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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속의 사랑 190924 이근호

아빠와 함께 2019. 9. 30. 13:14
2019-09-29 20:34:42조회 : 16         
20190924 해외가을특강 : 민수기 속의 사랑A -이근호 목사- 이름 : 이미아 (IP:122.43.170.138)

 20190924 해외가을특강 : 민수기 속의 사랑A -이근호 목사-

 

사람이 하지 않으면 후회될 일을 해야 돼요. 하지 않았으면 후회될 일을. 뒤에 가서 ‘할 걸’이라는 생각을 하지마세요. 하지 않으면 후회된다고 할 때에, 여기서 뭐가 잘라나가야 하느냐 하면은 우리의 미래라는 것을 생각하지 마세요. 지금 뭘 해야 되느냐, 에요. 지금. 지금 미래라는 것은 없는 거예요. 미래라는 것은. 미래라는 것은 현재에 와서 a쪽이냐, b쪽이냐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은 이건 미완료거든요. 이건 없는 거예요. 미래는 없는 거니까, 지금 뭐 할 거냐? 뭐 할 거냐? 라고 할 때에 생각해보는 거예요. ‘안 했으면 크게 후회할 거 같아.’ 그 일을 하시면 돼요. ‘안 했으면 크게 후회할 것 같아.’

 

그러면 미래는 있느냐? 미래는 없어요. 현재에 와서 현재로 이어가는 겁니다. 또 현재가 현재로 이어가죠. 그러면 이거는 해야 될 거, 안 하면 후회할 거니까, 해야 될 거. 그 다음에 내일되면 내일 해야 될 거, 그 다음에 내일되면 또 해야 될 거, 미래가 어디에 있어요? 없잖아요. 계속 해야 될 거만 있죠. 그러면 이렇게 되면 어떤 점이 좋은가 하면은 시간이라는 것은 없는 거예요. 시간이라는 것은 없고 뭐만 있느냐 하면은, 해야 될 게 있어요. 해야 될 게. 시간은 없고 해야 될 것만 있습니다.

 

시간은 없고 해야 될 게 있다는 말이 뭐냐 하면은, 누가 있다는 말이냐 하면은 내가 있다는 뜻이에요. 내가 있다. 내가 여기에 있으면 되죠. 꼭 내 일이 있어야 될 필요가 없어요. 내가 있으면 되잖아요. 내일이 되면 또 거기에 내가 있으면 되고. 모레 되면 거기에 내가 있으면 되고. 근데 사람들은 내가 여기에 있으면 되는데, 자꾸 어떤 미래를 생각하는 이것이 왜 그러느냐 하면은 남을 의식해서 그래요. 남들이 한 5년 뒤의 내 모습을 어떻게 볼까? 괜찮게 볼까? 이렇게 보니까 지금 해야 될 것을 놓치고, 해야 될 것은 안 하고, 5년 뒤의 멋있게 된 내 모습을 보고 남들이 이렇게 칭찬한다면 나는 얼마나 잘나 보이겠는가,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게 잘못인거예요. 그러면 그 자체가 이미 후회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이 오늘인데 자꾸 뭘 생각하느냐, 5년 후를 생각하는 거예요. 5년 후를 생각해버리면 지금 현재는 마음이 안 든다는 이야기거든요. 마음이 안 드는 걸 왜 삽니까? 지금 내 할 것만 하면 되는데 마음에 안 든다는 말은 잘못된 거예요.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지금 내가 해야 될 것을 하지 않으면 후회한다는 것만 이야기해버리면, 내가 하지 않으면 후회된다는 일을 한다는 말은, 다른 말로 쉽게 이야기하면 후회가 있다, 없다? 후회가 없다, 에요. 지금. 지금 내가 하는 일, 이 자리에 있다는 것에 후회가 없어야 돼요.

 

그럼 후회는 언제 생기느냐 하면은 내일되면 생긴다고요. ‘아, 그때 주스 이거 말고 딴 거 먹을 걸.’ 그걸 왜 미리 땡겨서 그렇게 생각하느냐 이 말이죠. 내일은 없는데. 내일이 없다는 말을 여러분들은 잘 못 듣던 이야기에요. 그렇죠. 내일은 없는 거예요. 애를 넷 키우잖아요. 애들이 커서 19살 때 20살 때를 생각하는데, 3년 뒤에 5년 뒤에 애가 있을지 없을지 그거는 내가 걱정할 문제도 아니고 내가 신경 쓸 문제도 아니고, 지금 눈앞에 애가 있으면 지금 뭐 할 거냐, 지금 후회 없도록 애 키우면 끝나는 거예요. 내일은 내일에 맡기고. 지금.

 

그래서 하루하루가 후회가 없으면 내일 되도 후회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내일 되도 후회가 없죠. 왜냐하면 내일되면 그날에 할 일을 생각하기 때문에, 어제에 내일 뭐 할 거라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이 말이죠. 할 필요 없죠. 그러니까 하루하루가, 제가 민수기 8장을 하면서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은, 시간은 없고 뭐만 있다? 사람만 있다. 이 이야기하려고 하는 거예요. 시간은 없고 사람만 있는 거예요.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어떤가 하면은 내가 있고 또 뭐도 있다? 내가 있고 시간도 있다. 이렇게 되겠죠. 세상 사람들은 둘 다가 되겠죠. 내일은 뭐하고 모레는 뭐하고, 이렇게 되니까 시간도 있고 나도 있잖아요.

 

그러면 이 둘이 사이좋게 지내겠어요? 아니면 시간이 나를 힘들게 하겠어요? 시간이 나를 힘들게 하는 거예요. 왜 힘든 친구와 같이 동행합니까? 이걸 치워버려야죠. 이걸 치워버리는 거예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는, 내가 지금 사라져도 여한이 없는 그 일만 하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제가 다시 해보겠습니다. ‘하지 않으면 후회될 일을 하면서 살라’고 했죠. 그러면 이것의 반대가 되는 일이 뭐냐 하면은 ‘어제 일을 후회함’, 이게 반대가 되겠죠. 여러분들 머리가 좋으니까 이정도의 논리는 따라올 수가 있죠.

