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물정을 잘 모른다는 특혜...글이 미숙해도 헛웃음으로 가볍게 넘김을 받을 수 있는 자격...그럼에도 내가 나를 관리하는 버릇이 여전히 옥죄어 온다.
첫 강의부터 계속해서 나열되는 역사의 연도들이 정신을 몽롱하게 한다.
단단하게 굳어있는 잡곡강정은 나에게 접목되지 못하고, 먹고 싶다는 육으로 전환된다.
단단하게 동결되지 못하고 덜렁덜렁 서로 떨어져 각기 움직이는 느낌속에서...
짜증이 난다. 겉은 고요한데 속은 원인을 알수 없는 요란함이 느껴진다.
고요함 속에서 혼자 듣는 말씀은 그림을 그리며 완전히 나를 덮쳐 다른 세상에 있게 했다. 녹화방송도 이러 할진데, 생생한 라이브 강의는 나에게 더욱 기대감을 주었다.
도대체 무슨 착각을 한 건지, 뭘 상상한 건지...
외로움과 소통이 전혀 안되는 곳에서 잠시 동안이라도 말이 통하는 곳으로 옮겨진다는
설레임이였던가... 이번에도 주님이 성공했다. 나는 실패다.
이렇게 주님이 은혜를 더하시는 방법을 어설피 감을 잡아간다.
예상을 빗나가게 하시고 육의 죄성은 한껏 들춰주신다.
이미 죽었다는 것도 까먹고, 유령이 자기 관리를 시작했다.
겉과 속이 괴리되기 시작하고, 수많은 판단들이 생성되고, 자기 방어 시스템도 작동한다.
혼자 쇼를 하는 이 기분...오랜만이다. 내가 속해 있는 상황과 사건과 배치들 안에서
접촉이 있을 때마다 지뢰가 터지고, 터지면서 이전의 역겨운 사건들이 안에서 들춰진다.
육의 연대기적 삶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내가 나의 주인 된 삶의 기억들이 나를 괴롭고, 의식 못하는 것은 몸이 기억한다.
주님에 의해 훅 빨려 들어가 이미 빠져 나와서 ‘그때는 그랬지’ 라는 관망적 입장을 누리고 기뻐하며 감사하지 못하고 있는 낯선 나를 느낀다.
과도한 호의를 부담스러워 하며, 받으면 갚아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을 친절히 가르쳐 주었던 경우 바른 마귀가, 나를 정죄한다. 염치도 없지...니가 뭐라고...그분의 용서와 사랑을 그렇게 낼름 받아 챙겨?... 헛소리 인줄 알면서도, 그 헛소리가 내 육을 통제함을 느낄 때 마다 나자신에게 너무 짜증이 난다. 수련회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이 짜증나는 육과 함께 집에 가야 한다는 것이 왜 그리 싫은지... 버스 안에서 다시 말씀을 듣는다. 책망의 음성이 나를 진정시켜준다. ‘티 좀 내지 마세요’, ‘나대지 마세요’, ‘손 떼세요’... 그리고 제일 기쁨이 되는 말씀..‘그냥 막 사세요’... 이런 복음을 듣게 하시니 이게 왠 복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