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강의

은혜와 보답

아빠와 함께 2026. 6. 17. 07:28

518강-YouTube강의(은혜와 보답 역대하 32:25)20260616-이 근호 목사


제518강, ‘은혜와 보답’. 은혜와 보답에 대해서 히스기야에게 주어진 그러한 경우가 아주 적절합니다. 역대하 32장에 보게 되면 25절,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 이 구절 나오죠.

여기서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했다고 하고, 그 이유가 은혜에 보답지 않았기 때문이라는데, 그 은혜가 무슨 은혜냐? 도대체 어떤 은혜를 받았기에 은혜를 싹 무시하고 마음이 교만했는가? 그 은혜에 대해서 21절에 보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영에서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장관들을 멸하신지라 앗수르 왕이 얼굴이 뜨뜻하여 그 고국으로 돌아갔더니 그 신의 전에 들어갔을 때에 그 몸에서 난 자들이 거기서 칼로 죽였더라”

앗수르 왕이 하나님을 훼방했죠. 훼방하니까 천사를 보내가지고 그 앗수르 왕에게 고국에서 무슨 나쁜 소식이 들렸다고 황급하게 자기 본국으로 돌아가게 했는데, 거기서 그 왕이 살해되고 말았습니다.

그전에 앗수르 왕이 유다 히스기야 왕과 예루살렘을 포위해서 겁을 주면서 위협을 얼마나 심하게 했습니까. 막 욕을 했죠. ‘너희가 믿는 하나님이라도 내 손에서 못 건진다.’ 거기에 대해서 예루살렘 주민들과 히스기야 왕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어요. 너무 세니까, 너무 강대하게 상황이 안 좋으니까 그 말에 그렇다 할 수밖에 없어요.

그때 히스기야가 누구를 찾아갔느냐 하면 이사야에게 찾아가죠. 이사야와 더불어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방금 21절에 나온 말씀처럼 난데없이, 포위했던 앗수르 왕이 고국에 돌아갔다가 그만 거기서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 이게 기적이죠. 그런데 바로 그 기적 받은 히스기야가 오늘 본문 25절에서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 이렇게 되어 있어요.

자, 현재 유다는 앗수르라는 강대국과 싸웁니다. 누가 봐도 전쟁은 유다와 앗수르와의 전쟁이에요. 그런데 이 유다 왕 히스기야가 몰랐던 게 뭐냐 하면 이 전쟁이 앗수르와의 전쟁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전쟁이라 하는 것을 예전에 상상도 못했어요. 왜냐하면 자기는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했으니까요. ‘하나님, 좀 도와주세요.’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한 본인이 하나님의 적이 되어서 싸울 것이라는 것을 누가 감히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저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제가 하나님 사랑하고 의지하는 것 하나님 아시죠? 저는 하나님 편인 것을 하나님 잘 아시죠?’ 이렇게 고백하는 내가 하나님의 적이 된다, 이것은 상상하기 힘들죠.

그런데 그 앗수르가 물러가고 난 뒤에 23절에 “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을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이후부터 히스기야가 열국의 눈에 존대하게 되었더라” 그렇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의 기적을 자기가 듬뿍 아니까 하나님의 기적을 품은 나는 전에 보다 대단한 사람이 되었다.’라는 생각, 그것을 25절에서는 ‘교만’이라고 이야기한 겁니다. 자, 누가 교만케 했을까요? 아니면 처음부터 히스기야는 교만의 바탕이 있었던 겁니까? 어느 쪽이에요? 처음부터 히스기야는 자기의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고 이렇게 교만한 줄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히스기야는 본인이 본인에 대해서 전혀 몰랐던 겁니다. 아쉬워서 하나님께 기도했고, 게다가 선지자까지 모실 정도로 겸손했고, 본인이 본인 보기에 ‘나같이 믿음 좋은 사람 나와보라 그래. 나같이 겸손한 사람 나와보라 그래.’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겠죠. 자기가 자기보고 ‘나같이 교만한 사람 나와보라 그래.’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일이 벌어지니까 갑자기 기적을 받았어요. 이게 문제에요. 기적을 줬을 때, 기적은 내가 훌륭해서 준 게 아니에요. 그냥 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게 기적이거든요. 기적을 받을 때는 ‘아이고, 하나님. 왜 이렇게 나옵니까? 나 아무것도 아닌데….’ 오히려 기적을 받을 때 더욱 더 ‘정말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이렇게 되어야 될 텐데, 기적을 자기 안에 품어버렸어요. 기적을 소유하게 된 겁니다. 그다음부터 ‘나는 적어도 하나님의 기적을 받은 대상자다. 까불지 마. 나한테 하나님의 기적 있어. 나 이 정도야!’ 이렇게 된 거예요.