 

후회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오늘에 비해서 지금 반대가 뭐냐 하면은 어제 일을 후회하고 있는 거예요. 애 셋만 낳을 것을 괜히 넷 낳았다. 어제 일을 후회하게 되죠. 그러니까 여기서 어제 일을 후회하고 있다는 것이 지금 후회하지 않는 일을 공격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인데. 쓸데없는 생각인데. 이걸, 후회하지 않는 일을 공격하는 거예요. 어제 일을 후회함, 이것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일 안함’이 돼요. 일 안함.

 

후회하지 않는 일을 하는데, 일 안하는 것이 일 하고 있는 것을 지금 훼방질하고, 반대하고, 공격하고, 일을 못하게 만들어요. 공부를 하는데, ‘어제 잘 할 걸!’ 이것이 지금 책을 보는데 책이 들어오지를 않아요. 머리에 들어오지를 않아요. 왜? 후회하는데 지금 시간과 정력을 소비해가지고 지금 해야 될 일이 없는 거예요. 인간들이 참 어리석죠. 똑똑하다고 하지만 참 어리석어요. 없는 일을 가지고 지금 자기가 공격을 받고 있으니까. 없는데, 없잖아요. 없는데 지금 공격을 받고 있으니까, 누가 누구를 공격하는 거예요? 내가 나를 공격하는 셈이 된다고요.

 

그걸 누구 탓합니까? 엄마 탓, 아빠 탓, 누구 탓해요? “본인이 거기에 있잖아. 니가 지금 후회하지 않을 일을 니가 몸 가지고 하면 돼.” 그런데 사람들은, 지금 남들이 보기에 나는 어떻게 보일까? 남들 보기에 나는 우습게 보이겠지. 그러면 진즉에 어제, 3년 전에, 5년 전에 제대로 할 걸. 지금 이게 무슨 되도 않는 상상입니까? 현실에서 뚝 떨어지는, 전혀 현실감이 없는 그런 망상 속에 빠지는 거예요. 망상 속에. 이건 일 안함이 공격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 후회하지 않는 일을 하려면 이걸, 어제 일을 후회함, 다른 말로 일 안 함을 지워버리면 되겠죠. 이게 없도록 싹 지워버리는 겁니다. 지워버릴 때, 이걸 지워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하면은 지금 할 일만 남습니다. 일만 남으면 여기서 어제 우리가 공부한 것처럼 ‘내가 일 한다’가 돼버리면, 이거는 내 안에 뭐가 묻어져 나와 버리느냐 하면은, 과거에 대한 후회가 나라는 것에 묻혀서 나와요. 먼지처럼 묻혀서 온다고요. 해야 될 일이 있는데, 예를 들면 해야 될 일이 지금 공부라면 ‘과거에 내가 공부를 잘할 걸.’ ‘수학의 기초라도 좀 닦아놓을 걸.’ 과거의 후회가 지금 일하는 것에 방해가 되죠. 그러면 내가 일에 방해가 되는 겁니다. 그때는 ‘내가’를 잘라버리죠. ‘내가’를 잘라내면 되겠죠.

 

잘라낼 때 방법은 뭐냐, 방법이 이렇습니다. 내가 여기 있다가 아니라, 이건 좀 어려운데요, 내가 여기 있다가 아니라 내가 여기 있는 사건이 있다. 사건을 집어넣는 겁니다. 내가 여기 있는 사건이 있다. 지금부터 이제 성경의 민수기가 시작되는 거예요. 성경을 보면 인간을 상대를 안 합니다. 인간은 없는 존재로 봐요. 인간이 “내가 여기 있습니다.”라는 것을 하나님은 인정을 한 해주고, “니가 거기에 있는 사건을 내가 일으켰다.”라고 보는 거예요. 내가 이것을, 주스를 주문했다고 보지를 않고, 지금 이 주스가 내 앞에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면 내 할 일은 뭐냐 이것을 마시는 일만 하면 후회가 없죠. 내가 먹고 싶은데 마시는 일만 하면 후회가 없죠. 이걸 마시면 되거든요. 여기에 무슨 과거가 들어가고 미래가 들어갑니까? 후회할 일이 없는 거예요. 지금 나는 어떤 사건에 의해서 여기에 있다 이 말이죠. 사건에 의해서. 자, 사건의 주인공이, 내가 빠졌으니까 여기에 있는 사건의 주인공이 아니겠죠. 사건의 주인공이 아닌 거예요. 그럼 사건의 주인공은? 모르죠. 알 수가 없죠.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것은 나밖에 안 보이기 때문에, 내가 여기에 있어야 될 이유에 대해서,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그것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요.

 

어떤 사람은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당신이 거기에 가자고 했잖아.”라고 했을 때에 그 사람은 좀 생각을 많이 해야 돼요. 내가 왜 여기에 있고, 저기에 없고 여기에 있는지의 그 결정을 내 맘대로 하지를 못합니다. 제가 아침에 호텔에 갔을 때에 호텔 앞에 장날이 섰거든요. 장날이니까 시장이 열렸다 이 말이죠. 그 시장을 내가 열었습니까? 아니죠. 사건이다 이 말이죠. “어! 시장이 있네. 구경을 해보자.” 어떤 마주치는 일에 대해서, 그 시장구경을 하지 않으면 내가 후회할 것 같은.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가는 거예요. 뭐, 내일을 생각하고 어제를 생각할 것이 없어요. 지금 마주치는 일이 내가 후회 안 하는 결정을 하면 된다 이 말이죠. 그럼 마주치는 일이, 내가 시장을 열었습니까? 아니잖아요. 그럼 누가 열었습니까? 아무도 아니죠. 그냥 놓여진 거죠. 그렇죠. 그게 사건 속에 우리가 하나의 점으로서 놓여있는 겁니다. 사건 속에. 내가 ‘아, 여기 길거리에 아무도 없는데 시장 한번 열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요. 그냥 마주침이에요. 마주침.

