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훈

딸의 초등학교 입학(정석훈)

아빠와 함께 2013. 1. 29. 12:43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 ”(잠17:17)

우리 아이가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래서 함께 90여분 차를 타고 학교로 갔다.

첫날이고 해서 일찍 하교 한다고 해서 기다렸다.

기다리는 중 우연히 지난번에 본 어떤 아저씨를 만났다.

함께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 아저씨는 내가 무얼 하는 사람인지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는 이미 나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돈 이야기가 나왔다.

보아하니 형편이 그리 넉넉지 못한 모양이다.

아주 유명한 선교단체 출신인데 지금 여기서 놀고 있다고 한다.

문젠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연히 잠언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먼저 그 사람이 끄집어냈다.

앞선 구절이다.

자신의 형편이 이러하니 이 구절이 자신에게 힘을 주실 거란다.

올해 자신이 받은 말씀이란다.

아마추어적 발언을 하는 것 보니 신학은 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마침 내가 이근호 목사님이 쓰신 잠언속의 그리스도(대장간)를 열독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한마디 했다.

잠언은 지혜서입니다. 지혜서는 지혜 되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예수님 중심으로 해석을 해야 합니다.

그냥 이 땅에 필요한 말씀이 아니고요.

많은 사람들이 잠언을 마치 이 땅을 살아갈 때 꼭 필요한 말씀이라 생각합니다라고 하니.

좀 떨떠름해졌다.

사랑이 끊어지지 않는 친구, 위급할 때 있는 형제.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친구상, 형제상이 아닌가!

특별히 내가 돈이 필요할 때 이런 친구가 있고 이런 형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고 올 한해를 산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주겠다든 그 떡이다.

말씀은 이렇게 우리자신이 무엇 속에 파 묻혀 사는지를 고발한다.

나도 저 사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돈이 없어 자식을 학교에 보낼 수 없는 형편이라면 이런 말씀이라도 붙들고 기도하지 않았을까?

틀림없이 했을 것이다.

이게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 아닐까?

십자가 십자가 부르짖지만 약점거리 혹을 딱 붙여 주심으로, 십자가의 피 공로가 아니면 구원 없음을 이런 상황, 저런 모습 속에서 끊임없이 끄집어내신다.

십자가의 피 공로를 모르는 인간은 모든 성경말씀이 자신을 위해 있는 줄 생각한다.

성령을 받지 못한 자는 세상의 중심이 자기 자신인줄 알고 말씀을 대하고 세상의 변화와 환경을 대한다.

그러나 피 공로를 아는 인생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심이심을 온 몸을 통해 증거될 뿐이다.

 이근호 (IP:117.♡.164.12) 10-08-12 16:35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위급할 때, 언제 친구가 되어주었으며 언제 형제가 되어주었던고! 살고자 하는 노선에 있는 자들은 결코 죽고자 하는 자의 노선에 있는 사람들의 친구나 형제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복음의 노선에서의 위급이란 참 생명이신 십자가 복음이 가리워지는 일뿐입니다. 복음이 사라지고 복음이 천대받는 이 위급한 상황에서 참으로 참으로 도와줄 형제와 친구는 (돈으로 도와줄 친구와 형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 보내신 자들 뿐일 것입니다.
 강구만 (IP:118.♡.241.81) 10-08-12 20:58 
우글거리는 독사새끼들 앞에서 터져나온 선지자의 분노는 쟁반에 자신의 목이 담기는 것으로 끝이난 것처럼 보이지만, 창세전 부터 설계된 하나님의 시스템의 작동, 곧 지혜라고 잠언은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이 구조속에서 성령으로 난 자들이 육체로 난 자들에게 핍박과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 교회라는 이름의 세상에서. 왜냐하면 서로의 관심사가 현저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난 성도는 그 주목하는 것이 믿음의 주 곧 십자가 지신 분과 그의 용서에 있는데 이는 예수님의 믿음이 이사람을 이끌고 계심이고 반면 육체에 있는자는 어떤 눈가림과 속임수를 써도 결국은 예수든, 성경이든, 교회든, 모든 것이 '나' 즉 나의 의미,자리 굳히기와 내이름 높이기에 동원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이용 당하는 인생은 내가 용서 못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개입을 극렬하게 밀쳐내는 악의 본색입니다. 그래서 믿는자에게 너는 왜 나와 '같지않고' 예수만 바라 보느냐고 죽여버리는 거지요.주님의 십자가 입니다. 처음부터 다른 노선위에 있기에 개인적이 아닌 주님으로 말미암은 원수입니다. 감추어진 비밀 곧 십자가로 인해 발생 되어져야하는 상황이고 지혜의 활동입니다. 그 수가 차기까지 성도는 기도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