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강의

부끄러움

아빠와 함께 2026. 8. 12. 08:17

516강-YouTube강의(부끄러움 예레미야 14:4)20260519-이 근호 목사


제516강, ‘부끄러움’. 보통 부끄러움 같으면 개인적으로 타인이 있을 때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저 사람 보기에 내가 참 수치스럽다.’ 그런데 원래 창세기 보면 아담과 하와가 자기 부부만 있었어요. 타인이 없었어요. 타인이 없는데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거예요. 수치를 느꼈다는 겁니다.

그래서 ‘남 앞에서 부끄럽다. 혼자 있을 때는 옷 갈아입지만 남 앞에서는 옷도 못 갈아입는다, 부끄럽다.’ 하는 이 논리가 근원적으로 문제 있는 거예요. 부끄러움은 그보다 더 깊은 데에 근거, 원천이 따로 있다고 보셔야 돼요. 그 원천은 이방사람들은 모르고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계시, 율법이 주어지면서 이스라엘에게 특화된, 하나님의 계시를 받지 않으면 몰랐던 부끄러움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새롭게 다른 차원의 부끄러움이 노출됩니다.

예를 들어서 ‘동창생 만났는데 옷차림새가 나보다 못하다. 부끄럽다.’ 이건 뭐 계시를 받을 것도 없이 이방인들 사이에, 하나님의 말씀도 없는 인간들 사이에 얼마든지 그런 현상이 일어나잖아요. 그러다 보면 인간들은 그저 인간들 눈앞에 어떻게 보이느냐에 따라서 부끄럽다, 덜 부끄럽다, 또는 자랑스럽다는 그러한 느낌을 갖는데 그 자체가 하나님의 계시가 없을 때,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되지 않을 때 인간들 입장에서 자연스러운 부끄러움, 또는 자랑스러움이 되겠죠.

허세죠. 허세고 위선이고 그런 겁니다. 사람 있으면 고상한 체하다가 사람 없으면 제 마음대로 사는 것. 그건 이미 계시 없는 세계에 물들여진 상태에서 타인의 존재를 전제로 해서 부끄러움이 발생되겠죠. 범죄한 인간이 교도소 가도 전혀 안 부끄러운 이유가, 거기엔 자기와 똑같이 죄지은 인간들밖에 없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쟤보다는 죄 덜 지었다는 데에서 오는 어떤 뿌듯함? 나도 인생 나름 선방했네? 저렇게 망가지지는 않았잖아, 이런 거. 스스로 위로할 수가 있죠.

그런데 계시가 왔을 때 이 부끄러움이라 하는 것은 인간이 있고 없고 관계없이 근원적으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끄러움이 하나님의 계시가 도달했을 때 비로소 밝혀집니다. 그 예가 예레미야 14장 4절입니다. 예레미야 14장 1절에 보면 가뭄에 대해서 나와 있고요. 그리고 2절에 보면 유다가 슬퍼하며 예루살렘에 부르짖음이 있다 했고요.

그다음에 3절, 4절을 유념해서 보겠습니다. 예레미야 14장 3절, “귀인들은 자기 사환들을 보내어 물을 길으라 하나 그들이 우물에 갔어도 물을 얻지 못하여 빈 그릇으로 돌아오니 부끄럽고 근심하여 그 머리를 가리우며” 4절에 “땅에 비가 없어 지면이 갈라지니 밭가는 자가 부끄러워서 그 머리를 가리는도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이것은 절망적인 상황을 두고 이야기합니다. 절망적인 상황, 예를 들면 비가 있으면 모내기한다. 그런데 비 없으면 모내기 못하고 농사 망친다, 이렇게 되잖아요. 농사 망치면 되죠. 망치면 왜 안 되는데요?

인간들이 뭔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어요, 오해.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내가 비리비리하게 못 살면 이건 나한테 수치가 되고 부끄럽다고 하는 그 기준 있잖아요. 그 기준 누가 정한 거죠?

이 본문에 의해서 인간들은 자기 위주로 어떤 기준이 있고, 그 기준에 미흡하면 본인이 거기에 대해서 수치감을 느낀다는 그 사실을 오늘 본문은 이야기합니다. ‘나는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돼.’라는 그 기준.

그런데 3절에 귀인들이 자기 종들을 보내어 물을 길으라 하는데 그들이 우물에 갔어도 바짝 메말랐기 때문에 물이 있을 턱이 없죠. 물이 없으니 빈 통을 들고 왔다 이 말이죠. 그런데 귀인들이 그걸 보고 하는 말이 “부끄럽구나.” 부끄럽다는 거예요. “물이 없다.” 이러면 될 걸, 부끄럽다는 거예요.

자연에 비가 오지 않는다, 날씨가 덥다, 구름에 가렸다 이런 자연현상에 대해서 인간은 거기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면서 내가 필요한 물, 내가 필요한 햇빛, 내가 사는데 아주 만족스러운 적정 온도가 되지 않을 때 인간은 자처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 부끄러워라.” 이렇게 돼요. 부끄러워라.