 

사건은 어떻게 만난다? 그냥 마주침이죠. 마주침. 혹시 이 단어를 아시는 분이 있으면 이야기해보세요. 플래시 몹(flash mob, 서로 모르는 불특정 다수가 인터넷과 전자 메일, 휴대전화 등의 연락을 통하여 약속된 시간에, 약속된 장소에 모여, 짧은 시간 동안 주어진 놀이나 행동을 취하고는 금세 제각기 흩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 단어 알아요?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잘 안 쓰는 단어인데, 이 단어를 젊은 사람들은 알아요. 그냥 아무런 계획 없이 자기들끼리는 약속했지만, 아무런 계획이 없이 광장에서 딴 일을 하는 척하다가 갑자기 음악소리가 나오면 한쪽에서 다리 흔들면서 춤추고 나오고 또 저쪽에서 나오고, 그래서 음악소리에 맞춰서 갑자기 하나의 군무, 춤을 추는 거예요. 춤을 추다가 음악소리가 딱 끝나면 각자 자기의 볼일 보러 다 가는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은 하나의 이벤트죠. 하나의 사건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미래 생각하지 말고, 과거생각하지 말고, 지금 우리는 뭘 하느냐 하면은 매일같이 ‘플래시 몹’을 하고 있는 거예요. 누굴 만날지, 내가 누굴 만날지, 내가 오늘 10시부터 11시까지 뭘 할지, 이건 예상도 없는 일인데 장날의 마주침처럼 그냥 마주쳐서,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 그것만 하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사건이 마주쳤기 때문에 그 탓을 내 탓으로 돌릴까요? 안 돌릴까요?

 

중요합니다. 이제 중요한 것이 나왔어요. 첫 번째 내 탓으로 돌릴까요? 안 돌릴까요? 내 탓으로 안 돌리죠. 안 돌리면 이게 뭐가 날아가느냐 하면은 정신병자가 안 돼요. 정신병자의 특징은 뭐다? 다 남 탓이고 그 다음에 더 나가서 누구 탓이다? 내 탓이다. 이게 정신병이에요. 이 정신병은 이사야 수련회 참석한 사람은 압니다. 세 번째 강의가 보편적 정신병이라고 했죠. 정신병의 특징은 미흡한 것에 대해서 불편해하는 것. ‘아, 맞아. 그거 내가 하는 건데.’ ‘에이, 이게 뭐야 더 채우지.’ 뭔가 더 채우고 싶은 것을 마저 못해서 두고두고 마음에 불편해하는 것이 마음의 정신병이에요.

 

그런데 제가 그 앞에다가 뭘 붙였느냐 하면은 보편적정신병이라고 했거든요. 보편적. 보편적이라는 말을 아시죠? 모든 인간이 다 정신병자에요. 모든 인간이 다. 태어나면서부터. 첫째 남 탓하고, 남 탓하다가 그 다음에 누구 탓하고? 내 탓하고. 보편적 정신병자들입니다. 그래가지고 세월 보내고 나중에 70, 80, 나중에 90이 됐다. 90되면 뭐하겠어요? 방금 말한 대로 90되면 뭐하죠? 남 탓하고 그 다음에 내 탓하고 그 다음에 자식 탓하고. 95가 됐다. 남 탓하고 내 탓하고 자식 탓하고. 그래가지고 그날 오후에 숨을 거둔다. 거둘 때까지 뭐하겠어요? 남 탓하고 내 탓하고 자식 탓하고.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정신병자로 사는 거예요. 그래놓고 죽게 되면 어디에 가냐? 관속에 가겠죠. 관속에 가게 되면 식구들 모여가지고 장례식 하는 것을 관 빼꼼히 열고서 보는 거예요. 큰아들이 왔는가하고. 빼꼼히 열고 보는 거예요.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남 탓하고 내 탓하고. 내일되면 남 탓하고 내 탓하고. 모레 되면 남 탓하고 내 탓하고. 그거 왜 살아요? 사는 이유가 뭐가 있어요? 아무 이유도 없어요.

 

성경은 말합니다. 니가 태어난 것도 사건이고, 죽는 것도 사건이고, 살아온 것도 사건이다. 플래시 몹이에요. 하나의 사건이었어요. 사건. 사건인데, 사건이라고 보지 않고 누굴 집어넣었습니까? 나를 집어넣은 거예요. 내가 결정 잘못해서 이렇게 살았다는 거예요. 사건인데. 그 결정을 할 때에 내가 관여 못합니다.

 

예를 들면 이쪽에 어떤 총각이 결혼을 하는데 선을 열 번 봤다. 아가씨를 열 번 보고 그 중에 맘에 들은 한 사람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본인이 결정을 했습니까? 사건입니까? 사건이죠. 왜, 백 명은 왜 안 봐요? 왜, 276명은 왜 안 보는 거예요? 기껏 일어난 플래시 몹, 사건은 열 명만 만나고 결정한 거예요. 그럼 열 명만 만나고서 결정해놓고, 아이고 잘못 만났다고 한다면? 왜? 7246명을 만나지? 왜 그렇게 못 만났어요? 그럼 7246명을 만났다. 그런데 그게 또 미흡하다면 9000명은 왜 못 만나죠? 누굴 만난다는 것은 사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있다 보니까 그걸 사건으로 안 보고 나의 결정으로 보는 거예요. 내가 결정해버리면, 내가 이 사건 자리에 내가 들어가 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뭐가 생기느냐 하면은 후회가 생겨요. 후회가. ‘그때 결정 똑바로 할 걸. 바르게 할 걸.’ 맨날 내가 있기 때문에 후회를 하는 거예요. 아까 이야기를 다시 해볼까요? 어제도 후회하고 오늘도 후회하고. 나이 36살 때도 후회하고 96살 때도 후회하고. 죽기 직전에도 후회하고. 한평생이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후회만 하다가 볼일 다보고. 남 탓하고. 남 탓이 후회거든요.

