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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공부가 사도행전 3장 할 차례입니다. 지난 번에는 사도행전 1-2장까지 했습니다. 한 달 전에 했기 때문에 복습 한 번 하겠습니다. 사도행전을 그림으로 설명해 드리면 여기에는 구약이 있고 구약 끝나는데가 예수님이 오시면 구약이 끝납니다. 예수님이 오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이렇게 이야기 했거든요.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거예요. 아니, 천국이라는 것은 하늘에 있는 걸로 아는데 어떻게 예수님이 오시면 천국이 오느냐.
예수님 뒤에 딸려서 뭐가 온다는 말입니까? 예수님 뒤에 딸려서 천국이 오죠. 예수님이 안 오시면 천국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내가 있으매 천국이 왔다는 말은 예수님이 없으면 천국이 없다는 말이죠. 그럼 질문 해볼께요. 예수님 오신 천국 말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천국은 천국이겠습니까? 아니겠습니까? 아니죠. 예수님께서 이미 사람들이 천국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 당시 사람들이 천국 가고 싶어서 천국을 고대하고 있는데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것이 아니고 그렇게 되면 너희들 잘 믿어라 그런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했느냐 하면 회개하라고 했죠.
회개하라 그 다음에 천국이 임한다 했으니까 "회개하라" 라는 말은 누가 했습니까? 예수님 본인이 했죠. 본인이 했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당신이 뭐야 당신이 뭔데 너무 건방을 떠느냐 말이죠. 우리 잘 믿고 있는데 당신이 뭔데 회개하라 다른 말로 하면, 요한 복음에 나오는 말씀인데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고 이야기 했을 때에 다른 기존의 이미 천국을 가르쳤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서기관들이 이 예수님을 방치하겠습니까? 죽여 버리겠습니까? 죽여 버리겠죠.
보통 우리가 성경 보면서 예수님께서 천국 이야기를 할 때 이렇게 충돌이 일어나죠. 충돌이라는 것을 빼놓고 예수님을 이해하게 되면 안 돼요. 예수님은 낯선, 우리가 생각하지 않은 아주 낯선 천국을 가지고 왔는데 이 천국은 회개하라는 것을 통해서 들어가는 천국인데 그렇지 않고 우리가 알고 있는 천국에 그냥 밥 하나 추가 하듯이 예수님 추가 해서 믿는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간다면 뭐가 성립이 안됩니까? 회개하라가 이루어지지 않겠죠.
회개하라는 말은 무슨 뜻이냐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천국은 잘못된 천국이다. 잘못된 천국을 버리고 예수님 내가 생각하는 천국을 가거라 회개하라는 것, U턴하는 것이지요. 이 쪽 길로 가다가 돌아서서 저 쪽 길로 가는 것입니다. 이 쪽 길은 잘못된 길이고 이 쪽 길은 옳다고 그것을 회개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람들이 예수를 믿을 때 회개하라고 했으니까 회개하라는 기준은 누가 제시하겠습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죄가 회개하라는 기준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예수님께서 새롭게 하신 그 말씀이 회개하라는 기준이 되겠습니까? 둘 중이 어느 것이겠습니까? 우리가 하는 회개는 회개가 아니고 반성이 되겠죠. 그런데 새롭게 예수님께서 회개하라고 해놓고 그 다음에 말씀을 줘버리면 회개하고의 기준은 예수님께서 정하겠지요.
예수님 본인이 회개하라고 했으니까. 내 말을 듣고 회개하라고 했으니까 그 기준을 예수님 쪽에서 제시하죠. 예수님 쪽에서 제시한단 말입니다. 예수님 쪽에서 회개하라는 기준을, 이것은 제가 지어낸 것이 아니고 성경에 있는대로 하겠습니다. 금식일 날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서기관들..바.사.서..그 당시 예수님을 반대했던 사람들이 금식일 날 금식을 했잖아요. 금식을 할 때에 예수님도 금식을 했습니까? 우리 재아가 이야기 해 보세요.
