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625 행1:3 인간이 지킬것 없고, 약속 스스로 성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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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090625a행1장3절a말씀스스로이루는약속a
20090625 대전강의 사도행전 3강
2009-07-10 13:12:46 녹취 : 이미아
지난번에 사도행전을 하면서 간단히 복습해 보면 사도행전 앞에 반드시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 있었다고 했었습니다. 그 앞에 뭐가 있었느냐면 구약이 있었죠. 그래서 제가 지난 번에 강의하면서 사도행전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을 복음서라 하는데 이 복음서를 알아야 하고 복음서 이전에 구약을 알아야 하는데 지난 시간에 구약의 핵심이 뭐냐 하면 아브라함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뭐냐 하면 축복과 저주를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에게 준 것이 아니고 아브라함을 통해서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리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를 내린다고 창세기 12장에서 했는데 기억나시죠? 그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는데 여기에 본인 아브람이 아브라함 될 수는 없어요. 그런데 아브람을 아브라함 되게 할 때 여기 누가 관여하는데 하나님이 관여하시는데 요게 바로 그냥 아까 한 맺힌 하나님 말고 여기 하나님이 언약으로 관여하시는 것입니다. 언약이란 말이 생소하면 다른 말로 바꾸면 약속으로 관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은 우리보고 지키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보고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이 지키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인천에서 주례하는데 주례할 때 이랬습니다. 남자와 여자하고 두 사람이 한 몸 되게 할 때 그 한 몸 되게 하는 것을 신랑 신부보고 하라는 말이 아니예요. 하나님이 그렇게 짝지어 준 것을 누가 나누랴. 다시 말해서 이미 한 몸 되게 한 것은 하나님이 하는 거예요. 우리 재원이 있는데 재원이가 태어날 때 너 누구하고 의논했어? 안했지. 마찬가지로 죽을 때도 너 죽고 싶다고 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는 것입니다. 그럼 재원이 안에 뭐가 들어 있느냐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걸 믿느냐 구원받고 요걸 믿지 않느냐 지옥 가는 것입니다. 왜 자기 바탕이니까. 하나님의 의해서 태어나서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가고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갑니다 라는 것을 믿어야 해요.
그래서 아브람이 아브라함 될 때 약속인데 약속을 설명하면서 이 약속이란 말이 어렵기 때문에 예를 든 것이 방주. 노아의 약속은 뭐였습니까? 노아의 약속은 노아가 뭘 만들고? 방주를 만들고. 방주 안에 들어가면 홍수에서 살아남고 방주에 들어가지 않으면 물에 빠져 죽는다라는 것이 특별히 노아에게 준 약속이었습니다. 그 때 노아 방주에 몇 명 들어갔습니까? 1번 오천명 2번 이만명 3번 십이만명 4번 여덟명. 한 식구 여덟명 밖에 안 들어갔습니다. 보세요. 방주는 크게 지어놓았을 때 그 규모상 몇 천 명 들어갈 것 같았지만 달랑 여덟명 들어갔습니다. 여덟명 적다고 홍수가 안 왔습니까? "얘 좀 더 채워라" 홍수가 지연되었습니까? 아니죠. 홍수는 홍수대로 약속대로 오고 여덟명만 구원 받았습니다. 이게 바로 노아의 약속이었습니다. 노아의 약속.
그런데 신약 성경에 오면 이 약속들이 그때그때마다 약속들이 다 달랐어요. 이걸 지난 수요일에 한 내용을 예를 들면 여기 세탁기 안에 물통이 있죠. 물통에다 세탁물을 넣고 짜면 바깥에 물이 나오죠. 노아를 집어넣고 짜면 방주가 나오고 아브라함을 집어넣고 짜면 이삭이 나오고 다윗을 집어넣고 짜면 죄인을 용서하시는 다윗의 자손이 나오죠. 예수님을 집어넣고 짜면 예수님의 피와 살이 나왔어요. 이 바깥에 튀어나온 것이 뭐냐면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약속을 믿음으로서 이 세탁기 안에, 약속 안에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원리가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아까 제가 이야기한 한 맺힌 하나님하고 아무 상관이 없죠.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만들었다. 그런데 인간은 너무나 힘들다. 이 한을 하나님은 들어 주신다. 이런 하나님은 성경에 없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구약에 있는 약속들이 신약에 오게 되면 예수님께서 쭉 뭐 병도 고치시고 귀신 쫒아 내시고 물 위를 걸으시고 했는데 그런 기적 기적하니까 사람들이 “예수여 우리 앞에서 기적을 보여 주세요” 하니까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보여 주신 기적이 뭐였던가요? 나는 무슨 기적만 보여주겠다. 요나의 기적.
요나의 기적은 죽었는데 사흘 만에 살아난 것입니다. 결국 뭡니까? 십자가죠. 다른 기적은 기적 받아도 구원 얻는데 영향이 있다? 없다? 영향이 없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는데 천국 가겠습니까? 못가겠습니까? 못갑니다. 그것은 요나의 기적이 아니니까. 요나의 기적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육에서 영으로 바뀌는 방법이 뭔 줄 알아요?
니고데모가 이야기 했죠. 니고데모가 예수님 보고 하나님 나라 이야기 해달라고 하니까 예수님께서 사람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그 때 니고데모가 제안한 것이 뭐냐면 내가 어떻게 하면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엄마 뱃속에 들어갔다 다시 태어나야 합니까? 예수님 하신 말씀이 육으로 난 것은 골백번 태어나도 육이다. 육으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으로 난 것은 영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육에서 영으로 바뀌겠는가? 죽으면 되요. 죽으면 다시 살 수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에게 죽으면, 죽는다는 말을 해서 상당히 미안스러운데 애들은 죽는 것이 아직 실감이 나지 않으니까.
죽이는 방법에 여러 가지가 있는데 1번 연탄가스 이것은 어느 탤런트가 이렇게 했고 2번 부엉위 바위에서 뛰어내리는 것 노무현씨가 이렇게 했고 한강에 뛰어내리는 것 어떤 대법원 판사가 이렇게 했고 죽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죽이는 방법은 뭐냐 하면 우리의 자아를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니까. 우리의 자아를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면 죄인에게서 나올 것은 죄 밖에 없기 때문에 이미 죽은 것으로 간주가 되요.
그래서 육에서 영으로 바뀌는 것은 뭐냐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했을 때 그 사람이 육에서 영으로 바뀔 수가 있죠. 참 쉽죠. 나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하면 육에서 영으로 바뀐 것입니다. 아까 같이 나는 한 맺혔습니다 하면 절대로 안바뀝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너만 한이 있냐 다른 사람 한 다 있다. 나는 한이 맺혔습니다. 이렇게 하면 안되고 나는 죄인입니다 해야 합니다. 죄인일 경우에 지금 여기에 있는 시계나 칠판이나 모든 식구들은 다 뭐가 되겠어요? 죄인인데 죄의 값은 뭐라? 죄의 값은 죽음이죠. 죽었는데 지금 심장 만져 보세요. 심장이 뛰고 있죠. 죽었는데 심장이 뛰고 있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요즘 제가 머리카락이 빠져요. 오십대 중반쯤 빠졌는데 젊을 때는 머리카락이 그냥 나는 것을 은혜로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슬슬 빠지니까 은혜인줄 알죠. 그렇다면 이 사람은 죄인인데 지금 살아가니까 머리카락 나는 것만 은혜겠어요? 다른 심장 뛰는 것 손톱 발톱 자라는 것 다 은혜죠. 그럼 이 사람은 무슨 덩어리? 죄인이면서도 그걸 용서해주는 무슨 덩어리? 은혜덩어리 되겠죠. 은혜덩어리.
그래서 고린도전서 2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한 번 봅시다. 2장 12절.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학생들 무슨 뜻인줄 딱 들어옵니까? 우리 전체가 은혜 덩어리인 것을 어떤 경우에만 안다? 뭐가 왔을 때만 눈치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성령이 임하면 "아하 내가 죄인인데도 불구하고 은혜 받고 있구나" 를 비로서 그 때 안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서 피아노를 쳤을 때 다른 사람이 피아노 이렇게 치다니 “정말 훌륭하구나 재주가 뛰어나구나”라고 했을 때 “아이구 제가 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할 수 있죠. 그럴 때 진짜 복음을 아는 사람은 “아이구 학생 방금 뭐라고 이야기 했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은혜라는 말은 그렇게 함부로 할 수가 없어 하나님의 성령이 임해야만 할 수 있어..”라는 말을 하는 거예요.
