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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강의-종교,해프닝 150319 이근호

아빠와 함께 2016. 9. 9. 19:21
2015-03-20 01:20:26 조회 : 677         
유튜브(106강, 107강) 종교 , 해프닝 150319 이름 : 이근호 (IP:119.18.83.91)

106강      음성               동영상

 

107강       음성             동영상

 이미아 (IP:180.♡.90.76)15-03-27 20:37 
106강-YouTube강의(종교)150319-이 근호 목사

제 106강, 제목은 ‘종교’입니다. 종교라는 것은 사람 있는 곳에는 다 만들어지는 것이 종교죠. 종교라 하는 것은 자신의 완전함을 확인하기 위해서, 자기가 섬겨야 할 신을 자기가 만드는 것이 종교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만든 신을 완전하게 만들면 결국은 그 신을 섬기는 자신이 완전한 목표점이 생기게 되니까, 그저 이러한 행위를 멈출 수가 없어요.

모든 인간은 아담의 후손으로서 신이 되고자 했고, 구체적으로 신이 되고자 하는 행동에 나서게 되는데, 이것이 모든 면에 있어서 완전함이란 것을 구체화시켜서, 완전함이란 것을 신으로 규정해놓고 그걸 따라 붙이는 겁니다. 경배하고 섬기면서 그 완전함을 보고 자기가 즐거워하는 거죠.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어디에 오셨느냐 하면, 이방인들에게 온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에게, 유대나라에 예수님이 오셨죠. 그러면 유대나라에는 방금 제가 언급한 것처럼 유대나라 나름대로의 종교라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기에, 그리고 모세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주셨다는 율법에 치중하고 자신의 운명을 거기다 걸었기에 그들로서는 조금도 하자 없는 참된 하나님과 교류가 유지 된다 그렇게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유대인들은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가운데 누가 투입했느냐 하면,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 그 가운데 들어오셨죠. 자, 그 당시 사람들 보기에 이방민족과 달리 자기 종교가 하나님 보시기에 완벽한 종교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가운데 참여하신, 들어오신 예수님은 그들 생각과 같았을까? 당연히 아니죠. 그들 생각을 반대했습니다.

그 반대한 대목이 마태복음 21장 42절부터 44절까지 거기에 나와 있습니다. 마태복음 21장 42절, 제가 읽어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 하도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유대인의 선조 이스라엘은 성전을 지었습니다. 성전 중심의 종교 생활을 하게 되었죠.

근데 성경에 보니까, “건축자들의 버린 돌”, 시편 118편 22절에 나온 말씀인데,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이 대목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자, 성전에는 돌이 있겠죠. 돌이 있어야 성전을 지으니까. 그러면 그 성전에 있는 돌들은, 돌들이 완벽하게 제자리를 유지해줘야 성전의 가치와 의미가 유지가 되는 겁니다. 근데 시편에서 예언하기를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 지었던 돌이 그 자리를 유지하지 않고 거기서 빠져나와서 나가 버렸어요. 그 자리에 있지 않고.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성전이 있어야 종교가 되는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그 성전 돌이 빠져 나와서 다른 장소에 가있다 이 말이죠. 그러면 성전이 두 군데가 돼버리면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상당히 난처한 입장에 있습니다. 성전이 두 군데라면 둘 중의 하나는 진짜일 수가 있고, 둘 다 가짜일 수가 있고.

그러니까 둘 중의 하나를 진짜로 잡아야 되는데, 그러면 기존의 성전이 완벽하다는 완전함, 제가 처음에 강의 할 때 사람들이 종교생활 하는 것은 자기가 섬기는 신은 완전하다는 것을 기정사실 해서 종교생활 하는 겁니다. 그 완전함을 섬길 때 본인도 완전해지니까요. 근데, 완전하다고 여기는 성전의 모퉁이 돌 하나가 거기서 빠져나와서 다른 데에 나가버리면, 빠져나갔기 때문에 그 성전은 완전치가 않은 겁니다.

그리고 그 빠져나간 그 자리는 그들이 기대했던, 처음에 기대했던 완전한 종교의 자리는 아니에요. 근데 성경에 예언되기를 빠져나간 돌이 다른 데 가서 새로운 성전을 짓는데 모퉁이 돌, 기초 돌로 사용이 되었다. 자, 그렇게 되니까 갑자기 성전이 두 군데로 갈라져 버렸죠. 근데, 이것이, 빼내어서 딴 데 성전을 짓는 것이, 이거는 나쁜 사람들이 한 것이 아니고 주로 말미암은 것이다. 주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거예요.

