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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8 11:08:34 녹취 : 이미아
자, 시작해 봅시다. 성령할 때 보통 신학책에 보면 성령이 뭐다. 성령이 하는 일이 뭐고, 성령이 어떻게 오며 어떻게 일하게 되며성령 자체를 두고 설명하는데 이것은 잘못이예요. 아까 대비와 대조. 성령은 반드시 악령과 대비해야 합니다. 선은 그냥 선으로 드러나지 않아요. 악이 무엇인지를 부각하는 시키는 가운데서 선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남자만 있다면 여자라는 것은 꿈도 못꾸죠.
그런데 어느 날 이쁘고 얼굴 작고 머리 긴 존재가 나타났다면 "어? 누구지 사람인것 같은데 우리하고 모습이 다르다." 아! 여자라는 이야기 들은 동물이구나!" 할 때 등장하죠. 처음에 인간은 남자, 여자가 없었고 그냥 사람만 있었습니다. 아담의 갈빗대로부터 여자가 만들어지면서 그 때부터 아담은 사람이 아니고 남자가 되었습니다. 남자가 되면서, 참 이런게.. 어려운 책이 있는데 소개하면 "인간속의 악마"라는 책입니다. 생물학적으로 두뇌의 기능 속에서 악마가 어떻게 작용하는가? 참, 대단한 사람이죠. 유명한 사람인데도
이게 뭐냐하면 대비되지 아니하면 의미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 방법이예요. 대비되지 아니하면 의미가 등장하지 아니한다. 어떤 의미라 할 때는 반드시 대비되는 것이 있으니까 의미가 등장하는 거예요. 빨간불은 의미 없어요. 파란불이 있을 때, 건너가세요, 건너가지 마세요 라고 등장하는 것처럼. 참, 이런 것 설명하기 어려운데요. 원래 남자는요 처음부터 사람이었기 때문에 여자로 보지 않고 그냥 사람됨을 지향합니다. 그런데 여자는 반드시 남자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남자를 거쳐서 내가 사람인가 아닌가를 알게 되어 있어요.
어떤 캐리우먼하죠. 여자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갖더라도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남자.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미칠것 같은 남자가 등장하게 되면 과감하게 그 직업도 포기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겁니다. 여자가 직업을 구하는 것은 괜찮은 남자를 구하기 위함이지 직업 자체에 대한 미련 때문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남자의 특징은 뭐냐하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다 그렇다고 하면 안 됩니다. 남자가 하고 싶은 일에 필요해서 하녀, 하인 하나 두는 식으로 여자가 있으면 좀 빨래하고 밥 하는데 가정적으로 좀 편안하다 싶어서 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걸 어떻게 바꾸느냐면 처음엔 이렇게 되었는데 창세기 2장 타락하기 이전에는. 타락하고 난 뒤에는 남자도 곤란하게 생겼어요. 여자가 남자를 지향하다가 그 다음부터는 남자를 이용해서 자식을 두어 버렸어요. 남자는 졸지에 돈버는 머슴으로 전락하고 말았어요. 돈 벌어와. 왜? 내 새끼 키워야죠. 40대까지 몰라요. 50대 중반까지 몰라요. 남자가 퇴직하고 난 뒤에는 여자가 슬슬기어 들어 옵니다. 같이 놀아줘. 그때는 여자를 발로 차네요. 그때 처신하는 방법이 무엇이었습니까? 남자가 남편 노릇하지 말고 아들 노릇하면 자기 아내가 이쁘게 잘 키워준다는...
여자의 그늘 밑에서 여자 졸졸 따라 다니면서. 처음엔 여자가 졸졸 따라 다녔는데 이제는 나이들어서 남자가 졸졸 따라다니는.. 할게 없어서. 왜, 할게 없냐면 돈버는 재주 때문에 남자가 되는 거예요. 그것이 전부다 뭐냐? 이 책에 보면 생명과 죽음에 그냥 가지 않고 반드시 번식이 있다는 겁니다. 성이죠. 번식과정을 통해서 죽음에 이르기 때문에, 여기에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결국은 세상의 주도권을 쥔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가 태 안에 있을 때 엄마하고 핏줄이 연결되어 있잖아요. 타인입니까? 아닙니까? 이게 유명한 여성페미니즘은 이 관계, 자기가 아기를 놓아 가지고 남자에게 이긴 경험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성은 이미 아기를 가질 때부터 여성의 독창적인 여성성으로 굳혀져서 여성은 주변의 있는 모든 것들을 이 번식이라는 여기에 치중해서 이익과 손해를 그걸로 해석한다는 거예요. 애기 놓기 전에는 저 남자 만나면 잘났다 하지만 본성적으론 저 남자 만나면 괜찮은 DNA를 전수 받겠다. 괜찮은 DNA. 돈 있고 잘생긴 그런 사람같으면 내 새끼는...