교회가 뭘까요? 아니면 아까 이야기한 한 푸는 곳이 교회입니까 아니죠. 나는 이렇게 못난 죄인인데 나는 이런 은혜 받았어 나는 이런 은혜 받았어 그런 것을 내놓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가 뭘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교회에서 하라 하면 안되요. 만약에 하라 해서 하면 그건 은혜가 아니고 뭐가 되겠습니까? 자기 능력이 되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자 여기 매직을 다른 사람은 두 번 돌리는데 나는 세 번씩이나 돌렸다. “봐 당신 할 수 있어?” “아 ..아 이거 안되네..”그렇다면 이것은 나의 은혜가 아니고 나의 행함이 되겠죠. 그래서 교회가 행함을 이야기하면 은혜가 깨어지고 자기 자랑을 하는 마당이 되겠죠. 나는 이것 자랑하고 돈 자랑하고 뭐 자랑하고...근데 교인들은 전부 다 죽은 자들이 모인 것입니다.
보통 교회 꼭대기에 뭐가 있어요? 십자가. 십자가가라는 것은 원래 그 안에 누가 죽었다는 뜻이예요. 아시겠어요. 서양 영화 보면 나오죠. 언제 십자가를 꽂죠? 어떤 사람이 죽어서 무덤 만들어 놓고 십자가 꽂죠. 십자가 밑에 뭐가 있다? 사람 죽었노라 이 말 아닙니까? 죽은 거예요. 이씨가 십자가 달리면 이래서 죽었습니다 라고 해야 되요. 그렇지 않습니까? 십자가 밑에, 십자가를 믿는 다는 것은 나는 죽었습니다.
죽었는데 왜 살아 났어요? 복습해 보면 죄의 값은 죽은 잔데 죽은자가 왜 살아나요? 뭐 때문입니까? 은혜. 그렇다면 우리가 교회에 와서 뭘 이야기 합니까? 지 자랑하는게 아니고 누굴 이야기 해요?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렇게 받고 삽니다. 황공스럽게도.” 그걸 내놓을 때 하나님께 비로서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쉽죠. 아주 간단해요.
자 사도행전. 여기서 예수님 공생애 다음에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셔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한 뒤에 그 다음에 나온 것이 사도행전 이예요. 그래서 사도행전 쓴 사람이나 여기 누가복음 쓴 사람이나 같은 사람이라 해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같은 책이라고 봐도 괜찮아요. 사도행전 1장에 보면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 이렇게 나오죠. 먼저 쓴 글은 누가복음을 이야기 하고 내가 먼저 쓴 글에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까 라고 하는 것입니다.
먼저 쓴 글 누가복음하고 사도행전하고 이것이 어떻게 연결 되는지 그림으로 이야기 하겠습니다. 제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12제자들 전부 다 예수님 십자가 지셨을 때 다 버렸죠. 다 예수님 배반했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만 배반한 것이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다 도망갔어요. 심지어 요한은 벌거벗고 도망갔습니다.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다 도망갔습니다. 그러면 여기 누가 남아 있습니까? 예수님만 남아 있죠.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했죠.
그러면 여기 제자들의 노선은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세상적인 노선으로 가 버렸어요. 그래서 예수님하고 헤어졌죠. 예수님은 어디 갔다가? 죽었다가 부활했잖아요. 그렇다면 제자들은 뭡니까? 아직까지 도망가기 바빴지 예수님이 가신 길, 죽었다가 부활에 이르지 않았죠. 그러면 제자들은 구원을 못받죠. 왜? 예수님이 가신 곳이 천국인데 이들은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지 못하고 겁이 나서 도망을 쳐 버렸습니다. 자 어떻게 할래요? 자 여기 재원이다. 주님 십자가... 엄마야 나 살려라 하고 대전 자기 집으로 도망을 쳐 버렸습니다. 어떻게 구원을 받아야겠어요? 그 구원을 받는 방법이 요한복음에 나옵니다.
요한복음 12장 32절.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 구절을 여러분들이 잘 안봤던 구절이죠. 내가 땅에서 들리면 그 다음에 어떻게 하겠다고요? 모든 사람을 어디로 이끌겠노라? 내게로 이끌겠노라. 여기 모든 사람은 자기 택한 백성 모두 입니다. 전 세계에 모든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다시 묻습니다. 제자들은 죽는 것이 겁이 나서 도망쳤습니다. 예수님은 죽는 것이 겁나는 것이 아니고 죽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죽음 속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죽은 예수님을 살려 주셨지만 제자들은 그냥 도망쳤죠. 자 그럼 제자들하고 예수님하고 헤어졌는데 만약에 예수님은 동쪽으로 가시고 제자들은 서쪽으로 갔다고 하면 어떻게 다시 모입니까? 그 모이는 방법이 요한복음 12장 32절을 보니까 너희들이 찾아 오는 방법을 쓰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올라가면 이끌겠노라 그러니까 무슨 뜻인가 하면 예수님이 동쪽으로 가신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위쪽으로 위로 갔어요.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지금 제자들은 아래 그대로 있죠. 예수님은 구름타고 위에 계시고 제자들은 밑에 있으니까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필요하겠죠. 그 엘리베이터를 누가 설치 해준단 말입니까? 우리 쪽예요? 예수님 쪽이예요? 요한복음 12장 32절에서 이끌겠노라 하셨으니까 하늘에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가 있어요. 엘리베이터가 내려와서 우리를 태우고 위로 이끄는 것입니다. 이 방법이예요. 그럼 우리가 할 일은 없죠. 놀랍게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혹시 어떤 사람이 와서 “우리 재원이 어떻게 구원 받았어요?” 라고 묻거든 없어요. “내가 한 것이 없어요.” 왜 없는데 묻거든 은혜거든요. “아니 너는 똑똑하고 머리도 좋고 뭐 이렇게 잘하기 때문에 너 힘으로 하면 하나님께서 예쁘게 봐서 구원해 줄 것이 아니냐?” “저 죄인이거든요.” “죄인은 죽어야 되는데 그럼 어떻게 구원을 받아?” “주님이 선물을 줘서 엘리베이터가 와서 올라갔어요.” 그거 누가 이야기 하는데 저 대구에서 오신 이근호 목사님이 이야기 했어요. 그게 성경에 있대? 성경에 있대요. 요한복음 12장 32절이래요.
지금 교회 문제가 뭐냐 하면 바로 주께서 이끄시는게 없으니까 자기 힘으로 팔짝 팔짝 뛰는 거예요. 박수 치면서 헌금 하면서 기도 하면서 새벽기도 하면서 자꾸 뛰면 목사들이 좋아해서 더 뛰면 당신도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아이구 당신도 좀 더 뛰어야 겠네요.” 더 부추기죠. 이렇게 해서 경쟁들을 붙이는 거예요. 돈 내라고 열심히 하라고 전도하라고 소용없습니다. 구원은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당신이 엘리베이터 안에 타고 있는가 입니다.
그런데 목사님 엘리베이터란 말이 성경에 있습니까? 20세기에 나오는 말인데 그럼 엘리베이터란 말 대신에 무슨 말입니까? 사도행전 1장 8절에 나와요.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너희가 뭘 받고? 권능을 받고. 이 권능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권능이 아닙니다. 이 권능은 그야말로 주신 권능입니다. 권능을 받으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여기 대전까지 이르러 누구의 증인? 예수님의 증인이 되리라. 성령이 임하면, 성령이 임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뭔가 뒤집어 씌이는 것입니다.
여기 만약에 이불이 있다면 이불을 확 던져버리면은, 갑자기 밝았는데 이불이 덮쳐버리면 어떻게 되겠어요? 이불 속이 깜깜하겠죠. 그러면 다른 사람이 "야 너 뭐하고 있어?" "나 지금 이불 밖에 안보여 이불밖에.." "왜???" "이불이 갑자기 와서 뒤집어 씌워 이불 밖에 안보여" "나는 지금 이불만 보입니다." 그 사람을 뭐라고 하냐면 이불의 증인된 겁니다.
나는 죄인인데 뭐가 뒤집어 쓰였어요. 예수님의 용서가 뒤집어 쓰니 눈에 보이는 것이 이래도 용서하심 저래도 용서하심 나같은 인간을 용서하심으로 이끌어 가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 바로 은총. 사죄의 은총, 사죄의 은혜, 믿음 소망 사랑 이런것들 ..뭔가 믿음 소망 사랑이 뒤집어 쓰이니까 내 소망, 내 믿음, 내 사랑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믿음과 주님의 소망이 나한테 뒤집어 쓰인거예요.
