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강-YouTube강의(신자와 불신자)150903-이 근호 목사
제 125강, 제목은 ‘신자와 불신자’입니다. 성경을 처음에 보게 되면 천지창조가 나오는데 분명히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어떻게 하겠다. 이렇게 나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창세기를 보면서 아, 하나님께서 천지창조 하신 것을, 그 만드신 것을 믿으면 우리가 신자가 되는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 때 천지창조 했던, 자연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그것이 신약 때 보면 개인의 마음에 대해서, 심령에 대해서, 영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 그러니까 바깥에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했던 그것을 믿는다 치더라도 우리 마음 자체가 바뀌지 아니하면 천국은 없습니다. 지옥 갑니다.
바깥에 있는 현상을, 우리가 저걸 믿는다, 신이 만들었다, 그것을 믿는 것은 굉장히 쉬워요. 우리가 안 만들었으니까. 너무나 쉬워요. 그런데 내 마음을 다른 마음으로 바꾼다, 이거는 쉬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한 일입니다. 문제는 천국 가는 것이 저 대자연을 신이 만들었다고 인정하는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그게 기준이 되지를 않아요.
창조과학회가 천국, 지옥을 결정한 게 아닙니다. 진화론이 천국, 지옥을 결정한 거 아니거든요. 천국 결정은 우리의 심령 자체가 달라져야 해요. 이거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불가능한 일이에요.
기적이 일어나야 되는 문제에요. 차라리 “이 세상을 신이 만들었습니다.” 라고 이 한마디 하고 천국 갔으면 참 편하겠는데, 이 신이 와서 우리 마음 자체를 다루니까, 그 마음 자체를 다룰 때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옳은 마음 같으면 우리 옳은 마음을 유지를 시키면 되는데, 성경 신약에 보면 우리 마음 자체가 이미 패역 됐고, 죄인이라고 이야기했고, 왜곡되어 있고, 심지어 악마가 우리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고, 왕노릇 하고 있다고, 죄가 이렇게 다스리고 있다고,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의 마음을 지적해버리면 우리는 이미 죄의 지배를 받고 있는 그러한 마음 가지고, 그런 성격 자체가 불손한 그런 마음에서 어떻게 순수한 그런 마음으로 어떻게 만들어낼 수가 있습니까? 이거는 앞뒤가 안 맞는 모순된 일이죠.
건전한 게 좀 있으면 건전한 것을 좀 뽑아낼 수 있는데, 전체적으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모든 것이 마음 자체가 상한 심령이 돼버렸는데, 상한 심령을 가지고 상한 심령의 주체자가, 본인의 상한 심령을 가지고 상한 심령적인 손을 댄다면 거기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느냐, 못 나오죠.
다시 말씀드려서 천국 가고 지옥 가는 것이, “이 우주를 누가 만들었습니까?” “신이 만들었습니다.” “합격입니다.”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심령에 관한 문제인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거는 정말 천국 가고 싶어도 못 갈 입장이 되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에 우리가 손 댈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 우리 본인을 사람으로 간주하는 이것이 치명적인 오류고 잘못입니다. 우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죄가 다스리는 존재지, 내가 인간인데, 천국이나 지옥을 선택할 선택권이 없는 겁니다.
그러면 선택권은 어디한테 있느냐, 선택권은 시편 118편에 보면 그거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행되는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말씀의 작업이 완료가 되고 나면 우리는 두 가지 생산품이 나오는데, 하나는 천국 가는 존재로 나올 것이냐, 아니면 지옥 가는 피조물로 나올 것이냐, 그거는 말씀하기에 달려있습니다.
주도권이 우리 개인에서 말씀으로 이미 넘어간 상태에 있습니다. 우리가 길길이 애를 쓰고 간절히 기도하고 통성기도하고 이렇게 한다고 하나님이 우리를 천국 보내주는 것이 아니에요. 천국은 우리 손을 떠났습니다.
말씀이 우리한테 어떻게 적용하느냐 따라서 천국 가도록 적용하게 되면 천국 가고, 지옥 가도록 적용하게 되면 지옥 가는 겁니다. 거기에 대해서 우리 피조물 입장에서 “이거는 불공평합니다. 이거는 불합리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자랑거리가 없어지지 않습니까?” 이렇게 항의한다는 자체가 피조물이 자기의 범주를 넘어서는 객기를 부리는 것밖에는 안 됩니다.
