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강의

불평등한 천국

아빠와 함께 2024. 10. 9. 10:26

[24대구강의]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05 - 불평등한 천국

24,09,23 강의 : 이근호, 정리 : 구득영

오늘은 교재 26페이지부터 하겠습니다. 거기에 보면 우리 인간의 마음을 대변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
* 내가 순수한 마음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목욕하고 정화수를 떠놓고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냐? 거기에 하나 더 보태서 아무런 욕심도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신에게 자기를 헌신하려는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냐?
----------------------------------

이러한 인간의 본성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나 다니지 않는 사람이나 다 마찬가지인데, 그게 우리 안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겁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가고자 하는 마음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그렇게 되면 순수한 마음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게 되는데, 말씀이 아니고 말이죠. 그리고 그 뒤에 보면, 더 나아가서 아무런 욕심도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신에게 자기를 헌신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느냐고 한다는 겁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처음 교회에 나왔을 때, 나름 예의를 갖추는 것이 순수한 마음인데, 그러면 하나님은 자기보다도 높은 분이니 기도를 하게 되어있다는 말이죠. 가르쳐주지 않아도 기도를 하는데, 그러면서 마음 속으로 "이것은 나쁜 짓이 아닐 것이다" 라고 여긴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기 마음이 순수하니 말이죠.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인고 하니, 신에게 헌신하는 것인데, 그래서 봉사도 한다는 겁니다. 이것도 역시 순수한 마음이니, 마음 속으로 나쁜 짓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게 우리 인간이라는 말이죠.

그러면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의 의로운 행위가 빠졌잖아요?" 라고 한다면,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저쪽에서는 순수한 마음으로 나왔는데,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예수님의 의로운 행위를 언급했다는 겁니다. 그렇게 서로 부딪친다는 것이죠.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천국에는 예수님의 의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인데, 자기의 행위가 아닌 예수님의 의가 말이죠. 그러면 그쪽에서 "나의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에 더 추가해서 예수님의 공로를 넣으면 안 되겠습니까?" 라고 나온다면, 그러면 뭐라고 해야할까요?

거기에 대해서 "예수님의 행위가 들어갔으면 죄인으로 등장해야지, 왜 자기 정당화를 합니까?"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처음 교회에 와서, 신은 자기보다 높은 분이기 때문에, 또한 자기의 미래까지도 책임져주는 분이니 잘 보여야 한다는 말이죠. 그게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이라는 겁니다.

이게 바로 우리 조상들이 하던 것인데, 그래서 정화수를 떠놓고 신에게 빈다는 말이죠. 정화수라는 것은, 순수한 자기 마음을 물에 담았다는 의미라는 겁니다. 그리고 교회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나온다는 것이죠.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합니까? 예수님의 의로 천국에 들어간다고 한다는 겁니다. 그 외의 다른 의는 안 된다는 말이죠. 바리새인들의 문제점이 그것이었는데, 자기 의는 있었지만 예수님의 의는 빠지고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천국에는 예수님의 의가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라고 하면, 그쪽에서 어떻게 나옵니까? 자기의 순수함은 순수함대로 계속해서 유지하면서, 거기에 예수님의 의를 추가하려고 한다는 말이죠.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을 때, 바리새인들은 도저히 수용할 수가 없었는데, 왜냐하면 그 현장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을 겨냥합니까? 순수한 자기 마음을 공격해서 깨어버리는데, 그리고 그게 바로 예수님의 의가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라고 하셨다는 말이죠. 자기의 순수함에 예수님의 의를, 그것을 같은 바구니에 담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한 바구니에 말이죠.

(마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그러니 이러한 이야기를 교회에서 하게 되면, 순수한 마음으로 교회에 나왔던 자들이 이 장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다른 교회로 옮기게 된다는 겁니다. "내가 이렇게 착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교회에 나왔는데, 내가 왜 죄인이 되어야 하는가?" 라는 것인데, 그러면서 혼자가 아니고 친한 사람을 데리고 나간다는 겁니다.

* 선을 넘지 말라 !!

이러한 장벽을 넘어설 수가 없는데, 이것을 한 글자로 표현하면 '선(線)' 이라는 말이죠. 에덴동산의 특징이 선을 넘지 말라는 것인데, 즉 "모든 것은 다 따먹되 선과 악을 아는 지식은 따먹지 말라" 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선악과나무의 바깥에 인간이 살도록 했다는 말이죠.

그렇게 선을 넘지 말라고 했는데, 뱀이 들어와서는 어떻게 나옵니까? 악을 아는 지식이 아닌 선과 악을 아는 지식인데, "선은 알지만 악은 알면 안 돼" 라는 것이 아니고, "선이 무엇인지, 그리고 악이 무엇인지, 그것을 아는 지식을 인간은 가져서는 안 된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어놓고, 악이 안 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그런데 왜 선에 대한 지식도 안 된다고 하시느냐는 말이죠. 하나님께서는 선을 넘지 말라고 했는데, 여기서 악마는 인간이 그 선악과나무를 탐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래서 유혹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악마는 인간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악마도 듣고 있었다는 말이죠. 악마는 이미 선을 넘은 존재인데, 그래서 악마는 선과 악의 지식을 가지고 인간을 추궁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악마는 우리 인간에게 "이것은 악이지, 선이 아니잖아?" 라고 하는 식으로 치고 들어온다는 말이죠. 그러면 인간은 공포감을 느끼고, "내가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겠네. 인간이 끝나겠네" 라고 하면서 걱정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은 순수하고 깨끗함에 매달리게 되는데, 거기에 더욱 더 극단적으로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죠.

그런데 기쁜 소식이 무엇인고 하니, 천국에는 넘을 선이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악마가 지배하는 이 세상은 자꾸만 선을 언급한다는 말이죠. 즉 "선을 넘지 말라" 라는 것이 계속해서 작동하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천국에는 선 자체가 없는데, 모든 것이 용납이 되는 세계라는 말이죠.