왜그러냐하면 애기가 아무리 밖에 나와도 자아 정체성이 자식 잘되면 내가 잘되는 것이다. 그 애 내가 낳았어. 그것이 성경에 나와요. 저 예수님을 낳은 모태가 복이 있겠다 하죠. 남자들은 그런 소리 안해요. 아주머니들이 자기 신세와 유사시켜서 "세상에 나도 저런 자식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이것이 여성의 정체성이라는 거예요. 이 책에서는 생명과 죽음이라고 하지만 여기 부모잖아요. 부모는 언젠가는 죽잖아요. 결국은 이 사랑은 자식 잘 되라고 부모 양쪽다 자식을 앞장세워서 뒤에서 자식을 밀어주는 식으로 모든 행동양식이 된다는 겁니다.
육이라는 것, 혈통이라는 것이 얼마나 가족중심인가가 확연히 드러나요. 교회 갔다가 후다닥 집에 오는 이유가 내 가족중심, 혈통중심이기 때문에 그렇잖아요. 국가가 나한테 뭐해주었습니까? 결혼한, 자식있는 엄마 같으면 그 엄마는 나가 아닙니다. 항상 저 밖에서 뛰놀고 있는 이쁘장한 내 자식을 포함해서 나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남자는 그게 없어요. 그냥 죽을 때까지 이마에 땀을 흘려서 하는데 그 목적은 결국은 양쪽다 새로운 번식이 들어 온 겁니다. 번식안에서 인간은 불멸을 기대하게 되죠. 나는 죽지만 내 DNA살아 있다. 불멸이죠.
그래서 성경에서는 자식이 없는 것을 저주라고 했어요. 자식이 없을 때 진짜 죽는 것으로 본 거예요. 내가 비록 죽어도 자기는 자식 안에 계속 살아 있는 거예요. 죽을 때 마지막 유언이 뭐냐하면 "애야 내 죽거든 제사 드려라" 제사라는 것은 일종의 탯줄같은 것이죠. 제사드리는 안에서 계속 이어져 오는, 그리고 나는 계속 부활되고. 조상 제사는 전 세계의 보편적인 모든 토속종교의 공통점이 제사입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오고 유교가 뭐가 들어와도, 심지어 공자도 제사드리라고 하지 않았거든요. 뭐가 들어와도 뭐로 다 바꾸냐면 처음에 불교 들어왔을 때 제사 없었어요. 그것이 제사가지고 불교를 유지하는데 생명을 걸었어요. 제사 가지고 불교가 커나간 것입니다. 승부건 겁니다. 유교도 중심이 뭐가 되겠습니까? 공자는 그런 말 한적 없어요. 공자는 귀신을 모른다 했거든요. 그런데 유교 그러면 제사죠. 천주교가 승부건 것이 바로 죽은 자의 제사. 기독교가 앞으로 할 것은 뭐냐하면 중보기도와 추도입니다. 장사 안되니까.
그러니까 이것은 신학이 어떻다 어떤 성경 내용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이 어떤 교회가서 예배드리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기도 미처, 모르는 내가 얼마나 번식 중심인지, 내가 얼마나 육 중심인지 자기도 몰라요. 누가 이야기 해준 사람이 없으니까. 너무나 간절한데 자연스럽게 믿자. 자연스럽게 믿자가 결국은 내 새끼 중심이예요. 남편은 돈 벌어 줘야 되고. 내 중심으로 믿는 거예요. 그래서 보통 교회에서 남자들이 별로 없고 여자들이 많아요. 그게 교회 자체가 샤마니즘적인 요소로 이미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성경 보고 주님 배울려고 온 것이 아니예요. 다시한번 중요한 것 해봅시다. 예수님을 알려고 온 것이 아니예요. 신으로부터 복받으려고 온 것입니다. 예수는 관심 밖이예요. 내가 처음부터 유지한 틀이 있습니다. 나 여기 있고 하나님 저기 있습니다. "하나님. 내게 교회 왔으니까 복 주세요." 어, 예수믿으라고?" "그러면 복 받습니까?" "아, 그럼 예수 믿지요."
예수님은 처음부터 중심 인물이 아니었어요. 처음부터 내 있다. 하나님 있다. 하나님 존재, 내 존재가 중심인물이었고 예수님은 들어갔다 빠져야 되요. 죄만 용서 해주고 빠져 버리고 다시 원상태로 하나님앞에서 내 앞에서 자, 이제 예수까지 믿었으니까 복 더 내놓으라. 재벌 2세까지 믿었으니까 당사자가 복 내놓으라 하는 거예요. 시키는대로 믿었으니까.
