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 요즘, 뭔 일이 또 일어났어요? 아빠?
엄마 : 음... 그러니까 이목사님이 문제점이 있다고 어떤 집사님이 글을 쓰셨단다.
단 : 무슨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 뭐가 문제래?
엄마 : 그러니까... 복음=십자가신학=이목사소유의 이미지로 십자가마을이 채색되었고, 그래서 이목사님께 “그렇게 하지 마세요.” 권면하면 “나는 복음만 전했다.” 하면서 자기가 마치 복음의 심판자처럼 행사하셨다는구나? 그리고 평생 죄인으로 드러나는 삶이니까 ‘막 살라’는 식으로 설교하고 그래서 방종하는 자들이 생겼다는 거야... 또 이목사님은 어려운 철학을 굳이 복음과 함께 가르치신다고 불만한 사람들도 많아. 음... 지금부터 가가호호 다니면서 여러분을 인터뷰하겠습니다. (자매는 치카치카하러 화장실로 고우~ 그래, 걸림돌을 내놓는 거야. 십자가는 거치는 돌이야...^^)
엄마 : 단아, 예수믿는 성도가 십자가 정신으로 안살고, 막살고 있다는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예수믿는 성도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 수 있는 거야?
단 : ‘막 살아라’가 이목사님의 마침표가 아니던데... 목사님의 문제점을 썼다는 그분이 언어의 권력관계를 잘 파악하지 못했을까?ㅋ 목사님의 설교나 강의를 들을 때마다 느꼈던 것인데, ‘이번에도 저렇게 목터지게 외치시니 다음번에는 분명 하실 말씀이 없을 거야. 똑같은 소리 하실껄...’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다음에 또 들어보면 더 열강이여. 예수님의 십자가 피 앞에서는 다 무릎 꿇어!잖어. 그런데 들을 때마다 그렇게 새롭냐?? 와~ 내 속이 뜨끔하다니까. 깜짝 놀래서... 그런 십자가설교가 문제 있다고 하면...그려, 영적인 사람은 십자가정신으로 살 수 있다고 말한 그 사람이 바로 육적인 거여...
그리고 다 막살고 있는거 맞잖어. 지가 빡세게 공부해서 지가 좋은 대학 가야하고 좋은 직장 누가 잡어줘? 지가 잡아서 돈 많이 벌고 싶고, 남을 이겨먹으려고 엄청나게 성실하게 살지만 그게 자신을 위해서 막사는 게 아니면 뭐냔 말여... 그렇게 막 사는 나를 예수님이 구원하셨다는데 뭐가 잘못이라는 거지? 철학만 해도 그려. 우리가 다 이미 철학자여. 인강(인터넷)강사도 말하던데... 우리 마음속에 이미 철학이 있다구. 죄인 속에 기양 있는 철학이니까 그 철학이 왜 예수님의 십자가와 충돌하는가를 가르치기 위해서 철학강의를 하시는 게 아니냐구. 남보다 더 열정적으로 공부해서 예리하게 십자가복음을 전해주는 선생을 만난 것을 감사해야지, 무슨 문제점이 있다구...? 참 내! 아빠, 시간 늦었다. 도서관에 빨리 가자~ 야! 오다인! 너, 낼 모래 시험이라면서 지금 그렇게 놀 때가 아니다!
엄마 : 야, 다인이가 중학교 때의 너 같은 줄 아냐? 알아서 하거든요? 너나 성실하게 막 사세요~
단 : 헐~~ 낚였다! 하하하......하하하....
씽크대 앞으로 가서 고무장갑을 끼려던 신이.
신이 : 어라? 이 고무장갑에 누가 물 넣었어! 범인이 누구냐구? 설거지들도 안하면서...
엄마 : 저녁까지 설거지 해주시니 무한 고맙습니다... 근데, 신아! 성령받고 예수 믿으면 진짜 사랑이 많아지고 예의가 많아질까?
신이 : 아니, 그 손... 누구라고 했지? 그 사람이 뭐라고 했다고?
엄마 : 이 목사는 십자가정신이 없다고 그러는구나? 그러니까 복음 전하면 그것만 옳은 것이 되기 때문에 나머지는 고려사항이 아니라는 분위기로 설교하고 사랑도 없고 뭐...등등 엄청 열받으셨네... 성도라면 성령받은 성도의 삶이 나타나야 하고, 또 그런 정신으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지.