근데, 기존의 성전을 붙들고 있는 자들에게는 상당히 기이한 일, “우리 눈에 기이 하도다”라고 되어 있어요. 자,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종교생활 하면서 처음부터, 시작부터 완전하게 생활하려고 했죠.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호응을 해줘가지고 처음부터 성전 하나 지었으면 그 성전은 아무 하자가 없어야, 처음부터 완전하고 끝까지 완전해야 할 텐데, 하나님께서는 도중에 완전했다고 생각했던 그 성전에서 돌 하나를 빼서 다른 데 성전을 짓게 되어버리면, 완전한 종교를 시도했던 그들의 모든 기대가 어떻게 돼버리느냐, 그들의 기대했던 모든 가치는 와르르 무너지는 겁니다.

근데, 그것이, 누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훼방하라는 사탄이 한 짓이 아니고, 주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겁니다. 그럼 처음부터 주님을 겨냥한 번지수가 잘못된 거예요. 처음부터 잘못되었는데 그들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못합니다. 왜냐하면 본인이, 완전한 신을 추구하고자 하는 본인의 마음에서 나왔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누가 하겠습니까?

그리고 그 다음 문제가 43절부터 44절까지 더 충격적인 발언을 합니다. 43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자, 예수님께서 그 당시 유대지도자 보고 한 이야기입니다. 유대인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아무리 못났고 부족한 점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본 백성이라는 그 점만큼은 그들이 양보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신앙생활 어려운 가운데 하고, 역경과 환난, 핍박 가운데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어려움과 환난과 핍박이 있지만 참고 견디면 결국 하나님 나라는 우리 본 자손들이 차지한다는 그 기대와 희망 때문에 그들은 어떤 난관도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가 빼앗긴다.” 본 자손이라고 여겼던 그들이 그 천국 자리를 남한테 빼앗기고 만다는 거예요.

그러면 가져가는 쪽이 누군지가 궁금하지 않습니까? “누구냐? 우리나라를 뺏어가는 자들이?” 보니까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여기에 백성이, 새로운 백성이 등장하는 거예요. 아까 성전 있고 모퉁이 돌이 빠져나와서 새로운 머릿돌이 된다는 그 이야기나, 본 자손이라고 자부했는데 그것이 완전히 전면적으로 부정당하고, 그들이 전혀 예상 못한, 절대로 천국 못 간다고 여겼던 그 사람들에게 이게, 하늘나라가 이동이 된다는 거예요.

근데, 그것보다 더 충격적인 이야기는 44절입니다.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완전한 종교를 하기 위해서, 완전한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자부했고, 그 완전한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한 말씀, 율법을 가지고 제대로 된 신앙생활 하고 있기에 천국은 누가 뭐래도 우리의 나라라고 여겼던 그 백성들이 이제는 예수님의 오셔서 하신 새로운 소식에 의하면, 시편의 말씀대로, 그 떨어진 돌 하나가 이제는 자칭 천국 백성이라는 이 이스라엘을, 아예 머리를 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돌에 부딪친 사람은 다 깨어진다는 겁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겠죠. 사람들에게 이 교회가 자기의 욕망의 대상이 되고 말았어요. 교회를 보면서 자기 욕망을 만족하는 겁니다. 교인수가 이만큼 불어났고, 예배당이 이만큼 크고, 헌금이 많이 모이고 갈수록 점점 더 사람 숫자가 많아질 때, 자기는 만족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게 되면 그들은 자기 자신이 문제 있다는 생각이 날로 갈수록 그것이 희박해지는 겁니다.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결국 주님의 말씀은 이거는 모든 인간에게 다 해당되는 말씀이거든요. 그러면 우리는 이 말씀에 준해서 우리의 욕망의 대상이 교회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이 주님의 말씀에 의해서 깨어지는 것을 기쁘게 수용할 때, 그 사람이 바로 열매 맺는 백성입니다. 이것이 참된 종교입니다.

 이미아 (IP:180.♡.90.76)15-03-27 20:38 
107강-YouTube강의(해프닝)150319-이 근호 목사

자, 이번에는 107강, 제목은 ‘해프닝’입니다. 보통 해프닝happening이라는 말을 우리가 일상적인 말로 쓸 때는, 별로 좋은 뉘앙스가 아니죠. 말도 안 되는 일이 갑자기 일어날 때, 이걸 해프닝이다. “아, 이거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네.” 해프닝이다. 또는 이거는 정상적인, 좋은 가치를 줄 수 없는 미묘한 일이다. 그거는 빼버리자. 할 때, 보통 해프닝이라는 말을 합니다.

