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에 보면 '우리'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온다. 우리라는 개념의 핵심은 내가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없다면, 그 무리는 우리가 아닌 '그들'이 된다. 우리는 나를 포함하기에 우리라고 칭하고 있는 '나'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 핵심이다.
주기도문은 예수님께서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의 우리라고 칭하고 있는 '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무리 중 혹은 제자 중 누군가를 포함하여 우리라고 지칭하고 계신 점에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주기도문의 현장에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위치, 즉 중보자의 위치에 계신 분은 오직 예수님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뿐이다. 그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소망할 수 있는 분 또한 예수님 한 분이다. 그러므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누구의 죄를 용서했기에 하나님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구할 수 있는 분 역시 예수님 한 분 뿐이라는 것이다.
예수님만이 영이시고 빛되시므로, 육이요 어둠인 무리에게 우리라고 칭하고 계신 것은 과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주기도문은 영이 육에게, 빛이 어둠에게 우리라고 포섭할 수 있는 십자가 사건을 내다보고 하시는 기도라는 사실이다. 예수님께서 최초로 기도를 가르치실 때 역시 십자가 제사를 떠 올리지 않으실 수 없다. 왜냐하면 기도는 십자가 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기도문의 우리는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 처럼, 저들도 우리와 하나되게 해 달라'는 기도와 일맥 상통한다. 우리는 곧 하나이다. 나와 남의 구별을 전제로 깔면서 이야기 하는 우리가 아니라, 나와 남이 내 속에서 해소되는 우리이다. 즉, 빛 속에서 해소된 어둠이요, 영 속에서 해소된 육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그냥 '나'라고 하지 않으시고 굳이 '우리'라고 하셨을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예수님만이 더렁 죽는 사건이 아니라, 그 은혜와 사랑을 받는 죄인을 품고 있는 '의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예수 안에 있게 된 것이 예수님의 몸을 찢어 제친 피의 결과물이라면 그 피의 기능이 여전히 유효해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의의 속성이다. 의는 죄 위로 행위의 조건없이 쏟아지는 용서를 의미한다. 죄를 모두 소멸하여 죄인에게 죄없음을 증거하는 것이 의의 목적이 아니다. 의의 목적은 죄인에게 죄없음을 쏟아부으신 피가 누구의 것이냐를 증거하는 것이다. 우리라고 부르신 '나'와 도저히 우리가 될 수 죄인 사이에 과연 어떤 일이 있었는가에 주목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의요, 십자가 사건이다. 예수님은 바로 자신이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우리라고 부르셨다.
그러므로 교회가 머리되신 예수님의 공로, 즉 십자가 공로를 분리해 버리 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죄를 용서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이미 기도가 아니라 욕망의 분출일 뿐이다. 교회는 늘 우리라고 불러주실 수 있는 유일한 '나'되시는 예수님께 '자기'됨을 포기해야 하는 상태에 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죽었다'고 한 것이다. 죽음은 어떤 존재의 없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나'에 의해 포섭된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죄인이 자기를 아무리 나라고 지칭해도 그것은 '우리' 속에 포함될 수 없음만이 확인되고 진정한 '나'되신 분이 '자기를 대신하는 나' 즉 '우리'됨을 날마다 체험하는 것이다.
기도라는 허울 좋은 명분 하에 우리는 늘 유일한 '나' 되신 분을 공격하고 있다. 교회라는 집단은 그것을 허용하며 경쟁을 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기도는 예수님께서 '우리'라고 하신 영역에서만 가능하다. 진짜 나되신 분이 죄인을 우리라고 허락하신 십자가에서만 가능한 기적이다.
새 해라는 허상속에 기도 제목이라면서 얼마나 많은 욕망들을 쑤셔 넣었는가? 하지만 자책하지 마라, 그것은 십자가 기적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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