금식일 날 예수님께서도 금식을 했어요? 네. 안 했습니다. 여기 예수님이 금식할 때 금식하지 않고 죄인들과 함께 식사했죠. 보란듯이 금식일 날. 그 때 예수님의 기준이 뭐냐면은, 너희들 왜 금식일 날 금식을 하지 않느냐 했을 때에 예수님께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데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시면서 건강한 자는 내가 필요 없고 병든 자라야 내가 필요하다고 하잖아요. 그렇다면 예수님의 회개 기준이 뭐예요? 소위 "나는 착한 사람인데 더 착해지기 위해서 금식하고 하나님 말씀 지키겠다" 라는 사람은 예수님의 새로운 기준에 의하면 반성할 거리가 아니고 회개할 거리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죄인이 할 수 있는 것이 뭐냐 하면 죄인이 할 수 있는게 의인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거 하나 물어 봅시다. 죄인이 어떻게 하면 의인이 되죠? 재원이. 죄를..사모님. 예수님이 용서해 주시면..틀렸습니다. 정답은 안 됩니다. 될 수가 없어요. 이 땅이고 저 땅이고 안 됩니다. 될 수가 없어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얼마나 휼륭한 사람들인지 예수님이 이야기 했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바리새인 보다 더 의가 낫지 아니하며 결단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급의 윤리와 도덕자가 누구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과 서기관들입니다(바.사.서).
그런데 그들이 금식할 때에 예수님께서는 식사하고 식사할 때 또 술이 들어가야 하고 술 잡숫고 식사해서 그래서 예수님 욕 얻어 먹었습니다. 금식일 날 술 먹고 해서 주위 사람들한테 욕 먹고 이렇게 할 때 누가 고자질하니까 예수님은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하는 천국이라는 것은 간단하게 이렇습니다. 사람이 신에게 뭘 바치고 행한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인간을 위해서 바쳐야 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예수님이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의 특징이 뭐냐면은 십일조하고 주일성수하고 교회 충성하고 봉사하고 하는 것이 복음이 아니라 뭘 알아 차려야 하냐면 내가 뭘 해도 이것은 소용 없는 것이고 주께서 뭘 해도 다 소용있는 것이고 만약에 천국에 구원 받을 때 천사가 검사할 때면 뭘 행했느냐가 아니고 뭘 받았느냐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것이 아직도 우리 속에 남아 있을 때 그게 우리가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럼 다시 이야기 해 봅시다. 죄인이 어떻게 하면 의인이 됩니까? 똑같은 질문입니다. 죄인이 어떻게 행하면? 제 질문 잘 들어 보세요. 죄인이 그 다음에 주체 아닙니까? 어떻게 행하면 행함의 주체가 죄인 아닙니까? 죄인이 어떻게 행하면 의인 됩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정답은 안되죠. 주체가 누구입니까? 주체가 죄인이 회개해도 안되고 예수 믿어도 안되죠. 아 진짜 갑자기 어렵게 되어 버렸는데 죄인이 예수 믿어도 구원 못받아요. 왜냐하면 죄인이 예수 믿는 것을 가지고 로마서에 보면 행함이라고 합니다.
자, 예수님 십자가 있습니다.예수님이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 있습니다. 내가 예수 피를 믿으면 내가 구원 받는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왜 잘못됐느냐 하면 인간이 예수님 피를 믿어 버리면 이것이 합쳐서 인간의 행함이 되어 버립니다. 믿는 행함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에 보면 예수님의 피 흘리심이 그냥 머물러 있지 않고 예수님 쪽에서 뭐가 오느냐면 성령이 와요. 이게 바로 지난 시간에 강의 했던 사도행전 2장의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믿는 사람에게 성령이 오게 되면 우리 내부에 낯선 믿음이 발생되어 버립니다. 낯선 믿음. 낯선 믿음이 오게 되어 버리면 어떤 믿음이냐면은 난 뭘 해도 죄인이며 내가 구원 받는 것은 예수님의 피로 용서 받아서 의인 되는구나 죄인인 내가 예수님의 성령의 피 복음을 인하여 십자가 피로 인하여 용서가 되고, 이것을 새 언약이라고 하는데 피와 살을 주게 되면 용서 되는데, 용서 되어서 의인 되는 이 모든 과정의 주체자가 내가 아니고 우리 속에 들어 온 예수님의 영이 이 일을 행한다는 것이 믿어 질 때 이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믿음을 선물이라고 에베소서 2:8에 보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물을 내게 주셨는데 그 선물은 너가 행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고 그냥 선물이다. 따라서 왜 선물을 줘서 구원 시키는가 아무라도 내 행함으로 구원 얻었다고 하는 소리를 못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잘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잘 할 수 있다고 자부하면서도 "내가 잘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믿을 수 있습니다." 라고 자부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낯선 믿음을 주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어서 모든 영광과 공로를 하나님의 선물에 있게 한다는 것,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 새롭게 나타난 천국에 들어가는 방식이 이 방식입니다.