 

자,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했던가요? 이렇게 말을 집어넣는 것이 아니고 뭐라고 했습니까? 사건이라고 했죠. 사건은 뭐냐 하면은 내가 여기에 생겨난다. 성경은 내가 무엇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내가 생겨나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거예요. 발생. 발생이라는 이 단어만 알아도 인생을 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 발생만 알아도. 발생의 반대말이 뭐겠어요? 내가 여기 있다. 있는 것이 아니고 뭐한다? 발생한다. 발생한다는 것을 쉽게 하면 생겨났다. 누가? 내가. 내가 여기 생겨났다. 있다는 것은 성경에서 말한 것이 아니고 세상에서 말한 거예요. 내가 여기 있다. 있어봤자 나중에 늙어죽으면 뭐가 됩니까? 죽죠.

 

그냥 곱게 죽는 것이 아니고,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후회하면서 죽죠. 못 들었으니까 다시 할게요. 성경에서는 내가 여기 있다고 하지 않고 내가 여기 생겨났다고 하는 겁니다. 내가 여기 생겨났다. 오늘 며칠이죠? 9월 24일에 내가 생겨난 거예요. 내가 생겨나고, 저쪽에 어떤 아저씨가 걸어오면 그 아저씨도 있는 것이 아니고 뭡니까? 생겨나죠. 그 아저씨하고 내가 만나는 것을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사건이라고 합니다. 사건. 그러니까 인간이 하나의 전부 다 점, 점, 점이죠. 점, 점, 점, 점...., 이 점들의 만남의 주가 전부 다 뭐가 되느냐 하면은, 점들이 있고, 점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점이니까, 여기에 뭡니까? 사건과 사건으로 얽혀있다는 겁니다. 이런 내용으로 한 유명한 영화가 있어요. 매트릭스에요. 형제가 감독이 돼서 만든 영화, 매트릭스에요.

 

매트릭스는 모든 게 사건이에요. 만남과 헤어짐과 모든 게 사건이에요. 매트릭스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은 깜짝 놀랐어요. 그러나 이미 이 매트릭스 영화이야기는 전도서에 나옵니다. 태어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사랑할 때가 있으면 만날 때가 있고 만날 때가 있으면 그 다음에 헤어질 때가 있고. 모든 게 사건이에요. 왜 책임을 내가 집니까? 아, 인간 정말! 책임질 필요가 없어요. ‘아, 잘할 걸.’ 아니에요. 한계가 있어요. 내가 열 명 밖에 못 만났어요. 그때 열 명만 만나고 결혼한 거예요.

 

그러니까 잘 할 걸이라는 것은 지나온 것을 앞에서 보면 그것은 후회할 일이 아니에요. 7246명을 못 만났다고요. 시간관계상. 그것 하려고 하면 커피 값이 얼마나 많이 나가는데. 기껏 열 명만 만나놓고 결정 잘못했다는 거예요. 아니에요. 그 결정은 내가 한 게 아니고 생겨난 거예요. 니는 그 결정을 할 수밖에 없는 그 정황 속에 니가 거기에 몰려간, 그렇게 몰입된 거예요. 빼도 박도 못하게 내 결정을 나를 벗어나지 못하게, 그러니까 구석으로 몰아넣는다는 말이 있죠. 몰아넣은 거예요.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 후회하지 마세요. 정신병에 걸립니다.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 뜻도 모르니까, 같은 인간들보고 있으니까, 맨날 너무 잘났다, 나는 못났다고 자꾸 이렇게 비교하는데요. 그것은 내가 발생된 것이 아니고 내가 있다고 하니까, 있는 것을 안 놓으려고 하는 거예요. 근데 성경에 보면 오늘의 걱정은 오늘로 털어버려라. 그리고 내일되거든 또 내일 것을 줄 테니까 미리 땡겨서 하지 말고, 오늘은 오늘 밤에 잘 때 털어버리고 내일 되면 또 털어버려라. 이걸 가지고 뭐냐, 발생이에요. 발생. 내일되면 또 어떤 만남이 있을 거예요. 어떤 사건이 있을 거예요. 어떤 식당에 갔는데 예상외로 밥맛이 맛있다는 것도 사건이거든요. 예상 못한 거거든요. 우발적이고. 플래시 몹이니까. 모였다가 흩어지거든요.

 

그러니까 사람을 믿으면 안 돼요. 왜냐 하면은 사람은 모였다가 그 다음에 뭐한다고요? 흩어지는 사건이 있어요. 엄마, 아빠 믿다가... 믿지 마세요. 흩어져요. 전부 다. 아빠도 흩어지고 엄마도 흩어지고 자식도 흩어지고 전부 다 흩어져요. 그런데 어떻든지 같이 모였다면 뭐가 됩니까? 사건이니까, 여기서는 후회대신 뭐가 나오느냐? 후회대신 고맙습니다. 감사의 의미가 생기는 겁니다. 아, 하나님께서 만나게 해주셨으니까 내가 이쯤해서 해야 할 일은 후회하지 않는 일만 하면 돼요. 후회하지 않는 일. 내일 걱정하지 말고.

 

자, 그러면 후회의 반대말이 있어야 되겠죠. 후회의 반대말은 뭐가 되느냐 하면은, 이게 바로 성경과 관련되어 있어서 계속하는 거예요. 후회의 반대말은 성과주의입니다. 오늘 내가 원인이 되어서 내일 이런 성과를 거두겠다고 하는 성과주의는 아까 제가 한 시간요소가 나를 휘감고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겁니다. 인간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니고 방금 무엇이 휘감고 있다고 했어요? 시간이죠. 시간. 이 시간이 뭐하게 만들어요? 항상 후회하게 만들죠. 이건 발생이 아니고 천하없어도 내 존재를 잊지 않겠다는 자기중심주의로 나가버리면 남들을 괴롭히게 돼요.