근데, 성경에도 이런 해프닝이 자주 발생이 돼요. 제가 이번 강의에서 두 가지 예를 설명할 건데요. 이 두 가지 예가 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역사 속에 하나님의 일을 벌이실 때, 그 일만 벌이시는 것이 아니고 그 뒤에 필히 해프닝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은 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말씀하셔도 사람들은 그걸 이단이야기로 들었어요.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에서도 롯이 소돔 고모라의 멸망, 유황불을 이야기했을 때도 사위들이 그걸 해프닝으로 봤거든요. 농담으로 여기는 겁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장인어른, 뭔가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 모양입니다.” 우리가 아는 유명한 이야기죠. 근데, 하나님이 일을 하게 되면 반드시 거기에 대해서 비웃고, 놀리고, 웃기네! 하고 아주 무시하는 그런 상황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지금 하나님 안에서 같이 동행하고 있는지 안 하는지 표시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우리가 전하는 많은 이야기들에 대해서 주변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웃기네! 하고 비아냥거리고 놀림을 당할 때, 우리는 오히려 주의 복음을 위하여 기뻐하라는, 마태복음 5장의 복의 말씀처럼 그게 현실로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도리어 하나님께 감사해야 됩니다.

제가 이 해프닝에 대한 첫 번째 예가 사사기 8장 2절에 보면 나옵니다.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이제 행한 일이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지금 기드온이라는 사람이 300명을 가지고 미디안의 큰 부대를 다 몰살 시켰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꾸준하게 이스라엘을 괴롭혀 왔던 미디안의 폭정에서, 이 기드온에 의해서 벗어나게 되었죠. 기드온은 일종의 그 당시의 구세주입니다.

물론 기드온의 능력이 아니고 하나님의 신이 임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나팔과 항아리를 들고, 항아리에다 횃불 숨기고 나팔 불 때, 미디안 군사가 정신 없어가지고 자기들끼리 싸워서 전부다 죽여 버린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죠. 우리가 아는 것은 거기까지입니다. “아, 하나님께서 크게 하셨구나!”

 그런데 그 다음에 이야기가 제가 방금 읽었던 사사기 8장 2절의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큰 업적을 이루어서 기드온에 대해서 사방에서 굉장히 칭찬들을 많이 하니까 여기서 누가 시기가 난 거예요.

누가 시기가 났느냐 하면, 바로 에브라임 사람들이 시기가 나서 하는 말이 “기드온아, 니가 그렇게 우리를 학정 했고 우리를 압박했던 그 이방민족에게서 크게 성공할 것 같았으면 어떻게 니 혼자 영광을 다 독차지하기 위해서 니 혼자 달랑 삼백 명하고만 갔느냐? 그럼 니만 믿음 좋은 사람이 되잖아? 그러면 이스라엘 공동체가 훼손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니가 그만한 능력이 있다면, 우리한테, 에브라임을 찾아와서 ‘우리가 이러이러한 하나님의 일을 할 건데, 나 혼자 영광 받기보다 우리는 형제니까 같이 합류해서 우리 다 같이 우리가 하나님께 멋지게 했다는 그런 칭찬을 받지 않겠습니까?’ 하고 이렇게 와서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 그게 도리이지. 어떻게 니 혼자 달랑 가가지고, 니 혼자 능력 있는 그 비밀을, 니 혼자 간직해가지고, 니 혼자 승리해서, 니 혼자 영광 받으면, 니 맘에 만족하냐?”

이런 식으로 비아냥거리기 시작한 겁니다. 자, 어떻습니까? 기드온이 자기가 승리할 비밀을 알았어요? 몰랐어요? 몰랐죠. 오히려 자기는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삼만 이천 명 왔을 때 다 보내고 달랑 삼백 명만 남았잖아요. 32,000명 와가지고 다 가고 300명 남았다 이 말이죠. 그럴 때 이 기드온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이런 사정을 이 에브라임 사람은 모르는 거예요. 뭐만 아느냐, 그 결과만 멋들어지게 되니까, 결과에 대해서 질투심을 느끼고 지금 뒤늦게 와서 책망하고 있는 겁니다.

