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추상적인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 시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간과할 수 없습니다. 진정 우리가 예수님의 피 때문에 용서 받았고 예수님의 피 때문에 구원 받았고 예수님의 피 때문에 아들의 나라인 천국에 가게 되었고 그래서 예수님의 피를 증거하는 자로 호출 당했다면 말입니다.
썩어빠진 막연한 편가르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기독교파냐 카톨릭파냐...선입견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드러난 이단들입니다....정작 문제는 다른 데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생각들입니다. 무서은 것은 이 생각들이 인간 모두의 관점이라는 것입니다. 5일동안 온 국민을 주눅들게 했습니다...아니 그가 생전한 세월내내 그 앞에서 쪽도 못쓰고 발발기는 자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인간 모두의 염원이며 한이 그처럼 되지 못한 것에 있는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것을 초월한 양 위풍당당하게 살면서 은연중에 "나를 본 받으라"는 메시지를 각인시켰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오른 손이 한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고요...참 웃기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이 말씀 그대로 했습니다. 오른 손이 한 일을 왼 손이 모르게요....그런데 어떻게 다 알게 되었을까???
온 국민의 애도의 물결 속에 소수만의 분노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가를 여기에서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우리들 모두는 주눅든 인간들이기에...예외일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일상이 그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일상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십니다. 우리가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바나나를 따먹은것도 아니고 딸기를 따먹은것도 아닙니다. 신이 되기 위해서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바나나를 따먹고 딸기를 따먹었다면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어야 했는지 도무지 모를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관점이 이러합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사건만이 아닌 우리의 일상의 관점이 다 이렇게 흘러가고 있음에 모두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하는 의도입니다. 우리 모두는 자기 변명과 핑계와 정당성을 찾아 오늘도 헤매이고 있는 자들 입니다.
우리교회 홈에서 퍼왔습니다. 퍼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퍼오고 싶었습니다. 두 분의 글을 대하면서 정말이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아!!!!!!이거구나!!!! 라는 은혜를............
"김수환추기경의 별세와 국민적 애도를 보면서 복음적 해석이 무엇일까 궁금하던 차 우리교회 홈페이지에서 몇몇 분들의 해석을 접할 수 있었다.
해석을 모아보면 그 분이 지옥에 갔다는 결론이다 죄명은 피의 은혜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 관심을 둔 적이 없었던 김추기경의 어록과 집전미사내용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그 분이 천국에 갔을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왜냐하면 그 분의 삶을 훑어 보면 복음을 알면서 그 복음을 전하고픈 마음에 평생을 헌신하는 운명으로 살고도 거대한 조직에 이용당하고 무기력하게 짓밟힌 한 사람의 삶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분이 아무리 복음을 외쳐도 한국천주교회, 아니 바티칸왕국의 조직적 힘을 이겨낼 수는 없는 한 인간에 불과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거대한 조직에 남아 복음을 말하려고 발버둥쳤고, 예수님의 사랑이 너무 감사해 그 사랑을 전하려 나름으로 애쓴 흔적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 예로 그 분은 자신의 죽음을 악용할 천주교회를 알고 있어서 유언으로 자신의 장례를 평신도처럼 하라고 부탁했지만 바티칸 왕국산하 한국천주교회라는 조직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그래서 복음의 형제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그 분에 비하면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해 하기는 커녕 당연시하면서 사는 거지 놈팽이보다 더한 내가 복음을 알게 된 이 택함받은 은혜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렇다고 말하는 이들이 우리교회에 오는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건져내심을 받은 놀라운 사랑에 감사하는 성도의 삶이 우리교회에 과연 존재하고 있기는 하는 것일까
입으로만의 고백과 인간적 욕망을 내려 놓지 못하고 내려 놓을 수도 없는 운명이 인간의 운명임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게 되면서 그 위에 헌신까지 더해 본 김추기경의 삶에 대해 복음적 해석을 새롭게 해 본다 그리고 모든 이들의 삶이 선- 하나님을 알게 하는 은혜임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건전하고, 얼마나 훌륭하게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는지 상상도 못할 지경입니다. 인간으로서 최고 수준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말씀대로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를 낮추고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서슴없이 어려운 사람을 돌보고 관삼갖고 구제하고 그 어렵다는 십일조를 하고, 타인의 모범을 보였습니다. 