여러분들이 만약 내 힘으로 믿는다고 한다면 기분 좋을 때 믿는 것하고 기분 나쁠 때 믿는 것하고 어느 것이 더 믿음직합니까? 여러분들이 기분 좋을 때 사랑하고..형은 동생을 사랑하지. 기분 나쁠 때 사랑하는가? 봐 사랑이 자꾸 바뀌잖아. 그럼 사랑이 변동되잖아. 헷가닥하는 사랑이잖아. 그 사랑은 믿을게 못되요. 그런데 놀랍게도 주님의 사랑은 우리가 잘나도 용서하시고 못나도 용서하시고 뭐 우리 잘난것도 없지만 하여튼 항상 이불 뒤집어 쓰듯이 쓰니까 내가 나 된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는 고린도 전서 15장 10절."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예수님의 은혜를 증언하는 것을 다른 말로 능력이라고 합니다. 흔히 말하는 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적인 기적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형편에 있든지 감사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능력입니다. 목사님 이 성경 근거 있습니까?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4장 7절에서 10절. 우리 신직수 전도사님이 읽어 보세요. 7 절.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절.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9 절.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절.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읽을 때 이렇게 읽어도 좋지만 이렇게 읽어보면 답~땁한 일을 당하여도~낙심하지 아니하고 핍~빡을 받아도~버린 바 되지 아니하고 항상 예수 죽인 것을 우리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하심이라...엘리사의 시체가 어떤 사람의 시체에 딱 닿으니까 시체가 살아났어요. 희한하죠. 죽은 엘리사의 시체가 피부에 딱 닿으니까 이미 먼저 선배망자라 용어가 희한하다만은.. 선배 시체. 먼저 죽었던 시체가 그 엘리사의 시체에 부딪히는 순간 무덤에서 살아났어요.
그것은 무엇을 뜻하냐면 장차 죽은 자도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생명이 그 안에 임해서 죽은 너희들도 살리라 믿습니까? 예수님은 죽었다가 살아 났잖아요. 예수님은 죽었다가 살아난 거 맞죠? 이런 예까지 들어야 되는지 자 보세요. 만약 안경집이 어떤 버릇이 있냐면 딱딱딱하는 버릇이 있다고 합시다. 그걸 내가 삼켰어요. 삼키니까 식당에 들어가면 가만 들어보면 딱딱딱 소리가 나겠지요. 지금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뭐냐 하면 예수님은 죽은데서 살아나죠. 그럼 안경집이 예수님이라고 하면 죽었다 살아난 안경집이 식당에 들어가면 나는 어떻게 되요? 비록 나는 몸은 죽어도 내 안에 있는 죽었다가 살아난 예수님의 능력으로 죽을 우리도 살아요? 죽어요? 살지요.
로마서 8장 11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저번에 한 것 같은데..."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어찌 우리가 예수님께 감사 안할 수가 있겠습니까? 돈 한 천 억 있으면 살겠습니까? 천 억 있어도 몸 아파서 죽으면 그만입니다. 진짜 우리가 사는 것은 예수님의 영이 임해서 우리가 사는 것 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문제 하나 나갑니다. 아까 예수의 영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안다고 했죠? 분명 잊어 버렸을 거예요. 예수님의 영이 있어야 사는데 예수님의 영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안다고 했습니까? 그럴 줄 알고 반복하는 것입니다. 두 자. 고린도 전서 2장에 나오는 말씀. 아버지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되면 그게 어떤 사람이라고요?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12절). 미안하니까 더 물어보지 말고 진도 나갑시다.
사도행전 1장 계속해 봅시다. 그렇다면 이 엘리베이터를 내야 하는 작업을 해야겠어요? 안해야겠어요? 해야겠지요. 자 묻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 온다면 엘리베이터는 1층에서 1층으로 내려옵니까? 2층에서 1층에서 내려옵니까? 쉬운 질문은 답변 좀 해주세요. 1층에서 1층 갈 때 엘리베이터를 탑니까? 2층에서 1층으로 내려 올 때 엘리베이터를 탑니까? 2층이 있어야 되겠죠.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현재 1층에 있어야 합니까? 2층에 있어야 합니까? 1층 2층 다 있어야 하겠죠. 그걸 바로 사도행전 1장 10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승천이라는 겁니다.
지금 사도행전 1장은 예수님께서 뭐까지 보여주었느냐면은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 까지 보여 주었죠. 부활하셔 가지고 제자들 옆에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아까 요한복음 12장 32절 말씀처럼 주님께서 들려 올라가면 뭐한다? 반드시 주님께서 올라가면 "나는 구원 받았다. 너희들은 볼 일 봐라" 이게 아니고 이미 올라가면 그 다음부터 무슨 작업한다고 했어요? 올라가고 난 뒤에 너희들을 어떻게? 자기 있는 쪽으로 끄집어 당기는 일을 하죠. 그 때 제가 엘리베이터 내려온다고 했지요. 그 엘리베이터 내려 올려면 예수님이 먼저 앞장서서 같이 있으면 안되고 죽었다가 부활해서 반드시 뭘 해줘야 해요? 승천을 해줘야, 저 윗동네 가야 다시 저 밑에 있는 사람을 끄집어 당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32절 찾아 봅시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저는 이 대목 보면 소름이 끼쳐요.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렸다는 이 말은 우리도 뭘 뜻합니까? 아 사는 수도 있구나 죽는다 죽는다는 것은 아는데 사는 수도 있었네. 하나님이 살려주면 삽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33절) 이렇게 되어 있죠. 엘리베이터가 뭐라고 했습니까? 성령이죠.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뭐가 온다? 하나님의 성령이 오시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이 오게 되면 그 때는 우리가 하나님이 공짜로 주신 은혜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해 봅시다. 우리가 죄인인데 어떻게 죄 없이 구원 받을 수 있습니까? 질문입니다. 우리가 죄인인데 어떻게 구원 받을 수 있죠? 죄를 없애주는 뭐가 있어야 되요? 죄를 없애주는 은혜가 와야 되겠죠. 은혜는 본인들이 열심히 착한 일 하면 됩니까? 안됩니까? 안되죠. 우리 죄를 씻을려면 우리의 지은 죄를 대신 벌 받은 분이 있어야 되겠죠. 이건 정말 쉬운 거예요. 내가 벌 받을 것을 대신 벌 받으면 나에게 돌아올 벌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없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처리하시고 처리해 놓고 엘리베이터식으로 우리에게 내려오면 우리는 뭘 느끼는가하면, 성령이 오게 되면 “아 내 죄는 없어졌구나 예수님이 다 처리 하셨구나”라는 것을 기뻐할 때 그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 돌리는 그러한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다시 한 번 질문 던집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성령을 주실 때 성령을 안 받고 자력으로 천국 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안되죠. 그래서 사도행전 1장 5절 봅시다.
거기 보면 요한이라는 사람이 뭘 줬습니까? 세례를 주었죠. 그 세례가 무슨 세례죠? 물세례죠. 물 퍼부으면 죄 용서받을 수 있습니까? 안되죠. 물세례 받으면 용서 받는 것이 아니예요. 그런데 물세례를 왜 주었느냐 하면 잘 들으세요. 여러분 물고기 아니죠. 물고기 아니니까 사람이 물에 들어가면 죽잖아요. 물세례 주는 것은 그냥 물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물속에 잠기는 거예요. 그러면 죽은 자가 되요. 세례 요한이 물세례 주는 것은 너는 죽은 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뭣 때문에 죽습니까? 죄로 인하여 죽어요. 원래 죄를 짓게 되었으면 죽게 되어 있어요. 하늘 나라 재판에는 징역 50년 이런 것이 없어요. 하나 밖에 없어요. “죄 지었나?” “예.” 죄 지었으면 이건 죽음이예요. 사형 밖에 없어요. 로마서 1장에 나와요.
32절에 보면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이같은 일들이 수군수군 시기 불의 추악 마음에 하나님 두기 싫어하는 것 부모를 거역하는 것...전부 다 하나님 보시기에 사형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형 안 시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요만큼이라도 흠이 있으면 사형을 시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요만큼이라도 흠이 있으면 사형을 시킬까요? 그것은 간단합니다. 컴퓨터 고장나면 컴퓨터 죽었죠. 하나님이 만든 인간인데 인간에게 뭔가 악마가 들어와서 흠이 있으면 그 인간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고 이것은 고장 난 것 죽은 것으로 간주해요.
하나님께서는 처음 자신이 만든 완벽하고 흠도 티도 없는 인간을 원하는 거예요. 흠도 티도 없이. 이것은 베드로 후서에 보면 나와요. 흠도 티도 없이...그런데 사람이 태어날 때 부터 남한테 시기와 미움 이런 것이 없을수가 없어요. 늘 생긴단 말이예요. 이 몸 가지고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더러워서 안 받아요. 길거리에 과자 떨어지면 주워 먹습니까? 개는 주워 먹어요. 그러나 사람은 더럽다고 휙휙 불어도 나중에 안 먹잖아요.