로마서 11장 35절에 누가 한 번 읽어 보세요. 읽으신 분이 한 번 설명해 보세요. 뒤에 물음표가 있어야 확실한데.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무슨 뜻입니까? 글자 그대로 하면 누가 주께 드렸드리만 그 드린 것에 대해서 갚는 식으로 나한테 구원이 왔다 라고 주장할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까? 없다는 말입니까?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구원 받은 사람의 특징이 뭐예요? "내가 이렇게 십일조하고 주일성수하고 목사를 섬겼더니만, 교회에 충성했더니만 우리 가정에 복을 주셨구나" 라고 여기는 사람은 지금 전혀 믿음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진짜 믿음을 선물로 받은 사람 같으면 이런 감격이 나오죠. 아휴 내가 이렇게... 7월달에 장맛비가 내렸잖아요. 7월달에 비 내리기 전에 대전에 가물었잖아요.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이여 비 내려 달라고 했잖아요. 비 내려 주기 위해서 우리가 어떤 행동을 했습니까?
만약에 교회와서 비 내려 달라고 기도해 버리면 기도해서 7월달에 비가 내렸다면 어떤 논리가 성립이 되죠? 7월 달에 기도를 했더니만 응답을 받아서 비 내린 것이되죠. 그러면 어디에 어긋나요. 로마서 11장 35에 어긋나죠. 우리가 기도를 안 했으면 비가 안 올건데 기도를 했더니만 비가 온 것이 되버리면 35절의 말씀에 정면으로 충돌이 일어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진짜 믿음이 있는 사람은 7월달에 장맛비가 와서 흡족하게 저수지에 물이 차 있으면 그것을 뭘로 봅니까? "하나님 우리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데 또 우리를 살려 주시려고 이렇게 비를 내려 주셨군요". 이렇게 할 때 공로가 누구 공로가 됩니까? 주님의 공로로만 돌리는 것 이게 피조물이 해야 될 일입니다.
이번 수련회 때 다니엘을 했는데 다니엘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단5:23). 하나님께서 호흡을 주셨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에 보면 하나님께서 벨사살 왕에게 "내가 너에게 평소에 호흡을 주었다" 라고 하시거든요. 그러면 호흡을 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주셨죠. 우리는 밤에 잘 때 새벽 2시 45분에 호흡하기 위해서 종종 깨어 납니까? 깨어나요? 안 깨어나요? 아 숨쉴 때 되었는데 왜 자고 있지 이럽니까? 잠 자다 보면, 잠에 빠져 버리면 재아야 잠 잘 때 너 호흡할려고 잠시 일어나서 운동하고 이러지는 않지? 그러면 너가 잠 잘 때 누가 너의 심장을 뛰게 하지? 성경대로 하면 하나님이지.
그러면 아침에 일어나서 그 하나님께 감사했나? 안하죠. 은혜는 받아 놓고 감사는 안 하고 이런 도둑이 어딨어? 세상에 이래도 죄인이 아니라고!!! 햇빛과 공기를 선인과 악인에게도 주시는데 거기서 감사하는 사람은 성도 밖에 없고 불신자들은 받아 놓기는 마음껏 챙겨 놓고 조금만 자기 뜻대로 안 되면 데모하고 불평하고 반항하고 다 하나님 탓이고 자기 탓 아니고 다 남들 탓이고 성경에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는데 자기들 입 맛 땡기는대로 감사하고 안 그러면 불평하고.
기본적으로 결국은 신앙을 해도 신앙 생활을 하지 않고 다시 말해서 믿는 생활하지 않고 악에 바쳐서 교회 다녀요. 교회 와서 악 쓰고 다니면서 금요 철야 하면서 악쓰고 다니면서 남보다 악을 더 쓰면 보너스가 더 있을 줄 알고 악써서 헌신하면 그만큼 복 받을 줄 알고 뭔가 드리면 그게 돈 먹고 돈 먹기 식으로 드리면 받는 걸로 알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앙이 아니라 종교 테크닉, 종교 기술에 불과 합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구원하는 사람은 악쓰고 애쓰는 사람이 아니고 나는 죄인이었는데 이게 웬 은혜입니까? 웬 떡입니까? 하는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를 아는 사람만 구원 받습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 자신이 행한 것에 대해서 아직도 거기 몰두해 버리면 그것은 자기 부인이 안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걸 삭제시켜 가면서 은혜를 주실 거예요. 그게 아니라... 자기게 있으면 자기게 퉁퉁 부어 있어 붓기가 안 빠지면, 자기 안에 자아가 퉁퉁 부어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 올 자리가, 구석이 없어요. 자아가 퉁퉁 붓고 있어요.