성경에서는 이걸 가지고 우상이라고 합니다. 어디서 나와서 우상 입니까? 육, 번식이죠.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는 한 남자를 십자가에서 죽여 버렸죠.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뭘 요구합니까? 죽어야 산다. 왜? 나도 죽었으니까. 아까 이야기한 환기통, 통풍구. 천국의 바람 통하는 것을 예수님이 죽고 같이 산다. 이것을 정낙원 목사님 설교에서는 샴쌍둥이라고 했습니다. 등짝이 붙어 있고 배가 붙어 있고 머리가 붙어 있고 태어날 때부터 붙어 있는 것. 신체는 하나인데 따로 생각하는 거죠. 그러면서 신체가 같이 죽고 같이 살때 부활되는. 로마서 6장에 나오죠. 나와 함께 죽고 살면 그 때부터 너는 죄에 속한 사람이 아니고 의에 속한, 의에 종이 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쭉 나옵니다.
이런 말이 예수님이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뭐가 날라가 버리냐면 하나님은 예수님 뒤에 점선으로 숨어계신 아버지로만 있어요. 그래서 인간이 아버지에게 바로 갈 수 없고 반드시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동행해서 갈 수 있어요. 예수님 고맙습니다. 이젠 앞으로 혼자 갈께요. 이런 것이 없고 예수님과 동행해서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약에서 제사장 제도라는 것입니다.
제사장과 더불어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살아요. 여섯군데 도피성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도피성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남을 살인했을 때 고의가 아닌,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고의가 아닌 남을 죽였을 때 그 죽었던 가족들이 나에게 복수를 감행하는 할 것을 대비해서 피신을 해야하는데 어디로 피신해야 하느냐? 제사장이 있는 곳에 피신해서 제사장과 함께 있을 경우에만 하나님으로부터 계속해서 어떤 복수와 저주와 심판으로부터 면제될 수 있다는 겁니다.
간통한 여인이 누구와 함께 있었죠? 예수님과 함께 있었죠. 바로 그 이야기 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그것을 가지고 두자로 자유라고 하죠. 진리를 너희가 자유케 하리라.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가 뭡니까? 툭툭 털고 나혼자, 천상천하유아독존 하는 이것을 불교에서 자유라고 하잖아요. 흐르고 싶고 그런데 자유란 뭐냐하면 우리가 지옥에 있다면 지옥에서 해방되어 천국에 가있는 것이 자유죠. 그러면 천국가면 우리곁에 누가 있습니까?
예수님이 있죠. 이제는 악마와 함께 벌 받지 않고 예수님과 함께 복 받는 것을 자유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현재 지옥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방금 이 긴 이야기를 결국엔 제가 대비와 대조에 대해서 이야기 할려고 하는데 본격적으로 악령에 대해서 이야기 해봅시다. 오늘 본문 쉽게 하기 위해서 사도행전 19장 13절 봅시다. 제가 읽어 볼께요.
13절.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
악령은 무엇까지 흉내냅니까? 예수 이름을 빙자하는 것 까지 사람들이 흉내내는 거예요. 그것을 보고 진짜 악귀가 하는 말이 15절에
15절.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이거 굉장히 신기하죠. 그러니까 지금 대조, 대비를 잊지 마세요. 사람들의 틀을 뭐라고 했습니까? 신이 있고 내가 있고. 머리속은 그런데 교회가 눈에 보이죠. 교회나 부동산이 보이잖아요. 하나님 있고 인간이 있고 중간에 교회가 있죠. 이것이 현재 우리가 말하는 기독교라는 종교가 아닙니까? 그런데 이것은 우리 생각이고 악마 생각에는 이게 엉터리라는 것을 악마가 아는 거예요. 악마는 예수님, 예수님 뒤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 천국을 반드시 예수님을 통과해서 간다는 것을 악마가 안다니까요. 세상에 우리는 모르는데 악마는 아는 거예요. 사람들은 교회와서 예수님 있다 하니까 그들은 예수님 이름으로 흉내낸 거예요.
마귀는 교회를 건드리면 가만히 있어요. 교회는 구원받는다고 알려진 곳은 맞지만 전혀 하늘나라에서는 교회다니는 것을 인정을 안 해주거든요. 그것을 하나님도 알고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아는데 인간들만 몰라요. 그런데 마귀는 알아요. 마귀가 싫어하는 것이 뭐냐하면 교회하면 가만히 있는데 예수님 복음 이야기 하면 마귀가 바짝 긴장을 하는데, 여기 예수님 이야기 하신 분이 바울이죠. 마귀가 사도 바울을 알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우리 악마 동네에서는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아는데 너는 바울 근처도 안 갔고 예수 근처도 안 간 것이 어디서 까불어?" 이렇게 된다 말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악마한테 유명한 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 무시당해요.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초라하고 복음은 전하지만 사람들 끄는 매력이 없었어요. 지도자 타입은 아니었어요. 여러분 예수님은 이런 분이고 십자가는...이런 섬기는 분이지 확확 카리스마 있게 사람들에게 다가서질 못했어요.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가고 난 뒤에는 누가 왔냐면은 카리스마 있는 부흥목사들이 장악하고 있었거든요.
