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존재한다는 자체가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운 거예요. 내가 여기 있다는 것 자체가. 그런데 인간은 ‘이왕 존재하는 거 내가 기분 좋게 만족스럽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거래하듯이 이렇게 한 거예요.
이스라엘 예레미야서에서 ‘부끄럽다’는 말은 네 본래의 자리, 아예 없던 자리로 가라. 없음의 자리로 가라. 그러면 부끄러워할 것은 하나도 없고 모든 게 다 주 앞에 고맙고 감사할 하나님의 은혜로만 보일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전국적으로 다 여호와를 인정한다는 나라에서 먹을 물도 없다, 그럴 때 백성들은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그 부끄러움이 자동적으로 발생된 데에 대해 도리어 질문하죠.
“내가 비 오지 않게 했는데 부끄럽기는 네가 왜 부끄러워해? 너 지금 엉뚱한 생각을 품고 세상 하루하루 살아온 것 아니야? 네가 여호와한테 뭘 기대했어?”
“저 하나님 믿습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저 예수님 믿습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내가 예수 믿을 때 난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습니다.”
“그래? 가뭄 한번 줘봐? 3년 6개월 째 안 비 안 오게 해줘봐?”
그럴 때 네 입에서 ‘하나님 참 잘하셨습니다.’ 이런 고백이 나올 것 같으냐 이 말이죠. 나오겠어요?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하나님 이렇게 나오면 우리 곤란하죠. 나 안 믿는 수가 있어요, 이렇게 나오면. 하나님 쪽에서 먼저 건드렸잖아요, 나를. 나도 어지간히 성격 좋지만 더 건드리면 가만있지 않습니다.”라는 이런 본성이 나오겠죠.
바로 그 본성 때문에, 이스라엘은 이러한 자체적인 이유 때문에 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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