신이 : 사랑? 누가, 어따대고 사랑을 말한대? 감히! 그 사랑 가졌다는 사람이 ‘십자가지신 예수님 피만 전부’라고 말한 설교를 문제 있다고 말할 수 있어?? 그렇잖아. 십자가 피만 복음의 내용이라면서? 그럼 사랑이니 예의니, 정신이니 그 부분을 왜 따진대? 자기가 사랑이 없구만. 난, 사실... 십자가를 싫어해. 맘에 안들어. 진짜 말씀 들을 때마다 열뻗친다구. 기분 나뻐. 뭐야!! 아무리 생각해도 돌려돌려 생각해도 정답이 없고. 내 인생 다 틀어놓기만 하고. 안좋은 건 다 나한테서만 나오고. 뭐 되는 일이 있어야지. 우씨... 그렇지만 논리가 그게 맞잖아. 예수님 자기 맘대로 하고, 자기만 영광받고, 하나님은 예수님께 영광 돌아갈 때만 “됐다!” 그러고... 발로 차버리고 싶다고. 그런데 더 기분 나쁜 건 그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야. 정말 짜증나!! 짜증나지만 따질 수도 없는 입장이잖아... 그 손... 그사람은 살면서 자기 생각대로 다 됐나보지.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지. 그런데 십자가 설교만 해오신 이목사님을 문제 있다고 했다면 예수님이 주신 사랑이... 자기가 없네. 자기가 사랑이 없으니까 남도 사랑이 없는 줄 안다~~~ 그거야, 그러니까 그 분은 이목사님과 십자가마을을 조롱하고 있는 거지..... 그런데... 십자가마을 글들은 예수님 피만 전부라고 떠들잖아...
엄마 : 신아, 참 감사하다. 자기 주제파악을 있는 그대로 하니 참 시원하구나? 이런 말 하고 있는 순간이라도 예수님만 전부라고 여기게 되니... 왕짜증나는 일인데도, 어떻게 그게 맞다는 생각이 들까? 참 신기하지 않니? 엄마도 시도때도 없이 죄인으로 만들어지는 현장을 많이 체험학습 하지 않았겠냐... 아니! 내가 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그렇게 했다는 설교재료로 쓰일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아느냐구! 정말 억울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니까. 그래서 이목사님이 늘푸른 교인들을 설교재료로 쓰신 것에 대해서 그 분들이 얼마나 기분 나쁠지는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뭐도 모르고, 복음도 모르고, 아니, 마귀 짓만 하는 설교재료로 쓰이더라도 예수님께만 영광돌리는 설교라면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저 사람이 과연 무얼 말하고자 함인가,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그거 신경쓰다보면 어느새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죄인 중에 괴수가 되어버린 엄마자신을 발견하고 있어. 어느새 순간 억울하고 눈물났던 것이 이제는 부끄럽고 고마운 눈물로 변환되는 순간을 엄마는 수도 없이 경험하곤 해...ㅋ 다음은..... 중 2, 막내 다인이 방. 똑똑...
다인 : 뭐예요? 시험공부하고 있는데...
엄마 : 저... 잠시만 인터뷰에 응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수믿게 된 성도가 ‘난 막 살고 있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근거를 꼭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다인 : 갑자기 와서 그렇게 물으면 어떻게 해요?
엄마 : 그러니까... 어쩌구 저쩌구... 한 솥밥 먹은 성도도 이목사님은 자기와 같은 믿음이 아니면 행함신학이라고 성도를 배척하고 내쫓았다는 거야... 자기만 복음 알고, 십자가를 소유한 자처럼 심판하고,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십자가지신 예수님 앞에서는 죄인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말씀을 지킬 수 있는 듯 위선떨지 말고(여기는 엄마 말) 차라리 막 살라고 성도들을 가르쳐서 복음이 훼손되고 엉망이라는 것이지...휴....
다인(갑자기, 단호하게) : 예수를 믿어서 더 막살게 되는 거야~
엄마 : 뭐라고요? 아니,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예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요즘 십자가 마을이 아주 시끄러운데, 다짜고짜로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합니까? 보충설명 바랍니다.
다인 : 그러니까, 막 살든지 말든지 구원은 우리결정이 아니야. 구원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막 살고 말고에 신경 안쓰셔. 됐어요??
엄마 : 어어.... 그...그렇구나. 그렇지... 그런거야... 주춤주춤...(서 있다)
다인 : 더 묻지 말고 나가요. 아참, 이목사님 교회에서 나간 사람들은 자기들이 걸어나간 거잖아. 안맞으니까... 그러니까 쫓아냈다고 하면 안되지. 맞어. 꼭 우리반 정선형 같구먼?
엄마 : 왜? 그 애가 어쨌는데?
