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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질의응답1 이상헌

아빠와 함께 2019. 8. 30. 14:49


2019-08-30 09:18:00조회 : 44         
여수 질의 응답 1. (음성 녹음 006) 이 근호 목사님 08262019 이름 : 이상현 (IP:121.166.87.230)

여수 질의 응답 1. (음성 녹음 006) 이 근호 목사님 08262019

< 질문>
강의 도중에 사람이 죽는 것은 자기 죄가 아니라 아담의 죄
때문에 죽는다고 하셨는데 설명을 바랍니다.

< 답변>
자기 죄책감을 갖지 마세요. 죄책감이 없다는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갖지 말라고 했어요. 죄책감은 줘도 주님이 줘요. 죄책감 없는 인간이 없어요. 다 있어요. 그런데 그 죄책감은 뭐냐하면 ‘내가 주님을 아프게 했구나, 주님의 십자가를 가렸구나’하는 죄책감이 되어야지 ‘내가 형제에게 잘못했구나, 아프게 했구나’하는 그런 죄책감, 사람 대 사람의 죄책감은 제한적이예요.

죄책감이라는 것, 내가 스스로 ‘죄책감을 가져야 돼, 이건 내가 나쁜거야’라는 평가가 무엇이 빠졌냐며는 변수가 빠진거예요, 변수. 변수라는 것은 어떤 결과가 나올 때 여러가지 요인들이예요.

예를 들어 강원도 홍천에 있는 팔십세 넘은 할머니가 감자를 캐는데 그 할머니는 날 때부터 한번도 홍천 산골을 벗어 난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 할머니와 광주사태가 관계 있습니까, 없습니까? 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있으니까 그 영향을 받는 거예요. 또 원산의 어떤 할머니가 감자를 캐고 사는데 그 할머니와 북한 김정은이와의 관계는? 관계 있죠. 왜냐하면 북한에 대한 모든 경제 제재는 어디에 영향을 미칩니까? 강원도의 감자 값에 영향을 미쳐서 관계가 있다 말이죠.

깊은 산속에 혼자 있다고 죄 없는게 아니예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죄예요. 지리산 들어가서 약초를 캔다면 순수하게 보이죠. 약초 캐고 나머지 시간은 난을 치는데 그 사람이 약초를 오일장에 팔려고 해보니까 중국산이 들어와서 약초값이 반값이 되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은둔 생활하는 사람이 아주 마음이 흡족합니까? ‘아따 약초값 반값되어서 노동비도 안나왔다, 기분 좋다~’ 합니까, 기분 나빠 합니까? ‘에이 그 중국산 때문에 순수 한국산인 내 힘으로 캔 약초가 반값 되다니, 그 중국산에 밀리다니..’ 화내지요? 그거 누구에게 화낸거예요? 결국은 주님이 하신 일에 대한 도발이죠. 주님에 대한 도발이예요. 내가 산다는 것 자체가 죄이기 때문에.

그러면 왜 그것을 몰랐는가? 변수를 모른거예요, 변수. 내가 여기 있기 전에 어떤 많은 원인과 결과들로써 내 신발이나 옷가지, 그리고 내 목숨등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모른 겁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어떤 집에 아버지와 아들이 있는데 아버지가 밤 12시만 되면 일하러 나가시는 거예요. 아들이 아버지가 밤에 일을 해서 임금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노래를 불러요.’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빠가 열심히 일하는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밥 먹고 산다고 하는데 아빠 직업이 무엇이냐면 밤에 가스관을 타고 도둑질하는 일이예요. 그런데 아빠가 힘을 내어야 가스관을 잘 탈 수 있어요. 아들 보기에는 자기가 맛있는 것 사먹으면 그것이 정의가 되고 진리가 되는 거예요. 어버지가, 남편이 그곳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몰라요. 직장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내 남편이 하는 일 때문에 억울한 사람이 몇명이나 짤렸는지 몰라요. 남편 하는 일이 인사과장인데 그 밑에 직원 몇명 짤랐는지 몰라요. 내가 낳은 내 자식만 잘 키우면 되니까 ‘내가 뭘 잘못했는데?’ 반문하는 것예요. 북한 주민들의 특징이 뭐냐하면 ‘김일성이가 뭐가 나쁘냐?’ 하는 거예요. 온 천하가 다 김일성 나쁜 놈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유교공산주의라고 해요. 공산주의인데 유럽의 공산주의가 아니라 무엇이 붙었습니까? 유교죠. 유교는 뭐냐하면 부성체제예요. 아버지 체계예요. 어것은 지도자가 아버지예요, 어버이. 그 부인 김성애도. 우리 한민족은 유교가 있는 한 아버지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대통령을 누굴 뽑겠어요? 가장 아버지 같은 사람을 뽑겠죠. 가장 아버지 같은 대통령을. 갑자기 선거 운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 발언해서 미안합니다만~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닌 거예요. 앞에 유교가 붙어요. 유교. 북쪽은 유교 공산주의이고 남쪽은 유교 민주주의예요.

