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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강의-하늘도 무심하시지,부활의 세계 130221 이근호

아빠와 함께 2016. 7. 6. 16:03
2013-02-22 01:22:19조회 : 2067         
유튜브(22강, 23강) 하늘도 무심하시지, 부활의 세상 130221 이름 : 이근호 (IP:119.18.69.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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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강    음성        동영상

 유일자 (IP:116.♡.234.248)13-02-26 14:07 
22강-YouTube강의(하늘도 무심하시지)130221-이 근호 목사


22강 “하늘도 무심하시지“란 제목입니다. 사람들은 한번 만나서 이야기 해보면 자기의 어려운 사정, 힘든 것 누구 만났다하면 붙들고 열심히 이야기를 하죠. 속에 담아놓기 괴로워서 마음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 다니는 사람도 예외는 아닌데,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믿고자 결심을 하죠. 하고 난 뒤에 그 다음부터 하는 작업은 과연 진짜로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지 아니면 하나님이 확실하게 있는지, 없는지 자기가 평소에 살아온 경험 가지고 측정에 나서는 겁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측정하느냐하면 자기의 기도와 맞바꿀 수 있는 그러한 괴로운 거, 서러운 거, 고생담, 한 맺힌 거, 힘든 일 그런 것들을 이제 하나님 앞에 내놓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에서 이런 얘기를 하거든요? 여러분들이 기도를 하시면 하나님께선 다 들어 주시고 그 기도빨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응답까지 해주시니까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 여러분들을 확답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한단 말이죠. 사람들은 성경을 몰라도 기도란 것은 타고난 겁니다. 어린애들도 기도 할 줄 알고 기도하라는 것은 고개 숙이고, 눈 감고, 두 손 모으고 이거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거기에 대해서는 나름대로의 다 잘한다고 자부하는 겁니다.


그래서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잘 하는 것! 기도 잘 하는 것, 열심히 잘 하는 것, 깡으로 하는 것, 아주 용을 써서 하는 것 그걸 해놓으면 하나님께서 인간처럼 살아 계신다면 거기에 대해서 뭔가 반드시 반응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해서 기다리죠.


기도해놓고 날짜를 보고 시간을 보고 기다리면서 행여나 무슨 부시럭 하는 소리! 하나님께서 찾아와서 응답 하시는 부시럭 하는 이런 낙엽 밟는 소리라도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하는 어떤 징후 같은 것... 자국이라든지, 획기적인 거라든지 그냥 얼핏 보면 잘 안잡히지만 가만 신경쓰고 보면 하나님의 응답이라는 것이 자기한테 포착이 될까봐 그런 식으로 살아가죠. 그렇게 하나님이 있다 없다, 그리고 학업에서 뭔가 하나 건졌으면 그걸 교회에서 간증 이란 이름으로 자랑하고 그렇다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은혜 받았어요, 성령 받았어요, 구원 받았어요, 복 받은 자요 ‘당신은 오늘 죽어도 천국 가는 사람입니다’ 라는 식으로 격려와 부러움과 칭찬을 받게 됩니다.


사람들이 교회 가는 이유가 바로 그런 칭찬과, 위로와, 격려 속에서 사실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기 위해서 그거 하거든요? 그런데 이 성경을 막상 보게되면 그런 것들이 마귀, 적 입니다. 왜 마귀, 적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올 때도 또 우리가 하나님께 갈 때도 뭔가 통과하는 반드시 필수적으로 통과해야 될 지점이 있는데 그것이 뭐냐! 희생이라는 겁니다. 희생!


자! 방금 제가 제목을 이렇게 얘기 했습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라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필이면 왜 나에게 이렇게 힘든 일이... 뭐 이런 거 있죠? ‘하늘도 무심하시지와 정반대 말이 뭐냐하면 하나님이 희생하셨다’ 이러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왜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라고 하고 성경을 보게 되면 너는 너 힘든 것만 생각하고 너 같은 인간을 위해서 내가 죽어야 할 정도로 그렇게 희생을 해야 했다는 사실을 너가 조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냐! 라고 이런 식으로 대꾸해 오십니다.