고린도후서 11장에 보니까 사도 바울이 하는 말이 그들은 다른 예수를 전하고 다른 복음을 전하고 다른 영을 전한다. 이게 3종 셋트거든요. 너희들이 말하는 당회장 목사가 악마의 하수인들이다. 악마의 일꾼이다. 그 사람들 배후에 악마가 있다. 그런데도 너희들은 어찌하여 용납을 하면서 뺨을 치는데도 아멘 할렐루야 하느냐 이 말입니다. 너희들을 다루면서 너희들의 것을 빼먹고 있는데 아멘 할렐루야 하고 있느냐 이 말입니다. 그러면 그쪽 당회장이나 목사들이 "그럼 당신이 진짜라는 것을 증거대봐." 이렇게 나오겠죠?
그 뒤에 나온 것이 내가 예수님 때문에 강도의 위협과 도적의 위협과 핍박을 받고 태장을 맞고 심지어 안구가 안 좋고 주님 힘듭니다. 네 은혜가 족하니라 그만 하면 됐어. 사도 바울이 알게 된 것이 내가 약한데서, 내가 약하니까 내가 장기를 드러내지 않고 그리스도만 몽땅 드러냈구나 하죠. 그 대목을 일반 교회에서는 설교를 못하죠. 그들은 권력단체고 밥벌이니까.
성령과 악령이 공통점이 있어요. 양쪽다 보는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 이것은 유월절 피보고 넘어가는 것하고 마찬가지 이거든요. 뭘 다이루었느냐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룬 거예요. 그럼 약속을 우리가 다 이루었습니까? 예수님이 다 이루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가 다 이루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부페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너무 비싸서 못들어 가고 있는데 앞에서 어떤 분이 "어, 냈어 들어와." 뒤에서 다 이루었다고 했어요. 드디어 부페에 들어 갔습니다. 김밥 있고 잡채 있는데 김밥만 먹고 그 다음 부터는 "아, 잡채먹고 싶은데 또 돈내야하나?" 할 때 "김밥 먹어도 잡채 먹어도 돼." 라고 하죠.
그런데 사람들이 제 말을 오해하는 것이 뭐냐하면 니는 십자가가만 있고 다른 것은 없나? 김밥만 있고 잡채는 없나? 라고 묻는 거예요. 성령이 오는 것은 "너는 잡채 먹어도 돼." "또 잡채 먹고 초밥 먹어도 돼." 같은 말이예요. 이미 너는 다 이루었다는 범위한에 속해 있는 거예요. 필드죠. 나는 영역을 이야기 하는데 그 사람은 자기가 뭘 할 것만 자꾸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목사님 이것은 되는데 또 다른거 할려면 내가 결심해야 되고 회개해야 됩니까? 또 묻는 거예요.
김밥은 먹는데 잡채 먹을려면 또 돈 내야 합니까? 그런 소리하고 똑같은 소리예요. 만약에 돈 안 내면 저주받죠? 맨날 교인들이 저주받고 징계받는 걱정이 뭐냐하면 기도 안 하면 고3 자식이 대학에서 떨어지죠. 그래서 맨날 생각하는 것이 헌금이나 기도로 지불해야 되는 줄 알고. 그러나 저는 뭐냐? 다 이루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또 오해하기를 "아, 김밥만 먹는데 다 이루었구나 !" 다시 말해서 죄 용서 받는 것만 다 이루었고 다음에 뭐 행동할 때는 기도도 많이 해야하고 헌금도 많이 해야 그 복은 또 따로 복을 받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저는 그것이 영역이예요. 영역. 십자가에서 성령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에서 성령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김밥도 나오고 잡채도 나오고 초밥도 나오고 다 나오게 되어 있어요. 이쪽은 한식 저쪽은 양식. 나올 때 절대로 뭐 내가 기도해서 얻었다. 헌금해서 얻었다. 뭐해서 얻었다. 하는 소리 하지 마세요. 그것은 십자가에서 나오는 보너스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거예요. 한번 주님이 다 이루었으면 보따리를 확 푸는 거예요. 마치 흥부전처럼. 흥부가 박 타니까 TV고 자동차 나오고 냉장고 나오고 모든 보물 다 나왔잖아요.
죽고 난 뒤에 천국가는 것이 완전 보장. 전부 다. 교통사고 내서 벌금내도 괜찮고 하여튼 어떤 경우라도 다 이루었음 범위내에서 추방되는 법이 없습니다. 그걸 가지고 성령의 보증금이라고 합니다. 성령은 뭘로 왔다? 성령은 이미 보증금으로. 그런데 성령이 왔다는 것이 성령받고 나서 우리가 뭘 해야 되는 것이 아니고, "성령 받았으면 돼? 그 다음 전도 해야지." 이게 아니고 성령이 왔다는 것은 우리는 이미 다 이루었음에 혜택을 누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런 뜻입니다.
