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전할 때 성령으로 전하는 느낌이 뭐냐 하면 전하는 그 모습을 보고 본인이 주님께 감사가 되어야해요.
내가 전하니까 몇 명 더 건졌다가 아니라
내가 이런 나같은 이런 돼지같은 인간 속에서 이 더러운 인간 속에서 이런 고상한 내용의 은사가 울려퍼진다는게
그게 이게 나온다는게 어떻게 죄인을 이런 식으로 아름답게 사용하십니까?
본인이 깜놀. 본인이 깜짝 놀라야 되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두 시간 동안 돈 들여 가지고 밥 퍼주면 먹였는데 네가 안 믿어? 이럼 성과가 되어 버리니까.
이것은 안 되지요. 이것은 마귀짓이지요. 하면서도 어떻게 내가 이 무식하고 모르는 내가 십자가의 아름다움을 진짜
로마서에 나와요.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이여 이렇게 나오잖아요. 어떻게 아름다운 소식을 그게 복음 아닙니까.
복음소식을 상대방의 반응도 상관하지 않고 서슴없이 편하게 전할 수 있을까? 이거는 성령의 도움이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성령의 일의 특징이 있어요. 항상 고맙고 감사해요. 뭘 하든지 고맙고 감사해요. 어찌 이런 일이. 어떻게 이런 일이.
내가 결정하지 않았는데 주께서 이렇게 조성해 내시는 그 손길이 어떻게 고마운지
지금 죽어도 괜찮은데 안 죽이시고 일을 더 시키시고 내 죄를 더 들추어 내셔서
죄를 아는 마음으로 뭘 보느냐 하면 죄인이니까 볼 거 없고 나한테 볼 거 없어요. 없고.
십자가 죽으시고 부활했다는 그 죄사함의 실제성을 보게 하신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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