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Summary
preacher : pastor Lee Geunho
Title : The Function Of The Body Of Christ(2019/08/04)
Text : Ephesians 4 : 11-12 11.It was he who gave some to be apostles, some to be prophets, some to be evangelists, and some to be pastors and teachers,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to prepare God's people for works of service, so that the body of Christ may be built up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Those who resist the doctrine of sanctification emphasize that differential prizes will be given by God according to the work of service. They say “we are saved by the blood of Jesus but we must obey hard God's word to receive the promised prize.” But they should know that it is the very prize and gift by itself that Lord has man participate in the work of Lord.(성화교리를 주장하는 자들은 그들의 공로에 따라 하나님에 의해 차등상급이 주어진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들은 말하기를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받지만 약속된 상급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지켜야한다고 한다. 그러나 주께서 인간을 주님의 일에 참여시켜주시는 것 그 자체가 상급이요 선물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아야한다.)
Those who desire eagerly being award are those who aren’t satisfied with just being saved. They are the ones who are scolded like the disciples of Jesus who argued over who was higher. Because they are ignorant of their sinful reality, they naturally regard them as saved and regard them as being able to demand a reward from God.)(상급받기를 갈구하는 자들은 구원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마치 누가 더 크냐며 다투었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께 꾸지람을 받는 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죄인된 실상에 대해 무지하기에 자신들이 구원받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자신들이 하나님께 상급을 요구할 수 있는 자라고 여긴다.)
However, those who know their being sinner regard their being saved as absurd. So, they cannot help but ask like this, “Lord, why do you save me, a wretched sinner?” And they cannot also help but confess like this, “Not only do you save me, but you also entrust me, a worthless servant with your ministry. So how can I expect being awarded by you for the work of service? What a miracle it is that you have man participate in building up the body of Christ.”(그러나 자신의 죄인됨을 아는 자들은 자신의 구원을 터무니없는 일로 여긴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질문할 수밖에 없다. “주님, 어찌하여 이같이 형편없는 죄인인 저를 구원하시나이까?” 또한 이처럼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저를 구원하실 뿐 아니라 쓸모없는 종인 저에게 주님의 사역을 맡기시니 어찌 그 일에 대한 상급을 바랄 수 있으리이까?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인간을 참여시키시니 다만 놀라울 따름입니다.”
Looking at today’s text(Ephesians 4 : 11-12), we get to know the fact that God has his men participate in building up the body of Christ, the unique body that the world won’t accept at all. This is to bring back to this world a body abandoned by the world, which the world does not tolerate. That is, it is the incident which generates the body Of Jesus Christ.(오늘 본문을 볼 때, 세상이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특이한 몸인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람들을 참여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것은 세상에 의해 버려진 몸, 세상이 용납할 수 없는 몸을 이 세상에 다시 발생시키는 일이다. 즉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발생시키는 사건이다.)
Why then does God rebuild the body of Jesus Christ abandoned by the world in the world? It is because human beings have been immersed in their own body, revealing the nature of human beings, neglecting the body of Jesus Christ. More specifically, man is focused on himself. His own happiness, His own heaven, His own salvation, his own righteousness, his own sins, his own feeling, his own matter, his own family, his own church, his own faith, his own service, his own deed, his own status, his own existence and so on. These are the only important to man. It is the idolatry to serve his own body instead of the body of Christ. This is the very sin which God hates. But the world not only takes it for granted, but also encourages it. Therefore, as for man, serving the body of Jesus Christ, not his own, is thought to be crazy.(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세상에 의해 버림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 세상에 다시 세우시는가?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몸에 몰입해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대해서는 도외시하는 인간본연의 속성을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자기에게 집중해 있다는 것이다. 곧 자기 행복, 자기 천국, 자기 구원, 자기 의, 자기 죄, 자기 감정, 자기 문제, 자기 가정, 자기 교회, 자기 믿음, 자기 행함, 자기 봉사(섬김), 자기 위상, 자기 존재 등등, 인간에게는 오직 ‘자기’만 중요할 뿐이다. 그리스도의 몸 대신 자기 몸을 섬기는 것은 우상숭배이며 이것이 곧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의 본질이다. 이것이 바로 죄다. 그러나 세상은 그것을 당연히 여길뿐더러 이를 장려한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있어서 자신의 몸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섬긴다고 하는 것은 미친 짓으로 여겨진다.)
Surprisingly, however, God works in a way that bares this human attributes. The reason why God does like this way is to remove everything except the body of Christ and to destroy it. This is the rigid judgement of God.(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은 인간의 그 속성을 까발리는 방식으로 일하신다. 하나님이 이같이 하시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제외한 모든 것은 다 제거하고 파괴시키시기 위함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다.)
