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강-YouTube강의(발생)1404017-이 근호 목사
71강 제목은 “발생”입니다. 제가 발생이라고 한 것은 원래 일어나지 않았는데 오, 이런 일이 일어났었나? 할 때는 발생이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미리 예측을 해가지고 하는 것을 임신, 또는 생산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 적당하겠죠. 발생이라 하는 것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여겼는데 갑자기 일어났다는 거예요. 우리는 그런 일들을 느낍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에 앞에는 홍해바다고 뒤는 따라오는 애굽의 말발굽 소리가 아주 요란합니다. 모세를 비롯해서 모든 사람들은 대책이 없어요. 모세가 물이 갈라진다는 것을 미리 안 사람이 아닙니다. 모세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출애굽기14장 14절에서 “가만히 있자? 가만히 있자.”
발생이란 말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전제가 있어야 돼요. “가만히 있자. 주께서 하시겠지. 주께서 하시겠지.” 라고 한 겁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천사 3명이 찾아와서 “내년 이맘쯤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 할 때에 물론 사라는 비웃었죠. 그럴 때 아브라함과 사라가 어떻게 임신한 어떤 과정들을 미리 알았습니까? 전혀 몰랐죠. 그저 허허 웃죠. 왜, 이건 자기가 미리 예상할 수 있는 생산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셔서 뭔가 발생을 한다니까 그 계획 잡은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계획을 미리 눈치 챌 수 없는 겁니다.
마리아에게 임신한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우리가 성도가 돼서 믿음이라고 할 때에, 믿음을 미리 예상해서 믿음을 만들었습니까? 아니면 믿음이 발생된 겁니까? 믿음이 미리 예상했다면, 홍해사건과, 여리고사건과, 십자가죽음사건과, 천지창조와 같은 차원에서 이어지는 그런 믿음이 아니고, 인간들은 얼마든지 조작해 낼 수 있는 가짜 믿음입니다.
진짜 믿음이 생긴다면 홍해바다에서 깜짝 놀란 바다 자체가 갈라진다는 것은 과거에 그런 일은 없었거든요? 바다자체가 갈라지는 것처럼 이거는 애굽 군사도 놀랬지만 막상 건넜던 히브리인들도 놀라고 모세도 놀랄 일이예요. 갈라진 바다 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곧 죽음의 바닥을 몸소 친히 뚜벅 뚜벅 걸어가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건 뭐냐 하면, 우리가 예상하는 그런 믿음과 실제로 성령이 와서 발생한 믿음사이에는 죽음이라는 건널 수 없는 엄연한 단절된 벽이 놓여 있다는 거예요. 그 벽은 다른 말로 하면, 죽음이라는 벽입니다. 내가 죽지 않고 믿을 수 있는 그런 믿음은 저희들에게 주어지질 않아요.
그래서 그 믿음은 열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주님의 십자가로 죽음을 근거로 해서 십자가 죽음을 담뿍 담고 우리에게 성령을 통해서 준 믿음 그 믿음이 그야말로 구원받는 유일한 믿음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발생이라 할 때는 반드시 그 전에 아무 일도 생겨나지 않는 것이 정상인 것처럼 그러한 분위기가 잡아야 됩니다.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는데 갑자기 일이 발생되었을 때에 이거는 내가 예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께서 일으킨 사건으로 우리가 담박 그걸 수용하고 이해할 수 있겠죠. 자, 그러면 봅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마냥 기다립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일이라고 고백하기에는 이러한 장애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뭐냐 하면, 지금 인간들은 뭐든지 꼼지락거리고, 뭐든지 움직이고 활동합니다. 움직이고 활동할 때는 그냥 움직이고 활동하는 것이 아니예요. 반드시 기대와, 예상과, 목표와, 목적을 생각하면서 움직이게 되어 있어요. 따라서 인간들 역사의 관점에서는 세상의 어떤 일도 우연한 일도 없고, 다만 우리가 원어를 미리 분석 못해서 그렇지 찾아내기만 하면, 반드시 원인이 필히 있는 결과로서의 일들이 우리 주변에 가득 출렁이고 있습니다.
진도에서 배가, 육천오백톤급 뱃머리가 무너졌을 때, 사람들은 원인을 찾지요. 왜냐하면, 그 원인이 결과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 배가 무너진 것을 발생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아마 아무도 없을 거예요.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거는 원인이 있어서 생긴 일이 아니고, 그건 발생된 일이거든요.