그럴 때, 이 기드온의 대처 방법을 봅시다. 이렇게 대처했습니다. 다시 한 번 읽어보면 “나의 행한 일이 너희 행한 일에 비교가 되겠느냐” “아이고, 내가 뭘 이렇게 했다 하지만 당신들이 갖고 있는 능력에 비할 바가 못 되죠.” 그래서 한 이야기가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보다 에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에비에셀은 누구냐 하면 기드온의 아버지에요. “제가 한 것이, 기껏 했다는 것이 대단해보이지만 에브라임당신들이, 에브라임 지역의 당신들이 하는 그 끄트머리 업적이 제가 한 업적보다 훨씬 큽니다.” 라고 이렇게 달래주었어요.

자, 왜 달래줬을까요? 사람들이라는 것은 자기 가치와 자존심 때문에 살아가거든요. 사실은 그것 때문에 미디안한테 이스라엘이 잡아먹힌 겁니다. 지금 미디안한테 이스라엘은요, 사사기 때 이스라엘은 이방나라한테 그들이 왜 잡아먹히는지 이유도 몰라요. 그저 잘난 체하고, 교만하고, 자기 가진 것 가지고 버티겠다는, 자기 독자적인 자립심 하나로 버텼던 그것 때문에 그들은 이방나라한테 종으로 살아온 겁니다.

하나님 뜻은 그게 아니거든요. 하나님 뜻은 주님의 희생 때문에 그들이 살아온 겁니다. 근데 그들은 그걸 다 잊어버렸어요. 지금도 십자가의 희생 때문에 우리가 사는데 우리가 스물 네 시간 중에 언제 주님의 희생 때문에 산다는 말을 우리가 몇 초 동안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여기 에브라임을 비난하지만 사실은 에브라임과 우리가 다를 바가 없잖아요? 남 잘 되면 못 견디는 거예요. 그게 샘이 나가지고. 남 잘못되면 그게, 고소한 맛으로 며칠 갑니다. 너무 기분 좋아서.

그러니까 이 기드온을 예수님으로 보고 에브라임을 우리로 본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그 희생은 전혀 관심조차 없고, 주님께서 주신다는 뭐, 영생이나 부활의 영광, 그런 것만 잔뜩 욕심을 내고 있는 거예요. 주님과 함께 고난에 참여할 생각 안 하고 주님이 공짜로 주셨던 그것만 얻어가지고, 공짜로 얻겠다는 자기 행위마저 지 자랑처럼,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 이 교만한 마음을 지적하기 위해서 사사기 8장이 있는 겁니다.

또 한 가지 해프닝은 열왕기상 12장에 보면 나옵니다. 12장에 보면 나라가, 르호보암 시대에 나라가 둘로 나눠졌어요. 한쪽은 남쪽 유다고, 북쪽은 이스라엘 이름으로, 이스라엘 나라가 둘로 나누어졌습니다. 나누어졌는데, 남쪽에는 뭐가 있느냐 하면 성전이 있거든요. 성전이 있으니까 북쪽에 여로보암이라는 왕이, 사람들이 절기 지키고 축제 지킨다고 그걸 핑계로 남쪽으로 우르르 가가지고 북쪽 나라인 자기 나라가 권위나 정체성이 훼손될까 싶어서 걱정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한 대책이 뭐냐 하면 ‘벧엘’에다가, 북쪽과 남쪽으로 갈라지는 그 경계선인 벧엘에다가 뭘 하느냐 하면, 제단을 만들고, 또 하나 ‘단’이라는 곳에 제단을 만들어 두 개를 만들어놓고 백성들로 하여금 유사여호와 종교를 만들어 섬기게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둘로 나누어지기 전에 예루살렘을 섬겼던 그 제단을 새로 만든 겁니다. 같이 연속성을 유지한다는 식으로 여호와종교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거기에는 제사장들이 없으니까 보통 사람으로 제사장을 삼아서 8월15일로 절기를 지 맘대로 정해놓고, 벧엘에서 송아지를 가지고, 우상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와서 제사지내면서 전에 있던 여호와 절기를 대신하라고 이렇게 해프닝을 벌인 겁니다.

그러니 바로 해프닝이라는 제목처럼 하나님께서 일하게 되면 주위에 건전하다, 고상하다, 인간되었다, 이랬던 사람들도 그 복음 듣기 싫어서, 나름대로의 종교들을, 성실함과 선함과 경건성, 이런 걸 조작해내고 그걸 만들어내는 해프닝들을 이 시대에 성도의 눈으로 우리가 볼 줄 알아야 됩니다.

그 교회 가서 어떻게 해프닝을 벌이는지, 인간의 욕망을 맞춰주는 우상 노릇을 하는지, 그것이 다 하나님의 복음이 있는 그 주변에 복음을 모독하기 위해서 마귀들이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을 발견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