인간이 완전 죄로 코팅 되어 있어요. 더러워서 못 먹어요. 그래서 죄를 지은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기에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깨끗해야 해요. 깨끗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사람 보고 깨끗하라고 할 수 없고 그 사람을 죽이는 방법 밖에 없어요. 죽이는 방법이 뭐냐 하면 세례죠. 그래서 세례 안에는 뭐가 들어 있다? 세례에는 두 가지 들어 있는데 하나는 죽어라 또 하나는 살아나라 재미있죠.
세례가 뭐냐 하면 이 엘리베이터 안에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 죽었는데 산 채로 들어 있는게 엘리베이터 성령안에 삶입니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이 제 강의를 듣고 뭐냐 하면 “내가 죽은 인간인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이제 아느냐 하지 않았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했습니다. 나중에 성령께서 알게 하시지 않으면 몰라요. 아무리 신학을 해도 모릅니다. 사람이 살이 있으면 한이나 맺혀요. 한이 맺힌다는 것은 못죽겠다는 것입니다. 죽기 싫다는 것입니다. 살려줘!!! 살려줘!!!
그런데 만약 내가 시체라면 모든 것이 감사하죠. 애들 둘이 잘 커주는 것도 감사 그나마 비 올 때 잠 잘 수 있는 집이 있어서 감사 신직수 전도사 집이 얼마나 좋은지 전세 삼 천 얼마?? 전에 집보다 훨씬 좋죠? 얼마나 감사 하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아침에 눈 떠 보면 모든 것이 감사할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설교 했잖아요. 참새하고 백합하고 우리하고 동기 동창이라고. 참새도 누가 기르시나니? 하나님이 기르시고. 들의 백합화도 하나님이 기르시고. 하물며 인간은 누가 기르시고? 하나님이 길러주시고.
길러 주신다고 구원 받는 것이 아니니까 문제는 죄 문젠데. 죄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세례가 와야 하는데 세례의 기능이 있는데 첫째는 죽어라 둘째는 살아라 죽으라는 것만 알면 너무 섭섭하니까 살아라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살아나라 결국 죽었다는 말입니까? 살았다는 말입니까? 죽을 때는 죄로 인하여 죽고 살 때는 뭐로 인하여 살고? 하나님이 주신 의로 인하여 살고.
그래서 예수님의 의가 우리 속에 들어 와야 되는 거예요. 그냥 죽었다가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일 때는 죄 때문에 죽이기도 하시고 살릴 때는 근거가 뭐냐 하면 살릴 때는 의로와야 사는데 우리는 의로울게 없어요. 근데 누가 의로와요? 우리 속에 예수님의 의로우심이 예수님의 순종하심이 우리에게 들어오게 되면 우리는 예수님의 의 때문에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걸 가지고 예수님의 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인이 되었도다 사람은 행함으로 의롭다 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행함으로 착함을 착하다고 하지만 하늘 나라에서는 너가 죄인이며 예수님의 의를 믿는자가 곧 하나님의 의라고 간주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혹독한 강도라도 세리고 창기라도 예수를 믿으면 의인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를 받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런 의를 모르고 자기가 열심을 내어서 교회가서 충성해서 의를 채울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은 결국은 그것이 예수님의 의는 멀리하고 자기 애썼던 자기 공로만 자꾸 누적이 되어서 예수님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자기 잘남에 살아 가는 그런 사람만 되는 것입니다.
한 번 정리해 봅시다. 정리해 보면 쉽습니다. 문답으로 해봅시다. 그게 쉬우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셨을 때 제자들은 어디로 갔다? 다 도망쳤다. 그래서 예수님 혼자 죽음의 길로 가셨고 제자들은 죽음의 길로 가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는 다시 살아나심의 혜택을 입었죠. 제자들은 혜택을 입었다? 못입었다? 못했죠.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애들아 너희들과 빠이빠이다 하고 헤어졌습니까? 다시 찾아 왔습니까? 다시 찾아 왔잖아요.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난 후에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있는다고 하면 제자들은 옛날 식으로 다시 돌아간 셈이 됩니다. 자기는 죽기 싫어요. 구원은 받고 싶은데 죽기는 싫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예수님께서 엘리베이터를 내려 주신다고 했죠. 그 엘리베이터를 두 자로 뭐라고 했어요? 성령. 성령인데 성령이 어떤 식으로 온다? 성령이 오긴 오는데 어떤 식으로 온다? 세례식으로 온다고 했죠.
세례식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고 했죠. 하나는 “에라~ 죽어라!!!” 죽는 이유가 뭣 때문에 죽죠? 우리가 죽는 이유는 죄 때문에. 또 하나는 “에라~ 살아라!!!” 왜 삽니까? 뭣 때문에 살죠? 그냥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뭐가 있어야 살아지는데 뭐가 있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의. 내일 렛슨이 있더라도 이것은 알아야 합니다. 죄 때문에 죽고 하나님의 의 때문에 삽니다.
어떤 강도가 있는데 죄를 지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죽기 전에 예수를 믿었어요. 천국에 갈까요? 지옥에 갈까요? 천국에 가죠. 그 사람의 죄 때문에 이미 죽은 자가 되고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의 때문에 그 의를 보고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내가 천사다 "너 어디가?" 붙들었다 말입니다. "천국갑니다." "뭘 믿고 천국가?" 라고 하면 뭘 내놓을껀데? 예수님의 의. 예수님의 의가 있으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천사가 너의 얼굴을 보는 것이 아니라 너의 속에 뭐가 들어 있다? 예수님의 의가 들어 있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참 쉽죠. 성경 따져 보면 쉬워요. 첫째는 나는 죄인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내세울게 없다. 내세울게 없기 때문에 구원 못받는데 예수님의 의가 와서 구원을 받는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진도 나가 보겠습니다. 1장 9절을 보면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저희 가운데서 어떻게 했다고 했습니까? 올라갔죠. 올라갔습니까? 밑으로 내려갔습니까? 올라갔죠. 어디로 올라갔습니까? 구름 타고 하늘로 올라갔죠. 왜 구름 타고 올라갔습니까? 올라가야 뭐가 내려온다? 성령이 오니까. 올라가야 위에서 엘리베이터가 내려온다고. 아까 1층 2층 이야기 했죠. 같이 붙어 있으면 안되고 위에 올라가 줘야 요한복음 12장 32절에서 내가 들리면 나 있는 곳에 너희들을 끌어 올리겠다고 했습니다. 아랫 층에 있는 사람을 윗 층으로 끌어 올리는 거예요. 1장 6절을 봅시다.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물어요. "예수님 예수님" "왜 그래" "성령이 오셔서 세례를 주심으로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이 언제 쯤 몇 월 몇 일이 되겠습니까? 알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하고 물었던 거예요. 궁금하겠습니까? 궁금 안하겠습니까? 궁금하겠죠. 그런데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위에 올라간다는 생각은 못하고 자기가 있는 땅에서 최고가 된다는 것, 왕초가 된다는 것 그것만 생각하는 거예요. 사고방식이 아직도 글러 먹었어요.
다시 말해서 예수 믿고 난 뒤에 최고가 되는 것. 일본말로 하면 오야봉, 조직의 보스가 되는 것. 이 사람들은 예수 능력 받아 가지고 이 세상에 최고 사람이 되는 거예요. 이걸 희망 했기 때문에 "예수님 우리 구원 받는 때가 언제쯤 됩니까?" 그러니까 예수님 답변이 뭡니까? 그것은 "너희들이 몰라도 돼." "몰라도 돼"라고 한다는 말은 구원 받는데 있어 예수님이 언제 오신다는 것이 구원 받는데 필요합니까? 안필요합니까? 안필요하죠. 그럼 구원 받는데 필요한 것은 따로 있다는 말이죠. 그것은 성령이 오시게 되면 "아하 우리가 그 때 몰라도 되는 것이 맞긴 맞구나 날짜 계산 안해도 이미 우리는 구원 받았구나" “주여 오늘 밤에 오셔도 괜찮습니다. 내일 오셔도 괜찮고 모레 오셔도 괜찮고 저는 항상 깨어 있습니다.”
그래서 11절에 보니까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왜 등장했습니까?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누구죠? 천사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12절). 다시 오신단다.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왜 오시느냐 하면 자기가 성령을 주신 자들을 데려가기 위해서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다시 오시는 광경이 여기에는 안 나왔는데 데살로니가 전서 4장 15절에서 17절을 보면 나옵니다.