위안부들을 그 가족들이 팔아요. 열다섯되는 아이들이 무엇을 알겠어요? 집안이 너무 못살아서 그 조직책들에게 팔아 넘긴 거예요. 일종의 취직을 한 거예요, 지금 사창가의 여인들이 하는 것처럼. 지금 사창가 사람들은 20살 넘어서 자기가 가출해서 하지만 그떄는 성에 눈 뜬 것이 아니라 못 살아서 한 거예요, 큰어버지 삼촌들이 팔아 넘긴 거예요, 하두 못 살아서. 그 당시에 누가 잘 살았어요? 선진국 일본에 돈이 있으니 일본에서 돈 벌어서 고국의 자기 부모에게 보내는 거예요. 비록 폼나는 직장은 아니었지만 그것도 살기 위한 직장 생활이었고 전문직이었어요.

왜 특정 전문직이 그렇게 이슈를 받아야 합니까? 그것은 유교, 유교체제를 확립하기 위해서 그 짓을 벌린거예요. 남보다 더 고생한 것처럼. ‘햐~ 하루가 지긋지긋했다’고 하는데 지금 대기업의 과장들 보세요, 그들도 하루가 지긋지긋해요, 하루가. 또 말 안듣는 남편 술 먹고 들어 오는 주부도 지긋지긋해요. 자기만 지긋지긋합니까? 말 안듣는 자식 떄문에 애먹는 부모도 지긋지긋해요. 5000만원 떄려 넣어서 아이돌 만들려는 경쟁이 치열하죠, 투표수도 조작하고. 그것도 지긋지긋해요, 그들의 경쟁 자체가.

결국 공식이 뭐냐? 뭐가 지긋지긋하댜? 경쟁이! 경쟁은 무엇 때문에 하는 겁니까? 다같이 나는 살리고 누구는 죽이고? 죽이는 정도가 아니라 죽여버리죠. 나는 살리고 남들은 죽여버리고. 나라고 해서 너무 이기적이라고 욕 얻어먹으면 내 가정, 조금 보탭시다. 내 가정이나 나나! 내 가정 살리고 남은 죽이고. 남편은 남편대로 내 가정 살리고 나는 주부로써 내 가정 살리고. 살리고 살리고 살리고 살~리고 사알~리고, 내 가정 살리는 겁니다.

인간이 뭐 의인이라고요? 그거 뭐 성경 볼 필요도 없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농경사회도 마찬가지고. 유기농법 한다고요? 유기농법은 토양에 소금기를 많게 만들어요. 유기농법해서 자연을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손 대면 다 죽어요, 인간이 손 대면. 인간이 더럽기 때문에 인간이 손 대면 유기농법을 하든 자연농법을 하든 다 죽여 버리는 거예요. 손 대면~ 다 죽어요. 내가 살기 위해서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니까요. 어설프게 공부하니까 유기농법하면 자연을 살린다고 착각하잖아요. 그것은 이 사회가 그런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하고 해야 자본이 회전이 되잖아요. 어떤 식당이 유기농볍으로 반찬을 만든다고 하면 그 농토는 다 죽은 거예요.