생명나무와 선악과나무가 연결이 되어있는데, 즉 선악과나무의 과실을 따먹었을 경우에는 자동적으로 생명나무 과실을 따먹지 못하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네가 선악을 알았어? 그러면 생명은 없어" 라는 의미라는 것이죠.

* 천국과 지옥 !!

그러니 생명이 없는 천국이 아니고 지옥인데, 그 지옥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지옥도 역시 선이 없다는 겁니다. 즉 지옥도 무엇을 해도 된다는 말이죠. 오늘의 강의 주제는 '천국과 지옥' 인데, 천국이 무엇이며 지옥이 무엇인지, 이번 시간에는 거기에 대해서 해보겠습니다.

천국은 단독적으로 설명이 되는 것이 아니고, 지옥과 엮여서 설명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천국은 생명나무가 이미 있는 곳이기 때문인데, 그것과 관련해서 생각해보면, 지옥은 무엇이 없는고 하니, 생명나무가 없는 곳인데, 그것이 요한계시록 22장에 나온다는 말이죠. 천국에만 생명나무 과실이 있다는 겁니다.

(계 22:1)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계 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그러니 천국은 우리 인간이 "이것을 해주세요. 저것을 해주세요" 라고 하는 곳이 아니고, 이미 하나님이 결정을 하셨는데, 생명나무의 과실을 따먹지 못하는 사람은 천국에 갈 수가 없다는 말이죠. 그러면 어떤 사람이 천국에 갑니까?

그것은 이미 답이 나왔는데, 우리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어서 생명나무의 실과는 따먹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생명나무가 되시는 분이 이 땅에 오셔서 생명을 우리 속에 넣어주게 되면, 우리는 천국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죠.

그러면 모두 다 넣어줄까요? 그렇지가 않은데, 천국은 지옥과 연관이 되어야하기 때문에, 천국만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신은 자비롭기 때문에 천국만 만든다" 라고 하는 단체가 있는데, 그것이 불교라는 말이죠.

그리고 이슬람, 힌두교, 여호와 증인인데, 이런 곳은 천국만 이야기하지 지옥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들이 말하는 것이 "신은 자비롭다", 같은 말이 "신은 대단하다" 라는 것인데, 그리고 테러집단에서는 "신은 위대하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들은 "모든 것은 신의 뜻이다" 라고 하는데, 물론 불교에도 지옥은 있기는 있지만. 윤회를 거쳐서 해탈이 되면 결국은 모두 다 신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신의 나라에서 신처럼 살아간다고 한다는 것이죠.

* 악마의 '인간 굳히기' 작전 !!

그러니 이 모든 것은 악마에 의해서 조성된 것으로서, 인간을 영원토록 굳히기에 들어간다는 겁니다. 인간이 알고 있는 선악과, 그게 바로 악마가 심어준 것인데, 그것을 인간이라고 규정을 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철학과 과학은 '인간 굳히기'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이게 인간이다" 라고 하면서, 죽어서도 그런 인간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것, 그것을 계속해서 시도한다는 겁니다. 세상 전체가 그러하고, 그게 바로 이 세상이라는 말이죠.

교회가 이런 과학과 철학의 영향을 받으니, 천주교나 기독교가 전부 그리로 넘어가고 있는데, 즉 악마의 굳히기에 당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복음은 무엇인고 하니, 천국을 이야기할 때 지옥도 더불어 이야기를 한다는 말이죠.

생명이 없는 자는 천국에 갈 수가 없는데, 하지만 생명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천국에서 오신 분이 생명을 줄 때 비로소 생명을 가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런 천국이 있다는 것은 지옥을 없애겠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지옥도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까? 당연히 지옥도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 천국과 지옥은 무게가 같아 !!

그러니 천국과 지옥의 무게가 서로 같다는 것인데,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까, 천국을 위해서 누가 고생을 했습니까? 우리가 아니고 예수님이 고생을 하셨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예수님의 고난이라는 말이죠.

그렇게 천국과 지옥의 무게가 동등하다고 하면, 그러면 예수님이 받으신 그 참혹한 고통이 지옥에서 주어져야, 그래야 천국과 지옥이 서로 동등해진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효과를 발휘하게 되면, 그것이 천국에서는 자비와 사랑이 되고, 반면에 지옥에서는 철저하게 그 반대가 된다는 말이죠.

이것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데,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우리 자신이 애를 썼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이 애를 썼습니까?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은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살려주신 것이 아니고, 그렇게 우리를 위해서 애를 쓰신 예수님을 위해서 우리가 살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것을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이것은 바꾸어서 말하면, "너 자신을 위해서 살지 말라" 라는 의미라는 말이죠. 천국에 가는 자는, 위해서 살아가는 대상이 따로 있다는 것이죠.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니 천국과 지옥에 있어서, 천국에서는 생명을 주시는데, 그러면 반드시 지옥이 있기 위해서 주님께서 어떤 조치를 취하시는고 하니, 지옥에 갈 자들에게는 생명을 빼고는 다 준다는 겁니다. 인기, 권세, 능력, 인물, 성격, 부동산, 화목한 가정, 공부 잘하는 것 등등, 모두 다 준다는 말이죠.

* 욥과 도박판 !!

그게 바로 욥기에 나오는 욥의 이야기인데, 하나님이 욥에게 주신 10명의 자식, 그리고 엄청난 재산, 그런데 하나님은 욥을 선지자로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준 것을 다 사단으로 하여금 빼앗기게 만들어버린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욥을 걸고 도박을 하신다는 말이죠.

'도박' 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인간은 자기의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한다는 말이죠. 물론 교회도 그러한데, 쟁취한다는 겁니다. 누가 주는 것이 아니고, 생명을 얻기 위해서 도박을 벌린다는 말이죠. 그것이 불교를 비롯한 이 세상의 종교라는 겁니다.

과학에서 뭐라고 하는고 하니, "인간은 110가지의 원소로 구성이 되어있고, 죽으면 재로 돌아간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리고 인간의 두뇌의 좌측에 신이 등장하는 장소가 있는데, 그러니 믿음과 소망과 사랑도 주사 한 방이면 생길 수가 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생각하는 모든 개념은 두뇌세포의 전기적 충격에 의한 활동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죠.