하나님의 희생이라는 그것을 경과하거나 그것에 머물지 아니하고 그것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그동안 열심히 기도해서 응답받았다 하는 것은 그것은 전부 다 그 하나님의 희생을 비켜와서 인간을 다루려고 하는 악마의 나라에서 그런 식으로 신호를 보낸 겁니다. 계속해서 너의  기도의 노동의 대가로서 신의 응답을 받는 그런 식으로 신앙생활하고 교회 다니라고 마귀가 그렇게 부추기는 이유는 마귀가 기어이 인간에게는 알려주고 싶지 않은 진짜 하늘의 비밀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건 뭐냐하면 하나님마저 이 땅에서 희생했다는 겁니다. 하나님마저 희생했다면 우리 입에서 ‘하늘도 무심하시지‘ 라는 말은 정말 그 희생의 우리의 마음이 꽂히게 되고, 거기에 우리 마음이 쏠리고 있다면 절대로 하나님이 무심하신 그러한 불평과 불만은 나오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들게 합니까? 라는 이 말 속에는 하나님의 희생 같은 것은 저한테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나는 그런 소리 듣기도 싫어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희생이 아니고 내가 희생하는 겁니다’ 라는 고집 같은 것이 거기에 깔려 있습니다. 나는 고생 안해야 될 사람이고 나는 이 세상을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나는 착하고 의로운 사람인데 지금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잘못 다루고 있다는 거예요. 나의 가치를 제대로 지금 하나님 쪽에서 눈치 못 채고 있다는 겁니다.


이 불평불만이 단순한 불평불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멱살을 쥐고 흔드는 거예요. 하나님을 공격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죽이고 싶은 그런 충동의 발현으로서 우리는 교회에 다니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배후에는 하나님과의 가장 최후적으로 적대 관계에 있는 악마가 그런 식으로 인간을 앞잡이로 삼아서 철저하게 그런 식으로 다루고 있고 진두지휘 하고 있는 겁니다. 악마가!... 거기에 지금 말려드는 거예요.


차라리 교회를 안다니고 차라리 노골적으로 하나님 안믿겠다고 나서면 그런 불만이 없는데 열심히 교회 다니고 열심히 목사 말 듣고 열심히 헌금하고, 충성하고, 전도하고, 선교회비 내고 교회를 위해서 충성하면 할수록 악마가 원하는 대로 더욱 더 철저하게 사주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전지전능 하신다면 ‘왜 나의 소박한 아무것도 아닌 문제까지라도 주께서는 내 기도를 비켜가서 안들어 주느냐’ 라고 불평불만이 우리 속에서 덩어리 채로 올라오게 되는 겁니다. 창세기 9장 4절~5절에서 보면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 채 먹지 말 것이니라.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릴 것이니”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을 마련해 줘놓고 그냥 하나님이 떠나버리신게 아니예요.


여기서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 그 은혜를 주시는 선인과 악인과 불구하고 은혜를 주시는데 거기에는 반드시 원리적인 토대위에서 그것이 은혜가 나오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 토대가 뭐냐하면은 이 죽음이라는 것! 너가 사실은 죽어도 되는 인간이고 저주 받아도 합당한 인간이라는 그 사실을 담고있는 그러한 하나님의 희생의 제사가 거기에 뿌리로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은혜 안줘도 되고 너에게 아무 조치하지 않더라도 너는 아무 할 말 없을 정도로 죄인이었었는데 하나님이 너 대신 희생을 하심으로서 여기 노아 할 때는 흠 없는 새나 짐승이 죽죠?하나님께서 흠 없는 제물! 다시 말해서 그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장차 오실 내용이 거기 담겨 있습니다. 그걸 결합시키면 예수님이라는 하나님께서 너같은 인간을 대신 죽음으로서 지금 ‘너’ 가 하루하루를 은혜 받고 살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일과 우리가 경험하는 체험하는 모든 것은 다 어디에서 경유해서 나오느냐!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으심에서 나오는 그 은혜의 열매들이고, 은혜의 선물들입니다. 그런데 그 선물을 받아 놓고는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렇게 돼버리면 그 사람 배후에는 악마가 있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유일자 (IP:116.♡.234.248)13-02-26 14:32 
23강-YouTube강의(부활의 세상)130221-이 근호 목사


