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강의

사랑의 매

아빠와 함께 2026. 7. 22. 08:49

521강-YouTube강의(사랑의 매 사무엘하 7:14)20260721-이 근호 목사


제521강, ‘매’. ‘맴매’할 때 그 매. 성경을 보면 매에 대해 언급된 구절이 사무엘하 7장 14절에 나옵니다.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이 구절입니다.

여기에 막대기 나오고 채찍 나오죠. 뭐 잘했다고 상 주려고 막대기 들고 채찍 든 거 아니죠. 때리기 위해서, ‘너 말 잘 들을 거야, 안 들을 거야?’ 때리기 위해서 든 막대기와 채찍입니다. ‘하나님의 막대기가 몇 미터입니까? 재질은 단단합니까? 나무로 만들었어요, 철로 만들었어요, 고무로 만들었어요?’ 보통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여기 막대기가 뭐냐 하면 사람 막대기에요, 사람 막대기.

‘사람 막대기가 실제 역사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 생각할 수 있는데, 일어났습니다. 일어나고 있고요. 이사야 10장 24-25절에 보면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시온에 거한 나의 백성들아” 대상이 ‘나의 백성’이에요. “앗수르 사람이 애굽을 본받아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몽둥이를 들어 너를 칠찌라도 그를 두려워 말라” 했어요.

아까 읽었던 사무엘하 7장 14절에서, 너희들이 하나님의 아들로 간주되었으면 아들답게 내가 대우하겠다. 아들답게 대우한다는 말은 “아들다운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나는 가차없이 막대기와 채찍까지 동원할 수 있는 아버지다. 하나님 아버지다.” 그런 말씀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굉장히 자비롭고 어질고 뭐든지 용서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잖아요. 히브리서 12장 8절에 보면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하나님이여, 우리를 때리지 마시고. 때리면 아파요. 사랑을 해주세요.” 할 때, 주님께서는 “사랑이라 하는 것은 네가 아는 사랑이 아니고 사전에 말씀이 말씀대로 되는 모든 게 사랑”이겠죠. 따라서 네가 안 맞으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만 챙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들이라는 그 직함, 아들이라는 그 의미를 챙기기 위해서 아들답지 못할 시에는 사정없이 때려서 뭐만 드러내겠어요? 하나님의 아들은 이런 것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드러내는 거예요. 매를 때려서라도. 그러면 매를 맞는 아들은 상당히 힘들어하겠죠. 그런데 히브리서 12장 8절에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자,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아들의 원형이 뭐냐? 무엇을 가지고 아들이라고 하느냐?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려서, 아버지께 버림받고 아버지께 버림받은 상태에서 다시 아버지로부터 살림을 받는 것이 아들입니다.

아들은 어떤 절차가 있어야 되는데, 아버지께 버림받았어요. 아버지께. 아버지께 버림받고, 그리고 아버지께 되찾아짐을 당해요. 예수님한테는 그게 성립돼요.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십자가에서. 그리고 사흘 만에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부활시켰어요. 맞죠?

그러나 인간에게는 어떻게 되느냐 하면,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이 아니고 인간들이 알아서 하나님을 버려요.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되찾아짐을 받는데… ‘버림받는다. 되찾아줄게.’ 이것이 아들 예수님과 아버지 사이에 이미 알고 있는 관계인데, 인간들은 아예 자기에게서 하나님을 지워버려요. 하나님 없는 곳으로 내뺍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 이야기. 쉽게 말해서, ‘아버지와 나와 이제는 관계 끊읍시다. 돈만 주시면 이제는 아버지하고 빠이빠이입니다. 내 자립만 열심히 해야지.’ 자립하겠다는 인간의 인생 목적이 뭐에요? 아버지하고 빠이빠이하기 위해서, 이제는 하나님 없이 내 인생 나의 든든함으로 살아가겠다는 그러한 각오.

아주 대놓고 아버지하고 관계 끝났습니다. 말은 안하지만 행동 하나하나가 하나님 또는 하나님의 말씀, 나 안 들을란다 하는 식으로 아버지의 그 모든 영향력에서 도주하죠. 오직 내 것은 내가 알아서 내 마음에 드는 내 인생으로 굳세게 살겠다 하는 일념으로.

그런데 하나님께서 흉년을 준비해놓고 돈 다 떨어지게 했고, 그래도 아들은 버티죠. ‘나도 자존심이 있는데 이 꼴로 못 간다. 성공해서 가야된다.’ 성공하려고 애를 썼는데 하다하다 안될 때, 비로소 인간은 애초부터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거예요. 애초부터. 그냥 허세 부렸지, 하나님 앞에서 잘난 체하고 아버지 앞에서 잘난 체했지, 사실은 돈 떨어지고 친구 떨어지니까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아무것도 아닐 때,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었죠. 그렇게 만들 때, 더 이상 나의 자립심, 내 힘으로 성공하겠다는 그 포부, 그러한 기대, 목적… 아무것도 아닌 자는 아무것도 아니어야 하지, 그런 근사한 목적을 갖다 붙여서 ‘오, 나 스스로 되네?’ 이것은 아버지께로 돌아갈 기회가 없는 자들이 하는 짓이죠.

하나님께서 탕자를 볼 때 ‘성공하면 받아줄게.’라는 그런 조건을 걸었습니까? ‘너 인간답게 살면 받아줄게.’ 그랬습니까?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한테 그걸 요구했어요? ‘음, 제대로 하네. 그때 받아줄게.’ 이렇게 하십니까?

탕자 비유가 왜 있습니까? 세상에 거지도 그런 거지가 없잖아요. 뻔뻔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형이 참다 참다 못해서 아버지한테 고발하죠. 형은 꼭 마귀 같아요. “저거 뭐 있다고 잔치를 베풉니까?” 할 정도로.

아무것도 아닌 상태에서 돌아올 때, 주께서는 “딱 그거지. 딱 바로 그거야! 네가 아무것도 아니었을 때 아버지 쪽에서 일방적으로 너에게 퍼부어주는 모든 잔치와 가락지와 모든 혜택은 너한테 고스란히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로 너에게 간직되게 되고 영원토록 아버지께 고마워할 거잖아.” 바로 너와 나의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 관계가 바로 천국입니다. 이게 천국이에요.

내가 좋아하는 세계가 아니고, 아버지가 기뻐하는 세계가 천국이에요. 우리는 내 좋아하는 세계에 미쳐가지고 그냥 ‘뭐 아버지 하나님 믿습니다.’ 대충 다리 걸쳐놨는데, 사실은 다리 걸친 게 아니고 독립선언 한 거죠. 하루 24시간 생각하는 것이 ‘내 인생은 어떻게 나에게 기쁜 인생이 될까?’ 그것밖에 생각 안하고 있어요.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뭐 걸쳤다고 뭐 된 양 여깁니까? 뭐 걸쳐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다 잃어버려도 너무나 마땅한 하나님의 깊이 있는 조치였습니다. 자, 매라 하는 것은 사랑의 매인 것을 이제 아시겠지요.

'유튜브강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움  (0) 2026.07.22
가시  (0) 2026.06.17
은혜와 보답  (0) 2026.06.17
어린아이와 독사  (0) 2026.04.22
신의 지혜자 다니엘  (1) 2026.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