* 과학은 마음이 없고, 모든 것은 물질뿐 !!

그게 과학인데, 과학에 마음이라는 것은 없다는 겁니다. 다만 마음이라는 이미지만 나올 뿐이라는 것이죠. 영화를 보면 화면이 나오는데, 그것은 영사기에서 나오는 이미지라는 겁니다. 영사기에는 필름이 있고, 그 필름은 셀룰로이드로 되어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과학으로 보게 되면 모든 것이 물질이라는 것이죠.

그 물질을 조사하게 되면 양자역학이란 것이 있는데, "E = Δmc²" 이라고 해서, 즉 "에너지는 변화하는 물질의 광속의 제곱이다" 라는 겁니다. 이게 원자폭탄을 만드는 공식인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 공식이기도 하고 말이죠. 이 세상은 에너지로 되어있다는 겁니다. 그 에너지가 굳어지면 입자가 되고, 그게 늘어지면 파동이 된다는 것이죠.

그러니 우주도 에너지이고, 인간 내부도 그 우주의 에너지가 입자 모습으로 들어와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죽으면 에너지로 변하는 것인데, 여기에 대해서 불교를 대환영이라는 말이죠. 그게 불교에서 말하는 '색즉시공'과 같은 것인데, 즉 "색은 공이고 공은 색이다" 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없는 것에서 생기고 있는 것은 다시 없어지는데, 오직 그런 변화만 있을 뿐이라는 말이죠. 그게 양자역학에서의 주장인데, 불교와 똑같다는 겁니다. 이것은 아인슈타인 이후의 양자역학인데, 아무튼 모든 것은 에너지라는 말이죠.

-------------------------------
※ 색즉시공(色卽是空) - '반야심경'에서 물질과 공 또는 공과 물질의 관계를 표현한 불교교리로서, 물질적인 세계와 평등 무차별한 공(空)의 세계가 다르지 않음을 뜻함. 원문은 "색불이공공불이색(色不異空空不異色)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이며, 이는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로 번역된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그렇다고 하면 신은 어디에 있는고 하니, 인간 두뇌에서 생기는 전기적인 충격으로 인해서 인간은 신을 상상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성경에 나오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 그리고 인간의 양심도 다 두뇌세포가 만들어내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과학에서는 뭐라고 하는고 하니, 신이든 마음이든 간에 사람마다 각자 다 다르다고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보고 가족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아버지와 어머니를 그리고 하는 것이 다들 다르다는 말이죠.

* 인간의 마음은 정열의 덩어리 !!

이것을 철학적으로 따지면, "인간의 마음은 정열의 덩어리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각종 쓰레기와 같은 마음들이 뭉쳐진 것이 마음인데, 왜냐하면 두뇌에서 스파크 현상이 일어나니 말이죠. 그렇다면 그 마음은 어디서 나온 것이고 하니, 사회 공동체에서 주입된 것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인간들이 각자 어릴 때부터 살아오면서 받은 인상들이 있을 것인데, 그런 각자의 느낌이 모여서 지금의 마음을 형성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러니 마음은 인간의 두뇌에 들어있는데, 그게 오늘날의 과학이라는 겁니다.

바로 그 인간의 마음을 본떠서 만든 것이 무엇인고 하니, 그것이 '인공지능(AI)' 이라는 말이죠. 이러한 인공지능의 논리구조, 그 알고리즘은 인간 두뇌의 일부를 가지고 와서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오늘날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는 말이죠.

그러면 여자 탈의실에 남자가 들어가면 어떻게 됩니까? 차별 금지법이라는 것인데, 그 법에 의하면 처벌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남자와 여자가 다 같은 세포로 되어있는데, 그러니 그게 무엇이 부끄러우냐는 것이죠. 그래서 남자로 태어났어도 여자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열정의 덩어리가 그것을 요구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잠이 오지 않아서 마약을 했다고 하면, 그것은 어떻습니까? 지금 제가 과학적으로 묻고 있는데, 자기 에너지 덩어리가 쾌감을 느끼고 싶어하는데, 그것이 무엇이 나쁘냐는 말이죠.

* 펜타민, 다이어트 약인가? 마약인가?

지금 이 시대에 어떤 사고방식이 작용하고 있는지, 그것을 기성세대인 우리가 좀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양귀비에서 아편이 나오고 대마초에서 대마가 나오는데, 이게 감기약으로 만들어지는데, 암페타민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판콜A' 라는 말이죠.

이것이 헤로인, 코카인, 그리고 펜타민까지 간다는 말이죠. 이 펜타민은 0.002g이 치사량이고 하는데, 이 펜타민은 코카인보다 50배, 그리고 모르핀보다는 100배나 그 독성이 심하다는 겁니다. 그 외에도 다른 종류의 마약들이 있다는 것이죠.

아까 이 세상은 "선을 넘지 말라" 라고 한다고 했는데, 그런데 과학은 선이 없다는 말이죠. 자기가 즐거우면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방금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 인간의 마음은 충동, 혹은 열정의 덩어리라는 겁니다.

* 유쾌와 불쾌 !!

그렇게 유쾌와 불쾌로, 이미 인간세계가 악마에 의해서 갈 때까지 갔는데, 그러니 여기에 무슨 선이 있느냐는 겁니다. 자기가 유쾌하면 선이 되고, 불쾌하면 악이 된다는 말이죠. 자기가 남자라도 여자와 사는 것이 불쾌하고 남자와 사는 것이 유쾌하다고 하면 남자와 사는데, 그러면 그게 동성애가 된다는 겁니다.

술과 담배도 마찬가지인데, 그것이 자기에게 유쾌하기 때문에 한다는 말이죠. 즉 볼쾌를 지울 수 있다는 것인데, 그래서 "아, 짜증나네" 라고 하면서 마약을 하고, "아, 괴롭구나" 라고 하면서 술을 마신다는 겁니다.