성령이 온 것은 성령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 바라봐라. 너가 어떤 짓을 해도 너는 다 이루심에 혜택을 받는 그 구역내에 당신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성령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모르면 몰라요. 마술사 시몬은 그것을 모르고 자기가 여기 있고 성령을 자기가 소유, 성령을 돈 주고 사버리면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내가 내 안에 성령이 있죠? 내 범위는 내가 현재 구축한 것이 크고 그 안에 일부로 성령이 들어오죠. 내 근처에 영역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성령은 내가 다루기 나름입니다. 자기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거예요. 이짓이 바로 성령을 흉내낸 악령들이 하는 짓입니다.
"성령받을 때 니 뭐 했나?" "기도했나?" "그럼 기도해봐. 성령 받지."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어떻게 하면 성령을 소유할 수 있습니까?" 하고 같은 말입니다. 교회에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 아닙니까? 여러분 성령 안 받으면 능력이 없습니다. 능력 안 받으면 전도 못하는 것도, 십일조, 헌금, 예배빠지는 것, 목사 못섬기는 것도 구원은 받았지만 능력을 못받아서 그런 겁니다. 능력은 어디서 옵니까? 성령 받아야 능력 옵니다. 얼마나 많이 들었습니까? 지금도 현재진행형 입니다. 그거 아니면 교회가 안 되니까.
여러분 저, 성령주의 아닙니다. 은사주의 아닙니다. 저는 정통 복음주의 입니다. 오직 구원은 십자가로만 구원받습니다. 저는 그것을 주장합니다. 하지만 능력은 여러분 집구석 잘되고 못되고는 따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구원은 받아 놨지만 성령을 안 받으면 여러분 개털모자 쓰고 나중에 상급 하나도 없이 남들은 상급받아 자랑하는데 여러분은 팬티바람으로 구원받습니다. 불 가운데 구원받으면 안 되겠죠.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여러분들이 들어서 그것이 하나의 틀로 잡혔습니까? 그것이 악령이 하는 짓이예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어떻게 너희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행함으로 마치느냐? 은혜로 시작했으면 끝까지 은혜로 끝나야 하는데 은혜로 시작했다가 행함이라는 삼천포로 빠졌습니다. 교회에서 말하기를 구원받는 것은 은혜로 받고 복 받는 것은 행함에 달렸다. 바치고, 봉사하고, 헌금하고, 선교에 신경쓰고, 선교만 하지 말고 선교헌금도 하고, 생각날 때마다 기도도 많이 해야 하고.
여러분, 지구가 둥글죠? 둥그면 선교지가 어딥니까? 평평하면 여기서 멀어지잖아요. 지구는 둥그니까~자꾸 어디로 옵니까? 내 등으로 오죠? 내 뒤쪽으로. 기도를 계속하면 어디로 가요? 내 등어리에 있게 되요. 결국은 내 현장이 뭐다? 성지순례입니다. 성지순례란 내 사업체, 내 가정이예요. 내 교회가 선교지예요. 왜그러냐하면 성령께서 전도하는 방법이 결국엔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로마서입니다. 로마서 11장. 사도 바울이 이방인 전도했죠?
내 백성이 구원받는다면 나는 지옥가도 좋다. 관심사가 다시 어디로 옵니까? 다시 돌아오죠. 물론 이렇게 일차원적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돌아올 때는 다른 차원에서 돌아오죠.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는다는 차원에서. 처음엔 출발할 때는 이방인이지만. 이방인 끌고 유대인 포함하고 온 이스라엘. 그리고 통계적으로 수치를 계산하면 현재 이스라엘은 순수 혈통이 없습니다.10대만 지나가면0.001퍼센트의 피만 있어요. 4대만 지나가면 거의 같은 혈족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같은 경우, 이렇게 각 민족들이 교류하는 입장에서는 피가 섞이기 마련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예요. 한국도 몇 십 년, 몇 백 년 지나면 한국도 처음엔 성씨가 몇 개 안 되었어요. 한국의 성이 이백개 넘는것은 전부다 중국피가 하고 외국피가 섞여서 그래요. 대한민국 한반도라는 것은 남방계통인 베트남계통과 북방계통인 몽고계통이 섞여서 된 거예요. 북방계통 일부는 일본서 난거고. 이것은 두개골 DNA이 조사해 보면 나온다는 거예요. 순수가 없어요. 순수는 정치적 의미로 나온 겁니다. 정치적으로 같은 공산주의 하면 그것이 의미이지 순수는 없어요.
