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Summary
preacher : pastor Lee Geunho
Title : The Children of Light(2019/10/27)
Text : Ephesians 5:8 For you were once darkness, but now you are light in the Lord. Live as children of light
Both of Light and darkness are so inclusive and powerful that they overshadow the individuality of objects within them respectively. Those who are within the reach of the light reveal the effect of light, and those who are in the dark exert the effect of darkness. The individuality of those in them is meaningless. Today's text should be interpreted in this perspective. 빛과 어두움 둘 다 너무나 포괄적이고 강력해서 그것들 각각이 미치는 범위 내에 있는 대상들의 개별성을 덮어버린다. 빛이 미치는 범위 안에 있는 자들은 빛의 효력을 드러내고 어둠에 있는 자들은 어둠의 효력을 발산한다. 그 안에 있는 자들의 개별성은 아무 의미가 없다. 오늘 본문은 이런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The apostle Paul exhorts the Ephesian saints to “live(walk) as children of light.” Saints are not to misunderstand the apostle Paul's exhortation. This does not mean that the apostle sets forth the goal of ‘childlike life of light,’ and asks the saints to work hard to achieve that goal. In other words, it is not the exhortation to “do the sanctification” through their own efforts 사도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권면한다. 성도는 이 권면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사도가 ‘빛의 자녀다운 삶’이라는 목표를 제시하고 성도로 하여금 열심히 노력해서 그 목표를 성취하라고 하는 의미가 아니다. 즉 자신의 노력으로 ‘성화를 이루라’는 권고가 아니다.
Rather, it means that the one who begets the children of light makes his children radiate the attributes of his light. It also means that God, the Light, takes steps to radiate the elements of light throughout their life. For to be a child of light is not matter that can be involved on the human side. It is God's own fulfillment by means of the pre-creation covenant between Heavenly Father and the Son, Jesus Christ. 이것은 오히려 빛의 자녀를 낳는 분이 그분의 자녀에게서 자신의 빛의 속성이 발산되게 하신다는 의미다. 이것은 또한 빛이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에게 일평생 빛의 요소가 배여 나오도록 조치해주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빛의 자녀가 되는 것은 인간 편에서 관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와 성자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맺어진 창세전 언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스스로 완성하시는 일이다.
The bible shows how the darkness turns to light, showing the work of light and darkness. Genesis 1: 2 says, “Now the earth was formless and empty, darkness was over the sur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was hovering over the waters.” Darkness, here, is the state of lacking or absence of God's creativity. But this darkness is a precondition for God to reveal himself as light.성경은 빛과 어둠의 일을 보여주면서 어둠이 어떻게 빛으로 변하는가하는 것도 보여준다. 창1:2에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고 되어있다. 여기서 보면 어두움이란 하나님의 창조성이 결여되어 있거나 부재한 상태이다. 그러나 이 어두움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빛으로 드러나시기 위한 전제조건이 된다.
As darkness unfolds, the light, the meaning of God's creation, is also revealed. At first, 'light' simply appears as 'existence', but it gradually works on with 'judgment attribute' rather than 'mere existence of light'. 어두움이 전개되면서 빛, 즉 하나님의 창조 의미도 같이 드러난다. 처음에는 ‘빛’이라는 것이 단순히 ‘있음’으로 나타나지만 점차 단순한 ‘빛의 존재’가 아니라 ‘심판성’을 띄고 활동한다.
Episodes that show the judgment attribute of light are recorded in Exodus and Numbers. Moses shined on his face when he saw God at Mount Sinai and came down to the people. They asked Moses to put a towel on his face because they could not face the brilliance. Of course, the light shining on Moses' face slowly disappeared, but the light is the trace that Moses has been to the world of light. This means that the work of Moses is not simply an extension of the work of the earth. 빛의 심판성을 보여주는 사건이 출애굽기와 민수기에 기록되어 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뵈옵고 백성에게로 내려왔을 때 그 얼굴에서 광채를 발했다. 이 광채를 백성들은 마주할 수 없어 모세의 얼굴에 수건을 덮어줄 것을 요청했다. 물론 모세의 얼굴에 빛났던 광채는 서서히 소멸하기는 했지만 그 빛은 모세가 빛의 세계에 들어갔다가 나온 흔적이다. 이는 모세의 일이 단순히 땅의 일의 연장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Therefore, God ruthlessly judged those who opposed Moses and Aaron without acknowledging the value of this light. God made Moses' sister, Miriam who slandered Moses had leprosy, and Korah, Dathan, Abiram and their multitude who reveled against Moses and Aaron swallowed up by the cracking of the earth. And He struck the congregation that complained to Moses and Aaron with a plague. Thus God defines and judges those who do not know the value of light as those who oppose the light and those who belong to darkness.그러므로 이 빛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모세와 아론을 대적한 자들을 하나님은 가차 없이 심판해버리셨다. 즉 하나님은 모세를 대적한 모세의 누이 미리암을 문둥병이 발하게 하셨고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 함께 당을 지어 모세와 아론을 대적한 자들은 땅이 입을 벌려 그들을 삼키게 하셨다. 그리고 그들 편에 서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 회중은 염병으로 벌하셨다. 이처럼 빛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빛을 대적한 자, 어두움에 속한 자로 규정하시고 심판하신다.
