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선 78

사라진 나라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의 직분으로 전도서를 통해 전한 인간의 마지막, 본모습은 헛되고 허무함이었다. ‘내 인생이 이게 뭐야. 도대체 지금껏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았지?’라는 이익이냐 손해냐, 성공이냐 실패냐를 논하는 허무가 아니었다. 율법을 만난 육체가 선악적 지혜를 총동원해서 가보았던 끝자락에서, 세상에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던 솔로몬이 자신은 정말 몰랐기에 그래서 그가 한 것이 아닌 너무나 뚜렷한 흔적, 주께서 넣어두신 기름부음의 지혜로 말미암아 마음껏 휘둘린 그 결국을 다윗언약의 튜브가 되어 뱉어냈다. 전도서의 저자를 통해 알게 된 허무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감사함이 콩고물처럼 붙어있다. 인간의 지혜로는 허무와 감사를 연결시킬 수 없다. 사람의 지혜와 어울리지 않는 복음을 억..

송민선 2023.09.01

복음 듣고자 한 죄

“아벨의 피로부터 사가랴의 피까지” 제단에서 발생 되는 죽음의 계열을 따라 종착점인 십자가 제단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피가 땅에 뿌려지고 모든 의로운 피가 예수님의 피의 의미에 통합된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려내셨고,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피의 언약이 완성되면서, 잉태될 자격이 없는 자들이 잉태치 못한 한 분 안에서 십자가의 의미를 담아 생산된다. 언약 안에서 벌어진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실상은 생명이었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 성도는 이미 생명 안에서 예수님의 대신 죽으신 죽음과 함께 죽는 것을 기뻐한다.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하신 ‘네 안에 믿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라고 하신 그 믿음은 바로 창세 전에 예수님이 아버지를 믿은 예수님의 믿음이 그들 안에 미..

송민선 2023.08.08

복음 환타지

자리가 마련되고 자의식을 소환하는 대화가 시작되면 왜 고통스러울까. 나 자신이 신앙인이라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앙인 코스프레의 증상은 말씀은 이야기하지만, 말씀으로 작동되는 진짜 속사정은 억누른다. 혹시라도 불쑥 튀어나올지 모르는 민망함과 나도 모르는 내가 발각될까 봐, 그래서 망가질까 봐 두려워하며 복음으로 가드를 친다. 말씀에 관심도 없고, 말씀과 아무런 상관없는 남편과 아이들이 한집에서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치되어 있다. 그렇게 배치되어있다. 나의 복음판타지는 남편과 아이들을 블레셋으로 그리고 나를 이스라엘로 마음속에 구분 짓게 했다. 그들은 답답한 상황에도 떠나지 않고 곁에 남아서 나를 안스럽게 여긴다. 나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이상히 여긴다. 말도 안 통하는 사람이 옆에..

송민선 2023.06.19

자기의 의 반란

한 남자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런 진지한 소감을 토로했다. ‘중학교는 너무 무서운 곳인 거 같아요. 배가 아파서 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는데 휴지가 없었어요...’ 휴지가 없다는 것이 공포로 다가온 아이를 공감해 주면서 학교라는 공동의 장소에서 화장지는 있어도 없다고 생각하고 주머니에 항상 여분의 화장지를 준비하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친절하게 한마디 덧붙였다. 혹시 여분이 없어서 당황스러운 사태가 벌어지면 너의 걸치고 있는 옷들의 일부를 버릴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처리하고 과감히 버리라고. 인간의 자체 제작하고 조작한 자기 잘남을 벗겨내는 일도 이와 같지 않을지. 나를 가리고 걸쳤던 이미지들을 벗겨내시고 최종적으로 나를 제거하시는 주의 작업에 혹시라도 운 좋게 걸려들었다면 ..

송민선 2023.05.10

도살장에 합류

정해진 강의 시간 안에 도착하기 위해 시간을 계산하고 예의상 미리 도착할 수 있게 30분 정도를 가산하여 도로에 차를 올린다. 도로 위에는 차의 성능대로 그리고 안에 담긴 운전자의 성질대로 빨리 달리는 차도 있고 뒤따르는 차의 짜증을 돋우며 천천히 달리는 차도 있지만, 나는 여전히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라고 모든 차를 관대히 포용할 수 있다. 여전히 달릴 수 있는 도로가 2개여서 나의 예상시간에 손해를 입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길이 있으면 자기 이익에 실패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갑자기 고속도로 보수공사로 길이 한 개가 되면서 제일 앞에 있는 차의 속도에 모든 차가 동일하게 맞춰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100 이상으로 달려야 할 고속도로에서 60을 유지하며 달리는 트럭으로 말미암아 ..