정리해 보면 악령은 따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을 자꾸 위장한다? 성령의 행동을 모방하고 그것을 따라 다니면서 유사품을 제조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악령은 다 이루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8장 29절을 보면 "이에 저희가 소리 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했죠. 이것을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청년이 이야기 한 거예요? 귀신이 이야기 한 거예요? 청년이 이야기 한 거예요. "아이구 저 청년 예수라는 아저씨 만나서 저런 이야기 하는구나." "저희 둘 끼리 말하는구나."
하지만 성경에 기록하니까 이것은 청년이 이야기 한 것이 아니고 속에 귀신이 이야기 하는데 "예수 당신 누구야?" 하는 것이 아니고 익히 알아요. 아까 했죠.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고. 악마는 복음 전하는데는 귀신같이 복음에 대해서 압니다. 굉장히 복음에 대해 민감해요. 교회에서 딴소리 하면 다 용서가 되요. 하지만 복음이야기만 하면 버림받습니다. 이상해요. 거기서는 복음전하면 대번 알아차려요.
그리고 이 귀신의 이야기가 우리 마음속에 이야기 입니다. "예수여 당신하고 내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더 추가적으로 말한다면 "내가 어릴 때부터 모태신앙이어서 30년동안 예수 믿지만 당신이 나한테 해준것이 뭐가 있습니까? 내가 인간성 좋아서 지금까지 교회는 다니고 있지만 사실은 내가 당신 좋아한 적은 없었습니다." 라는 말이 우리의 속 마음으로서 꿈에도 나올 수 있고 의식이 잠자고 있을 때 무의식 속에서 툭툭 행동으로 나올 수가 있습니다.
딴건 다 좋지만 제발 십자가 이야기는 하지 마라. 하는 것이 우리 속에 사실은 엉겨 있어요. 엉겨 있어서 좋다 좋다 하다가 복음이야기 하면 밀쳐버리고 친구 많이 떨어 졌습니다. 복음 이야기 하면 갑자기 민감한 반응을, 딴 사람처럼 민감한 반응이 있는데 왜냐하면 인간속에 이미 귀신이 지배하고 있어요. 에베소서 2장1절 아닙니까? 세상신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공중 권세 잡은 악한 신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었는데 성령이 오고 난 뒤에는 우리는 그때부터 예수님 안이 되거든요.
성령이 오게되면 성령은 빠져요. 성령과 악령이 직접 대립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성령과 악령이 뭘 쳐다보느냐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느냐? 아니면 더 보태야 되느냐? 그 문제입니다. 에베소서 2장6~8절에 보면 성령을 받게 되면 "이미 우리를 하늘에 앉히시고." 과거 완료가 되어 있습니다. 과거완료의 특징이 뭐냐하면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아니고 윗층에 올라가 있다. 과거완료가 되면 시간의 흐름은 의미가 없어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특징이, 이것이 묵시인데 특징이 뭐냐하면 천년이 하루같고 하루가 천년같은 시간을 따지거나 묻지를 않아요. 이미 하나의 영역 속에 다 이루심의 범주에 들어가기 때문에 밑에서는 시간이 흘러가도 여기는 시간이 흘러가지 않습니다. 아예 시간이 없어요. 시간이 없고 사건과 사건만 안에서 갇혀 있는 꼴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재림하심. 그 안에 우리는 곱게 들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앉히시니." 이것을 지상에 있는 육체가 믿음이라는 것을 통해서 진짜 여기에 있다는 것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펀드가 돈이 10억 있다는 것을 가끔 뭐 보면 알죠? 전화해 보면 알죠. 그 전화가 믿음이예요. 집에 있는 현찰이 별로 없어요. 한 오천 있나? 누가 와서 돈 줘버리고. "아이구, 이집 보기보단 가난하네." 속으로 쾌재를 부르죠? 혹시 펀드까지 갈까 싶어서 전화해 보니까. "주여 믿습니다. 제 약속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너는 하늘에 앉히시니." "아이구 감사합니다. 펀드 그대로 있구나." 골로새서 3장에 보면 " 우리는 이미 이땅에서 죽었고 우리의 생명은 하늘에 감추어졌다." 이렇게 되어 있죠.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수시로 파악하는 거예요. 믿음이 그래서 고린도후서 13장5절에 보면 너희가 믿음에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라. 하늘 나라 펀드가 잘 있는지. 펀드 회사에 전화해 보라 이 말이죠. 아직 있죠. 주식값 좀 내렸는데 삼성전자로 바꿀까요? 그러면 펀드 넣을 걸 모르는 자기 마누라가 "여보 어디에 전화했어?" "당신은 몰라도 돼." 이 사람이 미쳤구나! 그래서 믿음이라는 것은 남들보기에 미친 거예요. 자기 생명이 지금 어디에 가 있습니까? 하늘나라에 있잖아요. 예수 믿은 남편은 지금 하늘나라에 가 있는 거예요. 그쪽과 통하는 것이 믿음이예요.