다인 : 지가 나한테 삐져가지고 우리그룹에서 걸어나간 건데, 내가 내쫓았다고 이애 저애한테 소문내서 내가 내쫓았다고들 한다니까? 내가 전학와서 자기 친구들하고 친하게 지낸다고 아주 별 말을 다하고 다녀요~ 아니, 지네들이 나한테 붙어놓고선... 아니, 정말 애들이 왜 그런지 몰라... 답답해 죽겠다니까! 이 사람 저 사람 시험하고 다녀요. 이간질 하고. 그런데 난 또 바보같이 그 뒤로도 지가 저만큼에서 오는 것이 보이면 ‘안녕?’하고 몇 번이나 인사했거든? 그런데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옆에 있는 애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서 안녕? 안녕? 그래~ 아유 참, 치졸하다니까. 그래서 내가 그다음부턴 멀쑥해서 인사를 안했지. 그렇잖아, 내 인사 기분나쁘다는데 인사할 필요가 뭐가 있어! 그런데 그 애는 내가 친구들과 지나갈 때 이번에도 다른 애들 이름만 부르면서 ‘안녕?’을 하는 거야. 그래놓고 애들한테 또 뭐라고 떠들고 다니는지 알어? 다인이가 자기 인사 씹었다고 했다는 거야. 어떻게 그렇게 간사하게 사람을 괴롭히냐? 정말 소름끼친다니까? 아니, 왜 나한테 신경쓰냐고~ 뭐 내가 아쉬울 껀 없지만... 그렇게 살라지 뭐... 지만 피곤하지. 흥!
엄마 : 그러니까 네가 배려하는 마음으로 친구를 생각해주든 화를 내든 예수님의 구원은 그것과 관계가 없이 하나님 뜻대로 다 이루어졌고 이루어진다는 것이지? 그러니까 넌 막사는 죄인의 자리에서 용서받는 것이고...
다인 : 그럼 막살지 않는 사람이 어딨대요? 참, 어른들이란 가끔 이상한 질문을~~~
이상으로 인터뷰에 응해주신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생각을 확실하게 정리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저 구기자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부자청년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요.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마19:20)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고 강조하신 그 장본인들은 이웃 사랑 했을까요? 나나 너나 구분없이, 나 필요한 거 다 쓰고 남은 것 중에서 뭘 좀 했다는 거 아닌가요? 무언가 했다는 것은 이미 ‘내꺼’의식이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라고 나오는 것 자체가 주님께 거저 받은 은혜를 자기 것이라고 소유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 것을 도적질하는 결과는 저주입니다. 그래놓고는 상대방에게 이러한 모습이 보여야 한다고 권면할 수 있을까요?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저는 주변에 있는 십자가마을의 (십자가의 피공로만 전부라고 초점이 모아져있는) 성도님들이 얼마나 (말씀 앞에서) 평안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주의 일들을 감당하는지 자랑하고 싶어 환장할 지경이지만 인내심으로 버티고 있답니다. 말씀 봉사자의 한결같은 겸허한 마음, 도대체가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는’ 걸 못봤어요. 아니, 사람의 그 어떠한 행위도 십자가지신 예수님의 피 앞에서는 그저 자기만 알았던 죄인으로 드러난다...는 의미로 말씀을 전하지 아니하는 적은 단 한번도 못봤습니다. 거기에 자기자신을 늘 포함했음을 설교 한 편이라도 진지하게 들어보고 읽어본 사람은 누구라도 눈치챌 수 있습니다. 그저 복음만 듣고싶어 한다면 그것이 좋아서 한 두사람 있는 곳도 일만 명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처럼 기쁨으로 달려가시고, ‘십자가의 피’ 만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반대하기 전까지는 상대방을 같은 동역자로 끝까지 비호하는 말만 하면서 하나님 말씀만 전하는 통에, 험담하려는 마음이 어느 새 너무 부끄러워지지요. 막 산다...라고 표현해서 물의를 빚으신 분은 또 어떻고요. 그렇게 부드러운 마음과 수용적이고 따사로운 선물의식이 충만한 사람은 정말로...!(전화 한 통 없이 일년에 고작 수련회 때만 두 번 볼 뿐이지만 난 그렇게 보였고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완전히 왕조소, 비아냥 만땅 받고 있는 중에도 그에게서 나오는 한결같은 외침은 십자가지신 예수님만 우리의 전 생명이라는 고백. 아! 짧은 글만 보아도 그것만 크게 보이는지요...!
