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훈

누가 내 이불집을 무너뜨렸나요(정석훈)

아빠와 함께 2013. 1. 29. 12:04

아이가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이불로 만든 집을 부셨다고 난리다.

 

20분동안  내 뒤에서 말한다.

 

그러면서  예를  하나 든다.

 

자신이 할머니를 위해 아빠가 만드신 집을 부셔버리면 기분이 좋겠어요.

 

내가 대답했다.

 

그래. 당연하지. 집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지.

 

그러자 아이가 말한다. 예수님이 더 소중해요.

 

예수님의 소중함을 자신이 만든 집을 위해 사용하는 아이.

 

결국 자신의 집을 무너뜨렸기 때문에 기분나쁘고 화가 났다는 것이다.

 

성도는 여러가지 상황속에서 자신이 발각되어지는 자이다.

 

그래서 십자가로 인도함을 받는 자이다.

 

그런데 어떤 자는 이렇게 말한다.

 

십자가가 다 용서했는데 내가하는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고 그 어떤 행동에 대해 이미 용서 다 받았는데

 

내가 아무렇게나 하는 행동에 당신은 시비를 걸지 말라고 한다.

이런 자는

 

죄용서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전하기 위한 죄 용서인지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자다.

 

성도는 자신의 어떤 행동이나 말도 자신을 위해 정당화 시킬수 없는 자이다.

 

왜냐하면 성도의 주인은 따로 계신다.

 

그런데 십자가 지신 주님이 살아 계시는데 이런 인간은 십자가 지신 주님이 살아 계신 것이 아니라

 

그 십자가를 등쳐 자신이 살아 있음을 즐기는 자이다.

 

결국 십자가를 이용해 자신의 욕망대로 사는 자이다.

 

참 성도는 십자가지신 주님에 의해 자신의 욕망이 이용당하는 자이다.

 

베드로가 자신의 욕망이 십자가를 전하는데 철저하게 이용당했듯이,

 

그러나 예수님을 죽인 자들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말씀을 철저하게 이용하는 자이다. 주님이 피 흘리신 그 십자가도..

 

이런 사람은 자신이 만든 것, 수고한것, 땀 흘린것 등등이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다고 하면

 

안색이 변한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모습을 보면 바리새인의 자신이 말씀대로 산 것은 자신의 정당함을 증거해주는 삶이었다.

 

그러나 세리는 개판처럼 산 인생이 오히려 십자가를 전하는 삶이 되었다.

 

십자가 지신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전하는 삶이 되게 해 주시는 은혜속에 사는 자와

 

 십자자 지신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전하는 삶의 차이는

 

결국 불쌍히 여겨주옵소서와 자기 정당화로 나누어진다.

 이미아 (IP:119.♡.105.154) 10-02-18 13:20 
말할 수 있는 입을 주셨다면 불쌍히 여겨주옵소서...라는 말만 하라고 주셨는데 다른 말만 튀어나옵니다...내 자랑만 내 수고만 내 안위만 내 가정만 내 아픈것만 나만 나만 알아달라는....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마태복음15:21-28)

주님에 의하여 자신이 귀신들린 자로 보이지 않는 이상, 자신이 개같은 존재로 발견되지 않는 이상 자기 정당화만 평생토록 입에서 나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