제가 어느 강의에서 "인간은 누구와 만나지 않는다. 만날 방법도 없다" 라고 했는데, 그러면 무엇인가? 지금 불쾌한 '나'가 누구를 만나서 유쾌한 '나'가 되기를 원하는데, 그러니 누구를 만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은 항상 자기와 만나는데, 다만 누구를 이용할 뿐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술 한 잔 할까?" 라고 하면서 만나는데, 거기에 술이 왜 들어가느냐는 말이죠. 사람을 만나는데 있어서 왜 술이 들어가느냐는 겁니다. 인간사회가 곧 지옥인데, 악마에 의해서 이미 지옥이 되었다는 말이죠. 지옥에는 생명이 없다고 했는데, 생명은 예수님의 고난에서만 주어진다는 겁니다.

* 예수님은 왜 죽으셨는가?

그런데 종교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천국은 신의 사랑에 의해서 주어진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고 것이 성경에 나오면, 사람들은 그런 것을 좋아한다는 겁니다. 다른 말씀은 아무리 있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죠.

실제로 생명이 주어진 자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 집중하고 있는데, 즉 "예수님이 왜 죽으셨는가?" 라는 겁니다. 그것을 받아들인 자들이 천국백성이라는 말이죠. 예수님은 자기가 죄인이기 때문에 죽으셨는데, 자기 죄와 예수님의 죽음과의 만남, 여기에서 생명이 나온다는 겁니다.

이것을 조금만 더 설명하면, 하늘에서는 죽음이 없는데, 그런데 이 땅에 가까이 와서 인간들 속에 들어오게 되면, 예수님조차도 죄가 있는 인간의 몸을 입었기 때문에, 죽음의 힘에 시달리게 된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죽음이란 것이 무엇인고 하니, 그것이 바로 '불쾌' 라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짜증인데, 그야말로 왕짜증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불쾌와 짜증이 어디서 나오는고 하니, 인간의 마음은 열정이라고 했는데,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회 공동체인데, 즉 타인의 마을이라는 말이죠.

남들로부터 그야말로 짜증이 올라오는데, 그러면 남들을 만나지 않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할 수 있는데, 하지만 그렇게 되면 돈이 생기지 않고, 돈이 없으면 자기 육신 때문에 또 짜증이 올라온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기 몸이 배가 고프다고 난리도 아니라는 것이죠.

"이것도 사는 것이야? 차리라 죽는 것이 낫지" 라고 하면서, 자기가 자기를 핍박한다는 말이죠. "인간아, 집에만 있지 말고 돈이나 벌어와" 라고, 물론 마누나가 자기를 대신해서 그런 말을 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다시 사회에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 인간인가? 기계인가?

어제 TV에 어떤 공장이 나오기에 유심히 보았는데, 느낀 점이 굉장히 많았다는 말이죠. 이제 그것을 가지고 지금부터 천국에 대해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북한에서 탈북한 여사장이 운영하는 홍천에 냉면공장인데, 한 해 매출이 100억이라는 겁니다. 직원이 4명 정도 되는데, 하는 일이 아주 단순하다는 말이죠.

그런데 사람이 그렇게 단순한 일을 하게 되면, 그것은 사람이 아닌 기계가 되는 것인데, 사람에게는 악마에게서 온 선과 악을 판다는 것이 있는데, 그러니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것은 자율성이라는 겁니다. 즉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유쾌하기 자기가 결정하면서 살아간다는 말이죠.

그런 선택권, 그것은 악마가 우리 인간에 넣어준 것인데, 그게 악마가 넣어주었던 누가 넣어주었던 간에. 거기에 간섭받으면 불쾌해서 죽을 맛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단순노무를 잠시 하는 것이 아니고, 하루에 10시간씩 몇 십년을 한다고 하면, 그러면 "내가 왜 살지?" 라는 생각이 든다는 말이죠.

차라리 텃밭에서 농사라도 지을 때는 어떻습니까? 그때는 그래도 자율권이 살아있기 때문에, 즉 자기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겁니다. 물론 돈은 되지 않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는 말이죠. 하지만 단순노무는 그냥 기계 그 자체라는 것이죠.

* 다시 정리하면 !!

그러면 여기서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생각해보면서, 지금까지 한 것을 정리해보자는 겁니다. 원래의 인간은 선을 넘지는 않는데, 그게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의 인간이라는 말이죠. 즉 "피조물이면 피조물다워라" 라는 것인데, 피조물이 창조주의 영역에 들어서면 죽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보고 "선악과를 따먹으면 네가 정녕 죽으리라" 라고 하셨는데, 아담은 이때 죽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몰랐다는 것이죠. 죽음을 알려고 하면 자율권, 즉 자기 선택권이나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있을 때 비로소 죽음이 체험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더욱 더 고통스러워진다는 말이죠.

곰, 낙타, 쥐, 바퀴벌레는 그런 고통이 없는데, 왜냐하면 자율권이 없다는 겁니다. 이것은 "무엇을 먹을까?" 라고 하는 자율권이 아니라, 이미 신이 된 상태에서 행세한 그 자율권, 그것을 이미 경험한 이후에, 그런데 그것이 인정을 받지 못하고 모독을 받을 때 주어지는 고통, 그것이 바로 인간에게는 죽음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이왕 버린 몸인데, 왜냐하면 자율권과 선택권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말이죠. 그래서 아이들을 보면 태어나면서부터 자기 위주라는 겁니다. 자율권, 선택권, 결정권, 그 방향이 어느 쪽입니까? 주를 위함입니까? 자기를 위함입니까? 철저하게 자기를 위함인데, 마귀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말이죠.

욥의 경우에, 욥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빼앗기기 전에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았다는 겁니다. 그게 욥의 삶이었는데, 그런데 그만 악마에 의해서 자기의 생명을 제외한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되자, 욥이 하나님에게 요구한 것이 있다는 말이죠.

욥이 자기 생일을 저주하면서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 이럴 바에는 나는 인간이 되는 쪽을 포기하겠습니다. 그러니 나를 태어나기 이전으로 돌려주세요. 엄마의 몸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으로 해주세요" 라고 했다는 겁니다.