In the Old Testament law, there are physical models of the judgment attribute of light, one of which is the garment clothed by High Priest Aaron. Exodus 29:21 says, “take some of the blood on the altar and some of the anointing oil and sprinkle it on Aaron and his garments and on his sons and their garments. Then he and his sons and their garments will be consecrated.” God's severe judgment is alive in the priest's garments sprinkled with lamb's blood. When Israel becomes a priest-centered system, they have a place to become children of God. 구약의 율법에는 빛의 심판성을 보여주는 실물 모형들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대제사장 아론이 입는 의복이다. 출애굽기 29:21에 보면, “제단 위의 피와 관유를 가져다가 아론과 그의 옷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들들의 옷에 뿌리라 그와 그의 옷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들들의 옷이 거룩하리라”라고 되어 있다. 제사장이 입은 피뿌린 옷에는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살아있다. 이스라엘이 제사장 중심체제가 될 때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리가 마련된다.
The prototype of being a child of light, the child of God, is found in Genesis 22. When God told Abraham to sacrifice his only son Isaac, in the place of death was not a man Isaac but a ram caught in a thicket prepared by God. This ram is God Himself as the Lamb of God. This means that the project of making children of God is accomplished by God Himself according to God's covenant with God. 빛의 자녀, 곧 하나님의 자녀됨의 원형은 창세기 22장에 나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독자 이삭을 죽이라고 했을 때 그 죽음의 자리에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하신 수풀에 걸린 숫양이 놓였다. 이 양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신 하나님 자신이시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 만들기 프로젝트는 하나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대로 하나님 자신에 의해 성취된다는 의미이다.
Based on such a plan, the blood of the Lamb, which sanctifies the sinner, is sprinkled in the priest's garments. Therefore, to wear this garment is to be clothed in light and placed in the place of the children of light. Galatians 3:27 shows how sinners become God's children. “Everyone who has been baptized into union with Christ is clothed in Christ”그러한 계획에 입각해서 제사장의 옷에 죄인을 거룩케 하는 어린 양의 피가 뿌려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옷을 걸치는 것은 빛을 입는 것이요 빛의 자녀의 자리에 놓여지게 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27에 보면, 죄인이 하나님이 자녀가 되는 방식이 나와 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The typical confession of a child of light clothed with Christ is the apostle Paul's. The Saints sympathize with Paul's confession (Rom. 7: 21-25). The saints face the incident of unpredictable and unwanted sins splintering their goodness even if they want to live good eagerly. Thus they often confess their impossibility, incompetence, helplessness, wickedness and hardship. Nevertheless, he can not help but confess boldly and gladly so. “Thanks be to God--through Jesus Christ our Lord! So then, I myself in my mind am a slave to God's law, but in the sinful nature a slave to the law of sin.” 그리스도로 옷 입은 빛의 자녀의 대표적인 고백이 사도 바울의 고백이다. 성도는 바울의 고백(롬7:21~25)에 공감한다. 성도는 제아무리 선하게 살고 싶어도 예기치 못했고 원치 않는 죄가 튀어나와 자신의 선함을 뭉개버리는 사건을 수시로 맞닥뜨린다. 그리하여 자신의 불가능함과 무능력과 무력함과 악함과 곤고함을 수시로 고백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담대히 그리고 기쁘게 이렇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 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7:25)”
In this sense, what is light is repeatedly revealed in the process that sin is converted into righteousness. For this process, light is to act as the judgment function in this world. If it goes like this, the world begins to pour out hostility against this strange confession of the saints. This is because that the saints ignore and do not care about human being's status, righteousness, and values which the world is so eager to keep. The world cannot endure this unfamiliar attitude against itself.이렇게 볼 때 빛이란, 죄가 의로 전화되는 과정에서 비로소 반복적으로 발산되는 것임이 드러난다. 이 과정을 위해 빛은 반드시 이 땅에서 심판기능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세상은 성도의 이 낯선 고백에 대해서 적개심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성도는 세상이 그처럼 힘써 지키고 싶어 하는 인간의 위상과 의와 가치를 무가치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세상은 자신에 대해 역행하는 이 낯선 태도에 대해 견딜 수 없어한다.