어린 청소년들 보면 생각이 자기 밖에 없어요. 어른들도 마찬가지지만. 자기 밖에 모르니까 하나님이 지난 밤에 내 심장을 눌러서 움직이게 했다는 성경 말씀을 안 믿고 "그것은 기본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하고 "근데 왜 내 뜻대로 안 해주시는데요." " 내 기도 열심히 했는데 왜 기도 응답 안 해주시는데요." 불평 불만을 먼저 터트려서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시는 겁니다. 그런 경우를 우리가 참 많이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그것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방금 이야기 한 것이 구약 초반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예수님 뒤에 천국이 따라오고 이 천국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심으로 말미암아 이 선물받은 믿음으로 천국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믿음이란 무엇으로 산다? 행위, 또는 행함. 여기 두 가지가 있죠. 종교적으로는 종교 행위가 있을 거예요. 주일성수하고 십일조하고 교회에 봉사 충성하고. 윤리 도덕적으로는 남한테 해꼬지 않고 사회에 나가서 구제하고 어려운 사람 돌봐주고 자식들 잘 키우고 그런 것이 있을 거예요. 이 두 가지는 천국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그게 뭐냐? 예수님께서 산상설교에 보면 사모님 잘 아시죠? 마음으로 간음하면 간음죄 됩니까? 안 됩니까? 되죠. 이렇게 종교적으로 윤리 도덕을 행위로 주장하는 바.사.서에게 예수님께서 마음으로 간음해도 간음죄가 된다고 할 때, 이게 만약 25년 동안 마음 속으로도 한 번도 간음 안 하다가 25년 생일 날 오후 두시에 마음에 품으면 그 사람 간음죄가 됩니까? 안 됩니까? 25년 동안 한 번도 마음 속으로도 간음하다가 25년 나이 60되어서 잠깐 5초동안 간음하면 간음죄가 됩니까? 안 됩니까? 되죠. 되니까 이것은 결국은 그동안 잠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 본성도 자기가 제대로 몰랐던 것입니다. 25년 후에 이것이 툭 튀어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산상 설교에 뭐가 나오느냐면은 먹는 것 입는 것 마시는 것 가지고 염려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이거 염려 안 합니까? 해요. 우리 하루 일과가 이거잖아요. 먹는 것 입는 것 마시는 것을 한 글자로 하면 뭐가 되요? 돈이잖아요. 돈이니까 그 앞서서 이야기 한 것이 뭐냐 하면 "돈을 사랑하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든지" 둘 중에 하라 만약에 돈을 사랑하면 누굴 미워함이라? 우리는 둘 다 할려고 해요. 돈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하고 이것이 성립되는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돈을 사랑하게 되면 결국은 누구를 미워하게 된다? 하나님을 미워하게 되고 만약에 더 놀라운 사실은 진짜 하나님 사랑하십니까? 진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뭐를 미워해야 해요? 돈을 미워해야 해요. 재아야 무엇을 미워해야 해요? 돈을 미워해야 해요.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 사랑한다고 해놓고는, 하나님 사랑한다는 말만 하고 그 다음에 다른 말을 붙이지 않아요. "저는 목사님 돈을 억수로 미워해요" 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자녀 교육 왜 시킵니까? 너는 나처럼 가난해서는 안된다. 자녀 교육, 과외 시키는 것은 오직 하나 때문입니다. 돈 때문이예요. 돈 버는 기술 가르치기 위해서 아이들 교육시키는 것입니다. 뛰어나면 뭐가 된다? 뛰어난 것, 그 만큼 돈이 된다.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라는 것은 돈으로 인간 가치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한 달 수익이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고 그 사람의 인생 성공 실패를 돈으로 측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 올 때도 돈 있는 사람과 돈 없는 사람이 차이가 나요. 돈 있는 교회하고 돈 없는 교회하고 차이가 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복 받았다는 의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다른 말로 하면 수익이 많다는 뜻입니다. 좀 잘 산다 이말입니다. 잘 사는 집은 복 받은걸로 쳐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무엇을 하지 말라? 돈이 무엇을 방해한다? 돈이 하나님을 방해하는 거예요. 부자가 천국가는 것이 떼를 쓰는 거예요. 안되는 일을 떼를 쓰는 거예요. 큼직막한 낙타를 요만한 바늘 구멍에 집어 넣으려는 정말 우직스러운 정말 안되는 짓을 하는 거예요.
