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542

선택 아닌 선택

선택 아닌 선택 2022년 5월 8일 본문 말씀: 데살로니가후서 2:8-10 (2:8)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2:9)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2: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구원받지 못한 자’가 있다는 것이 인간 세계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비록 자신이 구원받아도 구원받지 못한 자가 따로 있다는 사실로 인해 양심상 편치 못하게 합니다. 이럴 경우, 이 사람은 하나님보다 더 양심적이고 착한 사람으로 간주될 것입니다. 실상은 이러합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지 못한 자’입니다. 이..

주일설교 2022.05.08

메시야의 비밀

메시아의 비밀 2022년 5월 1일 본문 말씀: 데살로니가후서 2:4-7 (2:4)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2:5)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2:6) 저로 하여금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2:7)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이 세상은 비밀을 싫어합니다. 난제는 있어도 비밀이 돌아다니는 것을 못봐주는 세상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혜로 불법과 의로움 정도는 구별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불법을 제거하고 사회를 정리정도하면서 나름..

주일설교 2022.05.02

구원이란 아이디어

구원이라는 아이디어 2022년 4월 24일 본문 말씀: 데살로니가후서 2:1-4 (2: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2:2)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2:3)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2:4)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인간은 자신의 뿌리를 잃어버리고 잊어버렸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뭘 잃..

주일설교 2022.04.24

폭력적인 부르심

폭력적인 부르심 2022년 4월 17일 본문 말씀: 데살로니가후서 1:11-12 (1:11)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1:12)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성도는 없습니다. 당연히 없어야 합니다. 인간 세계 안에서는 말입니다. 하지만 성도는 ‘예수 안’의 세계에서는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불러주셨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주일설교 2022.04.17

시간의 골조

시간의 골조 2022년 4월 10일 본문 말씀: 데살로니가후서 1:10 (1:10)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그날에 예수님께서 강림하시는 날입니다. 과연 예수님에게 어떤 자는 영원한 지옥불에, 어떤 자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일방적으로 지목하실 자격이 있을까요? 이 세상에 숱한 모든 이들을 물러치고서 말입니다. 그것은 과연 하나님께서 만족하시는 ‘안식 상태’를 예수님께서 달성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창세기 2:2-3에 보면,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주일설교 2022.04.10

복음의 시공간

복음의 시공간 2022년 4월 3일 본문 말씀: 데살로니가후서 1:8-9 (1: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1:9)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인간에게 감히(?) 형벌을 언급한다는 것은 참으로 도발적인 언사요 언동처럼 느껴집니다. 인간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자신을 지적질하는 겁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됩니다. 내부에서 고히 잠자고 있는 분노의 층을 자극하는 바가 됩니다. 인간들의 생각은 이러합니다. ‘형벌’이란 나쁜 짓을 했을 경우에만 수긍이 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말한 형벌이란, 내가 행할 수 없는 것으로 인하여 받는 형벌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행군하는 어느 군사..

주일설교 2022.04.03

환란 가운데 기뻐하라

예수님의 재림은 세상 교체 작업입니다. 기존의 지나온 모든 시간들이 한 순간에 무용지물이 되는 겁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예수님의 때의 배경에 맞추기 위해서 인간의 과거 추억을 예수님의 추억으로 바꾸십니다. 이 작업을 위해 하나님께서 성도의 과거 추억을 제거해 나갑니다. 따라서 성도도 이런 하나님의 일에 맞추어서 자발적으로 이 세상 자체를 제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일은 날마다 자기부터 실시됩니다. “나는 나의 죽음 안에서 살고 있다”를 성립시킵니다. “나는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존재한다”가 되며 같은 뜻으로는 “나는 환란 안에서 존재한다”가 됩니다. 주님은 성도의 과거 역사를 예수님에 맞추어 ‘때’가 되게 합니다. 한 순간이 되게 합니다. 이 작업이 환란입니다. 즉 예수님을 공격한 그 세..

주일설교 2022.03.28

압축의 슬픔

압축의 아픔 2022년 3월 27일 본문 말씀: 데살로니가후서 1:6-7 (1:6)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1:7)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음의 세계로 떠밀고서는 자신들만의 세계로 밀고 나갑니다. 각자가 갖고 있는 의견이나 견해나 지혜와 지식으로 이 세상을 움직이고 앞으로 진행나갈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재림이 버티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세상 교체 작업입니다. 기존의 세계가 아무리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도 그들의 행위가 전면적인 홍수를 막아낼 수 없듯이 예수님의 이후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주일설교 2022.03.28

심판과 횡재

심판과 횡재 2022년 3월 20일 본문 말씀: 데살로니가후서 1:3-5 (1: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1:4)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 (1:5)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으리니 ‘하나님의 나라’의 합당한 조건은 하나님께서만 만들 수 있지 인간은 못 만듭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스스로 만족스러운 상태로 만들어놓고 그것은 천국 백성의 합당한 조건이 되게 해달라고 억지를 부리게 됩..

주일설교 2022.03.20

주님의 때

주님의 때 2022년 3월 13일 본문 말씀: 데살로니가후서 1:1-2 (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1:2)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사도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쓴 두 번째 편지는, 예수님의 재림 사실로 인하여 각가지 문제가 드러났기에 추가적으로 쓴 편지입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현실에서는 삶의 환란과 관련성에 대해서 교인들이 제대로 엮어내지를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으로 인해 왜 성도들이 현 삶이 힘들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는 겁니다. 인간이 자기 삶이 힘들다고 하는 것은 자기 내부에 있는 죄성이 주님의 조치에 의해서 표면으로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주일설교 2022.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