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수고
2006년 8월 6일 설교 말씀: 전도서 4:4-6
(전 4:4)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여러 가지 교묘한 일로 인하여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전 4:5) 『우매자는 손을 거두고 자기 살을 먹느니라』
(전 4:6)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으려는 것보다 나으니라』
전도서에 나오는 말씀들은 우리가 그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이런 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헛되고 헛되다라는 겁니다. 즉 우리 인간은 본인이 의도하나 하지 않으나 상관없이 헛되고 헛된 인생을 보내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본인만큼은 결코 헛되지 않는 인생이라고 튀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이 전도서의 말씀대로 그대로 실천에 옮겨서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자처하고 싶어합니다. 오늘 본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란 살다보다 각가지 오해와 질투와 시기를 받기 마련인데 특히 부자에 대한 시기가 대표적입니다. 따라서 남들부터 쓸데없는 비난을 받기 보다는 적당히 사는 것이 두 손 가득 모은 부자보다는 낫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삶의 요령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시도하고 있는 중입니다. 너무 가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해서 너무 부자가 되어 남들로부터 시기의 대상이 되기 보다는 적당한 선에게 욕심내지 않고 사는 것이 옳은 삶이다고 누구든지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곧 성경이 말씀하는 진리라고 오해하면 안됩니다.
전도서는 새삼스럽게 이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현재 인간들이 얼마든지 요령껏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하지만 다 헛되고 헛된 인생의 지루한 연속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이러한 면은 잠언의 내용과 비교해 보면 분명해집니다.
잠언은 인생의 헛됨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이렇게 하면 반드시 저렇게 됩니다.’라는 확연한 법칙 같은 것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희망을 갖게 합니다.
즉 사람들이 인생을 역전시킬 멋진 기회나 결과를 얻고 싶은데, 성공적인 인생으로 전환시킬 공식 같은 것이 그리워질 때 잠언을 보면서 안심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잠언 3:16의 경우입니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정말 눈에 확 띄는 말씀입니다. 즉 사람들이 평소에 원하고 또 원하는 바, 오래 사는 것과 부귀 영화를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지혜를 얻는 것으로 좌우가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지혜를 얻는 자는 장수와 부귀도 한꺼번에 다 들어온다는 겁니다. 참으로 즐거운 소식처럼 들입니다.
더 노골적으로 말해서, “하나님은 자신이 부자 되는 것을 비난하시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격려하고 조장하시려고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가난한 쪽보다 부자가 되는 쪽으로 일하신다는 겁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았으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자만 된다면 이 결과가 곧 신의 축복을 받은 정당한 것이 될 것이라고 믿게 됩니다.
이런 마음은 평소에 자신의 본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바가 되는 겁니다. 어느 인간치고 힘들고 싶고 싶은 사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다 아쉬운 것이 없이 살고 싶어 할 것입니다. 이러한 부자 되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구겨서 마음 깊숙한 곳에 집어넣는다고해서 과연 그것이 성경 말씀에 실천에 옮긴 것이 될까요?
하지만 처음 부모로부터 아무 것도 물러 받은 것이 없어 사회에 나가서 소위 잘 사는 계열에 뛰어들기 위해 분투노력 했지만 아무도 모으고 모아도 그 때 그때 지출해야 하는 것이 자꾸만 생기기에 여전히 빈민층을 못 벗어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성경 이해가 자칫 자신을 대단한 신앙인으로 포장하기 십상입니다.
실제로 교회사적으로 봐서 그런 집단들이 숱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소위 부자들을 비난하는 가난한 자들만의 권리 같은 것을 내세웁니다. 즉 가난하기에 구원받은 백성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가난하기에 부자들은 자신들에게 구제를 베풀어야 마땅하고 만약에 구제가 자신이 요구한 양만큼 차지 못하면 강탈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라고 주장하게 됩니다.
그들은 청빈한 예수님의 제자들의 삶을 참된 삶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고위 성직자들과 이 사회에서 좀 산다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적으로 간주하여 그들의 것을 강탈하는 것은 정당한 신의 지시한 바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위하여 자신들은 신의 뜻에 따라 가난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공평하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지만 그 소비의 공평함보다 생산이 자체적으로 조달되지 않는 것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부자들에게 협박과 공갈을 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즉 그들은 그들이 미워하는 고위 성직자들의 하던 행세를 그들도 되풀이하는 하고 있는 겁니다.
과연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일까요? 구약 성경 잠언에 보면 부자나 혹은 가난하게 됨과 인간 자체의 운명과 별개하고 밝히고 있습니다. 즉 부자 되었다고해서 구원받은 자가 아니요 가난하게 되었다고해서 역시 구원받은 자의 청빈한 표시라는 것도 아니랍니다.
이 땅에서는 분명히 가난한 자나 부자나 함께 섞여 살게 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항시 부한 자냐 가난한 자냐 하는 그 틈바구니에서 헤매고 있을 것이 아니라 그런 기준을 벗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잠언 23:4에 보면,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잠언 22:1-2에 보면,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빈부가 섞여 살거니와 무릇 그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인해 뭔가 유세 떨 수 없다는 겁니다. 진정 인간으로서 바라봐야 하는 것은 딴 곳입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보다 더 가난한 분은 없고 이 세상에서 예수님보다 더 부자인 분도 없습니다. 24 시간 항상 가난과 부자라는 그 고리 안에서 갇혀 있는 의식을 던져 버려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자기 입장부터 시작하지 말고 주님의 입장부터 생각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전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 사람의 힘(전4;9-12)이근호060813 (0) | 2013.07.01 |
---|---|
수고(전4;7-8)이근호060806 (0) | 2013.07.01 |
학대(전4;1-3)이근호060730 (0) | 2013.07.01 |
심판자(전3;16-21)이근호060723 (0) | 2013.07.01 |
선물(전3;12-15)이근호060716 (0) | 2013.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