(욥 3:1)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
(욥 3:11)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었던가 어찌하여 내 어미가 낳을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욥 3:12)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유방이 나로 빨게 하였던가

예수님도 가룟 유다를 보고 "차라리 저 인간은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을 뻔했다" 라고 하셨는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인간이 이미 자율권을 가지고 있는 이상은, 즉 "나는 신이다" 라는 것인데, 매사가 지옥으로 고통으로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겁니다. 그것은 취소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것을 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지독한 분인지 알 수가 있는데, 따먹는 것을 허락해놓고는 조져버린다는 겁니다. 그게 우리 인간에게 이미 속성이 되어버렸으니, 우리는 어떻게 거기에 대해서 대처할 수가 없다는 말이죠.

과학자들은 모든 것을 물질로 본다고 했는데, 이 거짓말쟁이들은 무엇인고 하니, 모든 것은 물질이고 기계라고 해놓고, 막상 자기들은 "나는 행복하고 싶어" 라고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게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렇게 해놓고는, 학생들에게는 "여러분, 행복은 없습니다. 행복은 뇌 세포의 전기적 충격에 의해서 일어나는 현상일 뿐입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정작 자기는 무엇입니까? "이번 달에 보너스가 들어왔네. 행복하다" 라고 하고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데, 학생들에게는 인간은 기계라고 가르쳐놓고는, 자기는 그 어떤 경우라도 기계가 아닌 것으로, 자기 자율권은 보장이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나온다는 겁니다. 그런 자체적인 모순, 그것은 인간성 파괴로 이어지게 된다는 말이죠. 과학자들이 그렇다고 하면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죠.

지금 공통점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우리 인간은 자율권, 선택권, 결정권을 가지고, "그러면 내가 알아서 죽으면 되지" 라고 하는데, 하지만 이 죽음의 세계는 그것을 죽이는 것이 아니고 반대인데, 오히려 그것을 살리면서 고통을 주는 세계, 그게 죽음의 세계인 지옥이라는 겁니다.

* 천국의 공식 !!

그러면 지옥을 이야기이기 전에 천국부터 먼저 이야기를 해보면, 천국의 공식에 있어서 첫 번째는 "인간은 논다" 라는 겁니다. 인간은 아무런 의미도 없이 그냥 논다는 말이죠. 두 번째는 "단순 노무자로 채용된다" 라는 것인데, 인간은 마치 기계와도 같다는 겁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중소기업에 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희망이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죠.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는 대학까지 나왔는데, 그런데 중소기업에서 요구하는 것은 중학교 정도의 수준이라는 겁니다. 그런 곳에서 일을 하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의 가치가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여긴다는 것이죠.

물론 자기가 대학을 나왔어도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나왔다고 여기고 일을 하면 되는데, 하지만 인간의 자율성, 즉 충동 덩어리는 이미 자기를 높여놓았기 때문에, 거기서 내려올 능력이 인간에게는 없다는 겁니다. 그게 인간의 비극이고 불행이라는 말이죠.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을 하셨는데, 하지만 인간은 그게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존재인데, 내가 이런 일을 한단 말인가?" 라고 나온다는 말이죠. 놀면 무직자가 되는데, 무직자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단순 노무자로 채용을 하면, 무직에서 일을 하면 취직이 되었다는 말이죠.

지금 천국의 공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것을 마태복음 20장에서 찾아보면, 냉면공장을 염두고 두고 이 말씀을 보자는 겁니다. 20장 1절입니다.

(마 20: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 천국은, 단순노무자로 일 하는 곳 !!

우리는 천국을 노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천국은 이미 시작이 되었는데, 즉 주님이 일을 하신다는 겁니다. 조금 전에 천국은 생명을 주는 곳이라고 했는데, 생명은 우리가 쟁취하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가 주어야 한다는 말이죠.

그리고 천국과 지옥의 무게를 균등하게 하기 위해서, 어떤 자에게는 생명을 주고 어떤 자에게는 생명을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것이 교재 27페이지에 나오는데, 하나님의 아주 독특하고 특별한 일, 즉 '선택' 이라는 말이죠. 하나님이 선택을 하셨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선택을 어떤 식으로 하시느냐는 것인데, 그 첫 번째가 인간은 그냥 노는 자로, 즉 무의미하게 본다는 겁니다. 즉 천국에 대해서 전혀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자로 여긴다는 말이죠. 이미 인간은 범죄했기 때문에, 천국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논다는 말이죠.

그런데 마태복음 20장에 의하면, 천국은 포도원 주인과도 같다는 겁니다.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었는데, 그렇다면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는 것은, 포도원 바깥에서 놀고 있는 자들이 주인이 포도원 안으로 들여보내는 것, 그게 천국의 시작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는 것은 단순노무인데, 그러면 무엇을 일체 인정받지 못한다는 겁니까? 인간의 자기 자율권, 자기 선택권, 자기 결정권이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즉 '나' 라는 것이 왕창 다 빠진다는 말이죠.

그것이 바로 냉면공장의 단순노무인데, 그래서 "이번에 우리 아이만 취직되면 더 이상 이 일은 하지 않는다. 사람이면 사람답게 살아야지, 내가 무슨 수건을 덮어쓴 기계도 아니고,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라고, 그렇게 나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냉면공장의 직원 가운데 군대에 가는 것을 대신해서 온 젊은 남자가 있었는데, 그러면 그 남자가 그 기간이 지나면 계속해서 냉면공장에 취직을 해서 일을 하겠습니까? 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하지만 천국은 주인이 단순 노무자로 채용을 함으로서, 그 천국 안에서는 '나' 라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세 번째가 무엇인고 하니까, 3절에 보면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라고 하는데, 그러니 이들만이 아니고 아침에 일찍 나온 자들도 역시 놀고 있었다는 말이죠.