 

성과주의, 이거 없습니다. 성과라는 것이 없어요. 몇몇 사람은 잘했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한테는 눈물을 흘리게 하는 성과에요. 어떤 아는 사람한테는 좋지만, 우리 편한테는 좋지만 우리 편이 아닌 사람한테는 고통을 주는 성과주의. 이래되면 그것은 전부 다 내가 그것들에게 심리적인 가해자가 되기 때문에 그리 되면 안 돼요. 오늘 아침에 보니까 폭죽이 있었어요. 무슨 날인지 몰라. 폭죽소리가 들렸거든요. 폭죽 같은 인생. 인생은 그때그때, 아까 플래시 몹, 그냥 터졌다가 사라지고, 또 터졌다가 사라지고. 하나님에 의해서 그냥 그때마다 맺혀주는, 그냥 사건이기 때문에 책임질 생각하지 말고요. 내 일에 책임지지 마세요.

 

내 일에 책임을 안 지게 되면 내 일에 후회도 안 하게 돼요. 물론 걱정근심은 이건 더불어 없어요. 걱정근심은. 후회할 생각하지 말고 지금 후회하지 않을,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그냥 내가 하면 되는 거예요. 성과는, 그 다음 사건에 대해서는 우리가 손댈 수 없는 결과가 주어집니다. 내가 손댈 수 없어요. 두고두고 고민하면서 ‘안 그럴 걸’이라고 하지 말고 지금 후회 없이 살고 결과에 대해서는 내 손을 떼면 돼요.

 

그건 내 책임이 아니니까. “내가 그때 하고 싶은 대로 했어.” “니가 무책임하구나?” “그래 무책임해.” 이래 나오라는 말이죠. “그래, 나 뻔뻔스러워. 무책임해. 니도 마찬가지야. 뭐.” 책임질 사람 아무도 없어요. 누가 있어요? 아무도 없죠. ‘아휴, 내가 애를 그렇게 키우는 것이 아닌데.’ 뭘 애를 그렇게 키우는 것이 아니에요? 그때 최선을 다했는데. 뭘. 뭘 지금 와서 그렇게 후회를 해요.

 

하나의 사건이 되게 되면, 그러면 어떤 사람 A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사건이죠. 그러면 B라는 사람은 뭡니까? 사건 되죠. 이 사건(A)과 사건(B)사이에서, 거기에 대해서 내가 억압을 하거나 관여하거나 평가하거나 집착을 하거나 내가 그 사람을 주도하거나 할 자격이 있어요? 없어요? 내가. 내가 없죠. 봐요. 없잖아요. 니는 니 사건이고 나는 내 사건인데 니가 왜 나한테 간섭 하냐? 쓸데없이 간섭하는 거예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부부라는 이름으로,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남한테 간섭하거나 요구할 권한은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없어요. 왜냐하면 사건이기 때문에.

 

그럼 사건과 사건이 만났을 때 하나님이 기대하는 것은, 아까 얼른 이야기했죠. 뭐라고 했습니까? 감사. “니 오늘 만나서 감사하다. 고맙다.” 참, 우리 입에서 나오기가 힘들죠. 진짜 평생을 걸쳐서 한번 나올까 말까한 이야기. 감사하다. 고맙다. 이걸 번역하면 나는 지금 만남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일돼도 오늘 일에 대해서 나는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성경에서 감사가 나오는 거죠.

 

그러면 지금부터 할 것은 도대체 성경에 무슨 이야기가 있기에, 인간을 존재로 보지 않고 하나의 사건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성경에 나와 있습니까? 전부 다에요. 전부 다. 전부 다라고요. 제가 어제 이야기했죠. 기독교라는 것이 위험한 거라고. 자기 존재를 신의 힘을 빌려서 주술적으로 내가 남한테 위너winner,승리자가 되고, 패자가 되지 않고 승자가 되기 위한 하나의 빽을 얻기 위해서 신을 믿는 것, 이거는 무슨 종교라고 했습니까? 이게 바로 우상의 바알종교. 우상종교죠.

 

우상종교가 될 때 사람들이 많아요. 교회에 고객이 많아요. 손님들이 많다고요. 장사가 잘 되는 거예요. 기독교는 위험한, 불교도 위험하지만, 모든 종교는 한번 보되, 거기서 탈피해야 되는, 벗어나야 되는 거예요. 종교마저 넘어서야 돼요. 종교마저. 신을 내 소유로 갖는 것을 넘어서야 되죠. 그리고 그걸 넘어서면, 내가 뭘 가져야 됩니까? 가진 게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가지지 마세요. 나는 가질 필요가 없이 하나의 사건이니까. 매트릭스니까. 매트릭스 알죠. 침대 확 뜯어버리면 스프링, 매트릭스 나오죠. 그게 연관된 관계와 관계망. 관계와 관계망이에요.

 

그러니까 뭐만 있으면 돼요? 교차점만 있으면 돼요. 교차점만. 이 격자구조⌗에서 이 교차점이 있죠. 사건이. 이게 바로 뭐냐 하면은 나라는 존재에요. 그냥 사건과 사건의 만남에 의해서 이렇게 되는 겁니다. 만남에 의해서. 그러면 다시 복습해봅시다. A라는 이 사람과 B라는 나의 격자구조의 교차점에서, 만남에서 뭐가 나온다고 했습니까? 관계가 나오죠. 관계가 나오는데, 이 관계가 지금 제가 이야기해야 할 민수기에요. 민수기. 성경을 포함한 민수기가 되는 겁니다.

 

이렇게 전제를 하고, 이렇게 서론적으로 쭉 깔고 민수기 8장을 한번 봅시다. 민수기가 어떤 구조로, 어떻게 보느냐, 민수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뜻이 이 세상을 이렇게 관계적으로 보는데, 존재가 아니고 관계적으로 보는데, 어떤 내용으로 보시기에 우리가 내 존재에 대해서 책임지거나 후회할 필요가 없단 말인가?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00양과 나 사이에 무슨 관계? 눈에 안 보이거든요. 존재만 보이지 눈에 안 보이거든요. 안 보이는데, 이 관계 속에 하나님께서 어떤 관계를 살리기 위해서 둘이 이 시간에 만나게 했느냐 하는 거예요. 사건이 되게 했는가 하는 거예요.