송민선 2023.03.27

수련회소감문

이마트에서 티셔츠를 하나 골랐는데 딱딱한 플라스틱 택이 붙어있다. 종이로 된 택은 바코드 부분을 찢어내면 물건을 훔쳐서 나가도 출구에서 센서가 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도난방지를 위해 손으로 제거할 수 없는 플라스틱 택을 붙여놓은 것이다. 이걸 억지로 제거하려고 하면 옷이 구멍 나거나 찢어질 수 있다. 나중에 계산할 때 직원이 택을 제거하려고 초강력 자석을 도난방지 택에 대니, 있는지도 몰랐던 얇은 철심이 안에서 쓱(SSG) 빠져나온다. 옷에 전혀 손상을 주지 않고 택이 깔끔하게 제거되었고 택 사이에 끼어 짓눌린 셔츠가 흐늘흐늘거리며 장바구니에 담긴다. 마치 하나님 죽음의 능력이 찾아오셨기에 있는지도 몰랐던 자아의 핀이 쏙 빠지며 나는 사람이 아니라 흐늘거리는 몸이었음을 깨우쳐 주는 것 같다. 악마는 `나..

송민선 2023.01.18

내가 없는 세상살이

시아버지가 치매로 요양원에 들어가실 때, 그분은 마음의 준비도 할 겨를 없이 순식간에 반강제적으로 다른 장소로 이동되었다. 그분이 잠시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 가장 애타게 그리워하고 찾은 것은 80세 넘어서까지 옆에서 평생을 성격 맞춰주고, 입맛 맞춰주며 수발하신 시어머님도 자식들도 아니었다. 시아버지는 늘 자기 자신만 돌보는 분이었지만 유일하게 자기 시간과 노력을 들여 친히 돌봐준 개, 그 개를 잃어버렸다고 마음 졸이며 찾았다고 한다. 개가 안전하게 집에 잘 있다고 하자 그제야 안심하셨다. 아버님은 실상은 개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함께 있던 공간에서 배제된 것이고,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정신을 차린 순간마다 자신의 공로가 들어간 것만 기억하셨다. 개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은 가족을 향한 미안함은..

송민선 2022.11.29

자기부인

이제는 더이상 오지 않는 마지막 ‘그다음’을 만난 사람들은 기다림 또한 끝이 났기에 다 이루신 분의 완성을 안고 이리 튀고 저리 튀는 메뚜기 삶을 살아간다. 아무리 죽여도 죽지 않는 생명을 담고 다시 살려지고 살려지는 영원한 생명을 그날그날의 나를 부인하는 죽음으로 표현한다. 모든 것이 주의 은혜로 이루어졌던 곳, 인간이 있기 전의 자리로 되돌리는 작업이 현재 있는 몸을 통해 표현될 때 우리의 시작은 늘 나 스스로 이룬 결과의 자리, 종의 자식을 잉태하고 마귀의 열매를 잉태하는 자리, 가능을 잉태하는 자리이다. 죄의 종이 죽고 의의 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실 때, 내가 의의 종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미 죽은 껍데기 안에서 생명으로 태어나주신다. 십자가의 반환점을 돌아서 세상을 반대로 ..

송민선 2022.10.14

우리 사이

연인이 함께 가다가 여자가 지뢰를 밟았을 때 위험을 아는 남자가 주저 없이 보내는 반응은 ‘움직이지 마’라는 외침이다. 여자는 자신이 어떤 위험에 처한 줄을 알지 못하기에 왜 자기에게 소리를 지르며 맘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지에 당황하겠지만 둘 사이에 사랑으로 말미암은 믿음이 있다면 자신의 감정은 무시하고 남자의 지시를 따르게 된다. 그러나 둘 사이에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면 자신을 통제하려는 태도에 분노하게 될 것이다. 매 순간 내가 움직이고 안 움직이고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작업해놓으신 비밀이 심긴 여부로 명령의 출처가 바뀐 결과만 있다. 주님의 일하심은 인간이 홀로 드러낼 수 없다. ‘홀로’라는 말은 공간 자체가 되실 수 있는 주님에게만 성립되고, 인간은 자신 안에 비어..

송민선 2022.09.18

항복의 기쁨

이 세상에서 내가 지킬 것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증거는 주께서 주실 의의 면류관을 주님 앞에 다시 드릴, 아니 그것을 소망하는 내가 버려질 공간이 지금 이곳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벌써 세상 속에 임한 천국은 마치 예수님 십자가 옆에서 온전한 망가짐으로 주님의 모습을 동일하게 그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재료로 너는 나를 위해 그렇게 살아야만 했다’라는 주님의 마음을 공유한 한 강도가 ‘원래부터 주님의 것이었음을 기억하소서’라는 고백이 흘러나오는 곳이고, 비난의 시선을 뚫고 들어온 여인이 주님 발에 자신의 모든 것을 깨어버리면서 이렇게 예수님을 깨뜨리는 죄만 흘리는 자가 바로 자신임을 고백하는 행함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그들의 모습은 한결같이 주님 발아래 미리 면류관을 던져드리는 몸짓으로 자신들을 갈아..

송민선 2022.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