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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강의-일없이 구원 130214 이근호

아빠와 함께 2016. 7. 6. 15:42

21강-YouTube강의(일없이 구원)130214-이 근호 목사

이번에는 로마서4장에 나오는 말씀에 대해서 해보겠습니다. 로마서4장에 보면은 예수님께서 사도바울에게 계시를 전하면서 두 사람을 등장시켰습니다. 한 사람은 아브라함 또 한 사람은 다윗을 등장시켰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을 등장시킨 이유는 이 구원문제에 대해서 하나님 계시고 내가 있으니까 하나님과 내 사이에서 좋게 지내면 구원이 되지 않겠는가.


구원방식에서 우리 인간들이 나름대로의 하나님 앞에 이런 식으로 구원 하십니까. 또는 이런 식으로 구원됩니까 물을 수가 있거든요.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제시하고 다윗을 제시함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과 다윗 같은 방식으로만 구원한다는 것을 로마서4장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과 다윗을 거론 할 때에 우리가 로마서4장을 모른다고 치면 아마 이런 생각을 상식적으로 갖게 될 것입니다. 아~ 아브라함은 일 많이 했구나. 아~ 다윗도 참 훌륭하게 했구나. 그래 아무라도 아브라함과 다윗은 참 우리인간의 모범적으로 신앙적으로 산 사람이기 때문에 나도 ‘아브라함처럼 다윗처럼 그들이 일한 것 만큼 나도 이리해야지’ 라고
이렇게 안일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로마서4장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다윗을 언급하게 된 그 이유가 상당히 낯설고
아주 엉뚱한 내용으로 되어 있어요. 로마서 4장 5절에 보면 “일을 하지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 라고 되어 있습니다. 6절에 보면 “일한 것도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5절에 보면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 그 다음에 6절에 일한 것도 없이 어떻게 보면 구원의 3종 세트라 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우리의 상식은 일한 만큼 복 받고 구원 받는다는 것! 결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죠. 일을 아니할지라는 그런 생각을 우리가 하나님께 구원받고자하는 이 엄청난 축복을 얻어 내면서 일을 아니해도 구원 받는다는 그런 생각을 우리 인간들이 잘 갖지 않길 바라는 거예요.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뭔가 그런 엄청난 복을 받으면서 일을 안 할 수가 있겠어‘ 라는 것이 교회나 세상이나 통상적으로 그렇게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로마서 4장에서는 일을 아니할지라도 그 다음에 두 번째 보통 우리가 경건해야 구원 받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보면, 출발점이 뭐냐하면 일을 아니한 자 또 경건치 아니한 자 6절에 보면 일한 것도 없는 자. 그런데 이러한 3종 세트 요건에 부합되어 있다고 하나님께서 제시한 사람이 아브라함과 다윗입니다.

그러니까 성경 말씀은 구약을 보면서 무엇을 우리한테 요구하느냐 하면은, 아브라함을 읽어라! 예. 읽겠습니다. 거봐! 일 안했잖아. 이번에는 다윗을 읽어라! 예 읽겠습니다. 읽어봤나?  거봐! 경건하지 않잖아. ‘일도 안했고 또 일한 것도 없잖아’ 라는 식의 해석이 하나님 쪽에서 제시할 때 우리가 거기에서 선뜻 아~ 과연 그렇네요. 정말 아브라함과 다윗은 일한 것도 없이 경건치 않네요. 라고 여기에 대해서 동의 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평소에 교회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을 이해하면서 그런 식으로 이해해 봤었습니까? 아브라함! ‘아~ 일한 것도 없어’ 다윗! 경건치 않은 자. 라는 식으로 그 분들을 신앙의 선배라고, 신앙의 조상이라고, 신앙의 믿음의 포배라고 여기는 사람을 건방지게 우리 쪽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은 아무것도 일한 것이 없이 전혀 경건치 않으며 일을 하지도 안했다고 그런 식으로 그런류의 사람이라고 우리가 그렇게 단정 지었습니까?