 

그 관계가 뭐냐, 그 관계를 민수기 8장에서 하겠습니다. 오늘 해야 될 것이 민수기 8장 5절에서 18절까지 할 겁니다. 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6절,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그 다음에 뭐라고 되어 있죠? 어떤 특정 단어가 나오죠. “레위인”이 나오죠. 레위인. 레위인이 나오는데, 레위인이 어떤 기능과 역할을 하는가가 어디에 나오느냐 하면은 바로 18절에 나옵니다. 18절을 누가 한번 읽어볼까요? “이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자의 대신으로 레위인을 취하였느니라”

 

자, 레위인이 뭐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은, 처음 난 자로 되어 있죠. 처음 난 자. 다시 하겠습니다. 왜 사람은 존재가 아니고 관계냐? 왜 하나님께서 어떤 사건을 일으켰느냐? 관계가 뭐로 구성됐느냐? 할 때에 여기 민수기 8장을 동원하면 된다고 했죠. 그럼 민수기 8장에서 방금 몇 절을 봤습니까? 5절 봤죠. 5절보고 또 몇 절을 봤어요? 18절을 봤죠. 거기에 어떤 특정 사람이 나와요? 레위인이 나오죠. 레위인.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한 아들이 레위입니다. 레위인이라 이 말이죠. 그 레위인이 뭐라고 설명되어 있어요? 18절에 보니까. 처음 난 자죠. 처음 난 자라는 말은 이게 태어난 거예요. 처음 태어난 거예요. 처음 태어났으니까, 레위인이 안 태어나면, 이 사람들이 안 태어나면 나머지기 열한 지파의 사람들이 있다, 없다? 없는 거예요.

 

이걸 가지고 요한복음 3장에서 거듭났다, 중생이라고 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중생이라고 하면 누구 중생이라고 합니까? 나의 중생이라고 하잖아요. 이거는 아니죠. 왜냐하면 ‘나’가 또 들어가니까. 나는 하나의 사건이어야 되지, 내가 어떤 특정 존재가 돼버리면, 이거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또 후회하게 되고 결정해야 되고 책임져야 되고, 이런 지옥 같은 그러한 걱정근심을 안고 또 가야 되는 거예요. 처음 태어났다는 말은 뭐냐 하면은 나라는 것은 사건이고, 사건과 처음 태어난 분과의 관계가 거듭남이에요. 관계가.

 

아주 쉽게 이야기하기 위해서 이 주스를 마셔볼게요. “어? 이런 맛 처음이네!” 이렇게 할 때에 이게 무슨 뜻이에요? 나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 주스가 존재하고 내가 존재하는데 이것도 한 만남의 사건이죠. 사건의 의미가 뭐냐 하면은 “너 이 맛 먹어봤어요? 한번 마셔봐.” 마셔보니까, “이 맛 처음이네.”라고 했죠. 그때 처음 이 맛을 느끼는 거예요. 내가 그동안 나만 생각했는데, 예수님이 이런 분인 줄 처음 맛보네. 처음 느끼네. 이게 중생이라니까요. 내 안에 예수님이 들어오니까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거예요.

 

어제 밤부터 늘 은혜 받아서 이야기했던 그 성령, 성령이 들어오니까 나는 존재가 아니고 주님과의 뭐다? 그냥 생긴 거예요. 예수님 증거 하라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라고 증거 하라고 그냥 생겨난 거예요. 그걸 가지고 뭐라고 했습니까? 처음 난 거예요. 처음 난 거. 하나님이 없으면 누구는 없다? 하나님이 없이는 레위인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없으면 아브라함이 없고, 하나님이 없으면 이삭이 없고, 하나님이 없으면 야곱이 없고, 야곱의 아들이 몇 명이다? 열두 명. 열두 명 중에 누구다? 레위인. 하나님이 없이는 뭐가 없다? 레위인이 없고. 레위인이 없으면 오늘날 너와 나 사이의 관계, 관계가 어떤 관계냐를 규명할 수 없는 근거가, 증거가 없는 거예요.

 

자, 제가 방금 이렇게 설명했죠. 그러면 기존의 교회에서는 어떻게 설명하는가, “여러분 잘 돼야 되겠죠? 행복해야 되겠죠? 여러분의 모든 가정의 어려움은 여러분들이 죄지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와서 말씀 듣고 순복하고 기도하면 여러분들의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어디서 이야기하죠? 기독교에서 이야기하죠. 교회에서 이야기하죠. “그런데 성경에 보니까 여러분들이 거듭나라고 했으니까, 여러분이 거듭나야 돼요. 여러분이 거듭나려면 빡세게 기도해야 되고 아니면 식당에서 고기 소금구이 기다리다가 오든지 뭐.” 그렇게 해서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내가 천당 가야 된다는 생각을 갖겠죠.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들이 조작한 거예요. 만들어낸 거예요. 그런 하나님은 없어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뭘 주는 것이 아니고 있는 우리를 하나의 점으로 만들어버려요. 플래시 몹 하듯이 하나의 사건으로 만든다고요. 만들어놓고 내던져버리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놓고 주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시켜버려요. 꽉 이렇게 연결시킨다고요. 후회하지 마라. 그리고 아까 이야기한대로 책임질 생각하지마라. 내가 너를 거기에 있게 했다. 몇 년 도에 태어났고 몇 년 도에 죽는 거, 그거는 니 소관이 아니고 내가 태어나게 했어.

 

아가씨 열 명 보고 또는 총각 스무 명 보고 결혼했다고 해서 니가 결정했다고 생각하지 마. 그때 나를 그렇게 몰아넣었어요. 열두 명 봐야 될 것을 열 명 밖에 못 봤어. 이렇게 몰아넣었어. 후회하지 마. 그럴 수밖에 없어. 다시 태어나도 그럴 수밖에 없어. 세 번 태어나도 그럴 수밖에 없어. 왜? 너를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절대로 책임지지 말고, 후회하지 말고, 그리고 내일 생각하지 말고, 지금 후회하지 않을 일을 주께서 맞닥뜨리게 하게 하신 거예요. 하게 하신 겁니다.