15절.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16절.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절.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희한하죠. 이것은 완전히 도킹(docking). 우주인끼리 도킹. 어디에서 도킹한다? 공중에서 도킹한다. 주께서 천사와 나팔 소리와 더불어서 구름 타고 나타나면 지상에 오지는 않아요. 지상에 오지는 않고 그냥 하늘에 대기하고 있으면 땅에서 무덤이 열리면서 죽은 자들이 먼저 끌려 올라가고 그 다음 차례가 누구냐 하면 살아 남은 자도 끌려 올라가서 어디에서 도킹하느냐. 도킹이라는 말 알죠? 만나는 것. 공중에서 주와 함께 만나서 어디로 가느냐 하면 천국에 가서 영원히 함께 산다는 말입니다. 동화에 나오는, 어떤 공상 SF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 것처럼 들리죠.
그런데 이것이 만약에 진짜라면 지상에서 성공하는 것, 지상에서 돈 좀 버는 것, 지상에서 남보다 인기 좋은 것, 이거 별 의미 없죠. 심지어 죽은 자도 살아서 다시 끌려 올라가니까. 그래서 이 당시에 많은 성도들이 핍박을 받고 죽임을 당해도 이런 약속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들은 기뻐했습니다. "아!!! 이런게 노아의 무리구나!!! 하지만 우리는 방주 안에 있어 우리는 예수 안에 있어" 하는 그런 기분으로 아무리 세상 물정이 심해도 우리는 방주같은 예수님의 안에 있기 때문에 주께서 우리를 데려가시는 그 날을 소망할 수 있는 것입니다. 10분 쉽시다. | |
대전090625b행1장3절b말씀스스로이루는약속b
20090625 대전강의 사도행전 4강
2009-07-21 10:43:14 이름 : 이미아
자 두번째 시작하겠습니다. 사도행전 1장을 하는데 아까 끝에 이야기 했던 것 "이스라엘의 회복하심이 이 때이니까" 할 때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원하는 데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너희들은 몰라도 된다 이렇게 이야기 한 것은 바로 구원 받는데는 인간이 똑똑해서 신학을 한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성경공부 한다고 해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임해야 구원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이 임해야 구원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번 물어 봅시다. 예수님의 영이 임했다는 말은 자 여기 보세요. 사람이 이렇게 여기 있습니다. 일단 성경 한 번 찾아 봅시다. 찾아 봐야 여러분들이 기억이 날테니까. 28장 마지막을 보면 마태복음 28장 19-20절.
19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절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볼지어다 그 다음 뭐죠?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죠. 제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느냐면은 성령을 주신다는 이 말은 누군가 있다는 말이잖아요. 누군가...내가 만약에 칠판 뒤에 있는데 볼펜을 확 던지다는 말은 칠판 뒤에 누가 있다는 말입니까? 칠판 뒤에 누군가 있어 가지고 볼펜을 던졌잖아요. 성령이 왔다는 말은 성령을 주시는 분이 누구와 함께 있다? 우리와 함께 있어서 성령을 주고 있는 거예요. 성령이 왔다는 말은 예수님이 계시다는 말이예요. 예수님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있다는 말이예요. 지금 성령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임한다는 말은 우리를 사용하시는 분이 우리가 아니고 성령 주시는 분에 의해서 우리가 사용된다.
이게 뭐예요? 칼이잖아요. 칼을 이렇게 도마 위에 놔두면 저절로 요리가 됩니까? 안되죠. 칼을 누가 쥐고 쓱싹쓱싹 해야 오이라도 썰 것 아닙니까? 누가 쥐고...그러면 칼이 누구냐? 칼이 저와 여러분들 입니다. 문제는 쓰시는 분이 눈에 보인다? 안 보인다? 눈에 안보이는 거예요. 피아노를 친다 피아노를 칠 때 나는 칼로서 피아노를 치고 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 치게 하시는 거예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이근호 목사님은 신비주의 입니다 이렇게 나오는데 성경에 나와요. 말하게 하시는 이는 너가 아니고, 너가 말한 것이 아니고 너 속에 성령께서 너 대신 말을 한다 라고 되어 있어요. 마태복음 11장 20절.
20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참 신기합니다. 성령이 오게 되면 참 신기해요. 성령이 오게 되면 나는 단지 주께서 다루시는 하나의 칼이구나 칼이기 때문에 우리가 뭐 기도한다고 응답 받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필요한대로 우리를 그냥 들어 쓰시는 것입니다. 기도가 나와서 말씀 드리는데 성경에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무엇이 필요합니다 라는 말을 기도에 하라고 했어요? 하지 말라고 했습니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너한테 무엇이 필요한지는 내가 알아서 다 줄께 알아서 다 줄테니까 너는 "감사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저 아버지의 뜻이 저를 칼로서 사용하여 내 속에서 아버지의 뜻만 드러나시면 저는 오케이 입니다"라는 기도를 하세요.
정말 이런 설교를 하면 한국교회 교인들한테 욕 바가지 바가지로 얻어 먹습니다. 정말 욕 많이 얻어 먹습니다. 제가 이런 설교 했다가 쫓겨 났잖아요. 저기 대덕교회에서. 기도 설교 하는데 장로가 설교 중에 나가라 그 따위 설교 할려면 나가라 그러면 장로님 어떻게 설교 해야 합니까? 필요한대로 구하면 주실 것이라고 했는데....필요한 것은 주께서 알아서 필요하고 다만 현재 있는 것도 우리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으로서 주님께서 필요한대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이 오게 되면 열두 제자들이 가룟 유다 빼놓고 열한 제자이지만 대신 나중에 보충해요. 이 제자들이 자기 맘대로 살았게요? 아니면 성령대로 살았게요? 어떻게 살았게요? 둘 중의 하나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살았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살았기 때문에 사도행전 2장 17절 봅시다. 점점 더 깊이 있게 들어갑니다. 보기 전에 또 걱정되서 복습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을 때 제자들은 도망갔다 그래서 예수님만이 죽으시고 부활했는데 제자들은 아직도 죽지도 못하고 부활을 못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엘리베이터처럼 성령이 오시게 되었다. 성령이 오고 난 뒤에 성령 안에는 세례 기능이 있었다. 세례 기능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죽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죽은 자를 도로 살려내는 기능이 있었다. 따라서 성령이 오시게 되면 나는 이미 죽었지만 나는 누구 덕분에 산다? 예수님의 의가 있어서 산다. 그래서 그 때부터는 자기 증인이 아니고 예수님의 증인되어서 산다. 이것이 성령이라고 했죠. 그런데 성령이 임했으면 우리는 칼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 우리를 사용하시는데 어떻게 사용 하시는가 사도행전 2장 17-21절을 제가 읽어 봅니다.
17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절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19절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절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이 대목은 요엘이라는 구약 선지자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 것인데 이 대목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성령이 오게 되면 너희 자녀들과 젊은이들이 무엇을 할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까? 성령이 오게 되면 무엇을 한다? 예언을 하죠. 예언을. 신직수 전도사님 예언 해봤습니까? 성령이 오게 되면 그 속에 누가 살아 있느냐 하면 예수님께서 살아계셔 가지고 말하는 이는 누구다? 내가 아니고 예수님께서 말하죠. 예수님께서 그 속에 살아 계셔서 예언을 하죠. 예언이라는 말을 그대로 하면 장래 일을 미리 말하는 것입니다. 이게 예언인데 여기 예언이라는 것은 옛날 구약에서 볼 때 예언이기에 오늘날 이야기 입니다.
그러면 예언이 뭐냐? 거기 예언의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게 예언의 내용입니다. 예언 한다고 해서 쫑알쫑알 하는 것이 예언이 아니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아까 연극을 한 것처럼 천사가 "어이 너 왜 왔어" "예수님의 의가 있는데요" "어디 보자 있네" "통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예수님의 의인데 이것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우리 학생이 얼음판에 꽈당 넘어졌을 때, 다급할 때 누구 이름을 부릅니까? 엄마야 하죠. 이제는 고치세요. "엄마야"라고 부르는 것은 현재 자기는 위급한 상태이고 엄마야를 부르는 것은 엄마가 구원자가 되겠죠. 어린아이 때, 어릴 때부터 엄마야를 부르잖아요. 어린아이들이 배고플 때 울면서 엄마야를 부르잖아요. 그것이 커도 남아 있어서 엄마야를 부릅니다. 보통 교회 다니는 사람은 "아이구 주여"라고 하잖아요.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내가 어떤 상태에 있다는 말입니까? 내 힘으로 구원될 것 같으면 누구 이름을 부를 이유가 없죠. Help me가 뭐죠? 나를 도와달라는 것 아닙니까? 헬미!!!헬미!!!나를 도와 달라!!!주여 이름을 부른다고 했을 때 어떤 자세로 불러야 한다는 것입니까? 헬프 미(help me)라는 자세로 불러야 한다는 이 말이죠. 장난삼아 끄적끄적 부르는 것이 아니고. 술 먹고 부르는 것이 아니고. 뭐 할 때 부른다? "나는 주님 없이는 못 살겠습니다"라는 그 자세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예요.