그래서 에베소서 2장8절 유명한 귀절이 있죠. " 이 믿음은 행함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것이 너희 행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니 너희 행함을 자랑치 말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예수님을 자랑하라. 이 배후에 누가 있느냐? 다 이루심에서 나왔던 영, 성령께서 우리 배후에 조종한 거예요. 왜?우리는 때려 죽어도 내 이익을, 육신의 내 욕망을 포기 못하기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자, 그러면 우리에게 악령이 없는 겁니까? 자, 성령 받았습니다. 그러면 악령이 우리한테 상관없는 겁니까? 욥이 분명히 믿는 자 맞죠? 욥은 하늘나라에서 유명했어요. 하늘나라에서 자랑했으니까. 그런데 옆에 누가 찾아 옵니까? 악마가 찾아 오잖아요. 꼭 우리 식이예요.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아니까 그래서 예수님도 바울도 악마가 안 찾아 간 거예요? 아닙니다. 끝까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을 때까지 끝까지 예수님을 시험했어요. "니가 메시야라면 당장 내려와 봐라." 자기도 구원 못하면서 어디 주제에 남을 구원한다고." 저는 그 대목을 써 가지고 모든 절에 보내고 싶어요.
왜? 불교가 성경을 공부하거든요. 보면서 나온 결론이 그거예요. 예수 지도 구원 못하면서 남을 구원 한다고? 그런 사기가 어딨냐? 그들은 그렇게 주장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도 부처다. 인간은 다 부처다. 인간은 존재 자체가 부처가 되는 것이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니까. 아무것도 믿지 말자 라는 것을 믿자라는 것이 불교의 교리입니다. 니 스스로 있으면 되지.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고. 나는 나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예수를 만나면 예수를 죽이고 스님을 만나면 스님을 죽여라 왜? 니가 부천데무슨 부처를 찾느냐.
그런데 욥은 어때요? 욥은 누가 찾아 왔어요? 사탄이 찾아 왔잖아요. 제가 단언합니다. 너무 심한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양해하시고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사탄이 안 찾아 오면 신자가 아닙니다. 바울에게도 끊임없이 죽을 때까지 계속 시험했고 거짓 선지자를 통해서. 예수님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누가복음 22장인가 베드로가 주여 제가 주를 버리지 않겠습니다. 아이구 인간아! 사탄이 너 눈에 안 보이지? 사탄이 보일리가 있겠습니까? 베드로가 지금 한창 믿음 좋아서 환장해 가지고 있는데. 자기 딴에 믿음인죠. 제 글에 이런 말이 있어요. "믿음의 적은 믿음" 이라고 했어요.
우리 강장로님이 이런 말을 했어요. 어떤 사람이 자꾸 엉뚱한 소리 하니까 믿지마라 했어요. 그런식으로 할 것 같으면 예수를 믿지마라. "믿지마라" 예수를 안 믿으면 자기가 믿음이 없는 것을 알게 되는데 꼭 믿는다고 하니 진짜 믿음이 가려지니까 강장로님이 화가 난 거예요. 지 자신을 믿으면서 자꾸 믿는다고 흉내를 내니까. 악마는 자꾸 흉내를 내는 거예요. 자꾸 믿는 척을 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주신 선물이 아니고 내가 믿는 사람을 해야 편한 것. 아까 말한 정신병자 아가씨. 민우야! 너 내일 만나자. 전화코드 빠졌는데 자꾸 민우야! 찾는 거예요. 심지어 그 증세가 더 심해지니까 부모한테 결혼했다고 하는 거예요. 엄마 아직도 우리 동거를 허락하지 않는거야? 이렇게 하고 있는 거예요.
악령이라는 것은 항상 얼쩡거려요. 항상 복음있는 곳에 악마가 와요. 나머지기는 안 간대요. 갈 필요가 없다니까요. 거기는 이미 자기 편이기 때문에. 자기 집에 속한 가재도구이기 때문에, 자기에게 갇혀있기 때문에 필요 없어요. 육신의 영광과 세상의 부귀영화 그것으로만 전부 입이 벌어져서 헤하고 좋아 합니다. 돌이 떡이 되게 하는 것하고, 기적이 있어야 믿는 것 하고, 기적과 예수 잘 믿어서 성공하고 출세하고 좋은 대학 가고. 이것은 악마가 사람을 이미 조져 놨어요. 그것은 손 안대도 그냥 같이 가는 겁니다.
문제는 예수님에서 복음안에서 살아 있죠? 아까 지역적인 한계를 넘어서서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뭘 뿌렸다? 복음을 뿌려 보니까 복음이 하나의 비누방울처럼 안에 뭐가 들어 있어요? 예수님이 안에 들어 있죠. 성령이 안에 들어 있죠. 마치 케이크에 초코렛가루를 군데군데 폭탄 터지듯이 팍팍 뿌린 것처럼. 복음이 전파되고 보니까 그것 단도리 해야 하기 때문에 이 세상 신이 거기에다 와르르 몰두를 해가지고 핍박을 해야 되는 겁니다. 그 핍박 이야기가 사도행전 8장 초반의 이야기 입니다.