단정 짓기가 힘들죠! 그 분들이 아브라함과 다윗에 대해서 경건치 않고 일한 것도 없다고 우리가 그런 식으로 이해하기가 힘들다는 말은 우리는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구원관이 하나님 생각하는 구원관과 다른 구원관을 지금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구원을 받는데 대해서 하나님의 방식을 우리가 볼 생각하지 않고 ‘아마 하나님은 이런 것을 좋아할거야’ 라고 지레짐작 우리 생각의 터전을 너무 많이 닦았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로마서4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구원 방법과 어쩌면 그리도 정반대되는 식으로 구원을 생각하는 겁니다. 경건해야 되고, 일도 해야 되고, 일한 것도 많이 남겨야 되고, 열심히 해야되고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구원도 주고, 상급도 주고, 남보다 더 많은 보너스도 주고 그러한 인식을 가지고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에 접근해서 마치 그것이 하나님의 옳은 구원관이라고 안심 푹 놓고 하는 가운데서 안일하게 살아 왔습니다.

만약 그렇게 인식하는 그 사람은 아브라함 노선 아닙니다. 그리고 다윗 노선도 아니고.. 결국 구원받는 노선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로마서 4장에서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아브라함과 다윗을 가지고 많은 일을 시켰는데 그 많은 일을 시킨 이유가 아브라함은 구원 받았다 다윗은 구원 받았다. 라는 이야기를 할려고 많은 일을 시킨 것이 아니고, 아브라함과 다윗조차도 하나님이 정해놓은 구원의 방식을 위하여 그들을 채택했다는 취지가 강렬합니다.

무슨 말이냐하면 로마서4장 4절에 보면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구원받기 위해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많은 일은 시키면서도 그 모든 일이 자기 구원 받는데 보탬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그들이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들이 정작 구원 받는 것은 그들이 일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다는 것을 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많은 일을 시킨 겁니다.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라고 하는 말씀을 성립케 하기 위해서 다윗과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무엇이 경건하지 않는 삶인가를 그 두 사람의 평생을 통해서 다 까발려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 보기에는 경건해 보이지만 주님 보시기는 그것이 경건치 않다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의롭게 되는 것은 자신의 경건하지 않음을 분명히 두고서 뭔가 내 경건으로 구원되지 않기에 뭔가 하나님 약속에 의하면 어떤 다른 분이 또 나를 위해서 오실거야. 그 오실 분을 기다리는 믿음으로 아브라함과 다윗은 의인이 되었습니다.

7절에 보면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 받는 자는 복이 있고” 라고 되어 있거든요.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죄를 가리우심을 받기 위해서 그 말씀 자체를 이루기 위해서 아브라함과 다윗을 불법적인 사람으로 등장해야 하고 죄를 짓는 사람으로 거기에 가담하게 하시는 겁니다. 자력으로 그 불법을 용서받은 적이 없고 자기 노력으로 죄를 가리워지지 않는 상태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을 계속 이끄시는 겁니다.

그렇다면 불법적이고 죄를 짓는 아브라함과 다윗이 그러면 누구 덕분에 용서받고 죄 가리움을 받고 구원을 받았느냐. 그거는 그 숨어 있는 장차오실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 그 불법의 사하심을 받고 죄 가리움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는 이복을 성취하기 위해서 주체자로 오시기 위해서 앞당겨서 아브라함과 다윗을 주의 일에 참여 시키고 동참시킨 겁니다. 오늘날 똑같은 방식으로 예수님에 의해서 성도가 다루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드린 3종 세트..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않은 자.. 일한 것도 없이 매일같이 우리는 우리자신이 우리 자신에게 여기에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즐겁고 감사하고 감격하는 마음으로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주여 우리는 ‘일한 것도 없고 경건치 않고 아무것도 일을 안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는 그것이 우리를 통한 하나님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