뽀빠이라는 만화 영화 있잖아요. 여자 주인공 올리브가 평소에 뽀빠이를 부릅니까? 안 부릅니다.꼭 언제 불러요? 꼭 부르투스에게 당해 가지고 부르죠. 뽀빠이를 부르잖아요. "뽀빠이 살려줘요~"그러면 뽀빠이가 시금치 먹고 근육 불룩 튀어나오고 올리브 구하려고 달려오잖아요.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이 세상이 멸망 당해도 싸다는 것을 느낄 때. 이 땅이 멸망 당해도 싸다는 것,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주여 주님 아니면 안 됩니다. 이것을 가지고 뭐라고 했습니까? 두 자로 예언이며 이 예언은 성령이, 주의 영이 임한 사람만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이 말입니다.
그래서 예언 한다고 해가지고 내일 주식 값이 어떻고 땅 값이 얼마 올라가고 내일 야구 롯데하고 SK하고 붙어서 몇 대 몇으로 이기고 그거 맞춰가지고, 그거 하나 맞추면 스포츠 로또에 전부 당첨 되잖아요. 그런 예언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점쟁이, 5월 달에 동쪽에서 기인을 만나 가지고....그것들은 점쟁이들이 하는거고. 여기서 예언이라는 말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 왜???이 세상은 19절 끝에 보세요. 내가 하늘로서 징조가 올테니 곧 피와 불과 연기. 피와 불과 연기가 어떤 경우에 생길까요? 1번 평화로울 때 2번 잔치할 때 3번 심판받을 때. 몇 번입니까? 심판받을 때 피와 불과 연기가 생깁니다. 아마 우리 신직수 전도사님은 삶 자체가 치열하기 때문에 매일 주의 이름을 부르실 것입니다. 아마 집사님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님 내 힘으로 애들 못 키웁니다. 주의 이름을 부를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들이 자꾸 자꾸 주어지죠. 너무 힘들기 때문에.
자 이렇게 해서 성령이 오게 되면 제 말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성령이 오게 되면 성령을 받은 자만이 누굴 부른다? 주의 이름을 불러서 구원을 받게 되는 거예요. 문제 하나 던집니다. 다음 중 구원 받는 방법은? 1. 헌금 2. 기도 3. 성경공부 4. 주의 이름. 몇 번입니까? 누가 구원해 줍니까? 4번이죠. 1번 2번 3번은 누가 하죠? 내가 하는 거예요. 그런데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누가 한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누가 와서? 성령이 와야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주님이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뭐가 되느냐? 아까 이야기 한 것처럼 주의 이름을 부를 때에 우리는 하나의 칼이 되는 것입니다. 칼이라고 하니까 너무 흉하다 너무 끔찍하네. "나는 칼이다"(I am a knife). 나는 주께서 들어 쓰시는 칼이 되어서 강도짓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요리하고 자기 하는 일을 하라고, 칼로서 하라고 그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거예요.
그러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데, 이거는 중요하지는 않지만 절차상 상당히 어려운 이야기를 하겠어요. 예수님께서 지금 어디에 가 있느냐 하면 하늘나라에 가 있지요. 구름 타고 가고 하늘나라에서 뭘 내려 주셨느냐면 성령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1번 개인에게 온다 2번 집단에게 온다 몇 번 일까요? 놀랍게도 2번이 정답입니다. 성령께서 집단적으로 옵니다. 개인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고 집단적으로 옵니다. 그것이 사도행전 2장에 나옵니다.
1절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절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왜 집단적으로 이렇게 성령이 오시느냐면 구원 받는 것이 나 혼자 잘난 것이 아니고, 집단이라고 하면 쉽게 해봅시다. ABCD...여러 사람이 있잖아요. 한 사람은 바이올린, 한 사람은 피아노, 한 사람은 트럼펫, 한 사람은 농사꾼, 한 사람은 어부, 한 사람은 목사...직업이 다 다르죠. 직업이 다 다른데 구원 받는 것은 한결같이 예수 이름 불러서 구원 받는다면 이 사람들은 직업은 달라도 예수님에게 똑같은 것을 받았다 안 받았다? 똑같은 것을 받았다는 것을 뜻해요. 그래서 자기들끼리 모이면 자기 직업 자랑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들이 예수님께서 받은 것을 자랑할 때 여러 사람이지만 한 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말을 어렵게 했지만 제 실력으로는 이것 보다 더 쉽게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은 똑같은 것을 받았기 때문에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각자 주특기 내놓으라고 하면 다 달라요. 잡채 잘 하는 사람은 잡채 대접하고 탕수육 잘 하는 사람은 탕수육 내놓고 김밥 잘 하는 사람은 김밥 내놓고 주님께서 어느 것을 받아 먹어야 할지 몰라요. 김밥 먹으면 탕수육이 삐지고 탕수육 먹으면 잡채가 삐지고 "주여 내 것은 안 받습니까?" 그렇게 삐지니까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주신 것을 받으므로 내가 너희들이 아무리 숫자가 많더라도 내가 준 것을 도로 받으므로 저희들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이 집에 세 식구인데 주소가 다 다릅니까? 다 같은 집에 살 잖아요. 아무리 밖에 나가서 활동을 해도 밤 되면 한 집에 모이죠. 아무리 직업이 다 달라도 각자 그 사람들은 전부 다 구원 받을 사람이예요. 천국이라는 한 집에, 예수님의 집에 갈 사람들이예요. 그래서 그 사람들은 모였다 하면 마음이 하나같이 한 몸 되는 거예요. 직업이 달라도 한 몸 되는 거예요. 이게 바로 같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가 이런 예를 들어요. 만약에 집이 여러 채가 있단 말예요. ABCD...집이 있는데 전부 집마다 각자가 자기 강아지 다르고 고양이 키우고 어떤 사람은 아무 것도 키우지 않고 다 있는데 갑자기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집집마다 냉장고를 주었다. 큰 냉장고를 주었다. 다 주고 난 뒤에 그 다음 날 "여기 이 마을에서 냉장고 받은 사람 손 들어 보세요."라고 하니까 평소에는 다 음음 하다가 어제 밤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냉장고를 다 주고 난 뒤에 "여러분들 어제 밤에 냉장고 받은 분 손 들어 보세요" 하니까 전부 나와서 손을 들더란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가 산 냉장고 아니고 그저 받은 냉장고이기 때문에 똑같은 것을 받은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간호사나 의사나 판사나 검사나 백수나 관계없이 하나님께서는 똑같이 성령을 주어서 성령을 도로 회수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들이 이제는 한 몸 이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마을에 있는 분들 직업이 가지각색이죠. 특히 아시는 직업이 백수라는 직업도 있고 노처녀라는 직업도 있고 투잡하는 사람도 있지만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사람들이 십자가 마을에 글 쓸 때는 누구 이야기를 해요? 바로 나는 이런 직업이 있어도 누구 때문에 구원 받았다? "예수님 때문에 구원 받았습니다" 하면 교회가 달라도 지역이 달라도 우리는 한 몸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도 하나이요 주도 하나이요 몸도 하나이요"라는 그런 뜻입니다.
