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숙경

빛으로 책망받기(뎁5;11-13)

아빠와 함께 2019. 12. 3. 21:32
2019-11-12 17:07:15조회 : 126         
Being Reproved By The Light(빛으로 책망받기)이름 : 함숙경 (IP:222.102.41.85)
Being Reproved By The Light(빛으로 책망받기)
preacher : pastor Lee Geunho
text : Ephesians 5:11~13
date : 2019/11/10

11.And have no fellowship with the unfruitful works of darkness, but rather reprove them. 12.For it is a shame even to speak of those things which are done of them in secret. 13.But all things that are reproved are made manifest by the light: for whatsoever doth make manifest is light(Ephesians 5:11~13) KJV

11.Have nothing to do with the fruitless deeds of darkness, but rather expose them.
12.For it is shameful even to mention what the disobedient do in secret.
13.But everything exposed by the light becomes visible(Ephesians 5:11~13) NIV

Today’s text of sermon and the words of Rom. 3:23 (for all have sinned and fall short of the glory of God) show that there is any state that the Lord is pleased and glorified. Speaking from the conclusion, it refers to the condition revealed in his children by the completion of the blood of Jesus Christ. That is, a state of completion in which all things are united in Jesus Christ. While the Lord has planted His completion in humans and says that it is no problem for them that have been planted it in by Him, Humans look into themselves, rejoicing or grieve for themselves. After all, human beings are not interested in what the Lord wants to keep or what the Lord has done. This tendency is the work of darkness spoken in today's text.본문 말씀과 롬3:23을 보면 주님이 기뻐하시고 주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완료된 것이 자기 자녀에게서 드러난 상태를 말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통일된 완료의 상태를 의미한다. 주님은 자신의 완료를 인간 안에 심어놓으시고 그 완료가 심어진 인간을 문제없다고 하시는데 인간은 자신을 들여다보고 기뻐하고 슬퍼한다. 결국 인간은 주님이 지키시고자 하시는 것, 주님이 행하신 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이런 경향이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어둠의 일이다.

The criteria for dividing the work of light and darkness are 'having a problem' and 'no problem'. That is, it is the work of darkness to speak with problems in the work which the Lord has established as having no problem. Man sprinkles ashes on the finished work of the Lord. In today's passage the Lord calls the children of light to reprove this dark work. That is, “you are but the medium of the Lord.” It is the deed of darkness that does not regard itself as such a medium , but rather as master(individual subject). 빛과 어둠의 일을 가르는 기준은 ‘문제 있음’과 ‘문제없음’에 있다. 즉 주님께서 문제없음으로 확정지어 놓은 일에 문제 있음으로 토를 다는 것이 어둠의 일이다. 인간은 주님의 완료된 사역에 재를 뿌린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이 빛의 자녀들에게 이 같은 어둠의 일을 책망하라고 하신다. 즉 너는 주님의 매개체에 불과하다. 자신을 그렇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주인(개별적 주체)으로 여기는 이것이 어둠의 행위다.

In the life of the saints, there is only the Lord's instructions, and there is no subjective individual called oneself. To be taught why one should be gone, I am only endowed with one day life by the Lord. Through Job God reveals the reality of the saints. Job learned this at once through his sufferings.성도의 인생에는 주님의 지시만 있을 뿐 '자기 자신’라고 하는 주체적인 개별자는 없다. 왜 내가 없어져야 하는지 가르침을 받기위해 우리는 주님에 의해 하루분의 목숨만 부여받을 뿐이다. 욥을 통해서 하나님은 성도의 실상을 보여 주신다. 욥은 그가 겪은 고난을 통해서 단번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In Job 7:5, Job says, "My body is clothed with worms and scabs, my skin is broken and festering." As Job did, our lives continue to produce maggots. But God removes the maggots, saying "You are a child of light," regardless of your being maggots. This very condition that happened to Job in the relationship between Job and God is something that glorifies the Lord.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 조각이 의복처럼 입혔고 내 가죽은 합창되었다가 터지는구나. 욥이 그러했듯 우리 인생은 계속해서 구더기를 생산해 낼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구더기를 걷어내시면서 너의 구더기 됨과 상관없이 “너는 빛의 자녀다”라고 알려주신다. 욥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욥에게 일어난 바로 이 일이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In other words, the Lord is pleased while gathering what he has sown in man. Therefore, humans only need to put the Holy Spirit out which the Lord has planted in humans. This means that because God knows that human beings are just maggots, He doesn't find fault with the attribute or behavior of maggots themselves. For God, it only matters whether or not there is the element that Jesus Christ had completed on the cross in them, God just gathers what is in them. 쉽게 말하면 주님은 자신이 인간 안에 심어놓으신 것을 회수하시면서 기뻐하신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주님이 인간 안에 심어놓으신 것, 곧 성령을 내 놓기만 하면 된다. 이것은 하나님은 인간이 단지 구더기일 뿐이라는 아시기에 구더기의 속성이나 행위 자체를 문제 삼지 않으신다는 말이다. 하나님께는 다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완료하신 그것이 그 사람 안에 있느냐만 문제가 되며 하나님은 그 있는 것을 회수해 가신다.