그러면 이 세상에 자연현상과 모든 세상 돌아가는 것이 그 인간 안 부끄러우라고 돌아가는 겁니까? 인간은 분수를 넘었어요. 세상 돌아가는 것이 자신의 기준대로 딱딱 떨어져야 된다는 그 옹고집. 억지죠, 억지. 그건 말도 안 되잖아요.

영화감독이 아역을 뽑는데 아니, 내 손녀 빼놓고 다른 손녀를 캐스팅해서 넣었을 때, 그럼 이제 할아버지는 ‘내 손녀 빼고 다른 손녀 들어갔으니까 영화 망해라.’ 했는데 영화 너무 잘됐어요. 시청률이 막 10% 넘어요. 그 집 손녀는 아주 경사 났어요. 그런데 자기 손녀가 캐스팅되기를 은근히 기대했던 이 집안은 ‘아, 부끄럽구나. 내 인생 내가 보기에 참 수치스럽다.’

이럴 때 하나님의 계시가 도대체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우리의 잘못된 표준, 나는 이 정도 되어야 나답다는 그 기준 자체의 문제성을, 이방민족 말고 이스라엘한테는 가뭄이라는 자연현상으로 이걸 깨우쳐줍니다.

우리 하나님이 함께 있는 나라에서 먹을 물조차 없다는 것. 남수단도 아니고 에티오피아도 아니고 이슬람 무장단체가 설치는 소말리아도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전국적으로 다 여호와를 인정한다는 나라에서 먹을 물도 없다, 그럴 때 백성들은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그 부끄러움이 자동적으로 발생된 데에 대해 도리어 질문하죠.
“내가 비 오지 않게 했는데 부끄럽기는 네가 왜 부끄러워해? 너 지금 엉뚱한 생각을 품고 세상 하루하루 살아온 것 아니야? 네가 여호와한테 뭘 기대했어?”
“저 하나님 믿습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저 예수님 믿습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내가 예수 믿을 때 난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습니다.”
“그래? 가뭄 한번 줘봐? 3년 6개월 째 안 비 안 오게 해줘봐?”

그럴 때 네 입에서 ‘하나님 참 잘하셨습니다.’ 이런 고백이 나올 것 같으냐 이 말이죠. 나오겠어요?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하나님 이렇게 나오면 우리 곤란하죠. 나 안 믿는 수가 있어요, 이렇게 나오면. 하나님 쪽에서 먼저 건드렸잖아요, 나를. 나도 어지간히 성격 좋지만 더 건드리면 가만있지 않습니다.”라는 이런 본성이 나오겠죠.

바로 그 본성 때문에, 이스라엘은 이러한 자체적인 이유 때문에 망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망했습니다. ‘망했다’는 말은 뭐냐 하면 나라가 있어서 백성들은 ‘우리나라 최고. 이 나라와 더불어 우리 열심히 후손까지 살자.’라고 의지하고 기대고 믿는 구석이 있는데, 주님께서는 그 믿는 구석을 날아가게 했어요.

누가요? 너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 믿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한테 혜택을 주는 그것을 은근히 기대하면서 믿게 했던 겁니다. 중요한 이야기에요. 하나님이 살아있음 그 자체가 좋은 게 아니고, 살아있어서 나를 안 부끄럽게 만드는 어떤 현상들을 채워주길 은근히 고대하고 희망하고 기대했고 우리는 그 기대한 것을 감추면서 ‘저 하나님 믿습니다.’라고 자기 주제도 안 되면서 믿었던 거예요. 주제도 안 되면서.

끝으로 이 이야기하겠습니다. 골프를 처음 배워서 신이 났는데, 골프 내기에서 평소 실력대로 잘 안되었어요. 그때 골프 처음 배운 사람이 뭐라고 합니까? “부끄럽구나. 하나님, 이럴 수 있습니까? 내가 골프 배우는 게 뭐 나쁩니까? 그런데 왜 내 뜻대로 안 됩니까? 부끄럽구나.” 이러고 있다고요.

그러니까 한번 생각해보세요. 도대체 내가 안 부끄러우려면 안 부끄러울 조건을 얼마나 그동안 해대야 됩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종이에요? 정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인간은 존재한다는 자체가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운 거예요. 내가 여기 있다는 것 자체가. 그런데 인간은 ‘이왕 존재하는 거 내가 기분 좋게 만족스럽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거래하듯이 이렇게 한 거예요.

이스라엘 예레미야서에서 ‘부끄럽다’는 말은 네 본래의 자리, 아예 없던 자리로 가라. 없음의 자리로 가라. 그러면 부끄러워할 것은 하나도 없고 모든 게 다 주 앞에 고맙고 감사할 하나님의 은혜로만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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