오죽했으면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외쳤을까요. "너희들의 의가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못가리라"(마 5:20)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주교 내에 각 종파에 숱하게 흩어져 있는 수도생활하는 수도원들의 평소의 생활 태도와 마음가짐을 조사해 보셔야 합니다. 김수환씨하고는 격이 다릅니다. 거의 신성 수준입니다. 그들의 ‘자기 낮춤’과 경건성은 테레사 수녀를 감탄할 지경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달라이 라마 계통의 티벳 승려들의 '낮은 마음' 갖추거나 인류를 행한 ‘사랑의 정신’은 도대체 이들이 신이냐 인간이냐 할 정도입니다. 일반인들로서 쳐다 보지 못할 경지에 도달한 자입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과거 통일 신라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소위 지독한 '선비 정신'으로 무장한 자들의 평소의 삶이란 거의 신선에 이를 정도입니다. 러시아 문호 가운데 토스토에프스키나 톨스토이를 비롯해서 서양의 유명한 위인들의 생활이 얼마나 세상 물욕에 물들지 아니하고 자기 절제에 힘쓰며, 가진 모든 재산은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의 전부를 오로지 주 예수님께 다 바친 자들이 수두룩합니다. 중세 신비주의를 표방한 신자들이나 성자들 중에 김수환 추기경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에 푹 젖어든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김수환씨도 이런 자들의 책들을 접하면서 자신의 삶의 모델로 삼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의 이런 '자기 부인' '자기 낮춤' 경쟁과는 상관없이 참으로 성령을 받은 자는 오로지 복음에 관심이 있다는 겁니다. 같은 인간들 끼리 비교해서 더 우수하고 더 훌륭한 자가 '영적 인간'으로 승격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인간'은 오로지 예수님의 피 복음에 관심이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보면, 출애굽기 12장에서, 진짜 하나님의 심판의 사자가 애굽 전역에 찾아들었을 때에, 심지어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이는 애굽의 감옥에 있는 모든 죄수의 자기 고행집에 큰 아드님이 졸지에 사망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자 앞에서 모든 인간은 실은 죽은 자요 저주받은 자들입니다. (에덴 동산에 쫓겨나가서 생명나무를 못 따먹고 선악과 나무를 따먹은 존재로서는 당연한 운명임) 하지만 이토록 무서운 '저주의 사자' 앞에서 살아남은 자는 오직 '어린양의 피' 뿐이었습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에게는 '십자가의 피'로 이어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받는다"(갈 1:8)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하나님의 기준에다 김수환씨를 주장을 갖고 놓고 비교해 보세요. 과연 그 사람이 '피'만을 외쳤든가요? 즉 "여러분, 천국 교회의 역사나, 천국 교회의 의식보다 , 그리고 인간의 이웃 사랑보다 오직 피만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롬 3:23)이라고 외쳤던가요? 그 김씨는 십자가 복음에 미쳐버린 자가 아닙니다. 아니, 도무지 복음에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관심사는 사람들 보기에 우수한 영적 인간들을 보다 많이 양성하는데 교회가 전력을 다해야 하고 자신으로부터 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식입니다. 이것은 인간들 사이에는 감동과 눈물을 자아낼 지는 모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예수님의 피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모독적인 자세입니다. 천주교는 예수님을 그냥 모범적 존재로 봅니다, 이것은 자신들이 벌려온 모든 것이 죄임을 자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 김씨가 자신이 죄인임을 안다면 천주교의 모든 교리나 의식들이나 모든 활동들이 전혀 사람을 구원케 하지 못하는 종교적 상징에 불과함을 크게 외쳐야 합니다. 김씨가 생각한 신이란, 인간들이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인간들이 만들어 낸 신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만든 신을 자신이 부인하지 못하고 항상 신을 부르짖는 겁니다. 참으로 성령받는 자라면 인간들이 생각하는 신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허구임을 공개적으로 자백했어야 했습니다. 마치 오늘날 개혁주의를 외치는 자들이 한국 교회의 썩어빠진 면면을 예리하고 냉정하고 정확하게 지적했다고 해서 '개혁주의'가 전혀 진리하고는 멀고 도리어 복음을 모독하는 이단적인 태도를 갖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이번 김씨의 죽음으로.....신앙에 참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번 기회가 김수환 책 뿐만 아니라 이슬람 신비주의 성직자나 같은 천주교 내에서 오늘도 오로지 경건과 이웃사랑만 실천하는 공동체에서 나온 책들을 보시면 참으로 "이 사람들이 천사야 인간이야!"가 감탄사 절로 나올 겁니다. 아무런 종교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오늘날 남몰래 등산길에 떨어진 쓰레기를 남몰래 줏는 초로한 행색의 노인을 우연히 만나게 될 것이요, 버려진 폐지를 줏어다가 고물상에 팔아서 그것으로 같은 동료들인 노인들의 치매 요양비용으로 내면서 소리 소문없이 일하시는 숱한 거리의 성인들의 소식을 접해보세요, 아무리 하나님이 엄위하시더라도 그들 만큼은 천국에 보낼 거라는 마음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들도 지옥갑니다. 왜냐하면 에덴동산에 있는 '생명나무'를 따먹지 못한 아담의 후예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스스로 자부하기를, 자신은 율법으로서도 흠이 없이 완벽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다” 그렇다면 이런 큰 죄수가 구원된 것은 무엇일까요? 도대체 그는 무엇을 증거하려고 이런 발언을 한 것입니까? 김수환씨처럼 ‘인간 사랑’입니까?’ 아닙니다. 도리어 인간을 더욱 더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고 오직 의인이신 예수님의 대신 죽으심만 외쳤던 것입니다.