이런~ 인내하고 있다고 하고서는 1초도 안지나서 그 겸허한 맹세를 어겨버렸네요. (그렇지만 100분지 1만 어겼으니까. 간사한 변명..)자기 맘대로 막 살고 있는 중이지요. 그러나 주님이 새로운 죄의 깊이를 확 알려주시려 터뜨릴 때마다 저는 더욱 은혜의 깊이를 맛봅니다. 그 때만이 내가 막 살고 있는 죄인 맞구나... 주님 앞에 황송하게 고백하며, 값없이 택하셔서 주의 이름만 높이시는 그 일에 찬송을 드리게 됩니다. 또다시 나는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직장에서 만난 구원파 열심당원이 건내준 CD를 피곤한 중에도 진지하게 메모하며 보는 열심을 내며(참 예의바르지요?) 먼저 찾아와서 말 걸어온 그 분에게 서로 말해야 하는 열심을 감당합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열 일 제치고 도저히 말로 할 수 없는 부분을(상대방이 하도 말이 많아서) 편지글로 쓰느라 밤을 지새는 열심을 반복하여 냅니다.
“....모든 사람이 선생님처럼 성령받은 자의 삶의 모습을 주장하거든요...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께 100% 영광을 돌려드리는 태도가 아닙니다. 반반입니다... 누군가 내 행위를 부정해주고 예수님의 십자가만 다입니다라고 권면할 때 기분나빠하지 않는 제 자신이 너무나 신기해서 이건 내가 아니야. 고백하게 됩니다...모두 성령받았다고 하니, 무엇이 과연 성경적인 해석이겠습니까. 오직 십자가지신 주님의 피만 인간의 눈으로 해석당하지 않고 끊임없는 속죄의 은총으로 성도를 책망해가시고 주님만 자랑하게 만드시니, 그것만이 변함없는 진리라는 것입니다........”
그 뿐인가요. 50이 다 되어가는 나이인데 제 주제를 모르고 마치 10~20대인양 애들 체육시간에 애들보다 더 뛰어다니는 열심도 있습니다. 2시간씩이나... 옆반은 새벽부터 시험지 복사해서 문제 풀리기 바쁜데, 나는 그것이 불쌍해서 원래의 교육과정대로, 일일이 실험하며 모둠별 보고서 작성하며 원칙대로 해나가는 열심을 또 보입니다. 옆반 아이들이 우리반을 부러워하게 만들었으니 이 또한 내 성격대로 막 살고 있는 것이고, 옆반 교사는 자기반 점수 관리하느라 열심내고 최선을 다하지만(정말 성실한 교사..), 아이들을 너무 힘들게 만들고 있으니 이 또한 막 살고 있는 자입니다. 예수 믿으나 안 믿으나 막 살고 있는 것은 똑같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렇게 몸이 힘들고 편두통으로 시달린 이번 주일입니다. 결과적으로 가족을 또 불편하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예수 안 믿는 자는 자신이 절대로 막 살고 있다고 인정 안하지요. 대통령? 대기업회장? 교장선생님?(내일이라도 인터뷰하고 싶은 심정)난리나지요. 얼마나 보람있게 열심히 살고 있는데...
나 자신은 열심내서 최선을 다하는 일들이 그 누군가에게는 쉬임없이 피해주는 일로 계속되니, 이것을 십자가 앞에서만 들키움 당하고(성도만), 이것이 막 살았다는 죄인됨의 고백이자 오직 예수님만 하나님의 뜻대로 사신 유일한 ‘한’ 분이시고, 그 나머지 모든 인류는 싸잡아서 하나님 뜻대로 못살고 자기 뜻대로만 살았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무조건 용서하셨다는 긍휼의 주님을 알아보고 쳐다보게 하셨으니, 이것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일중의 일입니까? 정말 받을 자격이 없는데...
우리가 한 일은 영광의 주를 비켜가서 내 힘만, 내 방식대로, 소박하게, 은밀히 끌어당기며 산 거 밖에 뭐가 또 있다는 말입니까? 앞으로는요? 영원한 속죄(히9:12)라는 말씀은 꼭 이럴 때 떠오릅니다. 영원히 주님 한 분만 영광의 주로 찬양받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용서받은 흔적을 영원히 찍으면서 가야하는 양입니다. 용서받을 짓을 하게 되는 이것, 이것이 막 사는 모습으로 나올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표현한 사람들의 글 속에서 정말 십자가의 피만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인 그 마음을 읽을 수 없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성령받은 성도의 모습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필히 따라오는 ‘위선’으로 똘똘 뭉치지 말고 차라리 그냥 살라고 한 것입니다. 그냥 살아도 성령의 바람이 무시로 불어오거든요. 책망하시거든요. 그냥은 곧 막 산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에 100% 부합, 아니면 막 살고 있는 것이지 중간은 없습니다... 오늘의 구기자, 말이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