이번 강의는 제23강입니다. 제목은 부활의 세상입니다. 부활의 세상이 있다는 말은 이 세상은 죽음으로 끝나야 될 세상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겁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이 세상 우리는 이것을 전부라고 알고 있습니다. 특히 과학자들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다 집결 시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합해서 뭐라고 그러냐하면 그걸 세상이라고 하고, 또는 우주라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렇다면 과학의 전제가 뭐냐하면 ‘눈에 보이는 세상 전부가 이게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에 몽땅 그 세계가 바로 눈에 보이는 세계로서의 이것이 전부 다 한데 모은 것이다’ 이렇게 생각 합니다. 아직 물론 거리가 멀어서 우주 끝을 안 가봐서 미처 모르지만 지구에서 그렇게 수천 억 광년에서 멀어지는 것이라도 비록 눈에는 안보이지만 인간의 지식의 한계가 있고 기술의 한계, 기계의 한계 때문에 다 보이지는 않지만 현재 우리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와 저쪽에는 끊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는 것을 그들은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어쨌든간에 현재 눈에 띄는 이 모든 체험되는 것은 이거는 세상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는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거예요. 왜! 실제로 피부에 와닿으니까! 그리고 이건 바깥에 넓은 우주만 보는 것이 아니예요. 우리 내부를 살핍니다. 세포를 살피고, 세포 안에 단백질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단백질, 분자, 원자, 전자, 핵 이런 것을 살피면서 거기서 인간은 상당히 작은 세계까지 지금 보고 있습니다.


어쨌든 넓게 보든 작게 보든 보는 것들의 총 집합! 그게 바로 세상입니다. 그래서 그 세상에서 그 세상을 세상이라고 이렇게 닫아놓고 그 다음에 과학자들은 뭐냐하면 진리라 하는 것은 바로 이 안에서 뭔가 구축되어야 된다는 거죠. 진리란 것은 눈에 보이는 이 세계에서 통역이 되고 적용이 되고 그 안에서만 진리가 된다는 겁니다.


만약에 눈에 보이는 세계 바깥에서 이야기를 하면서 그걸 진리라고 우기면 과학자들은 화를 냅니다. 왜? 증명할 길이 없고 반복해서 그것을 똑같은 결과물을 내놓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예수님은 내가 곧 진리라고 했습니다. 물론 과학자들은 그걸 믿지 않죠. 때로는 예수 믿고 신앙생활 한다는 과학자들은 예수님이 진리라는 것을 믿는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그 예수 믿는 과학자들이 예수님을 진리라고 이야기 할 때는 반드시 성경적으로 뭔가 전제를 둬야 되는데 그것이 뭐냐하면 내가 아무리 과학을 연구해도 이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진리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돼요. 이것도 진리고, 예수님도 진리고 이렇게 해서는 안돼요.


그러나 대부분의 예수 믿는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이 그게 아니고 과학이라는 이것은 부정 타는 것도 아니고 죄도 아니다. 이거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지혜의, 진리의 한 부분이고 진리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 과학 과정을 통해서 접근해가면 나중에 하늘  나라도 도달할 수 있다는 진리가 될 수 있다 그렇게 우깁니다.


이거는 예수 믿는 과학하는 사람들뿐만 아니고 예술을 하는 음악이나, 미술을 하는 그런 사람들도 그런 식으로 주장을 해요. 예수님도 진리지만 건축하는 건축학도 진리이다! 언어학도 진리이고, 고고학도 진리고, 그리고 문학도 진리다.

이 진리는 물론 문학의 진리 전부는 아니겠지만, 예수님이 진리지만, 예수님이 진리의 원천이 되고 그 원천에서 파생된 것이 문학이기 때문에 문학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이 되면서 결국 나아가면 예수님과 만나고 예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진리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렇게들 이야기해요. 거짓말입니다. 다 엉터리입니다.


왜그러냐하면 바로 부활 때문에 그렇습니다. 과학하는 사람은 과학하면서 죽을 이유를 과학에서 찾아내질 못합니다. 예술을 하는 사람, 미술을 하는 사람, 건축하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 목회하는 사람, 선교하는 사람은 선교하는 그것을 진리라고 우기는데 그건 진리가 아닙니다. 헌금하는 사람! 진리가 아니예요.