Since humans are maggots, flies fly incessantly around them. Flies can be something that humans rely on for their strength. In other words, they are money, health, love, honor, ethics, and the good and evil system . The Lord who is the Light comes to man and reveals that what man depend on and want to keep is the illusion. He makes them encounter what these bring about, that is regrets and despairs, the hatred, the self-reproach, and the self-pity, and the vanity of self-determination. The reason the Lord does this is to let them know that they have already been dead when they are still alive. The Lord says, "because you are dead, you need not to keep yourself or to depend on anything or some else." In addition, this is the expression of the Lord's will that “because you are nothing, the act of coming out of you is meaningless, so I would not find fault with it. 인간은 구더기이기에 그 주변에 파리들이 쉼 없이 들끓는다. 그 파리란 인간이 힘으로 삼고 의지하는 것들이 될 수 있다. 곧 돈, 건강, 사랑, 명예, 윤리, 선악체계 따위 들이다. 주님은 빛으로 찾아 오셔서 인간이 지키고자하고 의지하는 것들이 허상임을 드러내신다. 이것들이 초래하는 것들, 곧 후회와 절망과, 증오, 자책과 자기연민과 자기결단의 허망함에 맞닥뜨리게 하신다. 주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살아있을 때 자신들은 이미 죽었음을 알려주시기 위함이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이미 너는 죽었기에 너를 지킬 필요도 다른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의지할 필요도 없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네가 ‘없음’이기 때문에 그 ‘없음’인 네게서 나오는 행위는 무의미하므로 나는 그에 대해 문제 삼지 않겠다”는 주님의 의지의 표명이시기도 하다.

The Lord comes to the Saints and says: “Your place have been already pierced a hole. My blood have erased you”. Do not try to make your own place for yourself. ” In John 4:14, the Lord went to the unclean woman of Samaria and said, “but whoever drinks the water I give him will never thirst. Indeed, the water I give him will become in him a spring of water welling up to eternal life." The Lord redefines the identity of the Samaritan woman. "You are a framework of the well which pours forth living waters, so stay as being a framework, and then within you will spring forth the living waters(Spirit) that spring forth into eternal life. "주님은 성도에게 찾아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의 자리는 이미 구멍이 나버렸다. 나는 너를 나의 피로 지워버렸다. 그러니 너도 네 스스로 네 자리를 확보하지 말아라” 요1:14절을 보면 주님은 사마리아성의 한 부정한 여인을 찾아가셔서 말씀하셨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새롭게 규정해 주신다. “너는 생수를 내는 틀로 머물라, 그러면 네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성령)이 나올 것이다.”

The reason the Lord reproves us is for Him to stay with us. The saints are those whose subject have changed from 'I, myself' to 'Lord'. The saints themselves have been dead, and they are those who have embraced the transcendental element of living water. After their brother Lazarus died and was resurrected by Jesus, Mary and Martha finally realized that with Lazarus their physical world was a collection of "delusion."주님이 우리를 책망하시는 이유는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함이다. 성도는 주어가 ‘나’에서 ‘주님’으로 바뀐 자들이다. 성도 자신은 죽은 자인데 그 안에 ‘생수’라는 초월적 요소를 품은 자들이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오빠인 나사로가 죽고 예수님에 의해 부활이 된 후에 나사로와 더불어 비로소 자기들이 보는 물리적 세상이 ‘허구’의 집합체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The Apostle Paul confesses :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 no longer live, but Christ lives in me. The life I live in the body,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Galatians 2:20).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The Holy Apostle could see his reality from the perspective of Jesus. "You are dead and you are nonexistent, and the one living in you is the very reality and He is Jesus" The saints are only the medium that shows the Lord's completion and forgiveness. Self-building is an illusion itself. In other words, the saints are a kind of framework of well itself. They do not exist personally. They are by themselves already disintegrated. The saints get to know this through the reproof of light. 성령 받은 사도는 예수님의 관점으로 자신의 실상을 볼 수 있었다. “너는 죽었고 너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네 안에서 사시는 분이 실체이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성도는 주님의 완료와 용서를 보여주는 매개체일 뿐이다. 자신의 자아구축이라는 것 자체가 허상이다. 즉 성도는 우물의 일종의 틀이다. 틀은 있되 개인적으로는 존재하지 못한다. 그들은 이미 와해되어 버렸다. 성도는 빛의 책망을 통해 이를 알게 된다.

Another way to describe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Lord and the saints is with the sword and the scabbard. Humans wield swords in the way that if their wielding protect themselves, it's o.k. He himself is a murdering sword, and he turns to others why he has to wield it. Even the tip of the sword points to the Lord. But The Lord puts His children like an sword which does as it pleases into the His scabbard, while saying, “I'm done with it. Therefore you have no problem” 주님과 성도와의 관계를 또 다르게 설명하면 칼과 칼집과의 관계다. 인간은 자신만 지키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닥치는 대로 칼을 휘두른다. 자기 자신은 살인하는 칼인데 그 칼을 휘두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타인에게 돌린다. 심지어 그 칼끝이 주님을 향하기 조차한다. 하지만 주님은 “내가 다 이루었다. 너는 문제없다”고 하시면서 날뛰는 칼과 같은 그의 자녀들을 주님이라는 칼집 속에 넣으신다.

God is pleased and glorified when the sword 'I' stays in the scabbard of the Lord, and Adam is clothed with the skin of the guiltless animal which the God Himself killed, instead of the garment made of leaves of fig tree for himself, and all things that are reproved are made manifest by the light.
‘나'라는 칼이 주님이라는 칼집 속에 머물러 있고, 아담이 자기가 두른 무화가 잎사귀로 만든 옷 대신 주님이 입혀주신 무죄한 동물의 가죽으로 옷 입혀져 있고, 어둠에 빛이 비취고 책망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났을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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