자 그런데 이것은 여러분들이 아시죠? 아는데 여기에 보면 그 집단이 어떻게 되느냐 하면 12제자에게 성령이 임합니다. 12제자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함께 있지만. 12제자에게 성령이 임한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옛날에 12지파가 있었어요. 12지파라는 것은 뭐냐 하면 아버지가 한 분 있었는데 아버지의 이름이 야곱인데 야곱의 이름이 바꼈어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꼈어요. 이스라엘의 자식이 몇 명이냐면 12명이었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느냐면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복을 내려 주셨어요. 이 복이 야곱에서 그 다음에 내려 갈 때는 12개의...문어 다리가 몇 개죠? 8개. 그러면 오징어 다리가 몇 개죠? 10개. 뭐 12개짜리 다리 있는거 없는가~^^하여튼 만약에 야곱을 오징어라고 한다면 오징어 다리가 12개라고 한다면 오징어 머리에 복이 온다면 열 두 다리에게 그 복이 이어질까요? 안 이어질까요? 이어지죠. 그걸 가지고 한 몸 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머리고 우리가 그 지체라면, 이 지체에게 머리이신 예수님이 받은 축복이 우리에게 임할까요? 임하지 않을까요? 임하죠. 그 때 머리와 지체를 가지고 한 몸 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교회라고 합니다. 우리 학생들이 학교에 있는데 학교에 아주 잘 사는 재벌 집 아들이 있다고 합시다. 다른 애들은 잘 못사는데 그 아이만 잘 살아요. 그런데 그 엄마가 너무나 유별나서 한 달에 한 번씩은 한 반이 40명인데 피자 40개를 주문해 가지고 다 돌리고 덤으로 주는 콜라까지 다 돌렸다고 합시다. "민수 엄마 웬 피자입니까?" "오늘 제가 쏩니다. 기분 좋습니다. 우리 민수 봐서 오늘 이 반 애들에게 피자 한 판씩 다 돌립니다." 그 때 여러분들 누구한테 감사해야 되겠어요? "아! 역시 내가 피자 주문해서 빨리 왔네" 하면서 자기한테 감사하겠어요? 민수한테 해야겠죠. 그 민수가 누구냐 하면 바로 이스라엘 이예요. 왜냐하면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니까. 내가 이스라엘 되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 야곱 한 분 때문에, 나는 가만 있었는데 그 분, 한 분 잘 되어 가지고 온통 우리가 12지파 전부 다 우리가 복을 받았네 이런 생각을 하는 자들이 이스라엘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이야기 할께요. 이스라엘은 한 분에게 받은 오징어 머리가 받은 복이 밑에 다리까지 완전히 퍼진다는 그 구조. 이런 구조가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처럼, 새로운 이스라엘, 진짜 이스라엘 만들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옛날처럼 제자들을 몇 명 두었어요? 열 두 명. 그것은 왜 그렇습니까?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한 분이 복 받아서 나머지는 공짜로 복 받는 식으로. 예수님이 하늘 나라에 가는 것으로 다른 열 두 지파도 다 구원 받는 거예요.
그러면 열 두 제자에게 왔다는 말은 열 둘이 새끼치고 또 새끼치면 어떻게 되겠어요? 결국엔 수 많은 사람이 144,000명이나 될 정도로 수 많은 사람이, 아니면 144,000명 처럼 계속 퍼지고 퍼져서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한 분 때문에 구원을 받는 그 구조를 이스라엘 구조라 그래서 열 두 제자를 채우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23절에 보면 "저희가 두 사람을 천하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 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자 맛디아 하고 요셉이라는 두 사람이 가룟 유다가 배반하고 죽었잖아요. 12제자 되야 될텐데 한 제자가 비니까 그 빈 부분에 두 사람을 추천했습니다. 하나는 요셉이라는 사람이고 하나는 맛디아 라는 사람입니다. 둘 중에 누가 되었습니까? 맛디아 라는 사람이 드디어 사도가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 대신 12제자가 채워졌습니다. 채워지고 난 뒤에 그들에게 성령이 임해 가지고 그들은 예언을 하면서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라는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27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이 이야기는 베드로가 설교한 대목입니다. 베드로가 성령을 받아서. 다시 이야기 합니다. 성령을 받게 되면 누구의 증인이 된다고 했습니까? 예수님의 증인. 다른 말로 하면 냉장고 내놓는것. 나 이런 냉장고 받았다 해서 예수님을 내놓을 때 어떻게 내놓는가 하는 방법을 보면 우리가 예수를 증거 한다고 예수 예수 한다고 이런 것은 아니죠. 그럼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예수가 누군데? 몰라. 그냥 예수하면 구원받아. 예수 예수 하면 그냥 주문 외우는 거니까. 그래서 구원 못 받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장례식에 다녀왔습니다. 장례식에 보면 관이 있죠. 여러분 관속에 보면 뭐가 있을까요? 사람이 있죠. 그 사람이 물컹물컹 할까요? 안 그러면 생생 할까요? 정말 참혹하게 썩기 시작하니까 영양이 공급 안 되고 산소가 공급 안 되니까 세포가 바이러스에 의해서 박테리아에 의해서 내부 분열이 일어나니까 썩지요. 바이러스는 양식이 있어서 뜯어 먹어야 하니까 뜯어먹죠. 전에 같으면 저항이 있어서 바이러스가 죽었는데 그게 아니고 사람이 죽었으니까 마치 독수리가 시체 뜯어 먹듯이 뜯어 먹어요. 그러면 세균은 늘어나고 세균이 늘어난 것만큼 시체는...이런 이야기 하면 꿈속에 나타나 무섭겠다. 안 무섭죠. 하여튼 관속에 있죠. 그 관속에 있는 사람이 원래부터 시체였습니까? 아니면 살아 있었던 사람입니까?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사람이죠. 생생하게 살았던 사람인데 그 분이 나이 많아서 죽고 난 뒤에는 그렇게 시체가 되죠. 그러면 그렇게 늙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갓난아기도 결국 그렇게 늙잖아요. 그러면 그 관속에 있는 사람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결국 우리 장래의 이야기잖아요.
학교 선생님이 묻습니다. "재원아 커서 뭐가 될래?" 원래 뭐가 정답이예요. "선생님 저 시체 될래요." 이게 정답이잖아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내가 뭘 원하는 것은 중요치 않잖아요. 우리가 확실하게 뭐가 됩니까? 우리는 시체가 되어 가지고 세균의 먹이감이 되는 것입니다. 파리가 들끓는...시체 될래요. 이것이 정답입니다. 대통령 되어 봐야 부엉이 바위에 뛰어 내리고 지금 시체되어 있을건데. 결국 사람은 다 시체 되어서 죽어요. 아무리 이 땅에서 3할 4푼 이것을 누가 쳤어요? 야구선수들. 추지수 같으면 2할 9푼 5리. 이승엽 같으면 홈런 16개. 박지성 같으면 맨유에서 6골. 전부 다 이것은 자기 딴에는 날린 사람들이예요. 막 날린 사람들인데 아무리 날려도 막상 관속에 들어가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결국 이 본문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면 어떤 영혼도 썩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묻습니다. 누가 살려 줍니까? 자 내가 죽어 있습니다. 파리가 끓어요. 내가 "파리야 간지럽다 좀 나가줘" 죽은 사람이 이렇게 합니까? 누가 살려 줘야 해요? 내가 살 수 있습니까? 죽었는데 손가락도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정답은 그 사람 속에 성령이 있으면 성령을 보고 예수님이 우리를 다시는 죽지 않는, 영원히 죽지 않는, 하늘의 천사처럼. "영원히 사는 천사처럼" "영원히 사는 예수님처럼" 우리 속에 성령이 있으면 다시 산다는 이야기를 베드로가 설교를 합니다.
자 예를 듭니다. 여기에 서울대학병원 내과 과장. 우리나라에서 암에 대해서 제일 잘 아는 전문의사가 있는데 강의를 한다고 합시다. “여러분 암에 걸리지 않으려면 식생활을 주의 하시고 평소에 운동을 하시고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꼭 일 년에 두 번씩 정기검진 받아서 혹시 걸렸으면 방사선 치료하면 낫습니다. 제 강의 마치겠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갔습니다. 그 다음에 베드로가 설교를 합니다. “여러분 암 걸렸습니까? 죽었습니까? 여러분 예수 믿으시면 다시 살 수 있습니다.” 둘 중에 어느 쪽이 낫습니까? 어는 쪽이 유리합니까? 어느 쪽이 우리에게 이익입니까?
바로 베드로의 설교처럼 "아!!! 나도 베드로처럼 예수 믿을래요." 할 때 아까 주의 이름을 부른 자는 뭘 얻으리라?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개는 구원 못 받아요. 성령이 들어 올 수 없어서. 자 한 번 보세요. 그런데 서울대학병원 전문의가 강의하고 있는데 북한의 공산당 빨갱이가 와 가지고 "야 김정일에게 복종 안 하면 죽어" "살려 주세요." 하겠죠. "저는 서울 대학교 의사입니다. 저만 살려 주시면 저는 큰 일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설교 하고 있는데 북한의 공산당 빨갱이가 와 가지고 "야 공산주의 안 믿으면 죽어" 베드로가 살려 달라고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방금 베드로가 뭐라고 설교 했어요?
여러분 죽어도 뭐만 있으면? 누구처럼 총 맞은 것처럼, 총 맞아 죽든 뭐해서 죽든 죽어도 성령이 있으면 다시 살 수 있다고 한다면 공산당이 와서 죽인다 해도 우리는 어떻게 죽든 죽어도 다시 살 수 있는 것을 믿기 때문에 베드로가 감옥에 가요. 감옥에 가서 베드로가 어떻게 했느냐 하면 노래를 불렀어요.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잘 모르겠는데 하여튼 기분 째졌어요. 노래를 부르다가 기분이 너무 좋아서 잠을 잤습니다. 이거 여러분 상상 됩니까? 정말 아버지가 예수 믿는다면 천국 가 있습니다. 임 지휘자께서 정말 예수 믿는다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지만. 이것은 서울대학병원 의사도 못하는 겁니다. 판사 검사도 못하고 삼성그룹 현대그룹 재벌도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만이 낫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감옥에 갇혀 가지고 얼마나 마음이 편했든지 노래 부르다가 잤어요. 잠 잘 잤습니다. 잠 잘 자고 있는데 누가 깨우는 거예요. 사람이 잘 때 깨울 때 가장 기분 나쁘죠. 누가 깨웠습니까? 천사가 와서 깨우죠. 천사가 깨워 가지고 "어이 나와 너는 여기 있으면 안 되고 거리에 나가 예수님을 증거 해야 돼" 해서 천사가 와서 깨워서 베드로를 살려 내었다는 것이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살아 계신 거죠.