이 이야기를 예수님께서 하시니까 제자들이 놀라서 그러면 예수님 물어 봅시다. 그러면 누가 구원 받을 수 있습니까? 정답은 사람은 할 수 없다. 죄인이 어떻게 하면 의인될 수 있습니까? 여러가지 이야기 했지만 다 틀린 답이고 정답은 사람은 할 수 없다. 이것이 즐거워야 해요.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모든 스트레스를 쌓이게 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스트레스를 종교라는 스트레스, 교회라는 스트레스를 날려 버려야 해요. 예를 들면 교회 안 다니게 되었습니다. 교회 발 끊었습니다. 구원 받습니까? 못받습니까? 못받아요. 그럼 교회 나오면 구원 받습니까? 못받습니까? 못받아요. 교회 나와도 안 나와도 구원 받지 못합니다. 정답은 사람이 교회 나온다는 행위로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진짜 구원 받은 사람의 특징이 무엇이냐면 교회 나와도 안 나와도 상관없이 이미 구원이 되었습니다 라는 요소을 본인들이 갖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 강의 해야할 사도행전 3장입니다. 사도행전 3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뭐냐 하면 사람 속에 하나님이 뭘 집어 넣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십니다. 성경대로 하면 뭘 집어 넣느냐면 성령을 집어 넣습니다. 성령을 집어 넣어 버리면 고후1장에 나오는 말씀이예요. 아파트 살 때 처음에 보증금 주죠. 보증금 주고 중도금 주고 보증금을 주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미 이 집은 기어히 내 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때 보증금을 주어요. 보증금을 주었다는 말은 너는 너의 것이 아니고 내것이다. 이미 너는 나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1장 22절 보면 이 보증금을 가지고 성령이라고 합니다.
이제 문제 하나 내겠습니다. 똑같은 문제입니다. 교회 다니면 구원 받습니까? NO. 교회 안 다녀도 구원 받습니까? NO. 그러면 구원 받는 것이 뭐가 있어야 합니까? 내가 교회 차 타고 다니는 행위가 내 구원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뭐가 와야 한다? 보증금이, 하나님이 주시는 보증금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고후1장 22절에 보면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도장을 찍으시고 요새는 사인이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셨느니라.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그 다음에 여러분들이 어떤 것이 궁금해야 하냐면은 그럼 목사님 왜 성령을 받으면 이미 완벽하게 구원을 받은 사람이 되어 버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을 여러분들의 마음속으로 저한테 해주어야 합니다. 성령을 받아 버리면 이제는 내가 어떤 죄를 짓더라도 내가 교도소에 들락날락한다 할지라도 내가 교회를 안나온다고 할지라도 내가 헌금을 한 푼도 하지 않더라도 심지어 성경공부에 참석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어떻게 해서 내가 이렇게 내 행위와 상관 없이, 진짜 이혼을 한다 할지라도 어떻게 내가 구원이 됩니까? 라는 말을 저한테 당연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눈초리 보니까 영 질문을 할 마음이 없습니다. 왜 질문을 안 하느냐면 사람은 구원 받았으면 됐지. 구원 챙겼으면 이젠 입 싹 닦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자기 평소에 가지고 있는 욕심과 욕구. 돈 좋아하는 것 돈 좋아하고, 집에 가서 자식들 돈 벌라고 닥달내고 하는 내 세상 성공, 내 하고 싶은것 하면서 줄창 나가기 바라죠. 구원 문제 해결 되었는데 "고맙습니다." 하고는 두 번 다시 안보고 도망치기 바쁘죠. 놀라운 사실은 그러한 심보도 예수님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인 중에서 문둥병자 열 명을 고쳐 주었는데 아홉 명 다 가버렸습니다. 돌아온 사람 딱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 한 사람 돌아와서 말하기를 "나는 죄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말하기를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자기 챙기기 급급하고 "아!! 오늘도 챙겼다 기적 챙겼다. 자기 신께 챙겼다. 고맙다." 라는 이것만 할 뿐 자기가 죄인인 것을 몰랐어요. 그런데 딱 돌아와서 하는 말이 죄인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은혜를 주셨다니 비로소 나는 죄인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약간 어렵습니다. 제가 다시 질문하고 답변하겠습니다. 왜 우리에게 성령이 오게 되면 우리는 어떤 행위를 하든지간에 심지어 죄를 짓는것과 상관없이 왜 우리는 구원이 확정 되는 이유가 뭡니까? 라는 질문이 그거예요. 성령이 오게 되면 왜 우리는 구원이 확정 됩니까? 정답은 벌써 나왔습니다. 성령이 오게 되면 우리는 뭐가 되냐면 우리는 죄인으로 산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죄인으로 살기 때문에, 죄인으로 살게 되면 여기서 나오는 것은 이런 소리를 하면 안되지만 위가 안좋아서 방구를 뀌면 그 주변 사람들이 방구 냄새를 다 맡죠. 죄인이 어디에 존재하든 그 주변에 죄가 퍼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죄가 뭐냐고 물으면 죄라는 것은 살고자 하면 반드시 나오는 것이 죄예요. 우선 나부터 살아야 되니까. 남이야 죽든 말든 나부터 살아야 되니까. 이것은 어른탓 할 것 없이 어린애들도 마찬가지예요. 어린애들이 부모한테 잘하는 것은 부모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저 적응하는 거예요. 환경에 적응해서 자기 나름대로 한 번 살아 남고자 하는 몸부림치는 거예요. 갓난애기들도 마찬가지이고. 쌍둥이가 태어났을 때 엄마가 한쪽애에게 젖을 주면 저쪽에서 발로 차고 이러지요. 똑같이 나누어야지 만약에 빵도 똑같이 나누지 않고 차이가 나면 둘이 싸웁니다. 그게 뭐냐 하면 인간은 날 때 부터 자기 밖에 몰라요.