Man must know that they surely belong to another body unless they belong to the body of Christ. Those who belong to the body of Christ are brought to build up the body of Christ. The body of Christ is invisible, but through them and in their serving, the body of Christ proves to exist in this world. Jesus who died on the cross reveals his existence in the world this way. Therefore, saints are those who belong to the body of Christ and they only exist as just function which shows Christ’s body being exist in this world. Function is not the being.(인간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에 속해있지 않다면 반드시 다른 몸에 속해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소속된 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동원된다. 그리스도의 몸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몸에 속한 자들을 통하여, 그리고 그들의 봉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이 세상에 현존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이런 방식으로 이 세상에 자신의 현존을 드러내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자들이며 그리스도의 몸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기능으로서만 존재한다. 기능은 존재가 아니다.)
A saints is the one who disappears after having a temporary role as a function of Christ's body. He does not exist as his own body but as a member of the body of Christ. Denying himself and taking up his cross and following Jesus means that the one who have lived for his own body becomes the one who live for the body of Christ. If God gives him the gift of the Holy Spirit, the Spirit of Jesus who died on the cross, then the fruit of the Holy Spirit that is given to a saint turns out as follows. That is, he gets to receive ‘self-denial’ and join the crucifixion of Jesus Christ. Therefore, the one who Holy Spirit has come on belongs to Christ's body, and the one who Holy Spirit hasn’t come on belongs to another body. There is nothing other than these two kinds of bodies in the world.(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의 기능으로서 역할을 한 후에는 사라지는 자다. 그는 그 자신의 몸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존재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자신의 몸을 위해 살던 자가 그리스도의 몸을 위하여 사는 자가 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사 곧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영을 성도에게 주시면 성도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열매는 다음과 같이 드러난다. 즉 ‘자기부인’을 받아들이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에 합류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령이 오신 자들은 예수그리스도의 몸에 소속된 것이고 성령이 오시지 않은 자들은 다른 몸에 속한 것이다. 세상에는 이 두 종류의 몸 외에 다른 몸은 없다.)
If so, what are the characteristics of those who belong to the body of Christ? An example is seen from Enoch, written in Genesis chapter5. “It was written that all of Adam's descendants end in ‘dead,’ but Enoch walked with God; then he was no more in the world, because God took him away.” This accident is weird indeed. But the same is true present day. Jesus Christ accompanies the one whom the Holy Spirit, his own Sprit of dead man on the cross, comes down on his flesh. He is the one who has already been taken away by the Holy Spirit from this world into the world of Jesus Christ, the Son of God. He is the one who is in Jesus.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자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한 실례가 창세기 5장에 기록된 에녹에게서 보여진다. 기록되기를 아담의 모든 자손들은 죽음으로 끝나지만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고 되어있다. 사실 이 사건은 참으로 기묘하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 곧 십자가에서 죽은 자신의 영이 그 육체에 임한 자와 동행하신다. 그런 자는 이미 성령에 의해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로 데려감을 입은 사람이다. 그는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다.)
Therefore, the ones in Jesus suffer the same pain and persecution that Jesus experienced in this world. In essence, the human self picks up whatever it considers helpful to keep it from losing itself. It doesn't matter whether it's God or Jesus or anything else. The reason is that he is not lost, not broken, not hurt, and not dead. However, those who have the Spirit of Jesus dying on the cross are already willing to admit that God treats himself as a 'divident'.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겪으셨던 것과 동일한 고통과 핍박을 받는다. 본래 인간의 자아는 자기 자신을 상실하지 않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뭐든지 다 주워 모은다. 그것이 하나님이든 예수님이든 뭐가됐든지 상관없이. 그 이유는 자신은 안 잃어지고, 안 망가지고, 안 다치고, 안 죽기 위해서다. 하지만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영이 임한 사람은 이미 하나님이 그 자신을 ‘탕자’로 취급하시는 것을 기꺼이 인정한다.
In other words, the human self shouts to live well in this world at any cost, but what the Holy Spirit makes his man discover is that in the end they are cursed and abandoned. They also become more and more certain that living for their own development in this world is the enemy of God. These are the sheep of the Lord.(달리 말하면, 인간의 자아는 어떤 비용을 치루더라도 이 세상에서 잘 살아보려고 아우성을 치지만 성령께서 발견하게 하시는 것은 결국 자신은 저주받은 자이며 버려진 자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발전을 위해 사는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점점 더 확실하게 알게 된다. 이들이 주님의 양이다.)
Another characteristic of those who belong to the body of Christ is that they regard themselves as the Lord's sheep. The sheep of the Lord admit that they need a shepherd and that the initiatives of life does not belong to themselves but to a shepherd. Because they are already dead, lost, and abandoned anyway, they do not try to overcome this condition by themselves. In other words, as for them that it doesn't matter whether they are ruined, broken or dead. Why? For they are lost in themselves. These people go through the same humiliation, suffering, and misunderstanding as Jesus. They are willing to confess like this about everything - whether it is good or bad - that happened to them in this process, “This is what you, the Lord, did.” This is the body of Christ (그리스도의 몸에 소속된 자들의 또 다른 특징은 자신을 주님의 양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 양들은 자신이 목자를 필요로 하며 삶의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지 않고 목자에게 있음을 인정한다. 그들은 어차피 죽었고 하나님께 잃어버려졌으며 버려졌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으로 이런 상태를 극복하려들지 않는다. 즉 자신은 망가지든, 깨어지든, 죽든 상관할 바가 아닌 것이다. 왜 그런가? 자기 자체적으로는 상실된 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은 예수님이 겪었던 동일한 수모와 고난과 오해를 겪는다. 그들은 이런 과정 속에서 자기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에 대해,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기꺼이 이렇게 고백한다. “이 일은 주께서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다운 삶의 모습이다.
