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천국백성을 이 세상에 위장전입 시켰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천국백성들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위장시킨 것이다.
거지나사로를 완벽하게 위장시킨 주님의 위장술을 보라!
부자는 세상에서는 보지 못했던 거지나사로를 지옥에서 바라봤다.
아브라함에 품에 안긴 거지나사로를...
매일 자기 집 앞에 와서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려고 했던 그 거지나사로를 보면서
“차라리 태어나지 말 것이지. 넌 나를 만난 것이 행운일 거야. 굶어죽지는 않게 되었으니까.” 라고 동정했었는데...
근데 어떻게 해서 나는 물 한 방울만을 소원하는 이 지옥에 있게 되었고,
저 거지 중에 상거지였던 나사로는 천국에 있게 되었는지...
선을 베풀고 의를 행했던 나는 왜 지옥이고 내 베풂을 받았던 저 거지는 왜 천국인지를...
지옥의 쇼킹은 이것이다. 내가 잘 알았던 사람이 천국에 가 있는 것이다.
지옥 갈 사람은 이 세상에서 누가 천국 갈 사람인지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그러나 천국 갈 사람은 지옥갈 자를 알아본다.
지옥에서 천국을 바라볼 수는 있어도 천국에서 지옥을 볼 수 없다.
이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지옥을 충분히 봤기 때문이다.
지옥 갈 자도 봤고, 지옥을 충분히 경험했다.
아들의 피를 떠난 인생을 산다는 것, 그것이 최고의 고통이다.
천국에 가서 까지 지옥을 바라보며 고통당할 것도 없고, 천국에서는 지옥을 볼 겨를도 없다.
천국은 영원히 회개하는 나라다. 어린양을 향한 노래, 그것이 회개다.
이 세상 것으로는, 이 세상이 보는 눈으로는 갈 수 없는 나라, 천국은 아들의 나라다.
주님은 아들의 피로만 가는 자들을 위장시켜서 살게 하심으로,
때가 되면 아들의 피가 아닌 이 세상 기준과 판단으로,
자신의 행위로 말미암아 천국 갈 수 있다고 장담하는 자들에게 내리는,
인간 의에 대한 주님의 무서움과 보복을 베푸시기 위함이다.
그리고 주님의 자기백성에 대한 신원이다.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계6:10)
평생 거지로 살아도, “주께서 하셨습니다.”라는 고백뿐이다.
거지로 위장되어 살게 하신 것은 주와 함께 살게 하기 위한 것이기에
병든 거지였어도 나사로에게는 자신감이 있었다.
주께서 부자를 붙여줘서 먹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부자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은 없었다.
인간은 죄인이요, 지옥가고 있으며 죽어야 할 자인 것을 몰랐다.
성경에 나오는 주님의 백성들은 미말에 찌끼처럼 버림받도록 다 위장된 자들이다.
나에게 주어진 지금의 이 인생이 주님이 위장시킨 인생이라면
그 어떤 것으로도 살아갈 용기가 있는 것이다.
모세와 선지자들이 새 언약인 아들의 피만을 증거한 것처럼
아들의 피만을 증거 하는 인생이기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은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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