자기 밖에 모르는 인간이 어린애에서 어른 되었다고 달라질게 없어요. 인간은 어디에 존재해도 주변에 있는 것을 다 끌어 모아서 내 사는 쪽으로 재구성하게 되어 있어요. 남편을 만나든 자식을 만나든 누굴 만나도 내가 사는데 유리하냐 불리하냐를 통박을 재고 계산 팍팍해서 유리하다 싶으면 만나고 불리하다 싶으면 안 만나고 저 사람이 나에게 이용 가치가 있는가를 따지게 되어 있어요. 항상 중앙에는 나 밖에 없어요. 천상천하유아독존 하거든요. 불교에서 천하에 나 밖에 모릅니다. 이 집에 나 밖에 모르는 애가 두 명이나 있어요.
질문입니다. 나 밖에 모르는 인간이 성령 받았으면 달라질까요? 안 달라질까요? 1번 달라진다. 2번 안달라진다. 성령 받아도 안 달라집니다. 안 달라져야 해요. 성령 받아도 안 달라집니다. 왜 달라지지 않느냐면 30살 때 예수 믿잖아요. 나중에 교회와서 30년 다니면 60세 되죠. 60세 되는 사람들 행동하는 것 보세요. 처음 믿을 때 보다 더 못해요. 목사 장로 처음 교회 온 사람보다 더 못해요. 지금 성도 아닌 사람을 말씀하시는거죠? 성도나 성도 아닌 사람이나 목사 장로 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항상 원점으로 돌아가요. 정신 차려!!! 정신 차려!!! 자기 관리하고 이건 나쁜 일이야!!! 정신 바짝 차려도 인간은 정신 차린다는 이성이 앞서는 것이 아니고 충동, 그 순간에 뭔가 돌아 버리면 자극 받으면 속에 잠재되어 있던 성질이 나와 벌면 순간적으로 쌓아왔던 윤리 도덕이 한꺼번에 다 날라가 버려요. 인간은 거룩거룩 조심해야 돼 다른 말로 하면 조신해야 돼 라고 하다가도 누가 옆에서 건드려 버리면 성질, 성격 나옵니다. 30년 동안 참고 참은 것 한 번 푹 쑤셔 버리면 하루 아침에 폭발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한 발짝도 십자가 앞에서 떠난 적이 없습니다.
개를 묶어 놓으면 개 줄을 한 5미터 묶어 두면 제자리죠. 그런데 재아가 개 목걸이를 한 62키로 정도 묶어 놓으면 어떻게 될까? 한 150미터 묶어 놓으면 어떻게 될까? 자기는 자유라 하겠지. 62키로 묶어 놓고 그런 개 목걸이 없겠지만 하여튼 예를 들어서 62키로묶어 놓고 주인이 중앙에서 줄을 살살 잡아 당기면 어떻게 됩니까? 결국은 어떻게 됩니까? 62키로 떠났지만 와 보니까 역시 십자가 앞이죠. 자기가 30살 때 예수믿고 60되었으니까 인간된 줄 알죠. 살살 잡아 당기면 맨 그 자리에서 한 발작도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80되면 어때요? 혹시 집에 80된 어른들 모신 분이 있습니까? 어때요? 행동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성자입니까? 죄인입니까? 완전히 개 입니다.