In addition, because they suffer the same suffering as Jesus, they are conscious of being one body with Him. If anyone does not suffer like Jesus, he has nothing to say with Jesus. Therefore only those who the Holy Spirit has come on can pray. Every conversation they have with Jesus is prayer. “Hello Lord? Life is hard, but I'm doing well thanks to You.” (게다가 그들은 예수님과 동일한 고난을 당하기에 그분과 한 몸 의식을 갖게 된다. 예수님과 동일한 고난을 겪지 아니하면 그분과는 아무런 할 말이 없다. 그러므로 오직 성령이 임한 자만 기도 할 수 있다. 그들이 예수님과 나누는 모든 대화가 곧 기도다. “안녕하세요, 주님? 삶은 힘들어도 저는 주님덕분에 잘 지내요.”)
Such ones serve by giving up their bodies by themselves. This service is the work of the perfected saint, as the text says today. When The Holy Spirit comes on, our being is given up and becomes temporary and living only as a function. These are those who belong to the body of Jesus Christ and are chosen for the function of building up the body of Christ.(이런 자들은 스스로 자기 몸을 포기하는 마음가짐으로 봉사하게 된다. 이러한 봉사가 오늘 본문이 말씀하시는 온전케 된 성도가 하는 봉사의 일이다. 성령이 덮치게 되면 자기 존재는 포기되어 한시적인 것이 되고 오직 기능으로서만 살게 된다.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자들로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기능으로 택함을 받은 자들이다.)
On the other hand, those who want to defend their existence, those who belong to other body, are those who use Jesus as a means for their own body to save it. Let me take the pastor as an example for this case. A pastor who strives to build his own body uses Jesus in the name of 'nurture' to make his own sheep. He introduces Jesus as the Absolute, highlighting the pastor's own excellence in knowing and introducing these Absolutes. Such a pastor is not the pastor in today's text.(반면에, 자기 존재를 지키려는 자, 곧 다른 몸에 속한 자들은 자기 몸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마저 자기 몸을 위한 방편으로 이용하는 자들이다. 이 경우의 실례로서 목사를 예로 들어보겠다. 자기 몸을 세우려고 애쓰는 목사는 '양육'이라는 이름으로 예수님을 이용하여 목사 자기의 양을 만든다. 그는 예수님을 절대자로 소개함으로써 이런 절대자를 잘 알고 소개할 수 있는 목사 자신의 탁월함을 부각시킨다. 이런 목사는 오늘 본문이 말하는 목사가 아니다.)
In deed, those who follow such pastors live for their own body as well. They cannot communicate with Jesus because they do not receive the Holy Spirit, so they choose such a pastor and want to own Jesus. These are not the sheep of the Lord. Therefore, they push and reject true caregivers. (사실 그런 목사를 따르는 자들도 자기 몸을 위해 살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은 성령을 받지 못해서 예수님과 대화를 할 수 없으니 그 같은 목사를 선택해서 예수님을 자기가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주님의 양이 아니다. 따라서 참된 양육자를 밀어내고 거부한다.)
Those who have received the Holy Spirit experience this shame. And they admit that extremes are always with them. The extreme is nothing but death. Therefore, the true saint always accompanies death. That is how they ‘get along’ in the Spirit the Lord has given them. It is not a way to meet their own self, but to live a life satisfied by the Lord. For the power of life exerted in them is from the body of Jesus, not from his own body. It was not because of the human ability that the devil lost power.(성령을 받은 자들은 이런 수모를 경험한다. 그리고 극한 상황이 늘 자기와 함께 있음을 인정한다. 그 극한 상황이란 다름 아닌 죽음이다. 따라서 참된 성도는 늘 죽음과 동행하고 있다. 그것이 주님이 주신 영 안에서 ‘잘 지내는’ 일이다. 그것은 자신이 자기를 지키는 식으로 충족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 인하여 충족한 삶을 누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서 발휘되는 삶의 능력은 예수님의 몸에서 나온 능력이지 자신의 몸에서 나온 능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귀가 힘을 못 쓴 것은 인간의 능력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When Jesus was in this world, there was the thing that His disciples missed without knowing. It is that they should not live their body-oriented lives. This life of service is accompanied by the joy that comes from "I will die from this." This is the body of Christ now in this world. Denying himself and carrying his cross is the attitude of serving the body of Christ.(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예수님의 제자들이 알지 못하고 놓친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자신의 몸 중심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봉사의 삶이란 이처럼 "나 이것 하다가 망가져 죽을래요"에서 오는 기쁨이 동반되어서 나타난다. 이것이 지금 이 세상에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 지고 가는 삶이 그리스도의 몸을 봉사하는 자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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