어떤 경우라도 성경 그대로이에요. “선한 것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 만났을 떄 “주여 누구십니까?”하니까 예수님 하시는 말씀이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예수님께서 자기를 겨냥할 때 그냥 ‘나는 누구다’ 하시는 것이 아니라 저쪽을 경유해서 얘기해요. ‘네가 핍박해서, 네가 살고자 해서 내가 죽었다. 너는 살고자 하지? 나는 죽는 것을 추구했다. 너의 사는 죄와 나의 죽는 의와 만나자. 이것이 전국이다’ 그곳이 천국이에요. 천국은 면류관 반납하는 곳이에요.

무당처럼, 교회를 무당처럼 생각해서 나를 살리기 위해서 교회에 갈 것이 아니라 말씀에 의해서 ‘내가 사는 것이 이상합니다, 주여. 진작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데 왜 자꾸 나를 살리죠? 그 이유가 어디있죠? 이 나쁜 죄인을 왜 살리죠?’ 바로 십자가를 증거하기 위해서, 십자가만을 자랑하기 위해서 나를 살리신다는 그 소리를 듣기 위해서 교회가야 하는 것이죠. ‘내가 예수 믿고 천당 간다, 내가 구원 받았다’라는 소리를 하기 위해 교회 가는 것이 아니에요. 구원의 철저에 철저를 기하기 위해서 무엇을 조심해야 하고, 뭘 지켜야하고 무엇을 멀리해야 하고.. 그거 계산하려고 교회 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이미 끝났어요, 게임 오버예요. 중요한 것은 ‘왜 나 같은 인간을 구원하십니까? 왜 찾아 오십니까?’ 하는 거예요. 안 찾아 와도 되는데 왜 찾아 오셔서 예수의 피를 제시하며 ‘너는 끝났어, 구원 받았어’ 하시면서 왜 우리의 아이디어에서 나오지 않는 그런 얘기를 해주시는가? 우리가 뭔데 그런 얘기를 해 주십니까? ‘너는 내가 타고 다니는 가마야~ 나의 운반차야~ 먹고 마시든지 너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다’라는 성경 말씀을 하시기 위해서 그런 거예요. 질문은 짧은데 답변이 너무 길었어요. ㅎㅎ.


< 질문>
어제 어떤 자매님이 ‘내가 먹는게 아니고 내가 마시는게 아니다’라는 것에 대해 질문을 했는데..

< 답변>
그 얘기 아까 했어요. 우리가 변수를 놓쳤다는 거예요. 공부를 얼마나 해야 하느냐? 아무리 공부를 해도 우리가 놓치는 변수가 있어요. 인생 경험 쌓아도 놓치는 변수들이 많습니다. 그 변수들은 극한에 이르러야 해요. 그 극한이 뭐냐? 예수의 죽으심이에요. 그 예수님의 죽으심 앞에 보니까 어떤 변수를 해도 이 모든 것이 나는 예수님을 핍박할 수 밖에 없는 죄인 중에 죄인인 것으로 이미 결론난 거예요. 그것을 감사하는 거예요… 다른 질문 없으면 나는 집에 가야 하겠죠, 집이 있으니까..


< 질문>
“알파와 오메가”가 무슨 뜻인지요?

< 답변>
“알파와 오메가”가 사실은 하나로 만나는 거죠. 알파는 오메가로 달리고 오메가에 의해서 알파가 나왔죠. 그렇다면 그 중간에 있는 것은 전부 다 알파와 오메가를 증거하기 위해서 있는 겁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7일”이죠. 7일은 얼른 보면 수평으로 되어 있죠. 그런데 수평이 아니고 동그라미로 되어 있어요. 이것을 시간의 순환이라고 해요.
[별첨 그림 참조]

1, 2, 3, 4, 5, 6, 7 해서 다시 어디로 돌아 갑니까? 1, 2, 3, 4, 5, 6, 7 로 돌아 가는 거예요. 1 에서 6까지는 인간의 노동이에요, 인간의 노동. 7은 노동 없는 상태. 인간의 노동의 의미는 극한에 왔어요. 우리는 노동하지 않고 주님이 노동했음을 증거하기 위해 인간은 이 땅에서 힘들게 노동한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죄 짓기 전에는 노동이 힘들지 않았어요. 죄 짓고 난 후에 노동이 힘들어졌어요.