그런 히스기야에게 24절에 “그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된 고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기도해서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으로 보이셨으나”. 병들었는데 살게 된 기적을 또 받았어요. 앗수르 왕이 떠난 것도 기적, 죽게 되었는데 또 기도하니까 낫게 된 것도 기적, 기적 연발이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마음은 겸손해졌습니까? 아니죠. 참, 이런 사실을 보면서 우리가 스스로 우리 자신을 파악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용없는 짓인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일인지 아시겠지요.

연거푸 기적에다 또 기적을 받았어요. 앞에 있는 기적은 히스기야 나라, 유다 나라가 사는 기적, 두 번째 기적은 죽을 내가 사는 기적. 백성도 살고 나도 살고, 곱빼기 기적. 제목을 ‘곱빼기 기적’으로 할까요? 곱빼기 기적. 이건 누가 봐도 하나님이 완전히 누구 편 됐다? 내 편이다. ‘나 건드리면 하나님이 가만있지 않아.’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26절에 보면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거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는데, 뉘우쳐도 하나님의 노는 취소되지 않았어요.

자, 이야기 처음부터 다시 해봅시다. 첫 번째 기적은 유다 나라 백성 전체가 살았어요. 두 번째 기적은 뭐라고요? 히스기야 왕이 살았어요. 이걸 뉘우친다고 해서 사람이 다른 사람 되는 게 아니에요. 그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 31절. 앞에 27절부터 30절까지는 엄청나게 부와 영광을 많이 받았어요. 받은 부귀영화를 곳간에 다 채웠어요.

28-29절,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산물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온갖 짐승의 외양간을 세우며 양떼의 우리를 갖추며 양떼와 많은 소떼를 위하여 성읍들을 세웠으니 이는 하나님이 저에게 재산을 심히 많이 주셨음이며” 30절에 “…저의 모든 일이 형통하였더라” 했어요.

형통한 게 좋은 게 아닙니다. 여전히 마음은 교만해있었습니다. 그 교만이 어디 나오느냐? 31절,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바벨론 방백을 보낸 것은 누가 보냈다? 하나님이 보내신 거예요. 왜 보냈느냐? 유다 나라가 죽을 판에서 살고, 히스기야가 죽을 뻔하다 살았을 때, 어느 정도로 겸손해야 하느냐 하면 ‘우리나라 유다는 망해야 됩니다. 나라는 인간은 죽어야 마땅합니다.’ 이 선까지 내려가야 이게 바로 겸손함이에요.

그런데 히스기야가 바벨론 방백 오니까 창고문을 활짝 열어준 거예요. “봐! 나 이 정도야.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이 정도의 많은 기적들을 받았어. 어때? 나 건드리면 안 되겠지?” 그런 식으로 보여줬을 때, 그 바벨론이 창고에 있는 것 다 가져가고요, 죽었다가 살아났던 백성들 중 똑똑한 백성들 다 바벨론에 데려갔습니다.

이것이 뭐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났다.’에요.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났다. 이걸 달리 이야기하면, ‘항상 인간은 진작 죽어야 해. 이 나라는 원래 망해야 돼.’ 그 수준을 유지할 경우에만 그 사람을 하나님이 떠나지 않은 상태, 지금 그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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