 

그래서 악마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뭐냐 하면은 고맙다, 감사하다를 악마는 제일 싫어해요. 악마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뭐냐, 열심히 해라, 최선을 다해야지, 그래야 니 장래에 성과가 주어진다. 이게 악마가 하는 이야기에요. 심지어 그 이야기를 어디서 하느냐, 교회에서 하죠. 기도가 부족하니까 기도를 하면 얻을 수 있다. 열심히 교회 봉사하고 섬기면, 착한일 하면 복 받는다. 이게 교회에서 하는 이야기고 거기에 대해서 사람들은 동조를 해요. 왜? 자기밖에 모르니까. 자기 과거가 후회스러우니까.

 

후회하니까 맨날 교회에서 기도하는 게 뭐하느냐 하면은 만회하기 또는 보상받기. 이 땅에서 만회 안 되면 죽어서 천당 가기. 이런 식으로 자기 이득과 자기 유리한 것만 챙기는 것을 가르치니, 뭐 어느 교회든 크게 지을 수밖에 없고 꽉꽉 모일 수밖에 없어요. 신종무당이니까. 자기가 평소에 원하던 욕망을 채워준다니까 안 갈 수가 없죠. 처음에는 안 간다고 버티다가 답답하면 가서 빌게 되어 있고. 빈다는 자체가 자기를 스스로 자책하는 거거든요. 자책하는 거.

 

자, 물어봅시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반성하는 것을 원할까요? 원하지 않을까요? 반성하는 거.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반성하는 그 ‘나’가 대단한 존재가 되고 말아요. 니 반성 안 하지? 나 반성해. 주님께서 회개하는 것을 원할까요? 원하지 않을까요? 원하지 않습니다. 회개한 ‘나’가 회개하기 전보다 우수한 ‘나’가 돼요. 그러면 이 우수한 나를 유지하기 위해서 더욱더 나는 내 선행에 박차를 가해야 됩니다.

 

박차를 가한다는 말은 뭐냐, 하고 싶은데 억지로 안 하고 있는 거예요. 이걸 안 하면 착해지겠지. 저걸 안 하면 착해지겠지. 착해지면 뭐 받는다? 복 받겠지. 복 받으면 내 과거의 모든 손상을 만회하겠지. 보상받겠지. 이런 식으로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후회할 짓을 자꾸 모으고 있는 거예요. 몇 시부터 시작했습니까? 모르겠어요. 후회할 필요가 없어요. 여러분이 피곤하시면 제가 스톱할 테니까.

 

자, 레위인은 뭐라고 했습니까? 제 말이 아니죠. 민수기 8장 18절에 보면 ‘처음 난 자’죠. 처음 난 자. 레위인을 처음 난 자라고 하는데 이걸 가지고 모델, 또는 시범모델. 시범자. 레위인처럼 되라 이 말이에요. 레위인처럼 되라. 시범자가 되어라. 그러면 아까 8장 5절을 했죠. 그 다음에 8장 9절을 봅시다. 누가 한번 읽어볼까요? 8장 9절. “레위인을 회막 앞에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모으고”

 

자, 됐습니다. 제가 한번 쓸게요. 백성은 어디로 가야 하느냐 하면은 레위인 앞에 가야 됩니다. 백성은 다수죠. 레위인 빼고 열한 지파라는 다수죠. 단수가 아니고 다수죠. 레위인은 무슨 지파입니까? 한(1)지파죠. 다수가 뭐로 모였습니까? 하나로 집결됐죠. 하나로 응축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진리를 안다는 것은 모든 변화를 하나로 응축시키는 것을 진리를 안다고 하는 거예요. 여러 가지 변화들이, 아무리 변하고 아무리 어려움이 있더라도 결국 뭐다? 하나에서 나온 일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핵심 되는 하나를 알게 되면 모든 것을 알게 되죠. 현대 천문학이나 물리학에서 우주의 탄생을 뭐로 봅니까? 빅뱅이라고 하죠. 빅뱅. 빅뱅 하니까 한국의 아이돌 생각하는데. 빅뱅이죠. 빅뱅은 둘이 되겠어요? 하나가 되겠어요? 최초의 하나잖아요. 하나에서 이게 소용돌이 치고 풀리게 되면 뭐가 나옵니까? 모든 우주가 나왔다고 현대물리학에서는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물리학은 이게 안 맞아요. 안 맞지만 하여튼 그 외에는 달리 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나왔다고 하는 겁니다.

 

언제 나왔다고 합니까? 지금으로부터 137억 년 전에 나왔다. 지구는 45억 년 전에 나왔다고 하는 겁니다. 과학이 구라가 되는 이유는 시간을 길게 잡아서 이게 문제가 되고 수상해요. 하여튼 빅뱅이 이렇게, 최초의 창조가 이렇게 풀려나오는 거죠. 최초의 것이 풀려나오는데,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블랙홀이라고 하는 거예요. 블랙홀. 오늘날에도 그런 현상이 있다는 거예요. 블랙홀 들어본 적이 있어요? 우주에 시커먼 구멍이 있는데 빛이고 간에 전부 다, 모든 질량을 가진 것들은 다 끌어 땡기는 거예요.

 

그러면 뭡니까? 다수에 있던 태양이나 수금지화목토천해명, 모든 은하계는 어디로 갑니까? 다수가 어디로 간다? 하나로 응축되겠죠. 그게 하나님의 방법이에요. 다수가, 이스라엘 백성이 어디로 모인다? 레위지파로 모이는 거예요. 어렵지 않죠? 성경이. 민수기가. 여러 가지, 나라는 존재는 존재가 아니고 레위인으로 보내는 겁니다. 레위인으로 응축이 되면 이게 뭐냐, 대표 또는 대신하는 거예요. “내 책임, 내가 죄 짓는 거 당신이 다 가져가.”라고, 그냥 하나로 밀어버리는 거예요. 하나로. 그리고 주께서 그걸 원하고 계세요. 우리가 무책임해서 미루는 것이 아니고.