In addition, children of light consider themselves as the ones who have already passed the turning point of death. They regard themselves as the ‘final being’ who have been already completed by Jesus, not incomplete ones in the process. They know that this light that has struck themselves from outside can never be canceled. Because the salvation of the saints is not the work of the saints, but the work of Jesus.또한 빛의 자녀들은 자신들은 이미 죽음이라는 반환점을 돈 자들로 여긴다. 자신을 ‘노정(路程)의 존재’ 곧 과정 속에 있는 미완료된 자가 아니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미 완성된 ‘최종적 존재’로 여긴다. 자신의 외부에서 자신에게 덮친 이 빛은 결코 취소될 수 없음을 안다. 이는 성도의 구원은 성도 본인의 작업이 아니라 예수님의 작업이기 때문이다.
Therefore, the saints willingly regard themselves as a sticker or gum paste attached to a gym sandbag called Jesus. They do not have their own thickness. There is no need to have it. They know that they only need to be attached to Jesus while staying dead. Unlike Cain and his descendants who built their castles to protect themselves, saints do not need to defend themselves, nor do they have to show their values, goodness, or legitimacy; pride and dignity are not important to them. And unlike those who belong to darkness, they are not plagued by unknown fears and fears. They do not constantly judge themselves with good and evil, either. The saints admit that there are no consequences caused by themselves. They know that the Lord only, who is light, is all and everything and the cause of all things. 그러므로 성도는 기꺼이 자신을 예수님이라는 체육관 샌드백에 붙어있는 스티커나 껌딱지로 여긴다. 그는 자체적으로 자신의 두께를 갖지 않는다. 아니 가질 필요가 없다. 그 자신은 죽은 채로 예수님께 붙어있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안다.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성을 쌓았던 가인과 그의 후손과는 달리 그들은 자신을 지킬 필요도, 자기 가치나 선함이나 정당성을 내세울 필요도 없으며 그에게는 자존심이나 체면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또한 어둠에 속한 자와는 달이 그는 알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에 시달리지 않는다. 선악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점검하지도 않는다. 성도는 자신이 원인이 되어 발생되는 결과란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오직 빛 되신 주님이 전체이며 전부이며 모든 것의 원인임을 안다.
Therefore, the children of light need only to do what they regard deserved now. They do not manage and control their life. For they know that the owner of their life is their Lord, not themselves. They are those whose subject of everything has changed from 'I' to 'Lord'. Like Mary Magdalene who poured perfumed oil on Jesus' body and wiped his feet with her hairs, wetting them with her tears without regard to others' judgement or slander, the saints are those who just do the thing they would regret if they did not act now on what has happened caused by the Lord. For the children of light they themselves and their deeds is not something to be seriously considered. As Mary Magdalene did, they are grateful, confessing that everything is thanks to Jesus.그러므로 빛의 자녀들은 마땅히 해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것을 하기만 하면 된다. 그들은 자기 삶을 통제하고 관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인생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 그들의 주님이심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것의 주어가 ‘나’에서 ‘주님’으로 바뀐 자들이다. 주변의 시선이나 비난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붓고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주님의 발을 닦았던 막달라 마리아가 그러했듯 성도는 주님에 의해 야기된 일에 대해 지금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그 일을 그저 행하는 자들이다. 빛의 자녀에게는 그들 자신과 그들의 행위는 심각하게 고려되어야할 대단한 것이 아닌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모든 것이 예수님의 덕분인 것을 고백하면서 감사하면서 산다.
Moreover, the children of light know that even though the life of those who belong to darkness may look gorgeous, wonderful, they are themselves dead dry bones and that if weighed on scales, they are lighter than breathing. 더욱이 빛의 자녀는 어둠에 속한 자들의 삶이 화려하고 멋지고 훌륭해 보인다 할지라도 그들 자체는 죽어있는 마른 뼈들에 불과하며 저울에 달면 들려 입김보다 가볍다는 것을 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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