어른 보고 개라고 하면 안 되지만 개입니다. 삐지기 일등! 자기 밖에 모르는 일등! 그런데 그 모습이 결국 장차 누구 모습입니까? 지금 아주 젊잖은, 젊잖기 이를데 없는 목사 제 모습이 나이 80되버리면 두뇌에 시넵스라는 세포가 고장나 버리면 인간 아닙니다. 그걸 가지고 귀신 다른말로 하면 좀비, 걸어다니는 시체. 이것이 인간입니다. 똥 싸고 오줌 싸고 그거만 하면 다행이죠.
한 마디로 말하면 자기 밖에 몰라요. 노인네의 특징이 뭐냐면 자기 밖에 모르는 것입니다. 인간이 젊을 때는 이 몸이 내 것이라고 했는데 나중에 나이가 들면 이 몸이 남의 몸이 되어 있어요. 씻겨 줘야돼. 먹여 줘야돼. 입혀 줘야돼. 놀아줘야돼. 이게 짐이 돼요. 그러다 몸이 아파 보세요. 그냥 가위가 있으면 뚝 잘라가지고 자아하고 육체를 저 병원 창문 열고 이 몸은 갖다 뚝 던지고 싶어요.
자기는 아프고 싶지 않은데 이 몸이 아파 그래서 자기는 놀지도 못해. 자기는 머리가 안 아프고 싶은데 편두통이 생겨. 그러면 도대체 처음에 어릴 때는 이 몸이 곧 나라고 생각했는데 나이 들면서 몸하고 자아하고 점점 분리가 돼요. 몸이 나의 이성, 똑똑한 윤리 도덕을 완전히 망가뜨려 버려요. 이것이 로마서 7장에 나오는데 나는 착해지고 싶은데 내 속에 다른 성깔이 있어 가지고 나로 하여금 나를 추접스러운 인간으로 만들어 버려요.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점잖은 체 하다가 음식 남았는데, 참 맛있는 고기 한 점 마지막 남았는데 전부 다 점잖은 체 하고 다 빼가지고 마지막 것을 안 먹는 거예요. 그 때 그 중에서 가장 죄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그것을 먹게 되었습니다. "아이구 고기만 밝히고." 그러면 뭐라고 합니까? 먹어 가면서 "나 죄인이다 왜?" 결국 죄인이 고기 한 점 먹는 보너스를 받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먹고 싶어도 자기가 의인인 줄 알고 점잖은 체 하고 빼다가 결국 고기만 뺏기죠. 인간은 죽을 때까지 죄인입니다.
인간은 왜 죄인이냐면 사람이 자아가 나빠서 죄인이 아니고 어떤 몸이냐 하면 죄된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죄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한 자로 이야기 합니다. 육. 다른말로 하면 육신이라고 합니다. 육신은 육의 몸은 죽어야 되고 영의 몸으로 살려야 되죠. 로마서 8장. 제가 이야기 하는 것이 뭐냐면 왜 성령이 오게 되면 우리는 어떤 행위와 관계없이 구원이 확정되느냐 그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0절 누가 읽어 보세요.
10절.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몸은 죄로 인하여 그 다음에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살리라 이 원칙을 누가 지킨다? 1번 내가 지킨다. 2번 예수님이 지킨다. 몇 번입니까? 예수님이 지키죠. 여기 예수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우리한테 예수님께서 작업을 걸어와요. 어떤 작업을 합니까? 우리의 육은 어떻게 하겠다고? 죽이겠다고 하고. 어떤 사람을 살리겠다고? 영을 먼저 보내 가지고 영이 만약에 여기에 침투해 있으면 우리 죽을 영의 몸은 살리겠다는 것입니다. 살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행 작업이 무엇입니까? 우리 몸을 죽여야죠. 그래야 교체 되잖아요.
우리 몸을 죽이는 그 작업이 어떤 작업의 연속이다? 우리 몸을 살리는 작업의 전제 작업이죠. 나는 죄인이기 때문에 죽어야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 사람이 지금 살림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이 말이죠. 그러면 교회 왜 다닙니까? 교회 다니는 이유가 뭡니까? 자기가 죽는 이유를 알아야 해요. 그래서 기도할 때 어떻게 해야 해요? "주여 속히 죽여 주옵소서." 그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주여 속히 살려 주옵소서." " 나같은 죄인은 속히 죽어도 괜찮습니다. 그래야 속히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웃는 것은요...교회에서 그렇게 기도하는 것 봤습니까? 지가 죽을라고 커피 석 잔 먹어 가면서 금요 철야 하는 그런 교회 봤습니까?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것이 뭐예요? 교회가 아닐 수가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반대로 가르치니까. 결국은 뭐냐? 불교, 절에서는 뭘 해요? 살아 있는 나를 더 살리기 위해서 부처한테 기도하는 것이 절이잖아요. 그러면 앞에 있는 건물이 한국식이냐 고딕식이냐 그것을 떼놓고 건물은 바람 불어서 지붕이 홀라당 날아 갔다고 합시다.
