없어야, 처음부터 완전하고 끝까지 완전해야 할 텐데, 하나님께서는 도중에 완전했다고 생각했던 그 성전에서 돌 하나를 빼서 다른 데 성전을 짓게 되어버리면, 완전한 종교를 시도했던 그들의 모든 기대가 어떻게 돼버리느냐, 그들의 기대했던 모든 가치는 와르르 무너지는 겁니다.
근데, 그것이, 누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훼방하라는 사탄이 한 짓이 아니고, 주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겁니다. 그럼 처음부터 주님을 겨냥한 번지수가 잘못된 거예요. 처음부터 잘못되었는데 그들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못합니다. 왜냐하면 본인이, 완전한 신을 추구하고자 하는 본인의 마음에서 나왔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누가 하겠습니까?
그리고 그 다음 문제가 43절부터 44절까지 더 충격적인 발언을 합니다. 43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자, 예수님께서 그 당시 유대지도자 보고 한 이야기입니다. 유대인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아무리 못났고 부족한 점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본 백성이라는 그 점만큼은 그들이 양보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신앙생활 어려운 가운데 하고, 역경과 환난, 핍박 가운데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어려움과 환난과 핍박이 있지만 참고 견디면 결국 하나님 나라는 우리 본 자손들이 차지한다는 그 기대와 희망 때문에 그들은 어떤 난관도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가 빼앗긴다.” 본 자손이라고 여겼던 그들이 그 천국 자리를 남한테 빼앗기고 만다는 거예요.
그러면 가져가는 쪽이 누군지가 궁금하지 않습니까? “누구냐? 우리나라를 뺏어가는 자들이?” 보니까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여기에 백성이, 새로운 백성이 등장하는 거예요. 아까 성전 있고 모퉁이 돌이 빠져나와서 새로운 머릿돌이 된다는 그 이야기나, 본 자손이라고 자부했는데 그것이 완전히 전면적으로 부정당하고, 그들이 전혀 예상 못한, 절대로 천국 못 간다고 여겼던 그 사람들에게 이게, 하늘나라가 이동이 된다는 거예요.
근데, 그것보다 더 충격적인 이야기는 44절입니다.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완전한 종교를 하기 위해서, 완전한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자부했고, 그 완전한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한 말씀, 율법을 가지고 제대로 된 신앙생활 하고 있기에 천국은 누가 뭐래도 우리의 나라라고 여겼던 그 백성들이 이제는 예수님의 오셔서 하신 새로운 소식에 의하면, 시편의 말씀대로, 그 떨어진 돌 하나가 이제는 자칭 천국 백성이라는 이 이스라엘을, 아예 머리를 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돌에 부딪친 사람은 다 깨어진다는 겁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겠죠. 사람들에게 이 교회가 자기의 욕망의 대상이 되고 말았어요. 교회를 보면서 자기 욕망을 만족하는 겁니다. 교인수가 이만큼 불어났고, 예배당이 이만큼 크고, 헌금이 많이 모이고 갈수록 점점 더 사람 숫자가 많아질 때, 자기는 만족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게 되면 그들은 자기 자신이 문제 있다는 생각이 날로 갈수록 그것이 희박해지는 겁니다.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결국 주님의 말씀은 이거는 모든 인간에게 다 해당되는 말씀이거든요. 그러면 우리는 이 말씀에 준해서 우리의 욕망의 대상이 교회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이 주님의 말씀에 의해서 깨어지는 것을 기쁘게 수용할 때, 그 사람이 바로 열매 맺는 백성입니다. 이것이 참된 종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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