 

그냥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이 뭐냐, 니가 니 책임지지 말고 니 짐을 누구한테? 중심 되는 하나한테 모아버려라 이 말이죠. 그럼 레위인에 누가 기다리고 있느냐 하면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기다리고 있어요. 관계성이. 왜냐하면 레위인이 누굴 대표하기 때문에? 백성을 대표하거든요. 대표한다는 말을 했지만 여기서는 뭐냐, 대신한다고 되어 있어요. 민수기 8장 18절에, “이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자의” 그 다음에 뭡니까? “대신으로” 대신이죠. 저는 대표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대신이라고요.

 

여러분들이 이제 최초의 블랙홀에 접근한 거예요. 지금 끙끙 나 혼자 앓지 말고 맡기라 이 말이죠. 그럼 나는 존재가 되지 말고 사건이 되면 되고. 사건이 되거든요. 맡겨버리면, 레위인에게 누가 기다리고 있겠어요? 레위인과 하나님 사이에 여기 관계가 준비되어 있어요. 준비되어 있는데 이 관계가 무슨 관계냐 하면은, 11절에 봅시다.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아론은 레위인 중에서 가장 대표자죠. 우두머리죠. “레위인을 요제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이는 그들로 여호와를 봉사케 하기 위함이라”

 

그 다음에 뭐가 나옵니까? 12절에 “레위인으로 수송아지들의 머리에” 수송아지, 동물 나옵니다. 동물. 자, 레위인은 사람이죠. 하나님은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안 보이죠. 그래서 안 보이니까 없다고 생각하죠. 없는데, 무엇은 있어요? 관계는 있죠. 레위인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아무리 봐도 안 보이는 하나님과 관계는 있는데, 레위인이 뭘 드립니까? 짐승을 잡죠.

 

그러면 여기 인간에서 뭐로 바뀌죠? 인간에서 동물로 바뀌죠. 동물. 짐승으로 바뀌죠. 그 짐승의 운명이 어떻게 됩니까? 바치라고 했으니까, 이 짐승이 살아요? 죽어요? 하나님 앞에서 죽지요. 이게 뭐냐 하면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취지가 그대로, 그 질서가 레위인 중심으로 계속 유지되면서 돌아가고 있는 겁니다.

 

자, 복습해봅시다. 레위인은 블랙홀이에요. 빅뱅이에요. 빅뱅인데, 우리는 사람과 사람의, 나라는 인간이 레위인이 있다면 내 책임 다 가져가라고 안수도 하고, 내 죄가 있는데 당신이 가져가라고 하고 막 안수한다고요. “이제 저 죄 없습니다. 당신이 대신 짊어지세요.” 그러면 레위인이 “알았어요. 이게 주의 뜻이니까 받겠습니다.” 받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 그 사람들만 갈 수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가면 죽어요. 레위인만 가는데, 하나님께 뭘 바쳐요? 동물을 바치는 거예요. 그러면 사람에서 뭐로 바뀌었어요? 중간 업체, 중간 택배가 갑자기 사람에서 동물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이 말은 뭐냐 하면은 누군가 나중에 와서, 그 동물은 사는 동물이 아니고 무슨 기능을 해요? 죽는 동물이죠. 죽어야 될 동물, 왜 죽느냐 하면은 죄를 짊어졌다는 이유 때문에 대신 죽어야 될 동물의 기능을 하는 사람이 장차 하나님의 약속대로 온다는 것을 레위인이 미리 보여주는 기능. 그 기능이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관계에요.

 

아까 교회가 하는 짓 이야기했죠. 이거는 내가 죽어요? 안 죽어요? 미쳤어요. 내가 왜 죽어요. 내가 얼마나 귀한데 왜 죽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힘을 빌려서 살아있는 내 인생 보상받고 만회하기 위해서 그냥 빌고 돈 바치고 헌금하고 십일조 하는 그 짓을 한다고 했죠. 근데 실제로 성경을 보니까 그렇게 하는 하나님이 아니고, 그런 돈을 받는다든지 그런 일을 받는 하나님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뭐냐 하면은 “니가 그렇게 책임질 생각 하지 말고, 나한테 알랑 떨거나 재롱 떨 생각하지 말고 맡겨라.” 맡겨라!

 

제가 아까 존재가 아니고 사건이라고 하면서 뭐라고 했습니까? 책임지지 말라고 했죠. 책임지지 말아야 될 그 이유가 성경에 있다고 했죠. 그럼 지금 성경을 봤죠. 모든 성경에 있지만 민수기 8장을 봤죠. 8장에 보면 뭐가 있어요? 거기에 누가 우리 대신 죽는, 동물의, 제물의 기능을 해야 되는 어떤 분이, 사람이 아니고 동물로 나타나서 하나님과 우리의 대표자인 레위인과의 관계성을 유지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게 바로 민수기 초반에 나온 핵심이에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빅뱅, 우리는 플래시 몹, 만났다가 흩어지고 만났다고 흩어지는 다양성, 다수, 사건중의 하나일 뿐이에요. 우리 모두 다. 내가 누구를 평가할 수가 없어요. 나도 누구를 책임질 필요가 없고, 누굴 탓하거나, 니 왜 그러냐고 압박하거나, 당신 그렇게 살면 안 돼! 라고 지적질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죠. 근데 기존 교회에서는 누가 지적질 합니까? 목사가 교인들보고 지적질 하죠. 그럼 교인들은 왜 그걸 받아줍니까? 그건 어제 식사하면서 잘 이야기했어요. 목사님이니까, 주의 종이니까, 성령을 받았으니까 내 책임지라고. 책임자는 동물인데요? 사람이 아니고. 책임자는 예수님 밖에 없죠. 그렇죠. 어린양이라는 게 오실 분을 미리 예표 한 거예요.

 

10분 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