그러면 교회 지붕하고 벽하고 날라가면 남는 것은 뭐가 남아요? 마루만 남죠. 마루만 남았는데 지금 금요 철야 기도한다고 사람들이 모여 있잖아요. 지금 앞에 있는 지붕 날라가니까 뭐도 날라 갔어요? 지붕위에 있는 십자가 신호도 날라갔잖아요. 벽도 날라갔으니까 그러면 남는게 뭡니까? 마루만 남죠. 이 마루만 보고 예상해서 이것이 교회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이미 성령이 왔기에 "저는 죽어 마땅합니다. 하지만 주께서 영원한 세계에 있으니까 어서 그 세계를 보고 싶습니다." 이것이 누구의 소원입니까? 사도 바울의 소원이죠. 이런 기도하고 있으면 이것은 뭐가 되고? 지붕과 벽이 없더라도 교회가 되고 "하나님 내가 살아야 하는데 하나님 도움으로 살아야 되겠습니다." 라고 나오면 이것은 뭐가 돼요? 앞에 있는 지붕하고 벽이 다 날라 갔으니까 이것은 절간이 됩니다.
이렇게 천사가 와서 판정하고 돌아갔습니다. 돌아간 후 이틀 뒤에 바람이 날라 갔으니까 이 사람들이 돈을 내가지고 건축 리모델링을 새로 했어요. 보니까 교회식으로 했고 지붕위에 십자가 달고 밤에는 네온사인 달았습니다. 이것은 뭡니까? 겉으로 보면 교회고 여기서 리모델링한 것이 실제로는 뭐가 되요? 이것은 절이 되겠지요. 사람이 얼마나 자신감 있으면 얼마나 성령 받은 것이 이렇게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성령 온 것이 얼마나 고마우면 아주 웃으면서 기쁨으로 자신 만만하게 "주님 지금 저의 몸을 데려가도 오히려 저는 감사하겠습니다." 라고 말할 정도로 얼마나 자신만만 합니까?
그래서 요한복음에 보면 이런 사람을 뭐라고 하느냐면 "세상에서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세상의 어떤 환란이 와도 이런 사람을 감당치 못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느니라."(요16:33) 성령 받은 사람의 특징이 뭐냐면은 교회 바람 불어서 날라가도 괜찮습니다. 자기 자신의 죄 문제도 신경 안 쓸 정도로. 자기 자신이,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뭘 걱정 하겠습니까? 반드시 벌을 받거나 저주 받거나 심판 받거나 이런 것을 걱정하겠지요. "아! 이러면 우리 집안 거덜나겠다." 걱정하겠지요. 이러한 두려움이 마귀가 주는 두려움이거든요.
그래서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게 되면 이미 그 사람의 몸은 예수님의 몸이 되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어떤 일이 발생해도 그 사람이 걱정할 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 몸이 아니기 때문에 이미 주님께 등기 이전 된 몸이기 때문에 우리가 자기 몸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조차 없게 돼요. 필요 조차 없게 되면 내가 사는 인생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살려 주는 인생이 되겠지요. 그러면 그 사람은 뭘 찾아요? 인생을 살면서 뭘 찾겠습니까? 하루 스물 네 시간 동안 뭘 찾아요? 은혜만 찾겠지요. 거저 주신 것만.
아침에 눈을 떴으면 아! 오늘도 생명 주셨구나! 그런데 눈을 떠서 보니까 집이 아파트다 아! 아파트를 주셨구나! 딸이 피아노를 친다. 아! 피아노도 주셨고 피아노 치는 딸도 주셨구나! 집에 강아지가 보이면 아! 강아지도 주셨구나!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것을 알 수 있는 마음을 하나님이 나한테 주셨구나! 그러니까 이 사람은 스물 네 시간 뭘 찾아요? 하나님이 거저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찾아서 그 다음에 뭘 한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는 사람. 이 사람은 교회 가나 안 가나 집에 있으나 어디를 가나 천국이죠. 찬송가에 있죠.
"내 주 예수 계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죠. 아마 절에 가는 사람은 그런 찬송을 못하고 기쁨을 못받고. 교회 가는 사람, 은혜 받은 분. 나는 죄인인 것을 알고 이 죄인을 용서하시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어느 교회 가나 집에 있어도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감사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사도행전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10분 쉽시다. | |