그들은 포도원 바깥에서 놀고 있었는데, 물론 제 삼시에 들어온 자들도 역시 포도원 바깥에서 놀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포도원 바깥에 있으면, 비록 놀고 있어도 자기 자율성과 선택권과 선택권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제 육시, 제 구시, 그리고 제 십일시에도 역시 놀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7절에 보면,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라고 하는데, 그러자 그들이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자가 없었습니다" 라고 하는데, 그러자 주인이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라고 한다는 말이죠.

(마 20:3)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마 20:4)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저희가 가고
(마 20:5) 제 육 시와 제 구 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마 20:6) 제 십일 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마 20:7)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그렇게 해서 포도원에 들어왔는데, 그러면 세 번째가 무엇인고 하니, 여기서 감사와 고마움이 나와야 한다는 겁니다. 천국은 첫 번째와 두 번째만 있으면 안 되고, 세 번째도 역시 동반해서 있어야 한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어떤 자에게서 제일 감사와 고마움을 나올까요? 그것은 제일 마지막에 들어온 자인데, 겨우 한 시간을 남기고 포도원에 들어왔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한 시간만 단순노무를 한 자에게도 주인은 하루 일당을 다 준다는 말이죠.

* 천국은 불평등이 지배하는 곳 !!

그런데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잘못된 것인데, 여기서 '불평등'이 나온다는 겁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첫 번째도 불평등인데, 논다고 해서 다 데리고 온 것은 아니니 말이죠. 그때 들어오지 못한 자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천국은 불평등이 지배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면 지옥은 과연 어떤 곳일까요? 이것은 여러분이 답해보세요. 그렇지요. 지옥은 평등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겁니다. 지옥은 평등한데, 지옥에 간 부자가 나사로를 보고 물 한 모금을 달라고 하다가 거절을 당했다는 말이죠. 지옥은 모든 인간에게 자기 자율권과 선택권과 결정권이 있다는 점에서 평등하다는 겁니다.

이러한 지옥에 대한 환경조성이 성경에 보면 나와있는데, 그 첫 번째는 '어둡다' 라는 것이고, 그리고 두 번째는 '불 속' 이라는 말이죠. 그러면 먼저 마태복음 8장 12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 8:12)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여기에 보면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라고 하는데, 즉 어둡다는 겁니다. 그리고 거기서 어떻게 합니까?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라고 하는데, 한 두 명이 그런 것이 아니고 모두 다 그러한데, 평등사회라는 말이죠.

두 번째는 마가복음 9장 47절과 48절인데,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막 9: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막 9:4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 천국은, 타인의 혜택으로 !!

하나님 나라는 반드시 지옥과 연관을 시켜야 하는데, 인간의 자율권과 선택권은 무시를 당하고, 인간은 미래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은 "천국이냐? 지옥이냐?" 라는 것인데, 즉 "주님의 공로의 혜택을 입었는가? 입지 못했는가?"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나'가 아닌, 자기가 고생한 대로 그렇게 자기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내가 죽도록 고생해서 이만큼 살았다" 라는 게 아니고, 자기 노력의 혜택을 자기가 입는 것이 아니고, "나 외에 다른 타인의 혜택을 입었습니까?" 라고 묻는 것, 즉 타인의 혜택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요한계시록 7장을 보겠는데, 13절과 14절입니다.

(계 7:13)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계 7: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어떤 사람들의 무리가 천국에 방금 들어왔는데, 즉 신입생들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고참이 "너희들은 누구이며, 어디서 왔느뇨?" 라고 묻는다는 겁니다. 그러자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서 왔습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니 타인인데, 하지만 인간에게 자율성이 있으면, 그 어떤 경우에라도 타인은 씨도 먹혀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자기에는 선과 악의 장벽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막혀서 들어올 수가 없다는 말이죠. 인간은 바깥 선은 넘지만, 그러나 자기 바깥으로는 나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시어머니가 며느리가 들어오면 군기를 잡는데, "아직도 여기가 친정인 줄 알아?" 라고 하면서 말이죠. 친정에서 굳어진 그 자아의 선을, 시집이라는 선으로 강제로 끌어당긴다는 겁니다. 그러니 나이가 드신 분들이 뭐라고 합니까? "내가 시집을 와서 8명이나 되는 시댁 식구들을 다 먹여 살렸어" 라고 한다는 말이죠.

우리 인간은 악마가 집어넣은 자아의 선, 그 바깥으로는 스스로 나가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 선 안에서 자기가 신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 선 바깥으로 나가버리면 신이 될 수 없는데, 그러니 나갈 수가 없다는 말이죠.

그래서 인간은 자기 자율권, 자기 선택권, 자기 결정권이 없으면, 그러면 자기는 사람이 아니라고 여긴다는 겁니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고 기계인데, 그것을 자기 속에 있는 마귀가 매우 싫어한다는 것이죠.

* 이놈아, 죽어라 !!

그렇다면 천국에 가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주님이 죽여버린다는 겁니다. '영적 전쟁' 이라는 책이 새로 나왔는데, 지난 겨울 수련회에서 에베소서를 강의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말이죠. 여기 머리말에 보면, "주님께 붙어서 죽은 자만이 주님께 붙어서 산다" 라고 되어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주님의 방법은 무엇인고 하니, 우리에게 가르치고 교육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그만 죽여버린다는 것이죠. 말씀을 가지고 우리를 부수어 버리는데, 그렇게 해서 우리의 자아 속에 생명이 꽂히게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의 자아는, "나의 자율권과 선택권과 결정권은 어떻게 됩니까?" 라고 하면서 고함을 치는데, 그러면 주님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해라. 그리고 넓은 길이 아닌 좁을 길로 가라" 라고 하시면서, 망치로 내리쳐버린다는 말이죠.

그래서 어제 설교시간에 "말씀을 지킨 사람은 백퍼센트 지옥에 가고, 말씀이 나오는 사람은 백퍼센트 천국에 간다" 라고 했는데,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자아를 쪼개면서 나온 말씀, 그것이 곧 주님의 생명이고 그 능력이라는 겁니다.

