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교

시온의 순산

아빠와 함께 2013. 2. 22. 08:11

본문 : 이사야 66장 7- 9절
제목 : 시온의 순산
듣기 : 음성 , 보기 : 동영상
 이근호 09-02-22 07:44 
시온의 순산

2009년 2월 18일                               본문 말씀: 이사야 66:7-9

(사 66:7, 개역) 『시온은 구로하기 전에 생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자를 낳았으니』
(사 66:8, 개역) 『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뇨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순식간에 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구로하는 즉시에 그 자민을 순산하였도다』
(사 66:9,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임산케 하였은즉 해산케 아니하겠느냐 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해산케 하는 자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하시니라』

성경은 순수함으로 다가와야 합니다. 사적인 이득을 예상하고 성경을 대할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 투영하게 그대로 전달됨을 봐야 합니다. 이사야가 끝날 이 대목에서 하나님께서 자식 출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십니다. 이것은 이사야 첫 대목과 연관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식 양육에 대해서 언급하셨습니다.

1:2-4에 보면,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고통 없는 출산’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창세기 3장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 세상을 죄악으로 뒤덮힌 세상으로 간주하고 약속을 주셨습니다. 즉 인간에게는 결코 죄없는 것이 아니다는 겁니다. 그 죄에 대해서 저주를 받게 되는데 여자에게는 출산할 때 심한 고통이 주어진다는 겁니다.

따라서 인간 세상에서 보편적으로 퍼져있는 ‘출산 고통’은 곧 이 세상에 죄가 관영함을 말해주는 증거라고 보아라는 겁니다. 따라서 그 어떤 인간도 출산 고통없이 태어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죄 속이 아닌 곳에서 태어난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고통없이 출생하는 아들이 있고, 그 아들로 인하여 고통없이 발생되는 나라와 민족이 순식간에 등장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민족 이야기는 이사야 13:8과 관련지으면 그 차이성이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거기에는 바벨론이라는 아주 잘 나라는 나라의 비참한 운명에 대해서 고통을 안고 한참 출산 중인 여인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놀라며 괴로움과 슬픔에 잡혀서 임산한 여자 같이 고통하며 서로 보고 놀라며 얼굴은 불꽃 같으리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아들을 낳으실 것인데 그 아들로 인해 생겨나는 민족은 이 바벨론 제국과는 달리 하나님이 주신 젖을 먹고서는 기뻐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그 근원지가 여타의 민족들처럼 지상이 아니라 하늘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아들을 낳게 되는데 이로 인하여 그 아들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시는 겁니다.

즉 그 아들이 이 지상에서 태어나서 성장하더라고 지속적으로 하늘의 하나님과 하나로 결속되어지는 겁니다. 하늘의 의로움이 이 아들로 통해서 지상에서도 죄없는 의로움이 나타내는 일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이처럼 직접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겠다는 것은 기존의 모든 인간들을 하나님의 아들로 취급하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심판하고 제거하시겠다는 겁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이 지상에 나타나는 때는 곧 ‘종말’일 경우에 해당되는 때입니다. 아들이 나타나셨으면 더 이상 하나님께서 이 우주를 길게 끌어갈 하등의 이유가 없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한 분의 아들에게 급작스럽게 한 나라가 등장하는 걸까요? 그것은 종말 때나 나타날 특수한 구원방식이 동원되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한 나라나 한 민족이 구축되려면 무구한 역사가 필요하지만 종말 때에 나타난 나라는 순식간에 나타납니다. 따라서 이 아들로 인하여 종말이 발생하는 고로 이 아들이 등장하면 주변에 이 아들을 핍박하고 공격하는 저주받을 세력들이 들끓게 됩니다.

실제로 시편 2:7에 보면. 하나님께서 친히 아들을 지상에 낳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그런데 시편 전체를 보면, 이 아들은 그 누구를 만나든지 그들로부터 처참한 대우를 받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이 아들 되시는 분은 하나되시는 하나님 아버지에게 자신의 억울함과 고난 받음을 호소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13:33-34에 보면,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고 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키신 그 죄없는 성령의 은사를 이제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의 새로운 나라, 새로운 민족에게 그저 주시겠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육적인 역사성 없이도 이 땅에서는 예수님에 의하여 저주없는 새로운 나라가 생겨나는 겁니다.

사람들은 한평생을 살면서 숱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 누구를 만나도 그 의미의 최종점은 오직 자기 자신의 자존심이 있는 것으로 모아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의 신은 항상 자신에게 있어 타인처럼 저만치 있게 됩니다. 하나되지를 못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근원지를 오직 자아쪽으로 굳혀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기대대로 세상을 돌아가지 아니하면 그 모든 분노를 신을 향해 토해내게 됩니다. 이로서 하나님과 자신들이 결코 하나도 아닐뿐더러 하나디기를 원치 않음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자기가 존재하는 것을 중앙부로 여기니까 나중에 세월이 지나 늙게 되면 죽음이 주는 허무만 만날 뿐입니다. 즉 근원지를 잊게 되는 거지요.

참으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 지음받은 민족이라면 그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 증거가 바로 자신보다 자기의 근원지가 되는 예수님과 하나됨이 생각난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저주받은 세상에서도 이사야 예언대로 과연 마지막 때에 등장하고 만 죄없는 백성들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이 나의 근원점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