교회라는 것이 사람을 천국 못 보내서 환장하고, 그저 천국 보내려고 애를 쓰는 그 취지는 가상하다는 만은, 그거는 너무나도 비현실적이고 그거는 하나님의 이름을, 예수님의 이름을 팔아 장사하는 업소일 뿐입니다. 그런 식으로 교회가 천국 보낼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성당도 마찬가지고. 유니폼 입고 설친다고 해서, 그것이 고상하다고, 거룩하다고 쳐준다고 해서, 거기서 인간들이 원하고 있는 사랑을 베푼다고 해서 그 교회와 사랑이 다 끌어 모아도 어떤 한 사람도 천국에 들어가게 하지를 못합니다. 똑같은 인간입니다. 그렇게 설치는 인간이나 우리나 다 무능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신자나 천국 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이 말씀이 어떻게 하는가를 평소에 살아가면서 간파하는 사람이 신자입니다. 그 간파할 때 성경에 나오는 원리대로 간파하는, 원리대로 진행되는 절차가 나타나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그 예가 히브리서 9장에 나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보면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 사람이라는 것은 죽어야 될 존재로서 임시적으로 사람이 되었다는 겁니다. 이게 사람이라고 우기는 것은 곧 죽을 짓을 하고 있는 모양새가 임하죠. “나는 사람입니다.” 하는 것은 “그래? 곧 그런 식으로 너는 죽어!”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서 한시적으로, 임시적으로 그렇게 만든 겁니다.
저는 사람을 ‘도마’로 보는데, 요리하는 도마. 그 도마는 어떤 음식이라도 칼질 당하는 도마입니다. 도마 위에다가 파나 양파가 숭숭숭 썰리잖아요. 그러면 그 도마가 칼질만 늘 당했을 뿐이에요. 하나님께서 임시적으로 사람이란 도마를 만들어주시고 거기다가 말씀을 집어넣습니다.
말씀을 집어 넣어주시고 요리는 누가 하느냐, 셰프는 누구냐, 주님이 그 말씀을 요리하면서, 인간은 거기에 말씀이 적용되고, 말씀이 진행되는 그것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표현해주는 하나의 바탕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라고 할 때에 죽음이라는 것은 사람이, 도마에 불과한 인간이 “저를 죽이지 마세요.” 이렇게 저항하거나 반항할 그런 잽이 못됩니다. 그런 처지에 있지를 않아요. 다만 죽음이 무엇이며, 왜 죽음이 인간과 결부되어서, 왜 죽음이 찾아와서 인간은 죽어 마땅한가를, 거기에 대한 모든 과정은 말씀을 통해서 인지가 되고 파악이 되는, 감지가 된다면 그 사람이 바로 성도입니다.
성도라서 안 죽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가 있다면 이 사람은, 성도든 불신자든 다 마땅히 죽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뭐냐, “당연합니다. 잘하셨습니다. 예, 죽어 마땅하죠.” 이 말씀 작업에 동의가 되는 사람은 신자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신자 아닙니다.
물론 사람은 사람이 힘들기 때문에 빈 소리라도 ‘이래서는 내가 죽어야지. 죽어야지.’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합니다. 빈 소리라도 ‘아이고 콱 죽었으면 제일 좋겠다.’ 그런 소리를 하죠. 특히 연세 많아서, 나이 들어서 병들면, 온 몸에 당뇨 걸리고 하면, 아이고 죽는 게 편하다고 하죠.
그런데 한 번 보세요. 본인 죽는 것은 그렇게 편하게 가는데 만약에 본인 죽기 이전에 팔팔하고 거기다 공부 잘하고 인물 좋은 자기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죽는다면 ‘그래, 사람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야. 그래, 죽어라.’ 라고 이렇게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부모 있습니까? 그게 히브리서 9장 27절에 분명히 나온 말씀인데요? “하나님이여, 그 말씀을 차라리 부모인 나한테 적용시키되, 제발 철없는, 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제 자식한테는 비켜가게 하옵소서.” 그러한 욕망, 욕심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 정도로 우리는 말씀에 대해서 순수하게 동의가 안 되는, 몇 번이고 발악하는 그런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냉철하게 우리를 도마로 사용해서 죽음이라는 것을 놓고 그 다음에 뭐냐,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제 심판까지 도마에 얹습니다.
“심판이 있으리니”, 죄를 씻어준 사람은 구원이 이르게 하고 죄와 상관있는 사람에게는 지옥 보낸다, 라는 이야기가 우리의 판때기 위에 그대로 적용되는데,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이 실제적으로 지금도 이루어지는 말씀 작업에 동의하십니까? 동의하시면 신자가 동의 못하면 불신자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