왜냐하면 헌금이 진리가 되고 선교하는 것이 진리가 되려면 헌금하는 본인, 찬양하는 본인, 선교하는 본인이 왜 죽어 마땅한 자인가를 헌금과, 선교와, 그리고 문학과, 음악과, 예술과, 건축과, 과학과, 천문학과, 화학에서 그걸 찾아낼 수 있어야 됩니다. 정치와... 그러나 그들은 절대로 찾아내지를 않습니다. 왜! 그것을 찾아낸다면 자신 스스로 진리가 아닌 것 그러니까 죄악된 것에 자기는 한 평생 그걸 진리라고 착각하면서 올인하며 몸 바친 바가 되기 때문에 이것은 자기 스스로 자신에게 모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고백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는 것이 진리가 아니라고 하는 아주 특이한 사람들이 성경에 나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병든 자, 세리와, 창녀와, 강도, 거지 예수님께서 예수님 자신이 무엇 때문에 오셨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채택한 사람들... 날 때부터 소경, 38년 된 병자 이런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채택할 때 성전에서 기도하면서 주여! 고개도 감히 들지 못하고 ‘내가 죄인 맞습니다’ 라고 고백했던 그러한 세리. 그리고 삭개오. 이런 사람들은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진리요, 의요, 착하다고 고백하지 않습니다. 십자가 달린 강도...


그런데 예수님 주변에 그와 그 반대로 지금 내가 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사두개인이고, 바리새인이고, 서기관들이었습니다. 그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자기가 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그 가운데 예수님이 계십니다.


여러분 진정 예수를 믿습니까? 그러면 예수님을 가운데 두고 바리새인 쪽에 설 거예요. 아니면 스스로 죄인이라고 자백하는 이쪽 편에 서야 됩니까? 우리가 교회 가면서 늘상 생각 하는 것이 어느 쪽입니까? 죄인 쪽입니까? 의인이라고 자만하는 쪽입니까? 예수님께서 천국을 부활의 세계라고 언급하는 것은 그 전에 죽음의 세계로서 이 세상을 규정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세상은 죄를 지어서 심판 받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와 버렸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아무리 의를 행하고자 해도 죄가 인간의 의보다 우세하기 때문에 어떤 것도 온전한 의가 될 수 없고 죄로 전환되는 그러한 절차만 겪을 뿐입니다.


우리 몸이 육신인데 이 육신은 죄와 욕망에 의해서 다루어지기 때문에 아무리 고상하고 경건한 생각을 우리 속에 집어넣어도 이 기계가 결국 돌아가게 되면 나오는 결과물은 죄가 나옵니다. 육신의 생각이 나옵니다. 왜! 육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시기와, 질투와, 미움과, 형제우애와...


마태22장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 한다” 아예 단정을 해버렸어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른다’ 우리는 이 말을 이렇게 이해합니다. 너는 성경도 읽을 줄 모르고 하나님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느냐! 이런 식으로 예수님은 나무라는게 아니예요. 성경을 읽어요.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어도 성경을 모르게 되어있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다 해도 능력을 받은 적이 없어요. 마태복음 22장의 내용이 무슨 얘기냐 하면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몰려와서 부활의 세계가 없다는 것을 이 지상에 있는 가족관계 가지고 증명을 하고자 하는 겁니다. 만약 ‘어떤 여자에게 남편 7명이 있다면 형제 일곱이 있는데 여자는 형수 한 사람 밖에 없을 때 그 형수가 애기를 못 낳아서 일곱 형제하고 다 결혼을 했을 때 천국갔을 땐 부활의 세계에서는 그 여자를 일곱 남자 중에 어느 남자가 진짜 남편이냐’ 는 곤란한 문제가 생긴다는 거예요.


이런 곤란한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런 곤란한 문제까지 감수하면서 부활의 세계를 따로 마련해두지는 않았다는 것이 사두개인의 이야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30절에 보면, 천사와 같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 하시는 것은 이 세상에선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는 그것처럼 부활의 세계도 마치 눈에 보이는 집합체! 이것과 부활의 세계가 연속된다고, 이렇게 이어진다고 사두개인은 생각했는데, 바로 눈에 보이는 이 세상 때문에 사실은 부활의 세계가 이야기해도 안 믿어지게 돼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세계를 주시는 이유는 성령이 아니고서는 사람은 보는 대로 믿고 믿는 대로 그것이 천국과 이어진다고 오해하기 때문에 성령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천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우리는 지금도 눈에 보이는 이 세상! 여기에 집착하고 몰두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에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을 보세요. 보시고 성경을 다시 보세요. 다시 십자가로 보시면 정반대로 못 믿을 우리를 성령 주셔서 성령이 와야 믿게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