여러분 기독교라는 것이 감이 옵니까? 기독교라는 것은 단순히 취미나 오락이나 재미나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들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경배하고 이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입니까? 마땅히 해야 되는 것입니까? 마땅히 해야 합니다. 지금 대전에 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하나님도 모르고 말씀도 배우지 않고 경배도 안하고 감사도 아니 하죠. 그들이 정상입니까? 우리가 정상입니까? 우리가 정상입니다. 하나님께 말씀 듣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우리 이 모임이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에 저는 감사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 듣고 자주는 아니더라도 한 달에 한 번이지만 여기 와서 하나님의 뜻을 같이 알고 하는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자 진도 나갑시다. 그래서 27절에 보면"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음부라는 것은 죽은 자들이 가는 세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뭘 당치 않게 한다? 아까 세균에 잡아 먹히는 것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이며" 마르다 마리아의 자매가 있었는데 오빠가 죽었거든요. 죽었는데 무덤 속에서 썩어 냄새가 진동했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사로씨 나사로씨 여기 면회 왔어요. 밖에 동생들이 와 있어요." "나사로야 나오너라"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벌써 썩어 냄새가 나는 그 나사로가 밖에 답답하다는 듯이 베옷을 감고 나오니까 주님께서 "어이 붕대 좀 풀어줘라" 하니까 "아이구 이제 시원하다" 다시 살았습니다. 다시 죽을 때 까지 살았어요.
너희들 군에 안 가봤지? 나사로가 군대에 갔다 제대를 하고 편히 쉬고 있는데 다시 군에 오라고 하니까 사람 환장하는 것입니다. 군에 가봐야 알지. 어떤 꿈에는 군에서 하도 고생을 많이 해서 꿈에 가면 제대 날짜 계산하고 있어요. 깨서 보면 꿈이라 그만큼 군대가 힘든 거예요. 이런 소리하면 군대 빠질라. 마찬가지로 오빠는 지금 편히 쉬고 있는데 동생들 잘못 만나 가지고 다시 도로 세상에 와 가지고 또 밥 먹고 일하고 또 고생하고 쓰레기 분리수거 해야 하고 운전한다고 고속도로 달리고 선풍기 고쳐야 되고 강아지 돌봐야 하고 온갖 고생 고생을 다 하는 거예요. "니들이 참 고생이 많다~"
31절 봅시다.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32절) 이 예수를 성령께서 오셔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분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할 때 38절을 봅시다. 예수님 있는 곳에 가려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뭘 받고? 세례를 받고. 세례를 받으면 세례의 기능이 첫 번째 기능이 "너는 죽어야 돼" 두 번째 기능은 "너는 살아야 돼" 하게 되면 뭐가 없어지느냐면 죄 사함. 죄가 있는데 사함이라는 것은 있는 죄를 없애는 것입니다. 죄가 있는데 피가 덮히면 없죠? 죄가 없는 채로 구원받는다는 이 말 입니다. 어떻게? 예수님과 함께 세례를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세례를 받는 것이 뭐냐? 성령이 오게 되면 예수님이 내 대신 죄를 처리 했다는 것을 믿게 되어서 은혜를 아는 것. 내가 용서 받은 것이 내가 착해서 용서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공로로, 예수님의 덕분으로, 예수님께서 봐줘 가지고 나 같은 더러운 인간 추잡하고 더러운 인간을 예수님이 봐줘 가지고 구원 받는 것 이예요. 아직 여러분들이 어려서 추잡하고 더러운 일을 안 해봤죠? 그런 일이 있으면 곤란하지만. 하여튼 앞으로 인생 살면서 추잡하고 더러운 짓을 할 때도 있을 거예요. 거리에 침 뱉고 하는 그런 정도가 아니고, 술 먹고 노상방뇨 하는 것 그 정도가 아니고 정말 추잡하고 더러운 짓까지 해도 그 더럽고 지저분한 인간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내가 너의 죄를 다 가져 갈께" 해서 "죄!!!" 아무 아무개 죄를 지워버리면 누구누구의 의가 되는 것입니다. 죄가 있는 자리에 의가 생겨서 그 의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는 거예요.
이것을 베드로가 설교를 하는 거예요. "여러분 예수 믿고 구원 받으세요"라고 하니까 39절에 보니까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이 약속은, 제일 처음에 강의할 때 복습하면서 노아의 약속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두 자로 방주라고 했죠. 방주라고 해서 배도 아닌 것이 잠수함도 아닌 것이 뭐 이런 것이 있다고 했죠. 이 방주 안에 들어올 때 비가와도 살았잖아요. 이게 약속이잖아요. 그러면 지금의 약속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용서받는 것이 오늘날 우리를 영원히 썩음을 당치 않고 살려내는 약속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믿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 믿을 수 있다? 뭐가 올 때? 성령이 와야 성령이 오면, 은혜가 오면 용서받은 것을 믿게 되는 은혜가 오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예수님 때문에 구원 받을 수 있어"라는 그런 은혜가 오게 되면 그 사람은 영적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영적 사람이라는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야기 하겠습니다. 39절 다시 보면 이 약속은, 방주 같은 약속은 오직 먼 데 사람 우리 주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이것이 무슨 뜻인가 하면 이사야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너희들이 찾지도 않았는데...그 대목 한 번 찾아 봐야 겠어요. 정말 이 이야기는 여러분 이렇게 쉽게 하지만 감격스러워서 눈물 나는 이야기예요.
이사야 65장 1절 누가 한 번 읽어 보세요.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게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보세요. 여호와가 누군지 이스라엘 하나님이 누군지 언약이 무엇인지 아브라함이 누군지 모세가 누군지 예레미야가 누군지 다윗이 누군지 우리는 한국 사람이니까 몰라도 되는 것으로 알았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찾아 오시니까 아 예수님이 이런 분이구나 예례미야가 이렇구나 아브라함이 이렇구나 해서 모든 먼 데 사람,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불러 주신 사람한테는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너 이리와 너는 나의 칼이야 너는 이미 구원 받았어"라고 불러 주신 사람한테는 주께서 이미 용서 할려고 만반의 준비가 다 되어 있어서 부른 사람 한테는 죄 사함의 은총이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하나님께서 불러 주지 아니하면 아무도 구원받지 못한다는 원칙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자 하나만 더 하고 마치겠습니다.
42절.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사도의 가르침이 뭐예요? 방금 한 것이죠. "누구든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서 저희들이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며 전혀 힘쓰고 믿는 사람들이 서로 모여서 통용하고 왜 이렇게 인심이 좋습니까? 뭘 받았기 때문에? 죄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도 어떻게? 돈 주고 받은 것이 아니고 공짜로 구원 받았기 때문에 너무 기분 좋아서......
"당신도 구원 받았어요?"
"나도 구원받았어요."
"당신도 호출 당했어요?"
"나도 호출 당했어요."
"누가 호출 했는데요?"
"예수님이 불러 줬습니다."
"나도 불러 줬는데"
"아이구 당신도 예수님 덕분에 용서를 받았구나"
"201동 아줌마 나도 구원 받았어요"
하니까 서로 인심이 후해지고 오늘도 서로 도와 주는 겁니다. 바라기는 우리 학생들이 엄마의 아들로 그냥 지내지 말고 이제는 구원받은 엄마로 또는 구원받은 자녀로서, 이제는 그냥 보통의 엄마 아들로 지내지 말고 복음으로 하나 되기를 바랍니다. "너도 아버지처럼 구원 받을 수 있어" "나도 아버지처럼 구원 받을 수 있어" "예수님한테 용서받으면 헤어지지 않고 영원히 천국에서 사는 거야" 하는 그런 소망이 이 가정과 저와 여러분에게 덮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공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죄 짓는 것 밖에는 할 줄 몰랐고 우리는 이기주의 밖엔 모르고 내 편한 것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더럽고 지저분하고 욕심만 채우는 우리의 죄를 예수님의 십자가로 용서해 주시고 너는 이미 구원 받았다고 알려 주시니 이러한 큰 혜택을 입은 것에 감사하면서 세상에 나가서 예수님의 증인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