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선

수련회 소감 180111 송민선

아빠와 함께 2018. 1. 16. 09:55
2018-01-11 11:59:35조회 : 205         
수련회 소감이름 : 송민선 (IP:116.46.79.235)

해가 쨍쨍한데 눈이 펑펑 내린다. 가뜩이나 눈이 부신데 눈이 내리면서 빛에 반사되니 운전 중에 눈이 아프다. ‘뭐야, 해가 떴는데 왜 눈이 내리고 왜 이렇게 무질서하지...’ 온도가 내려가면서 구름이 끼고 눈이 내려야 한다는 패턴화 된 이론을 들이대면서 스스로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있다. 무질서한 자연이 이변인가, 원래 랜덤한 모든 것들에 자기 것인 냥 패턴을 만든 것이 상식인가 아니면 괴변인가. 고성능 스피커가 생생하게 생중계를 한다.


그것이 ‘죄’라고.


아직도 기계라는 말이 걸린다면, 짐승이라는 말이, 창녀라는 말이, 과격한(?) 말이 걸린다면 그 걸리고 있는 그 말들, 언어들이 이미 세상에서 패턴화 된 타인의 기준, 그리고 타인의 기준을 배워서 나의 기준이 되어 버린 그 메커니즘의 근원지로 가서 그 본질을 똑똑히 보라는 애정 어린 메시지가 퍼진다.



당연히 듣고 싶은 데로 듣고 이해하고 싶은 데로 이해하는 막가는 본질, 태중에 있을 때부터 생각하는 것이 악하다는 본질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살 수 밖에 없는 본질이다. 본질을 거스르고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 살려니 얼마나 막사는 것이, 죄 짓고 살라는 것이 힘이 들겠는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제대로 죄 짓고 살도록 해주리라. 너희들의 원초적인 본질을 다 들춰내어 스스로는 아무것도 손댈 수 없는 자들임을 알게 하리라. 그냥 막 살게 해주리라.” 이 말씀이 정말로 가벼우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당장에 이런 말이 튀어 나온다. ‘어데요~’, ‘내가 미쳤어요?’



숨 쉬는 그 자체가 이미 죽어 마땅한 죄의 극치인데 이건 죄고, 저건 의로운 거고 하는 죄인들의 기준과 구분이 더 이상 무슨 소용이 있는가. 살고자 하는 것이 죄고 살았다고 착각하며 스스로 행동하는 모든 것이 죄니, 육에 갇혀 있는 한 죄 아닌 것이 무엇이 있는가.



힘 좀 덜 들이고 세상에 속해 사는 나름의 방식을 찾는 죄성의 시스템이 작동한다. 의미 없는 무질서를 패턴을 찾아 규칙을 만들고 의미를 만들고 자기 것으로 소화하기 편안한 형태를 구성해서 낼름 낼름 잘도 자기 것으로 삼아 버린다. 무질서를 질서로 만들어 갈수록 웬만한 건 스스로 다 할 수 있는 자체 통제력을 구축하게 되고 점점 더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편안함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정감과 편안함이 얼마나 개인적인 생각인지, 거짓이고, 기만인지 한동안은 알 수 없다. 인위적 질서를 만들기 위한 모든 노력이 자기를 통제하는 또 다른 올무이고 족쇄라는 것을 알아도 멈출 수 없다. 육에 갇혀서 스스로의 주인이라고 열심히 관리하는 모습이 우습다...



이미 패턴화 된 수련회가 편하다. 처음 수련회를 참석했을 때의 기분이 아련하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여기 있는 사람들...무슨 이야기들을 할까...모여서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면 자꾸 가서 끼고 싶고 듣고 싶고. 지금 이 순간은 어떠한가...언제 이렇게 육이 자기만의 방식과 나름의 질서를 구축 했는지 새로움도 떨림도 긴장도 사라지고 틈만 나면 방으로 가서 베개만 보면 눕고 싶다. 입 다물고 있고 싶다.



‘이러 이러하고 싶다’는 마음이 무색해지게 하는 인물이 등장해서 입을 열게 하고 썩은 시체가 가득한 냄새를 풍기며 말이라는 것을 하게한다. 왜 여기 있지? 왜 이 사람과 만났지? 왜 이 말을 하고 있지? 왜 이 말을 듣고 있지? 무너진다. 계속 무너진다. 참 명쾌한 두 글자가 뇌리를 스친다. ‘몰락’



살고자 왕을 붙들고 살고자 백성을 붙들고 서로서로 힘을 합해 질서를 만든다. 주변에 포진한 이방 나라들이 수시로 주님의 망치로 사용된다. 무질서와 혼란 속에서 등장하는 선지자가 주의 말씀을 생중계한다. “네가 뭔데 살라고 하느냐, 이 가짜야, 어디 실체인척을 해! 놔! 놔! 다 손 떼!”



무질서가 진리인 것을 흔적만 보고 어찌 알겠는가? 참 선지자의 증언이 아니고서야 헛된 망상과 질서처럼 보이는 허구적 상황이 어찌 발각이 되고 무너질 수 있을지.



단절을 작정하신 듯 마구 마구 복음을 중계하시는 모습을 보며, '설마 누가 스스로 증언을 작정하고 하겠어. 바보도 아니고...참 철저하게 끌려 다니신다'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리고 그 모습이 감동이 되고, 감사가 된다.



세상 속에서 세상이 정의하는 성공을 위해 나보다 어리버리한 10명을 찾아 나서고, 온갖 미화된 거짓말을 동원해서 이익을 올리려고 열을 올리다가 허걱!!한다. 내가 왜 10명 중 하나가 되어 당하고 있지? 고백할 말은 왜 진작 말해주지 않았느냐고 발악을 하며 들이대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 것에 감사가 나온다. “이럴 줄 이미 다 알았는데~헤헤~제가 참 정신 줄 오락가락해서 자주 까먹네요~참 잘하셨어요~참 감사하네요~



오늘 눈이 엄청 많이 와서 회사에서 출근하지 말라는 전화를 다 받았어요~학교 다니다가 휴교한다는 말 들을 때보다 더 신나는 기분이네요~까불까불 잠시 들러 십자가 마을에 낙서하고 갑니다~

 이근호 (IP:119.♡.83.168)18-01-11 13:40 
죽기 전부터 벌써 시작되는 천국생활이란, 남은 인생을 실패를 채우는 겁니다. 저주를 이미 통과했기에 되돌아가서 그 저주에게 말을 거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나를 겁을 주었느냐? 네가 원하는대로 이렇게 실패해주면 네가 만족하겠니? " 이미 시작된 천국생활이란 실패 속에서 원없이 까부는 겁니다.

 김태윤 (IP:222.♡.23.53)18-01-12 11:12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 
수련회 마칠 때쯤 제법 쌓인 눈, 희다! 살짝 고상함이 스밉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여지없이 쓸리우고, 밝히고, 바퀴에 눌리고...그렇게 세상 먼지, 더러움 옴팍 뒤집어 쓴채로.....녹아져 버리는데, 그래도 살아 보겠다고 질퍽거리는 저를 봅니다. 
뭘 관리 하겠다고, 눈처럼 잠시 뿌려졌다 가는 인생이거늘...ㅎㅎ 범사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