인간은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뭔가를 해야 하는데, 우리가 뭔가 노동을 해서 구원이나 복을 받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의 노동하지 않음에서 구원과 모든 은혜가 온다는 거예요. 우리의 노동하지 않음은 바로 주님의 노동, 다른 말로 하면 주님의 희생이 되는 겁니다. 주님의 희생으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마지막 심판할 때 왜 지옥가느냐? “소자에게 하지 않은 것이 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그 소자가 무엇을 했습니까? 주님과의 노동을 했죠. 주님의 노동으로 산다는 것을 모르는 자는 주님과 함께 살 자격도 없고 그러한 능력도 없다. ‘차라리 내가 없는 곳으로 가거라. 영벌 지옥으로 가거라’ 그렇게 되는 겁니다.

순환된다는 것, 순환은 되지만 이것을 전체로 하게되면 알파에서 오메가로 오고, 오메가 나오면, 원래 알파가 끝에서부터 거꾸로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위 그림 참조) 이것이 어디서 나오냐면 안식일을 반복해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율법을 통해서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지요. 이것은 ‘안식일이라는 율법이 나(예수)에게서 나왔다’는 거예요. ‘나에게서 나왔다’고 했으니까 모든 해석은 어디로 귀결되어야 해요? 예수님의 노동,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귀결되어야 하죠.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고 말한 거예요. 고전2장2절에서.

그러면 우리는 어디 있느냐? (알파와 오메가의) 중간애 놓여 있잖아요. 중간에 놓여 있으면서 우리가 노동을 하든 잠을 자든 무엇을 해도 그것은 노동이에요, 우리가 산다는 자체가. 우리가 노동한다는 것이, 주님의 노동과 비교해 볼 떄 우리의 노동이 죄가 되는 거예요. 죄가 된다는 이것 떄문에 우리는 주님의 노동을 반영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도 우리 집 구석 밥 먹고 살기 위한 것이죠. 남 살리려고 일 합니까? ‘골라 골라 짝짝’ 이런 거 왜 합니까? 독도 지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내 집안 남들처럼 인간답게 살아 보겠다고 하는 거잖아요? 그 인간다움이 뭔데요? 나의 연장이잖아요. 그 나의 노동이 주님의 노동을 가리우니까 그 가리움이 죄가 되는 거예요.

가리움이 죄가 되니까 성령께서 말씀으로 우리의 죄를 지적하죠. 지적하면 우리는 뭐라고 핑계를 되느냐? ‘어거 우리가 다 배웠는데요, 지난번 여수 강의에서. 이것도 다 주의 영광을 위해서 랍니다,’ 이렇게 핑계를 돼죠. 놀고 있네, 정~말. 주의 영광이라는 말을 하는 의도가 뭐냐 말이죠, 의도가. 앎으로써 챙길 것은 괜찮게 챙기겠다는 그 의도가 말씀 도중에 또 나오는 거예요. 죽을 때까지 계속 나오는 거예요. 그것이 얼마나 우리 자신을 가볍게 만듭니까? 챙겨봤자 들통날 걸, 곧장 들통날 걸. 그러니까 숨길게 있어요, 없어요? 없죠. 숨길 게 없으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우리에게 없는 겁니다.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ㅇ;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하는 순간 우리에게는 무거운 짐이 어디 갔지요? 없죠. 내 뜻에 의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그 뜻마저 더 상위 개념, 아버지와 아들의 소원대로 너희들은 지금 이 땅에 태어나서 이렇게 산다는 것을 알려줄 때 아래 쪽에 있는 우리가 스스로 살아야겠다는 짐은 한결 가벼운 짐이 되는 것입니다. 삼계탕에다 물을 드럼통으로 부으면 닭은 흔적도 없이 물 속에 잠겨 버리는 거죠.