왜냐하면, 아무도 그 배가 빠질 것이라고 확정적으로 주장하는 사람이 배 빠지기 전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선장부터해서 그 누구도 빠진다는 것을 확신하고 배를 그렇게 몰지를 않았어요. 선장도 일부로 차선 하려고 그렇게 몰지를 않았다는 겁니다. 아무도 모르는데 일어났어요.
제가 하는 이야기가 뭐냐 하면, 사람들은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변화에 대해서 이건 반드시 인간이 개입하고,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기는 반면에,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홍해사건, 배뿐만 아니고 햇볕, 공기 뭐 일상 움직이고 이 모든 것도, 참새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참새가 시장에서 팔리고, 우리가 숨을 쉬고, 잠을 자고, 밥을 먹고 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하나님은 그거를 발생적 입장에서 보신다는 겁니다. 그걸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거예요.
모든 것이 안 일어나도 되는데, 주님의 뜻이 듬뿍 담겨서 일어난 일이 되는 거예요. 배가 안 빠져도 되는데, 우리는 안 빠지고 싶은데 두 달 전에도 그 배는 빠지지 않았고, 한 달 전에도 그 배는 빠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어제 그 배는 진도 앞바다에 빠졌습니다. 원인을 찾아내면 찾아낼 수 있겠죠. 하지만 그런 원인이 일어난 일에 대한 원인이 또 있을 거잖아요. 그 원인이 일어난 일을 원인이라고 하고 결과라 했던 원인은 또 있었단 말입니다.
그래서 찾아가보면 결국 모든 것은 인간이 알 수 없는, 주께서 의도해서 만들어진 발생된 일입니다. 자, 그렇다면 그건 발생된 일이다, 그거는 반드시 인간이 실수해서 그런 일이다. 그렇게 구분하는 것이 그게 무슨 뜻이 있느냐, 구원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라고 하시겠죠? 관계있습니다.
고린도후서4장 3절~4절에 보면,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세상 신, 세상신은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신입니다. 그러니까 이름이 세상신이죠. 마귀죠. 악마죠. 우리는 악마라는 것을 자주 잊어버리고, 악마가 지배한다는 사실을 놓쳐버리고 사시는데, 성경에 분명히 악마라고 이야기 나오고, 그 악마가 겨냥하는 것이 있어요. 뭘 겨냥하느냐하면, 복음을 가리기 위해서 악마는 지금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배를 악마가 빠트렸단 그런 뜻이냐. 악마가 빠뜨렸단 뜻이 아닙니다. 그럼 무슨 뜻이냐. 배가 어떻게 빠지던 멀쩡하게 다니던 간에 사람들은 매사를 사람 손에서 원인을 찾아낼 수 있고, 사람은 자기가 스스로, 자기가 살길을 자기가 스스로 살만한, 그런 자신감이 있다는 식으로 복음을 가리는 식으로 주님이 모든 일에 개입해서 주님의 은혜가 개입했다는 그걸 삭제하고, 지워버리고, 떼버리는 쪽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해석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제가 지금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발생이란 것이 중요하다는 이유가 뭐냐 하면, ‘그냥 발생이 아니야. 원인과 결과의 연쇄 고리로서 세상에 일어난 일이야.’ 라고 해버리면 뭐가 빠져 버리느냐 하면, 주께서 복음문 차원에서 모든 것을 발생시켰고, 참새가 떨어지는 것도, 우리가 숨 쉬는 것도, 우리가 머리카락이 희어지는 모든 것도 주님의 복음적 관점에서 일어난 일이란 그 발생적 논리 고리를 세상신이 의도적으로 그걸 없애버린다니까요. 없애버리면, 우리는 주께서 하신일도 생각하지 않고, 마땅히 그런 일은 안 일어나야 될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자녀가 안 죽어야 되는 것이 마땅한 것처럼 생각했던 그런 지금까지의 버릇과, 관행과, 관습을 그대로 정당한 것으로 붙드는 셈이 돼요.
신이시여, 왜 그런 불상사가 일어납니까? 이게 무슨 뜻이예요.‘ 우리 인간한테는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면 안돼죠. 그럼 우린 섭섭합니다.’ 왜, 우리는 대단한 존재기 때문에, 우리는 불행해서는 안 될 존재기 때문에, 그러한 사고방식이 바로 그동안 세상신이 인간을 그런 식으로 곡해시켜왔고, 세상현실을 변질시켜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일도 주께서 개입해서 발생되지 않는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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