이렇게 한 번 생각하세요. "성도?" 아예 없다고 생각하세요. 교회 내에서 없다고 생각하세요. 그런데 교회 내에서 우연히 피만 사랑하는 자가 있다고요? 기적 중에 기적이라고 보시기 바랍니다. 결코 당연한 일로 보지 마시고요. 부활하신 주님이 피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지 아니하면 그 누구도 예수님의 피만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제가 아는 김수환씨의 모든 발언은 오직 '인간 사랑' 뿐입니다. 그는 결코 "오직 피 뿐이다!"라고 주장한 적이 없는 자입니다."
"저의 표현력이 부족했는지 목사님께서 이해하시기에 내용의 방향이 조금 어긋난 듯 하네요
그래서 목사님 말씀처럼 김추기경이 예수의 피를 주장했는지에 초점을 두겠습니다
전 김 추기경이 예수의 피를 주장한 분이라고 봅니다
제가 그 분을 복음의 형제로 보는 것은 그 분이 보여 준 자기 부인, 자기 낮춤의 경건한 삶때문이 아니라 그 분의 고백들을 통해 예수의 피를 아무리 외쳐도 그 분을 가로막고 있는 한국천주교인들의 벽에 좌절되어 고통받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께서 복음의 형제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이 우리교회에 앉아서 목사님께서 성령으로 예수의 피를 외치는 말씀을 들으면서 동시에 우리가 우리의 벽을 쌓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김추기경의 고통이 무엇이었을지 아실 수 있으리라 생각듭니다
제가 김추기경의 삶을 애도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로 나에게는 그 벽이 없는 놀라운 기적에 대한 감사함 때문입니다
김추기경을 둘러싸고 있는 외면의 벽으로 김추기경을 보지말고 그 분의 고백으로 우리가 형제인지 아닌지를 보았으면 합니다
복음을 주장하여 주위로부터 버림받는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김추기경의 삶을 보면서 확인했기에 그 분의 삶을 애도하는 것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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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전부터 김 추기경의 책에서 이 분이 어떤 점을 강조하고 부각하느냐를 애쓰고 있느냐를 파악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개인적으로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평소에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어떤 식으로 전하고 증거하고 있느냐를 보는 겁니다. 예를 들면, 한나라당 총재가 평소에 어떤 종교를 믿으며, 어떤 가요를 좋아하며, 어떤 색깔의 옷을 입느냐가 저의 관심사가 아니라 그 사람이 평소에 무엇을 진리라고 외치면서 주장하고 있느냐를 보는 겁니다. 또 예를 들면, 어떤 수학 교수가 있는데 그 사람이 좋아하는 여배우 이름이 무엇이며, 그 사람이 잘 가는 치과는 어디며 그 사람이 나가는 교회가 어디냐가 관심사가 아니라 그 수학교수가 만약에 "수학이야말로 참 진리"라고 주장할 경우에 저는 이런 발언에 대해서 목사로 나쁜 평가를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수학교수가 말하기를 "나는 평생에 수학을 전공한 사람이지만 수학이 사람을 구원하는 절대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면 제가 시비걸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한나라당 총재가 "나는 평생을 정치하지만 정치가 인간을 구원하는 절대진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한다면 저 또한 그 사람에 대해 시비걸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예를 많습니다. 야구선수가 그러하고 예술가가 그러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소위 복음을 운운하고, 성령을 운운하고 예수를 운운하는 자리에 앉은 자가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고후 11:4)을 주장했기에 그는 추상적인 반박합니다. 그들은 악마의 종이라고 말입니다. (고후 11:14-15) 바로 그런 일을 해야 하는 자들이 선지자요 사도요 또한 사도의 후예인 오늘날의 성도들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이라는 사람이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이 말했다합시다. "성경에는 각종 강조점이 있는데 어떤 이는 이웃 사랑을 강조하고, 어떤 이는 신의 주권을 언급하고 어떤 이는 교회를 중요성을 말하지만 나는 오직 피만 주장할렵니다"라고 주장한다면 그야말로 이분은 사도 바울과 같이 같은 성령받은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받는다"고 했기에) 하지만 김수환 추기경의 강조점은 그게 아닙니다. 이 분은 그냥 이발사도 아니요, 그냥 정원사도 아니요 백수도 아닙니다. 예수를 말하고 하나님을 말하고 복음을 말해왔던 사람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방치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참으로 김수환 추기경이 예수님의 피만 주장한다면(개인이 뭘 믿던 간에), 천주교에 다니는 것도 구원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진리란 여럿 사람들 의견들 중에 제일 개연성 있는 것에서 골라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가 뭐라고 예수님에 대해서 해석했느냐가 중요합니다. "나는 너희들이 그리스도와 그의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알지 않기를 원하노라"(고전 2:2) 만약에 어떤 이가 "나는 개혁주의가 진리라고 주장한다"고 한다면 저는 단호하고 이단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그것이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오직 피 뿐입니다. 비록 대다수가 인정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죽으심 의의가 취소되거나 희석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오직 여전히 피로서만 구원하시고 구원받은 자는 피만을 자랑하고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합니다만, 김수환 추기경은 단순히 소설가나 농부나 의사같은 직업인이 아닙니다. 그는 감히 예수를 외쳤던 자입니다. 따라서 그의 사상을 점검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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