주의 은혜에 충만하면 충만할수록, 성령에 충만하고 사랑에 충만할수록 나라는 존재는 점점 더 작아져 가죠. 고민해도 아무 것도 아니고 좋아서 까불대도 아무 것도 아니고, 죄 지어도 아무 것도 아니고 잘 해도 아무 것도 아니고, 이래도 아무 것도 아니고 저래도 아무 것도 아니고. 주의 은혜대로 살아가는 거얘요, 마치 한 마리의 참새처럼. 그리고 이름 모를 들풀처럼. 갑자기 들풀이 부러워지지 않습니까? 솔로몬이 입은 화려한 옷도 이 들풀 보다 못하다고 하잖아요. 위에서 보는 주님의 안목을 우리가 장착했으면 좋겠습니다.

아까는 ‘변수 놓쳤다’ 이번에는 ‘시간의 순환’, 은혜받아 놓고 죄 짓고, 죄 용서 받아 놓고 또 죄 짓고.. 순환, 순환이죠. 그런데 이것은 이론이거든요, 이제는 실습이 남아 있습니다. 요양사 시험 치면 이제 남아 있는 것은 뭡니까? 등치 큰 할아버지를 잡고 일으킬 때 이것은 이론이 아니거든요.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요양사 되어 병원에 가서 실제로 일해 보세요. 밥 먹고 잠이나 잔 그 덩치 큰 살덩어리를 돈 좀 벌어서 아이들 수학 과외라도 시켜 보겠다고 들다보면 몸이 망가지죠, 집에 오면 파김치 되고. ‘요양사는 친절해야 됩니다. 환자에게 천사 같이 대해야 합니다’ 이런 것은 이론이고요 실제로는 ‘ 이 영감탱이 때려 죽여불라, 이게 어디서 내 앞에서 어런 것 쏟아내고 있어? 나도 우리 집에서는 귀한 딸이야, 난 이런 것을 만지지도 않아. 돈이 아쉬워서 만지지’ 이런 식으로 불평하죠. 이게 실습이예요.

우린 지금 실습 중이예요, 이론 중이 아니고. 백날 해봐요 이론이거든요, 실습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아휴 빨리 죽고 싶다’ 아무리 해도 이건 쭈쭈바 구멍 뚫린거얘요. 빨리 죽고 싶다 해놓고 집에 있는 애가 밥 없다고 하면 ‘어 그래, 내가 집에 금방 갈께’ 정작 죽고 싶다 하니까 갑자기 살고자 하는 욕망이 확 튀어 나오죠. 빵꾸 났으니까. ‘죽어야지, 이대로 죽어야지’ 하다가도 좋은 약 있다고 하면 ‘그 약 얼만데요?’ 대번 약 찾잖아요.

내 마음 내 것이 아닙니다, 주의 것이지. 그러니까 그냥 사세요. 주시는 대로 남 모방하지 말고. 너는 너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살면 돼요. 부러워 하지도 말고. 주어진 대로 그냥 사시면 됩니다. 챙길 것 챙겼는데, 다 챙겼는데 뭘~. 빵꾸 났잖아요. 남은 몰라도 나는 알고 있잖아요, 주께서 빵꾸 내셨다는것을. 그러면 됐지요. 영생 얻었으면 됐지 뭐, 그 빵꾸 난데서 계속 영생이 주어지고 있는데 그러면 됐지 뭘~ 미련을 두고 이 세상에서 영웅 되려고 조국을 살리겠다고 그럴 필요 없어요.

 이상현 (IP:121.♡.87.230)19-08-30 09:31 
중간에 들어가야 할 그림이 별첨을 하니 녹취 제일 위에 뜨네요. 수정 기능으로 위치 조정도 안 되고요.
수정할 수 있으신 분, 가르쳐 주세요. 이미지 있는 워드 파일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나요.

 이한례 (IP:119.♡.125.19)19-08-30 11:14 
이미지를 웹서버에 올리셔서 그 주소로 올리시면 원하시는 위치에 올릴 수 있습니다.
img src="웹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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