아무래도 에베소서 2장을 거론해야 되겠습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이것을 죽은 법정 스님이 인정 하겠습니까? 안 하죠. 그들은 이미 성령을 안 받았기 때문에 너나 나나 똑같다는 거예요. 무슨 악마가 있고 없다는 거예요. 악마가 있다는 것은 항상 대비적으로 성령을 받은 사람에게만 그 다음부터 뭐가 보이냐면 아, 저렇게 믿는 척하는 악마의 모습 자체가 보이는 거예요.
그럼 악마라는 것은 항상 처음에는 은혜로 시작한 것 같지만 끝은 행함으로 가요. 다 이루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성령이 왔는데 , 보증금이죠. 이미 아파트가 내 이름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보증금을 내고 이미 갖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아니고 구원받는 것은 내 믿음으로 구원받고. 선물이 아니고. 사실은 선물로 와버리면 선물만 받는 것이 아니고 다 받는 것이 되는데 그들은 믿는 것도 내가 믿고 행하는 것도 내가 행하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그 행함에 대해서 남들이 다 속아 넘어갈 수 있도록 주도권을 자기가 잡고 민우야! 나 사랑하지? 예수님 저 사랑하죠? 자꾸 행한것을 수정하고 억지로 행함으로 만들어 내는 겁니다.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본인들이. 선물은요 그냥 받으면 되는 거예요.줘도 못 먹나? 그냥 맛있게 먹으면 되는데 내가 이 떡을 만들고. 뭐 어디 떡을 만들 재료 있습니까? 수박을 내가 재배하고. 이러지 말란 말입니다. 선물이네 하고 떡 하나 먹으면 되잖아요. 주께서 그냥 먹으라고 선물로 준 것을 우리가 집에서 이걸 만들고 있는 거예요.
먹는 것도 감사하고, 펀드 넣어서 폭삭 망해도 감사하고, 주식값 내려 간 것도 감사하고, 애 농땡이 친 것도 감사하고. 모든 것이 이미 다 이루었다의 범주안에서 이미 내 생명인, 펀드는 이미 하늘나라에 가있다. 가끔은 전화해서 "펀드 잘 있죠?" 믿음으로 전화해 봐라. 그런 식으로 주신 은혜로 살면 되는데. 저길 가기 위해서 지가 왜 갑니까? 저 산에. 지가 원숭이 입니까? 여기서부터 장비 꾸리고 헌금, 십일조, 봉사, 온갖 재료를 집어 넣었는데.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보니까 서류가 "뭐 이런 행함이 다 와 있나?" "아니 우리 목사님이 이렇게 들어가면 된다고 했는데, 그래서 방언도 하고 기도도 하고 부자도 되고 했는데." "내가 준 것 말야?" "주님이 뭐 줬는데요? 다 이것도 교회에서 해 온 건데요?" "내가 준 것, 그것도 거저 준 거?" "뭐요? 그런 것 못들어 봤습니다." "골치아프다. 내가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고 했잖아. 피로." 제품에 하자가 났습니다. 원료 좋은 것 넣으면 뭐합니까? 하늘나라에서 안 받아 주면 끝나는 거예요.
간통한 여자 보고 뭐라고 했습니까? "너를 정죄한 자들이 어디 있느냐?" 면접을 보는데 사장, 부장, 차장이 면접하면서 "저 여자 간통했으니까 우리 회사 안 됩니다." 쭉 하는데 회장님이, 주님이 회장님입니다. 너를 못 넣는다는 사람이 누가 있더냐? 사장님은 가셨고 부장님도 가셨고 차장님도 가셨고 여기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면 내가 넣어 줄께. 나는 회장이니까. "너는 정죄함이 없는니라." 나중에 무엇을 근거로 해서? 예수님의 피를 근거로 해서. 장차 질 십자가 피로 "너가 간통을 했어. 그것 상관 없어. 그것 가지고 시험 문제가 아니니까." 예수님이 준 피가 마지막에 통과를 결정하는 겁니다. "다 이루었다." 이 복음을 여러분들이 미리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너를 정죄한 사람이 어디 있더냐? 사실은 우리자신이 우리를 정죄했습니다. 내가 잘못된 하나님과 나라는 그 종교틀을 가지고 얼마나 나를 책망하고 심판했는지 힘들어 하면서 신앙생활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나 자신의 행함을 보지 말고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내 대신 책임져 주시고 대신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저희들이 마음속에 받아서 항상 그것을 앞장 세우면서 주님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