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한마디

70.예수님의 살과 피를 통해서 우리는 흐르고 있답니다.

아빠와 함께 2018. 5. 24. 09:14


성령을 줘서 자기 백성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겁니다.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어떤 경우냐 하면은 예수님이 가셨던 그 경로를 경로에 포함이 되는 거예요. 포함이. 

이게 수도 파이프 관인데 수돗물이 흐른다. 여기서 뭐 이빨 좋으라고 불소 가루를 탄다면 그 불소가루는 어디에 흐릅니까? 

이 관 밖에 나갑니까 안 나갑니까? 안 나가지요. 이 수도관 타고 계속 흐르겠지요. 

이게 언약이라면 이게 성령이라면 성령 안에 우리는 이 하나의 죄인으로서 계속 흘러가는 거예요. 이 안에. 

포함해서 덮친다 했잖아요. 성령세례 안에 우리가 계속 흘러가는 겁니다. 

흘러가고 있을 때 이거는 혼자가 아니고 둘이 되는 거예요. 두 사람이. 

둘이 되게 되면 여기는 뭘 하느냐 하면  운명을 알고 원천을 알고 원리를 알고 

세상에 모든 것이 어떻게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이제는 아는 거예요. 

왜냐면 왜 아느냐 하면 자기 중심, 자기 이익 중심으로 안 살아가기 때문에. 자기 이익중심으로 안살아가기 때문에. 

결국 성령께서 그렇게 만들기 때문에. 


그러면 뭐 목사님 나보고 뭐 어떡하란 말이예요? 

이 불소 알갱이 덩어리가 본인이 어떡하라는게 없어요. 왜냐? 이 수돗물에 휩쓸려가기 때문에. 휩쓸려가잖아요. 

그러면 내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상황이 성령께서 유발시킨 상황들이죠. 나에게 일어난 모든 상황이. 

이걸 가지고 오늘 본문에 기도에 뭐냐 하면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다 말이죠. 

권세가 왔을 때 하나님께 권세 있는거하고 아들에게 권세 있는거하고 달라요. 

하나님께 권세 있으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게 끝이겠지만 

예수님에게 권세 있어버리면 

이것 때문에 예수님이 돌아가셨군요 하고 십자가를 증거하는 힘, 십자가를 증거하는 용도의 관계가 형성되는 겁니다. 

내가 예배당 이거에 미쳐서 하는 이것 때문에 주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군요 하는 거예요. 

내가 자식에 미쳐서 자식에게 흠씬 빠졌을 때 이것이 바로 십자가를 가리는 일이군요 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자식 사랑하지 말까요? 하는데 우리가 무슨 재주로 자식을 안 사랑합니까? 그런 재주 있습니까? 

그런 재주 있거든 사랑하지 마세요. 우리는 자식 안 사랑할 재주가 없어요. 

자식을 남의 자식 볼 수 있는 그러한 마음이 없습니다. 아무리 애 먹여도 내 자식하고 남의 자식 구분할 줄은 다 알지요. 그렇죠? 구분할 줄 알잖아요. 구분한다는 것은 차별화 시킨다는 거예요. 

내 아이가 팼을 때는 학교에서 패버리면 용감한 다윗 같은 인간이 되지만 

얻어맞고 왔을 때는 그 다음에 그 애는 깡패가 되는 거죠. 

모든 것이 내 위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이것을 이 수도관의 불소 알갱이처럼 같이 하면서 그걸 느끼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아까 수돗물이라 하는 이것이 수돗물이 아니고 뭐냐 하면 예수님의 죽음이예요. 예수님의 살과 피입니다. 살과 피. 예수님의 살과 피 통해서 우리는 흐르고 있는 거예요. 

이 말은 뭐냐? 오늘 밤부터 남부지방 비 온다고 하는데 비는 왜 오느냐? 비는 하나님에게서 오는게 아니예요. 

바로 예수님에게서 오는 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부터 비가 오는 겁니다. 모든 만물의 권세는 아들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와 관련 없는 비는 없습니다. 왜그러냐 하면 지금 시대가 십자가 이후 새 언약의 시대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언약을 앞장세워서 하는 거예요. 언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