창세 전부터 있어온 아버지와 예수님의 관계가 있는데, 바로 그 아버지가 주시는 생명으로 인해서 예수님은 이 지상에서 호위호식을 했습니까? 죽도록 고생을 하셨다는 말이죠.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고난의 삶을 사셨다는 겁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자신이 죽고 부활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힘이 들 때마다 아버지에게 기도하셨는데, "제가 꼭 십자가로 가야만 합니까? 다른 선택지는 없습니까?" 라고 말이죠.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 힘을 주셨는데, 그래서 예수님은 그 십자가의 길로 무사히 가셨다는 겁니다.

* '평등' VS '불평등' !!

다시 마태복음 20장의 포도원 비유로 돌아와서, 세 번째로 주인은 가장 늦게 온 자들에게도 하루 일당을 준다는 말이죠. 그러면 그들은 자기의 한 일과 그 돈을 견주어보게 되는데, 그게 맞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니 불평등이라는 것이죠.

자기가 열심히 교회에 다니고, 말씀을 보고, 기도를 하고, 십일조를 하고, 봉사를 하고 했는데, 그러면 그런 것과 구원을 받는 것과 같습니까? 같지 않다는 겁니다. 자기의 순수함, 깨끗함, 순결함, 그것과 자기가 천국에 가는 그 생명과 같습니까? 결코 같을 수가 없다는 말이죠. 비교조차 할 수가 없다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자아가 깨어지지 않는 11명의 제자를 기어이 천국에 보내신다는 겁니다. 한 명은 자기 갈 길로 갔고 말이죠. 왜 천국에 보내십니까? 그것은 주님 자신이 갔던 그 길, 그것을 답습하라고 보내신다는 겁니다.

이것은 조금 있다고 하고, 다시 포도원 이야기를 해보겠는데, 그렇게 불평등이니, 먼저 온 자들이 그만 삐쳤다는 겁니다. 이들은 불평등이 아닌 평등을 내세우는데, 왜냐하면 먼저 온 자들은 평등을 자기들의 선악구조에서 선으로 본다는 말이죠.

바리새인들의 율법에 대한 주장이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의 말씀, 즉 율법대로 살면, 고아도 안 되고, 과부도 안 되고, 소경도 안 되고, 앉은뱅이도 안 되고, 가난하게도 안 되고, 모든 것이 다 풍족하다" 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대로 살면 여기서 선, 즉 의가 나오고, 그 의에 대해서 하나님은 반드시 보상하시는데, 그러면 자녀는 고아가 되지 않고, 여자는 과부가 되지 않고, 장애자도 되지 않고, 죽을 때까지 건강하다" 라는 것인데, 그것이 바리새인들이 주장하는 율법에 대한 해석이라는 말이죠.

여러분, 이게 맞습니까? 그들이 왜 이런 주장을 합니까? 하나님은 공평한 분이라는 겁니다. 그들은 이게 평등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바리새인들의 주장에 의하면, 세리와 창기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겁니다.

* 납득이 되는 평등 !!

그러면 이레에 두 번씩 금식을 하고, 십일조를 하고, 구제를 하는 자들은 천국에 갑니까? 가지 못합니까? 그런 자들은 천국에 간다는 말이죠. 그것이 바로 바리새인들인데, 왜냐하면 그렇게 되어야 납득이 되는 평등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공평함이 고스란히 우리에게도 납득되는 공평함으로 주어지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구원을 받는다" 라는 것인데, 그게 바로 바리새인들의 신학이라는 말이죠. 그런 신학이 인간에게서 나왔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신학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신학은 평등입니까? 불평등입니까? 우리는 불평등이어야만 하는데, 그래서 "제가 천국에 가다니, 무슨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주님은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조치를 하십니까?" 라고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은 "너는 그게 좋다는 말인가? 싫다는 말인가?" 라고 하시는데, 그러면 우리는 "당연히 좋다는 이야기입니다" 라고 대답을 하면 된다는 말이죠(ㅋㅋ). 너무 고맙고 황송해서 머리를 들 수가 없다는 것이죠.

예수님은 자기 제자들에게 그것을 시범케이스로 보여주셨는데, 제자들로 하여금, 그라고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반복시키는 공식을 만들어주셨다는 겁니다. 여기서 요한복음 14장을 보겠는데, 1절에서 3절입니다.

(요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여기 1절을 보게 되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라고 되어있는데, 인간이 하나님을 믿고, 또 예수님을 믿습니까? 인간은 자기 자율권을 믿지 다른 것은 믿지 않는다는 겁니다.

* 인간은 아는 것이 아니고, 믿는 것이다 !!

인간에게 믿음은, 자기가 내어놓은 것을 자기가 회수하는 것, 그게 믿음이라는 말이죠. 달리 말하면, "인간은 아는 것이 아니고 믿는 것이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인간은 자기가 안다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고, 믿기 때문에 행동한다는 말이죠. 그렇게 믿는 것을 앎으로 대신한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믿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자기 열정이고, 거기서 나온 자기 희망이라는 겁니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리고 그것을 자기는 계속해서 고수하고 싶은데, 그런데 이 사회가 자기 믿음을 공격한다는 겁니다. "당신이 그 따위로 하면 잘라버린다. 똑바로 해" 라고 말이죠.

회사에 가면 꼭 무식한 상사들이 있는데, 회사가 힘들어서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인간관계 때문이라는 겁니다. 남이 일한 것을 가지고 자기 승진을 노리는 놈들도 있고 말이죠. 아무튼 회사에 들어가면, 상사들이 "열심히 해라. 네가 농땡이를 치면 내가 욕을 들어먹는다" 라고 하면서 협박을 한다는 겁니다.

이것은 자기 믿음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는 것인데, 대표적인 것이 북한이라는 말이죠. 자기 아들 뻘밖에 되지 않는데, 굽신거리는 것을 보라는 겁니다. 이게 여기서 그렇게 멀지 않은, 같은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말이죠.

