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진

사실은 진리에 종속된다(박윤진)

아빠와 함께 2013. 1. 27. 20:55

가끔 사람들은 사실과 진리를 혼동해서 사용하게 됩니다. 이것이 뭐 그리 엄청난 실수인가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과 진리를 같은 뜻으로 여김은 다소 당황스러울 지도 모르겠으나, 인간이 왜 죄인일 수 밖에 없는가를 아주 잘 보여주는 단서입니다.

사실이란 어떤 객관적인 현상에 불과합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사실은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일정한 조건 하에서 동일하게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이와 달리 진리란 그것을 기준으로 선과 악이 구별되어져야 하며, 생명과 죽음이 설명되어 져야 하고, 천국과 지옥을 나누는 결정적인 힘이 되어야 합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사실이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하며, 생명과 죽음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사실이 존재하는 이유는 과연 진리가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입니다. 진리에 의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변경되고 폐기되어야 할 대상이 되어 그 동안 사실이라고 여겼던, 그래서 흡사 진리라고 받아들여졌던 것이 떨어지고 불태워지는 것을 통해 진리가 인간에게 관리되거나 관찰될 수 없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사실이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이 진리로 오해받는 이유는 죄인 때문입니다.

객관적 현상에 불과한 사실이 어떤 사람에 의해, 그러니까 어떤 주관에 의해 해석되어진 후에는 진리라는 잘못된 이름을 얻게 되는데, 그 과정은 이렇습니다.

인간 상호간에는 권력, 즉 힘이 작용하게 됩니다. 이 힘의 정도에 따라서 인간의 해석과 태도는 그 평가를 달리 받게 됩니다. 그 힘이 어떻게 조성되고 획득되어 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실제 사실이 어떻하다는 것도 큰 의미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라는 그것은 갈릴레오에게는 사실이었습니다. 한편,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라는 것은 또한 당시 지식인들에게 사실이었습니다. 실제 현상은 갈릴레오의 사실과 일치했지만, 당시 종교 재판을 진행했던 지극히 상식적이며 지적이었던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비진리(!) 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당시 권력에 의해 채택된 사실과 충돌하는 다른 사실을 주장할 때, 힘에 의해 채택된 사실은 순간 진리가 되어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행사하게 되고, 심지어 다른 사실을 주장하는 자를 죽일 수 있는 힘까지 동시에 부여받게 되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인간들은 자신의 주관에 의해 해석되어진 주관적 사실을 진리라고 밀어부치는 습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처럼 되고 싶은 그 욕망말입니다. 그래서 그 사실이 객관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 지는 문제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맞던 맞지 않던, 그것을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나"는 옳다는 것입니다. 사실의 문제를 옳고 그름의 문제로, 죽음과 생명의 문제로 변질시키는 쓰레기통이 바로 인간입니다.

그 어떤 객관적인 사실도 인간의 해석따위는 필요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반드시 객관적인 사실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해석이 필요하게 되고 결국 객관은 주관으로, 그 주관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이해관계 위해서 파도처럼 출렁거립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상대적 진리관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진리는 늘 상대적입니다. 그것을 주장하는 인간이 상대적이기에.

사람이 해석하지 않은 객관적 현상이라는 것은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유익하지 않은 것은 있어도 없는 것처럼 치부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되었고, 누군가가 그것을 진리라고 주장한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조건하에서는 그 해석이 그 객관적인 사실을 가장 진리스럽게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해석에서도 이런 문제가 벌어집니다. 누군가 나와 다른 성경해석을 한다면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곧장 그것은 틀린 해석이라고 비난하게 되는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그들 모두 자신의 해석이 "역사적 관점으로나 문맥으로나 전체적 성경 흐름에 맞는 해석"(앞으로 이것을 A라고 합시다)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해석을 마치 진리처럼 주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A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A를 꺼내서 어떤 사람들의 의견도 자를 재듯이 평가할 수 있습니다. 자신은 그 A에 의해서 평가받을 필요가 없게 되어 버립니다. 왜냐하면 A는 이미 자신의 소유물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집에 있는 TV, 냉장고에게 평가받을까요?

성경은 인간이 A를 결코 소유할 수 없다고 합니다. 보아도 볼 수 없고,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고 합니다. 아예 죄 아래 감금해 놓았다고 합니다. 일부러 미혹의 영을 보내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을 잘 알고 있다는 당시 바리새인과 대제사장들에게도 친절하게 성경의 해석기준을 설명하셨습니다. 너희들은 너희 목숨을 영원까지 연장시킬 목적으로 성경을 보지만, 이 성경은 나에 관한 책이란다.....

예수님은 죄인들이 처한 사실을 공격하시기 위해서 일부러 자신을 "진리"라고 설명해야 했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진정한 진리는 이처럼 상대적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진리관을 부숴버리고 해체시키는 공격적인 양상을 띌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제 진리가 크게 두 패로 갈리게 되었습니다. 죄인 쪽에서 조작한 진리와 스스로 진리라고 선언한 약속된 인물! 진리가 어떤 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인간이 짐작이나 했을까요? 하지만 죄인의 선택은 손쉬운 것이었습니다. 진리라는 그 인물을 죽음이라는 사실 속에 묻어 버리면 되기 때문입니다. 역사라는 사실, 문맥이라는 법칙 아래 진리가 그렇게 버려지고 잊어지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진리는 달랐습니다. 생명을 내 줄 권리도 다시 찾을 권리도 진리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조차 진리가 누구이신가를 보여주기 위해 동원된 사실에 불과했습니다. 그 진리가 모든 사실과 증명과 경험과 법칙에서 죄인을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진리가 그 동안 진리의 탈을 썼던 사실을 하나씩 철거해 내기 시작합니다. 진리에 의해 그 동안 사실이라는 이름하에 진리처럼 행사했던 하늘의 별이 떨어지고, 달이 빛을 잃고 하늘이 교체될 것입니다. 불타 없어질 사실이었던 것입니다. 오직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별도의 A를 소유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 그 진리가 눈 앞에 밝히 있는데, 그 앞에서 나는 온통 거짓, 허위, 허무, 흙, 안개에 불과한 죄인의 괴수이므로 죄인의 괴수의 주장을 뒷받침 할 만한 다른 A를 탐구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자랑할 것은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 뿐이겠지요....

지금 내가 진리처럼 믿고 있는 사실은 진리에 의해 언제든 폐기될 것입니다. 그 A에 너무 큰 기대를 걸지 않기를 바랍니다. 물론 그것이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긍휼이 함께 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