그리고 더 가까운 곳에도 있는데, 여기 대구에 있는 신천지가 그렇다는 겁니다. 물론 허경영도 그러하고 말이죠. 그래서 북한은 하나의 국가라고 부르기보다는 종교단체라고 할 수밖에는 없는데, 참으로 무지막지한 놈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공부를 많이 해서 알고 모르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자기 믿음이 사회 속에서 깨어지도록 강요받고 있다는 사실인데, 그런데 자기가 그 자리에 앉으면 이번에는 자기가 밑에 있는 사람을 괴롭힌다는 겁니다.

자기가 당한 만큼 복수를 하는데, 그것이 인간이라는 말이죠. 분노를 참고 있는 것이 아니고 터트려야, 그래야 자기가 산다는 겁니다. 화를 참고 있으면 두뇌가 폭발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다른 식으로 화를 내는데, 걸레를 던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겁니다(ㅋㅋ).

그렇게 화는 풀어야만 하는데, 그게 행동으로 푸는 방법도 있고, 그리고 언어로 푸는 방법이 있다는 겁니다. 전화를 2시간 반 동안 하는 것인데, 그것을 언어치료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게 각 교회마다 하는 새벽기도인데, 우리교회는 새벽기도가 없어서 언어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 인간은, 자기 믿음을 포기하는 법이 없어 !!

그러니 인간은 그 어떤 경우라도 자기 믿음을 포기하는 법이 없는데, 수정은 할지언정 끝까지 붙들고 있다는 겁니다. 그 믿음의 내용이 변하는 경우는 있어도, 자기를 믿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1절에서,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라고 하시는데, 즉 자기를 믿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 방법이 무엇인고 하니, 그게 바로 사랑이라는 말이죠. 마지막으로 이것만 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믿으라고 하셨는데, 그런데 믿음의 원천이 믿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소망의 원천도 소망이 아니라는 말이죠. 믿음과 소망의 원천이 자기에 있으면, 그것은 지옥에 가는 믿음이고 소망이라는 겁니다.

* 믿음과 소망과 사랑, 그 원천은 사랑 !!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 보면,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라고 하는데,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서 제일, 즉 그 원천은 사랑이라는 겁니다.

(고전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그러니 자기 믿음과 자기 소망과 자기 사랑은 참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아니고, 오직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사랑이 우리에게 선물로서 주어지는 것, 그것을 두고 "믿음, 소망, 사랑" 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게 진정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선물로서 주어지게 되면, 그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가지고 있는 내용이 과연 어떠하게 될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셨는가?" 라는 것과 연결이 되는데, 그것도 불공평하게 말이죠.

* 불공평, 그만큼의 여분과 덤 !!

우리는 예수님과 자기를 놓을 때, 서로 공평하게 되기를 원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사랑을 주고 생명을 줄 때는 불공평하게 주신다는 말이죠. 즉 우리의 행함대로 주시지 않는다는 겁니다.

주님 자신이 행하신 공로를 가지고 우리에게 주시는데, 그러니 그것이 우리에게 도달할 때는 결코 공평할 수가 없다는 말이죠. 불공평은 그만큼의 여분과 덤이 생기는데, 바로 그 여분과 덤이 '고맙습니다' 라는 겁니다. 즉 감사와 기쁨이 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우리는 "저 같은 인간에게는 신경을 써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라고 하게 되는데, 즉 "저는 겨우 한 시간만 일을 했는데, 그런데 왜 8시간이나 일한 임금을 주십니까?"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자와 구분을 짓기 위함인데, 그래서 12절에 보면,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라고 하는 자들이 있다는 말이죠.

(마 20: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 놀고 있었음을 잊어버린 자들 !!

이들은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되지만, 세 번째가 되지 않는 자들, 즉 지옥에 가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포도원을 만들지 않았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는데, 주인이 일부터 만들었다는 것이죠. 천국과 지옥에 가는 자들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갈라서게 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죠.

그러면 이런 자들은 무엇을 잊어버린 자들입니까? 주인이 한 시간을 일한 자들과 하루종일 일한 자들에게 동일한 품삯을 준 것에 대해 반발했다는 것은, 자기들이 이전에 놀고 있었다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이 일이 자기 일이 아니라 주인의 일라는 것을 까먹었다는 말이죠. 그래서 그들은 공평을 요구하고 평등을 요구했는데, 그러자 주인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마 20: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주인은 자기 것을 심어주었는데, 그런데 이들은 주인의 것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무엇을 생각합니까? 자기 일한 자기 것을 고집하고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이들은 도저히 천국에 합류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지옥에 가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고, 주님이 제시한 천국이 싫어서 지옥에 가게 된다는 말이죠. 그게 인간의 자율권인데, 즉 지옥을 선택한 것이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인간들을 몰아넣는다는 것이죠.

복음을 전했는데, 그런데 복음이 아닌 다른 것을 달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결국 천국을 발로 차버린 것이 되고 만다는 겁니다. 그런 결과로 조성이 되는데, 바로 그것이 주님의 복음전파라는 말이죠.

* 불평등한 복음을 전하면서 !!

이제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이 불평등한 내용을 전하라는 겁니다. 그렇게 전하면 우리가 어떤 발견을 하게 됩니까? 그 사람은 50년 동안 교회에 다녀서 천국에 가는 줄로 알았는데, 그런데 복음을 전해보면 지옥에 가도록 조치를 해놓았음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주님이 생명과 사랑을 주지 않았음이 드러나는데, 그래서 자기 깨끗함과 순결함과 정결함을 추구한다는 말이죠. 자기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야말로 난리도 아닌데, 하지만 그것은 탈락이라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지옥은 평등한 사회이고 천국은 불평등한 사회인데,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의 자아가 깨어지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에서 나온 주님의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깨닫고, 언제나 감사하면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4,9,26 오후 5시에 마침.

천국에 가는 것보다 불공평한 일은 없음을 항상 깨닫게 하옵소서 !!

'대구강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계시+몸  (2) 2024.10.30
매 순간 끊어냄  (2) 2024.10.21
뗏목  (1) 2024.09.24
과거 교체  (2) 2024.09.02
사망의 몸  (0) 2024.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